골 때리는 인문학 - 축구로 읽는 40가지 삶의 지혜
명왕성 지음 / 글의온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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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k리그 축구선수 인문학 교수가 축구의 철학과 인문 철학을 함께 엮어 인생을 관통한다. 기술의 발전, 반칙, 유니폼, 세레모니, 협찬 브랜드, 전술, 팬문화 등등. 


스포츠를 잘 모르는 편이라 더욱 사례들이 드라마틱하고 신기했다. 특히 '기계화' 되고 '정량화' 되며 전술에 성공할 확률조차 선수들에게 gpt워치를 끼워 철저하게 설계하는 점에서 나또한 우려가 컸다. 


말그대로 우리가 즐기는 음식, 스포츠, 음악, 예술조차도 모두 기술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사이보그' 가 되가는 것이다. 인간이 기계인지 기계가 인간인지 모르는 것이다.


나또한 하이라이트를 통해 경기를 소비하며, 야구 중계가 있는 티빙을 끊어놓고, 실제론 유튜브, 네이버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소비하는데, 너무 당연하게 소비하지만 사실 건강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기술을 비판하면서도 기술에 스며들어, 기술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정확함에 열광하고 아이들 조차도 철저한 관리와 100프로에서 200프로 300프로로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해 승리확률 높이기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현대 의과진학 집착과 다를 줄 알았던 스포츠의 유사한 교육현장에 충격을 먹을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게 즐거울 수 있을까, 정말 우리가 과거 신을 뒤로하고 인간중심주의 '르네상스' 를 창조했을땐 뒷배경엔 300년의 페스트가 있었다. 나는 그렇기에 포스트 코로나가 오히려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기술 르네상스가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인간은 비대면, 기술을 통해 인간이 인간을 믿지 않고 기술과 정확도를 믿는 편이 오히려 편하다고 느끼며, 통달해버렸다.


그래도 우리는 후세대에게 오감을 포기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을 수치화할수록 감정이 메말라, 어른들의 정량화에 감정의 소외감을 느껴 반발하게 될 것이다. 마치 극우청소년이 되듯 극단적 스포츠 환경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후대에 무엇을 남겨야 할까, 즐거운 스포츠 문화를 넘겨주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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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축구는 기술과 함께 달리고 있다. 웨어러블을 착용하고 피드백을 받고 감정 표현 방식까지 학습한다. 그 과정에서 선수는 인간일까, 아니면 데이터화된 기계일까? 이 질문은 점점 더 기계와 결합해 가는 우리의 일상으로 확장된다. 


오늘날 우리는 언제  쉬고 움직일지를 시계가 알려주는 세상에 살고 있다. '잘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기보다 기기의 수치와 그래프를 확인하며 안심하거나 불안해한다. 몸의 감각은 점점 둔화되고 대신 숫자와 알림이 내 몸을 느끼는 방식이 된다.  


(... )


"우리의 안녕을 기계에 맡기고 숫자로 환산 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다. 데이터가 자각을 대신하고 우리는 언제 움직이고 쉬어야 하는지를 기계의 지시에 따르게 된다. 기계는 감각을 측정할 뿐 감각을 대신 느낄 수는 없다. 숫자를 맹신하는 순간 내 몸의 주인인 나는 사라지고 데이터만 남는다. 기술은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우리를 돕지만 인간의 감각과 존엄을 대체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잃을 위험에 놓인다. _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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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준비하는 시간 - 세상을 바꾸는 위험한 생각은 어떻게 살아남고 확산되는가
갈 베커만 지음, 손성화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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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혁명의 원인은 제각각 분명하고 계획적이며, 용감하다. 하지만 모든 혁명은 완벽하지 않다. 그만큼 기독권 세력이라는 거대함은 쉽게 정복할 수 없으며, 혁명을 위한 협력조차 그 무섭다는 '군중심리' 로도 통하지 않는다. 그만큼 '기득권' 이라는 자리는 우리에게 '공포'를 주입한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려는 욕구는 '사회'를 이룬 이후로 더럽고 치사하고 치욕적으로 자라왔다. 한번 정권을 잡으면 처음엔 이 세상을 잘 바꿔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기득권' 이라는 선 안에 들어가면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갈 때가 달라진다.

