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서서 멈추어 서서

 

 

 

                                                  카르마

 

 

 

어디쯤 걸어가다가 멈추어 서서 영원히 멈추어 서서

나무처럼 멈추어 서있어, 나무처럼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산자락 마을어귀마다 뛰어다녔을 아이처럼

폴랑폴랑 흩날리는 가벼운 모습으로

그 순간, 네가 부르는 그 순간 멈추어 서서

길을 붙들고 내려다보고 있어

 

한 백년은 더 살아서 네 마음의 초입에 서성이며

길을 온통 끌어안은 느티나무처럼 머뭇거리며

네가 오는 길에 누워있는 느리고 느린 오후의 햇살과   

두꺼운 그늘 깊은 어둠 속에서 굳어가는 쓸쓸함의 형상

가끔은 와서 쓰다듬어주겠니, 바람의 늙은 손가락

마디에 앉아 부리를 닦아내듯, 살살 흔들리는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가을마다 떨어뜨리고, 너 대신 장렬히 죽은

사랑, 발을 그 곳에 묶어두었어, 구름다리도 그 곳에 잡아두었어

우리를 불러내는 이 무렵의 노래에는 아픈 침묵의 추임새

집을 나서서 이리 저리 기웃거리던 투명한 너는

책갈피 어디쯤에서 닐니리 피리를 불어대고 나는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나무처럼 서서 멈추어 서서.

 

 

2012.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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