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자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 중 한명인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를 통해 그의 작품을 접한 후 그의 저서들을 하나 하나 탐독해가면서 오쿠다 히데오 그 특유의 해학적인 분위기, 다양한 사람의 삶을 유쾌하게 그려낸 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별 관심 없었던 일본소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방해자>는 내가 좋아하는 그의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이질감보다는 그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고 또 다른 분위기의 매료되었던 시간이었다. 평소 가벼운 듯 하면서도 전혀 가볍지 않은, 우회적인 듯 하면서도 직설적이고 솔직한 그의 개성적인 문체가 참 매력적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긴장감과 반전을 느낄 수 있는 추리형식인 이 소설 또한 참 마음에 들었다.

<방해자>는 불량스런 모습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고등학생 유스케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구노형사, 남편과 남매를 둔 평범한 주부 교코 이 세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혼조시에 사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교점이 없어보이는 세 사람은 자동차용품 제조업체인 하이텍스 혼조 지사에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사건이 일어나면서 묘하게 얽히게 된다. 이 세사람 중 친구인 요헤이, 히로키와 어울려 치기어린 마음으로 아리랑치기를 하던 유스케와 구노형사가 먼저 만나게 된다. 구노가 형사인 줄 모르고 덤볐다가 호되게 당한 유스케와 비록 유스케가 먼저 덤비긴 했지만 청소년에게 상해를 입히게 된 구노형사는 이 일을 시발점으로 정작 본인들은 원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부서장인 구도의 명령으로 형사로서의 모습에 저촉되는 불륜행위를 저지르는 마루보의 동료형사를 잠복관찰하고 있던 구노를 그 관찰대상자인 하나무라가 못마땅하게 여겨, 다친 유스케를 협박해 구노를 곤란한 위치에 놓이게 만들고마는 것이다.

방화사건을 조사하게 된 구노는 야쿠자 조직인 기요카즈회의 복수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진행하는 서와는 달리 파트너인 본청소속 핫토리와 수사 중, 방화사건의 최조 목격자이자 화재진화를 하다 다친 피해회사의 직원인 시게노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시게노리는 앞서 언급했던 교코의 남편으로 이것을 계기로 구노와 교코가 첫만남이 이루어진다. 평범한 30대 주부의 교코의 모습에서 7년전 죽은 아내 사나에를 떠올리게 되는 구노. 그래서인지 그는 시게노리에게 혐의를 두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렇게 시게노리를 의심하고 있을 때 두번째 방화가 일어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방화당시 병원에 입원중이었던 시게노리에 대한 혐의가 사라지는 것이지만 오히려 구노는 시게노리를 더욱 의심하고, 증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심증을 확신으로 만드는 정황을 포착하기에 이른다.

가계에 도움이 될 겸 소일거리 삼아 할인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교코에게 한 통화의 전화가 걸려온다. 할인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대우의 처우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입장으로서 교코에게도 솔깃한 이야기였지만 두렵고 나서기 싫어 거절하고만다. 그런 그녀가 결국 본점의 아르바이트원인 고무라와 인권변호사인 오기와라와 함께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할인마트와의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계속 되는 형사와의 만남, 남편 회사 사람들의 방문, 그리고 무엇부터 남편 시게노리의 수상한 행동과 불필요한 물건들의 흔적들이 퍼즐처럼 하나 하나씩 맞춰져 그녀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기에 이르고 그 불안감을 이겨내고자 그녀는 할인마트와의 투쟁에 집중하게 된다. 처음에는 소극적이었지만 부당한 대우 개선과 권리를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는 교코, 평범한 아줌마였던 자신이 무언가가 된 것 같은 만족감과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느끼게 되면서 그녀는 투쟁에 더 열성적이게 되고 그로 인해 할인마트내에서는 소외당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교코이다. 대찬 듯한 그녀의 모습이 발버둥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서히 조여오는, 평화로웠던 일상을 흔드는 불안감에 잠식 당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 그렇기에 그녀의 최후 선택이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다. 한 남자의 아내였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아르바이트를 했던, 예쁜 전원주택에 작지만 자신만의 화단을 꾸미며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갖고 있던 평범한 한 여자의 삶이 어쩌다 이렇게 흔들리고 무너지게 된 것일까!

어떻게 보면 신문 작은 귀퉁이를 차지하며 쉬이 지나갈 수 있었던 방화사건이었지만 기요카즈회를 첫 타켓으로 설정하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건은 커질대로 커지게 되고 실제로 기요카즈회가 연관이 되지 않은, 비리를 저지른 시게토리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한 자작극으로 시작되었던 방화사건은 기요카즈회와 하이텍스사의 서로의 이윤을 위한 거래와 경찰들의 비리, 실적을 위한 경찰의 이기심, 구노를 향한 하나무라의 증오와 복수로 인해 작은 선에서 무마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번진다. 어느 새 경찰들과 언론은 시게노리에게 집중하게 되고, 그로 인해 교코의 평범했던 가정은 흔들리게 된다. 사랑했던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교코와 비록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회사와 가정 모두에서 설 곳을 잃은 채 안팎으로 압박을 느끼며 피폐해져가는 시게노리에게 연민을 느끼고는 어떻게든 자수를 시키려고 하는 구노. 사에키 경부보의 말처럼 구노는 형사를 하기에는 너무 착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남에겐 싫은 소리 못하고, 자신을 오해하고 원망하는 사람을 위해서 입을 다물 줄 아는 사람. 죽은 아내의 장모를 꾸준히 찾아 가고 챙기는 사위의 모습 등을 보면 말이다. 시게노리의 자수를 통해 어떻게든 사건을 가라앉히고자 했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사건을 어서 무마하고 제 잇속을 챙기기에 바쁜 기요카즈회와 하이텍스간의 거래로 인해.

