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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자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 중 한명인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를 통해 그의 작품을 접한 후 그의 저서들을 하나 하나 탐독해가면서 오쿠다 히데오 그 특유의 해학적인 분위기, 다양한 사람의 삶을 유쾌하게 그려낸 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별 관심 없었던 일본소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방해자>는 내가 좋아하는 그의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이질감보다는 그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고 또 다른 분위기의 매료되었던 시간이었다. 평소 가벼운 듯 하면서도 전혀 가볍지 않은, 우회적인 듯 하면서도 직설적이고 솔직한 그의 개성적인 문체가 참 매력적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긴장감과 반전을 느낄 수 있는 추리형식인 이 소설 또한 참 마음에 들었다.
<방해자>는 불량스런 모습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고등학생 유스케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구노형사, 남편과 남매를 둔 평범한 주부 교코 이 세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혼조시에 사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교점이 없어보이는 세 사람은 자동차용품 제조업체인 하이텍스 혼조 지사에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사건이 일어나면서 묘하게 얽히게 된다. 이 세사람 중 친구인 요헤이, 히로키와 어울려 치기어린 마음으로 아리랑치기를 하던 유스케와 구노형사가 먼저 만나게 된다. 구노가 형사인 줄 모르고 덤볐다가 호되게 당한 유스케와 비록 유스케가 먼저 덤비긴 했지만 청소년에게 상해를 입히게 된 구노형사는 이 일을 시발점으로 정작 본인들은 원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부서장인 구도의 명령으로 형사로서의 모습에 저촉되는 불륜행위를 저지르는 마루보의 동료형사를 잠복관찰하고 있던 구노를 그 관찰대상자인 하나무라가 못마땅하게 여겨, 다친 유스케를 협박해 구노를 곤란한 위치에 놓이게 만들고마는 것이다.
방화사건을 조사하게 된 구노는 야쿠자 조직인 기요카즈회의 복수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진행하는 서와는 달리 파트너인 본청소속 핫토리와 수사 중, 방화사건의 최조 목격자이자 화재진화를 하다 다친 피해회사의 직원인 시게노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시게노리는 앞서 언급했던 교코의 남편으로 이것을 계기로 구노와 교코가 첫만남이 이루어진다. 평범한 30대 주부의 교코의 모습에서 7년전 죽은 아내 사나에를 떠올리게 되는 구노. 그래서인지 그는 시게노리에게 혐의를 두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렇게 시게노리를 의심하고 있을 때 두번째 방화가 일어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방화당시 병원에 입원중이었던 시게노리에 대한 혐의가 사라지는 것이지만 오히려 구노는 시게노리를 더욱 의심하고, 증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심증을 확신으로 만드는 정황을 포착하기에 이른다.
가계에 도움이 될 겸 소일거리 삼아 할인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교코에게 한 통화의 전화가 걸려온다. 할인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대우의 처우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입장으로서 교코에게도 솔깃한 이야기였지만 두렵고 나서기 싫어 거절하고만다. 그런 그녀가 결국 본점의 아르바이트원인 고무라와 인권변호사인 오기와라와 함께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할인마트와의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계속 되는 형사와의 만남, 남편 회사 사람들의 방문, 그리고 무엇부터 남편 시게노리의 수상한 행동과 불필요한 물건들의 흔적들이 퍼즐처럼 하나 하나씩 맞춰져 그녀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기에 이르고 그 불안감을 이겨내고자 그녀는 할인마트와의 투쟁에 집중하게 된다. 처음에는 소극적이었지만 부당한 대우 개선과 권리를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는 교코, 평범한 아줌마였던 자신이 무언가가 된 것 같은 만족감과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느끼게 되면서 그녀는 투쟁에 더 열성적이게 되고 그로 인해 할인마트내에서는 소외당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교코이다. 대찬 듯한 그녀의 모습이 발버둥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서히 조여오는, 평화로웠던 일상을 흔드는 불안감에 잠식 당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 그렇기에 그녀의 최후 선택이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다. 한 남자의 아내였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아르바이트를 했던, 예쁜 전원주택에 작지만 자신만의 화단을 꾸미며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갖고 있던 평범한 한 여자의 삶이 어쩌다 이렇게 흔들리고 무너지게 된 것일까!
어떻게 보면 신문 작은 귀퉁이를 차지하며 쉬이 지나갈 수 있었던 방화사건이었지만 기요카즈회를 첫 타켓으로 설정하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건은 커질대로 커지게 되고 실제로 기요카즈회가 연관이 되지 않은, 비리를 저지른 시게토리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한 자작극으로 시작되었던 방화사건은 기요카즈회와 하이텍스사의 서로의 이윤을 위한 거래와 경찰들의 비리, 실적을 위한 경찰의 이기심, 구노를 향한 하나무라의 증오와 복수로 인해 작은 선에서 무마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번진다. 어느 새 경찰들과 언론은 시게노리에게 집중하게 되고, 그로 인해 교코의 평범했던 가정은 흔들리게 된다. 사랑했던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교코와 비록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회사와 가정 모두에서 설 곳을 잃은 채 안팎으로 압박을 느끼며 피폐해져가는 시게노리에게 연민을 느끼고는 어떻게든 자수를 시키려고 하는 구노. 사에키 경부보의 말처럼 구노는 형사를 하기에는 너무 착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남에겐 싫은 소리 못하고, 자신을 오해하고 원망하는 사람을 위해서 입을 다물 줄 아는 사람. 죽은 아내의 장모를 꾸준히 찾아 가고 챙기는 사위의 모습 등을 보면 말이다. 시게노리의 자수를 통해 어떻게든 사건을 가라앉히고자 했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사건을 어서 무마하고 제 잇속을 챙기기에 바쁜 기요카즈회와 하이텍스간의 거래로 인해.
