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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2차 세계대전 종전후, 무자비한 권력을 행사한 악이 전후에 정당화를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전쟁이 역사적으로 남겨준 유산이 어떤 식으로 남아야하는지, 그리고 어떤 교훈으로 남아야하는지 한 소년의 시각에서 펼쳐나가고 있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등장하는 어릿광대 삐에로가 모리스 파퐁의 재판을 지켜보고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또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진실이 존재한다고 해도 아무도 말하지 않고, 과거가 있다고 해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면? 소년이 아버지에 대해서 가스똥 삼촌에게 듣고 난 후에 아버지의 어릿광대 놀음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게 된다. 소년의 시각은 가스똥삼촌의 이야기를 듣기 전과 듣고 난 후가 다르다. 진실이 밝혀지고 과거의 기억을 누군가의 회상으로 재생되며 이해하지 못하던 것들을 이해하게 될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그 역할을 떠맡은 사람이 소년의 아버지와 가스똥삼촌이다. 이 사회에선 누구나 작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것의 역할은 누가 시킨다고 해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이다. 소년이 아버지에 대해서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느끼는 것은 그가 삐에로로 분장을 하고 그의 공연을 요청하는 곳은 어디든지 가서 어릿광대의 우스꽝스러운 공연을 하는 것에 대해서 못마땅해 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어릿광대를 보면 울고 싶어졌다. 어릿광대를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절망감과 쓰라린 고통과 수치심을 느꼈다....
...숫총각이 진한 화장을 한 창녀와 마주쳤을 때 느끼는 순진한 공포감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혹은 순결한 처녀가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예기치 않게 발기한 난쟁이 조각상과 부딪쳤을 때 진땀이 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아버지의 어릿광대 역할에 대한 집착은 강렬하지만, 가족의 동의를 얻으려하는 절차에서 작가는 가족들의 감정이나 아버지의 감정, 그리고 그것을 묘사하는 소년의 감정을 섬세하게 잘 드러난다.
아버지가 어릿광대로 무대에 서려고 집을 나서는 과정은 언제나 똑같아 거의 전통이 되다시피 했다. 아버지는 집을 나서기 전에 우리의 의견을 눈빛으로 물었다. 아버지는 집을 나서지 못한 채 망설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를 희생시키는 것이 괴로운 척했다. 그리고 그는 여행가방을 땅에 내려놓고, "아니야, 아니야!" 하며 우리를 버리고 가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기 때문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야단법석을 떨면 할 수 없이 우리도 그가 벌이는 연극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무대에 올라가,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도록 괴로운 척해야 했다.
결국에 그리고 언제나 그리고 아마도 열렬히 아버지는 어릿광대의 역할을 하기위해 갈 것이면서도 그 과정에 깃든 망설임, 시간을 두고 뜸을 들이는 과정은 아버지가 하고자 하는 것이 성공의 욕망을 위해 철로위의 기차처럼 어떤 방향으로 무지막지하게 나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가 선택한 길이 단호할지라도 무지막지하고 거침없는 일방통행식의 결행은 아니라는 점에서 섬세하다.
광대의 무대에 섰을 때 아버지는 전혀 다르다. 아버지는 어릿광대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아무런 망설임없이, 인류를 구원하기라도 할 듯이, 스스로 학대하듯이, 혹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받기라고 하려는 듯이, 어릿광대의 희생과 고통을 혼자서 견뎌내는듯 보이는 것이다. 그 어릿광대의 우스꽝스러운 역할에 소년의 아버지는 너무나 열심이었기 때문에 소년은 "인류가 안고 있는 부끄럽고 어두운 부분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무대에서 아버지는 혼자서 따귀를 때리고 혼자서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시늉을 하며 눈물이 나도록 고독한 원맨쇼를 했다. 그는 우주의 은하계와 지구의 어리석은 인류를 구하러 온 얼빠진 전사나 흰 칼을 찬 사무라이 같았다.
어느날 가스똥 삼촌이 말해준 아버지와 가스똥 삼촌의 과거는 소년이 아버지에게 가졌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그는 (가스똥 삼촌) 자신의 삶 전체의 문을 나에게 열어준 것이다. 삼촌은 내면 깊숙하게 간직하고 있던 전부를, 잔인한 발자국들로 짓밟혀 피범벅이 된 처절한 정원을 나에게 내어 주었다.
