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진짜이야기
노병천 지음 / 바램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스크린 독점? 왜? 어떻게?

- 사회적 현상에 대한 비평적 관점 연습해보기 -

 

독점(獨占, monopoly)은 어떤 경우에든 긍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나는 너를 독점하고 싶어.” “공급 독점,” “독점 규제,” “독점 자본주의,” “독점 판매" 등 공기어(co-occurring words), 즉 함께 등장하는 단어를 살펴보면, 독점은 경쟁자가 없는 상태이며, 규제의 대상이고, 연애할 때조차 경계해야할 대상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독점’은 다른 존재의 정당성에 의문을 갖게 하고, 그것이 사회적 선의에 기반을 두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이에 부정적인 답변하게 한다.

 

최근 <명량>(김한민 감독, 빅스톤 픽처스 제작)은 일일관객 100만을 넘기면서 그 광풍적 열기(?)에 힘입어 대기업형 영화산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명량>은 5일 만에 600만 관객(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기준)을 가뿐히 돌파했다. 그러나 국내 전체 영화관 총수 2584개 중에 거의 절반인 1500~1600개의 영화관에서 <명량>만 틀어준다면 <명량>을 지난 주말에 본 사람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남아있을까?

 

<명량>을 보고서 ‘감동이야,’ ‘안보면 친일이야’ ‘아직도 안 봤어?’ ‘기대와는 다르지만, 볼만해’..., 대체로 반응이 이렇다면야 누구든 보고 싶지 않으랴. 개봉 후 86%의 좌석 점유율을 차지했다면 예매를 하고 영화를 봐야한다는 뜻이기도 해서, <명량>의 스크린 독점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대기업형 영화사가 궁극적으로 영화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할 것이고 결국 대기업형 영화사를 위해 일하는 중소 배급사나 영화사에도 그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막연히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down effect)를 기대한다는 것은 안일한 낙천주의일 것이다. 의식 있는 지성인이라면 <명량>의 스크린 독점에 대한 논란을 대할 때, 그 영화에 대한 열기나 애정 또는 관심을 일단 접고, 다른 각도에서 이 현상에 주목해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장논리에 따른 자연독점(Natural Monopoly)이라면 수요가 점차적으로 꾸준히 증가하므로, 그와 같은 경쟁적 시장에서 수요자는 가격인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의 영화 흥행으로 승부를 거는 영화 산업은 수요가 점차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늘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맹점이다. 그러므로 ‘독점’하는 대기업형 영화사는 거대 마켓파워(Market power)를 갖게 된다. 이 경우 ‘스크린 독점’이 소비자에 미치는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비합리적인 가격 상승과 서비스 품질 저하 이다.

 

그러나 현대의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파지티브 피드백(positive feedback)을 바탕으로 대형 기업이 독점을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소비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여 시장의 우위를 차지한 대기업이 그 메커니즘에 적극 활용하고 지속적으로 시장의 우위를 차지하여 독점적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대기업형 영화사의 스크린 독점의 경우, 영화소비자는 가격에서나 품질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므로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대기업이라서 합리적인 가격이나 고급한 서비스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잠금효과(lock-in)를 발휘하여,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자그마한 노력, 신생 영화사,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규모 영화들이 경쟁의 무대로 진입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스크린 독점이 관객에게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관객이 문화적 다양성을 접할 기회가 차단되는 폐해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기업은 이윤 극대화(profit maximization)를 추구하고 있고, 한 편의 영화에 거대투자를 하고, 그 영화가 흥행하여, 후속 영화를 만드는 추가적 비용이 발생해야, 이윤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 따라서 대기업형 영화사는 자사에 더 많은 이윤이 돌아가도록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따라서 비즈니스만을 추구하는 대기업형 영화사가 독점하게 될 경우 중소 영화사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영세하지만 재능 있는 중소영화사, 창의적이지만 마켓파워를 얻지 못하는 독립영화 제작사, 이제 막 시작한 신생 영화사, 이들은 대기업형 영화사와의 무한경쟁에 진입조차 불가능하다. 이것을 진입장벽(entry barrier)라고 한다.

 

헐리우드의 영화가 그랬듯이 스크린의 흡인력은 영화수요자들의 정신적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선동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산업이다. 어쩌면 ‘스크린 독점’을 추구하는 대기업형 영화사는 우리의 감성과 욕구와는 무관하게 시나리오를 더 자극적으로, 더 유혹적으로 바꾸어 영화수요자들의 입맛을 저렴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한 영화에 길들여진 영화 수요자들은 영화의 소비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어쩌면 그들의 영화욕구를 컵라면식으로, 삼각김밥이나, 햇반식으로 저렴하게 동시에 저급하게 해소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의의 발전적 경쟁이 많은 경우에 긍정적 효과를 끼치고 문화적으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스펙터클하고 거대 투자를 한 대형 영화에 짜릿한 감동을 받지만, 소규모의 투자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공감을 일으키는 잔잔한 스토리를 가진 영화에도 깊이 감동한다. 우리는 멋진 차에도 감동하고 부러움의 시선을 떼지 못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성실한, 어쩌면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한 청년의 자전거 페달 움직임, 그 청년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에도 감동한다. 우리는 우리의 다양한 가치기준으로 각각의 감성과 문화적 욕구를 다르게 가치평가(valuation)한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명량>의 경우처럼 ‘스크린 독점’하는 영화를 이미 보았다면, 그들의 다른 가치에 대한 추구, 다른 감성에 대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체 영화가 공존하여, 다른 감성의 영화에 대한 욕구 해소방안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의무적인 상영일수를 두는 스크린쿼터 제가 아니라 특정 영화가 극장 상영 전체의 30% 이상을 점유하지 못하도록 하여 관객들이 상연되는 작품을 골고루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 좌석제한 쿼터제의 도입이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동시에 정부의 중소 영화사, 신생 영화사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고려해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에 많은 것을 결정하고 실행해나갈 젊은이들의 시각은 어쩌면 더 예리해야 하고, 어쩌면 더 치밀해야한다. 스크린 독점과 같은 사회현상을 바라볼 때 자신을 훈련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스크린 독점? 왜? 어떻게? 이렇게 질문해보면서 말이다.

 

2014. 0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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