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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2001년 9월 12일부터 2002년 8월 16일까지 일어난 이야기
그리고 1944년 9월 12일부터 1945년 8월 16일까지 일어난 이야기.
1945년, 패전의 기운이 맴도는 전장 한가운데로 21C 바다로부터 철없는 프리터, 백수청년 오지마 겐타가 떠밀려 온다. 같은 시각, 하지만 전혀 다른 시대! 2001년, 콘트리트 더미의 휘황찬란한 불빛 한가운데로 20C 하늘로부터 까까머리 소년병,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을 위해 전쟁을 준비하던 비행훈련병 이시바 고이치가 날아온다. 생김새는 닮은꼴, 성격은 판이한 이 두 사람이 시공간을 넘나들게 되면서, 어긋난 운명아래 겐타는 고이치로, 고이치는 겐타로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가게 된다.
게임크리에이터라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안락함만을 추구하며 모든 일에 설렁설렁인 겐타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음식점에서 홀 책임자인 야마구치와 싸운 후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 음식점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귀게 된 여자친구 미나미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이로 인해 마음이 심란해진 겐타는 홀로 서핑을 하러 바다로 간다. 서핑을 하다 갑작스레 밀려든 파도에 휩쓸린 겐타는 의식을 잃게 되고,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는 자신의 자동차도 휴대전화도 지갑도 콜라도 없는 곳을 마주한 후 다시 쓰러지고, 후미코라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게 된다. 테마파크에서나 보던 과거라는 생소한 곳에서 가즈미가우라 항공대의 비행연습생 이시바 고이치가 되어버린 겐타는 엄격한 규율과 고된 훈련, 고참들의 학대를 견뎌내며, 안일하고 나태했던 예전의 겐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과거로 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는 꼭 살아서 다시 시간이동을 통해 자신이 살던 시대로, 미나미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항공대가 아닌 특공대에서 인간어뢰 훈련을 받게 된 겐타는 과거의 삶을 살아가면서 미나미의 조부모-사관 가모시다 소위와 후미코-를 만나게 되고 자신을 구해 준 정비병이자 자신의 할아버지인 오지마 또한 만나게 된다. 전장이라는 어두운 상황 속에서, 겐타가 겪는 시련 속에서 경외감이라는 무거운 느낌이 와닿기도 했지만, 가모시다와 후미코를 이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조금씩 성장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겐타를 보면서 흐뭇하기도 했다. 그렇게 겐타의 성장을 엿보아가던 중, 패전이 명백해졌음에도 전쟁으로 죽음으로 내몰아져 인간어뢰에 오르게 될 가모시다를 대신해 전장으로 뛰어든다. 37년 뒤 태어날 미나미를 위해, 돌아가지 못한다고 해도 이시바로 살면서 훗날 미나미를 만나겠다는 겐타의 다짐을 들으면서 정말 안타까웠고, 전쟁의 참혹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21C의 겐타는 안일하고 태평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나, 20C로 온 겐타는 비록 이시바 고이치라 불리웠지만, 죽기 살기로 감내하며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노력하는 열렬청년이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상황과 맞닿았음에도 용기있게 희생을 선택한 그는 정말 용감한 청년이었다. 자신의 할아버지인 오지마에게 손자의 이름을 겐타라고 지어주길 바란다는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돌아가길 원했지만,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이시바가 되어 할아버지가 되어서라도 미나미를 만나길 원했던 겐타, 그는 어쩌면 1945년 8월 16일, 이시바 고이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이 여기서 끝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내가 죽는다면 자네의 손자로 다 태어날 걸세."라고 오지마에게 말하는 그의 말 속에서...그의 죽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전진으로 돌진하면서 끊임없이 미나미의 이름을 외치던 겐타의 말이,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비행사가 꿈인 이시바 고이치는 가즈미가우라 항공대의 비행연습생이 되어 나선 첫 비행에서 알 수 없는 기계결함과 알수 없는 기운에 휩싸인 채 정신을 잃게 되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낯선 병원에서 오지마 겐타라고 불리는 자신이었다. 낯선 시대, 낯선 곳, 낯선 이름이 그저 생소하기만 하고 어리둥절하기만 한 고이치 앞에 펼쳐진 세상의 그야말로 모든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이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호국영령들은 방패가 되어 그렇게 사라졌냐'고 절규하며, 어둡고 무섭기만 했던 전장의 한 가운데에 있다가 풍요롭고 편리한, 평안과 쾌락을 추구하는 21C 문화의 급