올바른 군중이 세력을 키울라면 그 군중 안에서 자기 편을 모으는 것 뿐만 아니라 외부세력이 있어야 한다. 기득권들은 자기가 다스리는 내부안의 군중분란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 무서운 이집트 세력도 미국에서 무바라크에게 유감을 표하자 바로 사임을 발표했다. (물론 관련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설령 기득권을 이겼다한들, 대부분은 일시적이다. 만약 다시 재혁명에 성공해도 내가 한번이상 실패를 함으로서 사회적으로 특히 '인명피해'를 남긴걸 생각하면 평생의 한으로 남게된다.

기득권 세력은 이런 '좌절감' '쪽팔림' 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조용히 살라고 경고한다. 그게 바로 무력독재이다. "봤지? 괜히 니가 나서면 니 친구들이 죽는다 그니까 조용히 살아"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목숨을 걸고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 죽은 동료들의 뜻까지 이어받아 "네몫까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임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희생한 동료들한테 미안한 마음에 그만두지 않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내게 대단해보인다.

대다수가 죽기전에 그 혁명의 끝을 보지 못했거나, 삐둘어졌거나, 기득권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회'는 누구나 만들고 싶지만, 유토피아가 실현되면 디스토피아에 기여해버리는 사회적 현상, 우리에겐 그렇기에 '양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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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 특히 사회규범을 뒤엎고 통설을 뿌리채 뽑는 변화는 서서히 시작된다. 사람들은 다짜고짜 왕의 목을 베지 않는다. 수년간, 어떤 때는 수십 년간 왕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숙덕거리고,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스운 꼴을 상상하고, 왕을 신의 자리에서 (댕강 잘라버릴 수 있는 머리가 달린) 실수투성이 인간의 지위로 주저앉힌다. 종류를 불문한 모든 혁명도 마찬가지다. 노예제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소수의 사람이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는 행위의 도덕적 황폐를 걱정하면서 뭘 할 수 있을지 곰곰이 따져본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들은 노예제 폐지라는 목적을 지닌 집단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다 결국 부글부글 끓어오는 논의가 행동으로, 그러다가 생각의 변화로, 마지막에는 법의 변화로 이어진다. _ 11(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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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인큐베이터
김미루 지음 / 시공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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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선 일반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만약 실업계 고등학교면 바로 쓸 수 있는 특기로 죽을때까지 살아야하며, 인문계의 경우 공부해서 평생 쓸수있는 대학 전공을 하고, 많으면 박사 전공까지해 그 일만 쭉 하고 살아야하는 편견이나 이미지가 강하다.

커리어 인큐베이터는 정반대의 삶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에 커리어변화를 실험하고 자기 길을 찾아나선다. 의대에 다니다가 갑자기 un인턴을 하고 ngo도 가보며, 컨설팅도 하다가, 존스홉킨스에서 공부를하고 인턴생활없이 대학원 졸업후 정신과 의사가 되는 등 자기 자신과 세상의 편견에 대해 도전장을 내민다.

이런 삶을 진짜 살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제일 첫번째 커리어가 될 그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줄곧 도전하지 않고, 어떤 커리어든 돈이 없어서 억지로 시행했던 나로서는 이런 도전적인 이야기들을 볼 때 여러 생각을 하곤한다.

첫째는 이 같은 사례자들의 용기요, 둘째는 내 자신이 그냥 무서운건지 아님 한 길을 찾겠다는 고집인건지, 심지어 그나마 찾은 길이 내 길이 아니어서 적성의 이유로 겁을 먹은건지 등등의 생각이다. 둘째에 해당하는 것들은 모두 내 얘기로서 모두 맞는 말인듯 하다. 지금껏 서평과 온라인 활동 하나만큼은 자신있게 하는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그들도 모든 것에 용기있진 않았다.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하며 어떤 분야에서는 불안장애가 오고, 사기를 당하고 칩거하는 등 인간적인 감정과 상황들을 겪었다.