평범했던 한 가정이 흔들리고 맹목적으로 매달렸던 할인마트와의 투쟁은 말이 좋아 소실대탐이지, 결국 자신들의 단체의 이익 채우기가 목적이었던 버찌회의 정체를 깨닫게 되면서 의지할 곳 하나 없었진 교코는 절망하고 결국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야 만다.
아직도 교코를 향해 외쳤던 구노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아내 사나에를 떠올리게 하는 교코의 어리석은 선택을 어떻게든 막고 싶었던 구노. 목숨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지키고자 했던 그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약, 비록 거짓자수이긴 했지만 범인이 잡혔다는 뉴스를 교코가 봤더라면, 핫토리가 실적을 추구하지 않고 구노의 말처럼 임의동행을 했더라면, 시게노리가 애초에 자수를 했더라면, 아니 비록 비리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애초에 방화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극이 찾아오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한번의 움직임으로 차례 차례 무너져가는 도미노처럼 하나의 어리석은 실수가 연쇄작용을 하며 낳은 참혹한 결과를 보면서 그 씁쓸함과 안타까움에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또 하나! 앞서 주어지는 일련의 복선을 통해 어느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진짜 예상이 적중하고만 반전의 등장은,나를 놀라게 할 뿐더러 구노에 대한 애처로움을 더 깊어지도록 했다. 구노와 장모.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유난히 친밀하고 특별하게 비춰졌기에 말 그대로 '하치오지의 빈집'이었던, 구노의 안식처와 같던 장모의 집의 진실은 내 마음을 아려오게 만들었다. 사나에를 잃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그렇게까지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구노의 충격과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기에 더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부상을 당한 채 마지막까지 장모의 집을 찾아가는 그의 이루어질 수 없는 허망한 믿음에 그 안타까움이 더 고조되었다.
오래도록 불면증에 시달려왔던 구노. 잠 못 들었던 그는 어쩌면 아내가 죽은 그 시점부터 불면증에 시달린 것이 아니라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나에를 같이 떠올려 줄 수 있는, 위안이 되어줄,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존재를 붙들고 있기 위해 계속 해 꿈을 꿔왔던 것은 아닐까? 허를 찌르는 반전은 영화 식스센스를 떠올리게끔 해주었다.
<방해자>에는 다양한 성격과 모습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강철처럼 단단한 듯 하지만 여린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구노와 소극적이고 평범했지만 환경이 변하게끔 만들어버린 교코, 센 척하며 과시하지만 그 내면은 불완전한 치기어린 유스케, 강압적이고 악랄하며 보이는 것만을 믿는 비도적이고 판단력 부족한 하나무라, 평범한 소시민같지만 나약함과 자제력 부족으로 모든 비극의 발단을 초래한 우유부단한 시게노리, 모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상대방을 편편안하게 만들고 의지가 되는 사에키, 그저 겉면의 화려함을 보고 야쿠자가 되고자하는 부나방같은 요헤이 등. 이런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접할 수 있었고, 방화사건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의해 범인을 쫓아가고 그와 관련된 작고 큰 진실들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방화사건이라는 원론적인 문제해결뿐만 아니라 탐욕, 나약함, 증오, 절망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교감하게됨으로써 인간 그 자체의 심연을 고찰해볼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문득 이 소설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교코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신의 삶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평범한 그녀였건만, 남편의 죄가 마치 연좌제처럼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채 뺏어가고 말았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할인마트 사장에게 능욕당하고, 결국은 어리석은 선택까지 하고 말아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오쿠다 히데오, 그는 왜 평범한 한 여자의 삶을 이렇게까지 극한으로 몰아갔을까? 책을 덮고서도 이 의문이 체증처럼 남아 나를 옭아맸다. 그는 작은 탐욕이 불러일으킨 죄가, 그 죄를 덮기 위해 또 하나의 죄가 덧씌워지는 것을 통해 아무 죄 없는 한 여자의 인생이 몰락하고야 마는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주고자 반성을 하길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교코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면서.
세 권이라는 분량이 처음에는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했던 내가 정작 그 뒷이야기의 궁금증을 참지 못해 연이어 세 권을 모두 읽어 버리고 말았다. 미스테리 요소를 가미한 추리형식의, 범인 수사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구노, 교코, 유스케 세 사람의 눈과 마음을 빌려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입장이 되고 감정이입이 됨녀서 더 긴장하고 몰입했던 것 같다. 전에 봤던 작품들이 유쾌함과 가벼움으로 나를 매료시켰다면 <방해자>는 허를 찌르는 반전과 치밀한 전개로 오쿠다 히데오가 선사하는 그만의 흡입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