물결속에서 처음에는 이질감을 느끼며 부유했던 고이치는 어느 새 그러한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이상해진 아들이 그저 기억상실에만 걸린 줄 알고 더 자상하게 잘해주는 부모와 미나미라는 겐타의 여자친구와 함께 하면서 자신과는 동떨어져 있기만 했던 안락함 속에서 그는 빈곤에 굶주리며, 전쟁을 앞두고 있던 이시바 고이치가 아닌 오지바 겐타가 되어 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꿈꿔보지 못했던 따뜻함과 평안함이 가득한 생활에 만족하며 살던 고이치는 어릴 적 죽은 동생의 묘를 찾아갔다가 자신의 묘와 마주하게 된다. 그 곳에서 일본의 패망 직후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된 고이치는 그제서야 자신과 겐타가 바뀐 삶을 살게 된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을 대신해 전장에 나가 죽은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살던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겐타가 헤엄쳤을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제발 겐타가 아직 죽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렇지만, 고이치의 바람이 무색하게 고이치는 산호초에 걸려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죽게 된다. 57년 전 죽었을 겐타와 함께, 미나미의 이름을 부르며 2002년 8월 16일 겐타의 삶으로 눈을 감는다.
타임슬립! 누구나 한번쯤은 과거 혹은 미래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것이 편리하고 환상적일 것만 같았던 내게 겐타와 고이치의 타임슬립은 그저 비극같았다.
타임슬립, 그 끝이 겐타와 고이치의 죽음이라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20C의 어두운 삶을 살던 고이치가 21C의 급발전한 문명적에서 안주해가던 모습에서 희극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21C의 편안한 삶에 익숙해졌던 겐타가 2OC의 참혹한 전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점점 성숙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렇기에 이들의 바뀐 운명이, 삶이 더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겐타의 편안한 삶을 행복하게 느끼며 살던 고이치가 미나미와 함께 하면서 임신을 시켰다는 것도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시각 겐타는 조국을 위해, 생존을 위해 열심히 맞서 싸우고 있었건만 조국의 위해 싸우겠다던 고이치는 정작 저렇게 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고이치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고 겐타의 탓 또한 아니었기에 나는 그들의 삶을 그저 방관자로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 하면서 느꼈던 것은 전쟁의 참혹성과 다시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며 불행을 초래하는 전쟁이 없기를 바랬을 뿐이다.
'8월 16일.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과서에는 이렇듯 전쟁을 그만두지 않으려는 인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 따위는 실려 있지 않았다. 연사 연표에는 단 한 줄. 1945년 8월 15일 종전이라고 쓰여 있지만, 생각해보면 여러 해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전쟁이 이벤트 종료일처럼 오늘까지만,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로 끝날 리 없었다.'
'정당한 전쟁이란건 있을 수 없다. 전사에는 존귀함도 천함도 없다. 책임자새끼들 다 나와.'
'전쟁에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쟁은 죽을 위험이 전혀 없는, 안전한 곳에 있는 놈들이 계획하고 명령하는 거다.'
그리고 환경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봤다. 안일한 삶을 살았던 겐타가 인내를 배우며 열성적으로 노력하고 싸웠던 것처럼, 애국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성실했던 고이치가 편리하고 편안한 삶에 익숙해져 해이해진 것처럼! 만약 그들 사이에 타임슬립, 즉 시공간의 초월이 없었다면! 서로의 삶이, 운명이 바뀌지 않았다면 겐타는 여전히 편안한 삶에 익숙해져 살았을 것이고, 고이치는 여전히 전장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끝이 1945년 8월 16일과 2002년 8월 16일에서 일어나는 결과와 다를 바가 없었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겐타와 고이치의 타임슬립을 통한 삶의 그리고 시공간의 여행이 담긴, 1/2와 2/2의 두권이 책이 만나 하나같지만 그렇지 않았던 그들의 삶을 이야기 했던 것처럼, 각 권의 표지 속에서 잠든 겐타와 고이치의 모습 속에서 다르지만, 같았던 그 들의 삶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