한번쯤 '사례에 해당하는 사람' 이 되고싶었다. 겁먹고 도전하지 못하는 부정적 사례가 아니라,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다양한 사례를 보고 용기를 내 새로운 사례를 만든 긍정적인 표본 말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느끼고 재독해야겠다. 오백권을 읽고 마음이 부드러워진것, 그리고 이 글들을 읽으며 구지 나에게 부정적 대입을 안하는 용기가 생긴 것 등등, 사례가 될만한 요소는 충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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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기쁠 수도, 힘들 수도 있다. 멋지고 행복한 순간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순간도 많다. 매일 명상을 하다 보면 삶이 던지는 예기치 않은 다양한 사건 사고들 앞에서 내가 예전보다는 조금 덜 괴로워하고 덜 좌절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커리어 인큐베이터를 거쳐 가면 더 이상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평정심과 함께 우리는 "무언가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맞이하게 되는 어떤 도전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비록 커리어 인큐베이터로부터의 졸업은 없을지라도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분명 우리가 원하는 좋은 삶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될 것이다. _ 300

🔖 은퇴 후에도 그렇게 매일 성실하게 기록한 아버지의 노트를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이건 그냥 일기나 무작위로 한 기록이 아니라 아버지가 언젠가 쓰고 싶다던 소설을 위한 기록이 아닐까? 미래에 당신이 늘 쓰고 싶다던 글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굳이 기록할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70대에도 언론인이 아니라 글쟁이로서, 김동리 선생이 학원 문학성 심사평에 열아홉 살의 아버지를 일컬은 작자로서 스스로를 재창조하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 생각이 들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의 파란 노트를 부여잡고 한참 울었다. _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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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빛, 숲 그리고 코트다쥐르 - 오직 남프랑스에서 마주하는 예술적인 풍경
김종진 외 지음 / 효형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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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중해, 이탈리아 국경 근처 (니스 지방)에 있는 도시, 여섯명의 건축가, 예술가들이 만나 수도원, 마을, 미술관, 유명건축가의 건축물, 도서관, 성곽 등등을 둘러본다. 주저자인 김종진 저자의 서포트로 출발했으며, 다른 작가들은 각자가 느낀 바를 사진과 함께 담았다.

지중해의 건축물 등은 <알쓸별잡2:지중해편> 이나 <톡파원24시>를 통해 주로 접한다. 운이 좋으면 <벌거벗은 세계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프로그램은 99프로 정보성에 가깝다. 일명 이런 역사를 가진 지역이 있다는 가이드 형식이다.

이 책은 그와 다르게 자신이 느낀 바가 80프로가 넘는다. 외국에 나가보지 못해 너무 부럽기도 하면서, 그 감상문들을 보면 더욱 아 이런 감상이 오다니하며 정보성보다 더욱 가고싶게 만든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책 한권 들고, 옆구리에 끼며 가이드 삼아 다니고싶다.

흔해보이는 수도원도, 정원도 사진보다 직접보면 느낌이 다를것같다. 사진만 보면 그냥 사진이지만 저자들의 느낌은 그걸 배로 뛰어넘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기대감을 더욱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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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을 모두 둘러보고 나온 우리 일행은 약속한 듯 수도원 앞마당 한자리에 모여 다층적인 시선들의 소회를 나눈다. 모두의 표정이 평온하다. 어디선가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온다. 그때쯤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의 관광객 단체가 프랑스인 도슨트와 함께 앞마당에 들어섰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우리만의 실바칸 수도원을 명상하듯 고요히 느낄 수 있었다는 다행스러운 마음에 안도의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_ 132