아버지와 가스똥 삼촌은 1942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레지스탕스 세포조직에 가담을 했었고, 두에역에 변압기를 폭파한다. 얼마 후 독일군에 잡히게 되는데 잡힌 이유도 독일군이 이들에게 혐의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조기 축구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누군가의 고발로 잡히게 되는 것이다. 그 둘은 진범이 아니라고 진술을 했지만 일단 잡혔기 때문에 진범이 나타나지 않으면 총살을 당할 입장에 놓였고 앙리와 에밀이라는 다른 무고한 사람들과 깊은 웅덩이에 갖히게 된다. 진범은 가스똥 삼촌과 소년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다른 진범이 나타날리가 없었다.
갖혀있는 네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그중에 누군가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이 사는 방법에 대해서 의논하고 있었고, 소년의 아버지와 가스똥 삼촌이 실제로 변압기를 폭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둘은 자신 둘중에 한사람이 진범이라고 고백하고 나머지 셋을 살리겠다는 것을 의논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을 감시하던 군인인 베르나르는 아래처럼 말한다.
죽고 사는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거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자신이 살아난다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악의 편에 있는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나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야.
베르나르는 그들에게 샌드위치나 빵을 던져주기도 한다. 나중에 베르나르는 자신의 직업이 어릿광대라고 고백을 한다. 소년의 아버지가 말한 것 중에 선생님으로서 그의 마음가짐이 의미가 있어 밑에 옮겨본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야. 그럼 자네와 나는 똑같이 어린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 거네. 그런데 왜 우리를 풀어주는 거지?
그들이 풀려난 이유는 누군가가 변압기를 폭파했다고 자수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짜 범인을 만들어 낸 것은 순전히 어처구니없는 그러나 그럴듯하게 이야기가 되는 듯한 구성방법에 의존한다.
그 (범인의)부인은 결혼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새신랑이 생사의 기로에 있었어. 그녀의 새신랑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다. 그 부인은 죽어가는 남편을 바라보며 그가 이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뜻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독일장교를 찾아가 남편이 변압기를 폭파시킨 범인이라고 고발을 했단다.
독인군은 그 부인의 말을 믿고 범인으로 몰렸던 네사람은 풀려나게 된것이다. 그런데 그 부인의 새신랑은 무고하게 그 폭발에 사고를 당한 전기공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남편은 두에 역의 전기공이었고, 변압기가 폭발하는 바람에 화상을 입었거든. 그 사람은 뼈속까지 화상을 입었다. 바로 우리가 그 사람을 죽게 한 것이지.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우리를 구해준거야. 우리는 그가 역에 있는 줄도 모르고 변압기를 폭파시켰던 거였어.
삶은 서로 묘하게 인연을 맺으며 죽음으로 이끌어진다. 그 과정에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잔잔하게 의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 작가 미쉘 깽의 작가적 역량이 아닐까. 강렬하지 않아도 의문을 던지는 그 망설임과, 주저함, 그러면서 단호한 역할 수행, 그것은 전기공 부인에게서 다시 느낄 수 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많은 사람들이 레지스탕스 요원이나 순교자로서 자신의 이름이 거리의 이름으로 정해져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랐다는 것은 너도 잘 알지? 그러나 그 부인은 남편의 이름을 딴 거리를 만들겠다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하더구나.
사실 감동은 어떤 보상을 취하지 않는 것에서 일어난다. 모리스 파퐁의 재판에 나타난 어릿광대는 아버지의 아들, 그 소년이 어릿광대의 분장을 하고 아버지의 여행가방을 가지고 나타났던 것이다. 비시 정부는 실재로 존재했고 반이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던 모리스 파퐁의 재판을 아버지의 여행가방을 들고가서 경청함으로서 나치의 처벌에 대해서 단호하고 예외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다. 부하로서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모리스 파퐁의 변명은 충분하지 않다. 구덩이에 빠졌던 네사람이 처해 있던 상황은 부하로서 명령에 복종해야하는 상황보다 더 극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극한에 처한 네사람은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는 궁리를 했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작가는 아주 중대한 순간, 심각한 순간, 총살을 당할 순간에 인간의 의식은 사소한 것에 고정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령 총살을 당하는 순간에 '시선이 피클 병에 고정되었다' 거나 '옛날에 나를 좋아하던 그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하는 엉뚱한 생각, 처절한 정원에서 사소하고 평범한 것, 혹은 사소해 보이지만 선한 것에 의식을 고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20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