🔖 외부 정원과 예배당을 모두 둘러본 후엥야 비로소 들어선 미술관 내부는 세르트의 건축 철학이 집약된 곳이다. 그는 현대 미술관이 거대하고 권위적인 건물이 되기를 거부했다. 대신 생폴드방스 전통 마을의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여러 개의 방과 중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였고, 관람객이 중세 수도원의 희랑을 걷듯 사색하며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특히 반원통형 지붕은 빛을 부드럽게 반사한 후 실내로 쏟아냄으로써 작품을 보호하는 동시에 주변 산등성이와 조화를 이루는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가 빚어낸 기하학적 그림자들은 벽면 위에서 시간이 흐르는 기록이 된다. 세르트에게 건축은 작품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예술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살아있는 유기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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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고전을 권함 - 문학의 위로와 비문학의 통찰로 읽는 고전의 이중주
류대성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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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자본주의 현대시대에 고전 탐독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페스트> , <변신>, <레 미제라블> 뿐만 아니라 비문학 도서인 <월든> <자유론> <자본론> 같은 사회고찰 서적도 마찬가지다. 왜 하고 많은 책 중에 현대고전인가 의문을 가져보기도 전에 빨리 찾아볼 수 있는 고전, 혹은 이와 같은 고전해설서를 보면 곧장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한 챕터 당 [문학x비문학] 을 한 세트로 엮어 소개한다. <멋진신세계 x 월든> 식이다. 문학과 사회적 현상에 대한 설명 뒤에는, 뒤이어 사회고찰 비문학에 대한 추가 해석이 들어간다. 사회적 현상을 겪고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이 자연스럽게 잘 읽히며, 전혀 어렵지 않다. 


그 중에서도 모두 '현대' 문학이다. 주로 1차, 2차 세계대전 쯤이거나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시점, 서양 혁명 이후 등이 있다. 사회적인 현상은 100~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예로부터 변할 바가 없지만, 글을 읽다보면 대놓고 하는 차별은 사라져도 어쩐지 이 시대에 와서는 차별이라는 키워드가 불평등이 되면서 또 힘든 과정을 겪지 않나 싶다. (어떤 부분에선 차별이, 어떤 부분에선 불평등이 괴로운 양자적 감정이 든다.)


고전에 대한 해설서는 고전 소개에 더불어 고전을 왜 탐독해야 하는지 곧 피부로 와닿게 해준다. 고전 자체를 읽는 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왔음에도 나또한 어렵다는 편견이 들어 잘 꺼내지 않게 되는 반면, 고전에 대한 해설서는 현대에 와서 소개되어 가볍게 꺼내보며 이후 실제 고전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준다.


그리고 이런 고전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모든 해설서에는 우리 모두에게 읽히는 소개된 목록들이 있으며 이 책은 문학과 비문학을 넘어들기 때문에 어떤 장르든 넘나들고 싶은 욕구가 있고, 비문학 책을 잘 모른다면 직접 탐독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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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 결혼 안 하고 혼자 살아?" "애는 몇이세요?" "사시는 데가 어디죠?" "어느 대학 졸업하셨어요?" "아버지는 뭐 하시니?" "당신 몇 살이야?" "고향이 어디세요?" 생각 없이 무심코 던지는 질문은 타인을 향한 관심이 아니라 편견을 위한 준비운동이 될 수 있다. 차라리 예의바른 무관심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며 상대방의 인권을 지켜주는 좋은 방법이다. _ 174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적 기준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초라한 '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학벌과 직업이 결국 자본과 결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면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경제력이 자녀의 삶을 지배했던 과거와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소설에서 발자크는 보트랭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다 부유한 여자와 결혼해서 벼락부자가 되는 게 낫다며 외젠을 충동질한다. 그게 왜 남는 장사인지 계산기까지 대신 두드려준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을 정도다. 부동산과 주신, 코인에 집착하는 현대인은 소설의 주인공 중 누구를 닮았을까? _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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