평범했던 한 가정이 흔들리고 맹목적으로 매달렸던 할인마트와의 투쟁은 말이 좋아 소실대탐이지, 결국 자신들의 단체의 이익 채우기가 목적이었던 버찌회의 정체를 깨닫게 되면서 의지할 곳 하나 없었진 교코는 절망하고 결국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야 만다.

아직도 교코를 향해 외쳤던 구노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아내 사나에를 떠올리게 하는 교코의 어리석은 선택을 어떻게든 막고 싶었던 구노. 목숨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지키고자 했던 그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약, 비록 거짓자수이긴 했지만 범인이 잡혔다는 뉴스를 교코가 봤더라면, 핫토리가 실적을 추구하지 않고 구노의 말처럼 임의동행을 했더라면, 시게노리가 애초에 자수를 했더라면, 아니 비록 비리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애초에 방화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극이 찾아오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한번의 움직임으로 차례 차례 무너져가는 도미노처럼 하나의 어리석은 실수가 연쇄작용을 하며 낳은 참혹한 결과를 보면서 그 씁쓸함과 안타까움에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또 하나! 앞서 주어지는 일련의 복선을 통해 어느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진짜 예상이 적중하고만 반전의 등장은,나를 놀라게 할 뿐더러 구노에 대한 애처로움을 더 깊어지도록 했다. 구노와 장모.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유난히 친밀하고 특별하게 비춰졌기에 말 그대로 '하치오지의 빈집'이었던, 구노의 안식처와 같던 장모의 집의 진실은 내 마음을 아려오게 만들었다. 사나에를 잃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그렇게까지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구노의 충격과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기에 더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부상을 당한 채 마지막까지 장모의 집을 찾아가는 그의 이루어질 수 없는 허망한 믿음에 그 안타까움이 더 고조되었다.

오래도록 불면증에 시달려왔던 구노. 잠 못 들었던 그는 어쩌면 아내가 죽은 그 시점부터 불면증에 시달린 것이 아니라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나에를 같이 떠올려 줄 수 있는, 위안이 되어줄,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존재를 붙들고 있기 위해 계속 해 꿈을 꿔왔던 것은 아닐까? 허를 찌르는 반전은 영화 식스센스를 떠올리게끔 해주었다.

<방해자>에는 다양한 성격과 모습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강철처럼 단단한 듯 하지만 여린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구노와 소극적이고 평범했지만 환경이 변하게끔 만들어버린 교코, 센 척하며 과시하지만 그 내면은 불완전한 치기어린 유스케, 강압적이고 악랄하며 보이는 것만을 믿는 비도적이고 판단력 부족한 하나무라, 평범한 소시민같지만 나약함과 자제력 부족으로 모든 비극의 발단을 초래한 우유부단한 시게노리, 모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상대방을 편편안하게 만들고 의지가 되는 사에키, 그저 겉면의 화려함을 보고 야쿠자가 되고자하는 부나방같은 요헤이 등. 이런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접할 수 있었고, 방화사건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의해 범인을 쫓아가고 그와 관련된 작고 큰 진실들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방화사건이라는 원론적인 문제해결뿐만 아니라 탐욕, 나약함, 증오, 절망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교감하게됨으로써 인간 그 자체의 심연을 고찰해볼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문득 이 소설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교코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신의 삶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평범한 그녀였건만, 남편의 죄가 마치 연좌제처럼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채 뺏어가고 말았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할인마트 사장에게 능욕당하고, 결국은 어리석은 선택까지 하고 말아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오쿠다 히데오, 그는 왜 평범한 한 여자의 삶을 이렇게까지 극한으로 몰아갔을까? 책을 덮고서도 이 의문이 체증처럼 남아 나를 옭아맸다. 그는 작은 탐욕이 불러일으킨 죄가, 그 죄를 덮기 위해 또 하나의 죄가 덧씌워지는 것을 통해 아무 죄 없는 한 여자의 인생이 몰락하고야 마는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주고자 반성을 하길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교코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면서.

세 권이라는 분량이 처음에는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했던 내가 정작 그 뒷이야기의 궁금증을 참지 못해 연이어 세 권을 모두 읽어 버리고 말았다. 미스테리 요소를 가미한 추리형식의, 범인 수사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구노, 교코, 유스케 세 사람의 눈과 마음을 빌려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입장이 되고 감정이입이 됨녀서 더 긴장하고 몰입했던 것 같다. 전에 봤던 작품들이 유쾌함과 가벼움으로 나를 매료시켰다면 <방해자>는 허를 찌르는 반전과 치밀한 전개로 오쿠다 히데오가 선사하는 그만의 흡입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의 별에 쏘이다
애다인 지음 / 여우비(학산문화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파리의 별에 쏘이다>라는 제목도 멋지고 파리의 밤을 담고 있는 표지도 멋져 은근히 기대했던 소설이었지만 솔직히 기대이하의 책이었다. 어떤 사랑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초반부터 자극적인 내용들이 가득한, 가벼운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스토리였다. 그저 가볍고 자극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춘 듯한 소설로 허무함을 안겨 주는 소설이었다.

여우비에서 나오는 웬만한 책들을 재밌게 봤기에 어느 정도의 신뢰감도 가지고 있었고, 파리여행에서 생긴 로맨스라는 점에서 평범함 보다는 특별하면서도 로맨틱한 사랑을 은연 중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랄까 허에 찔린 기분, 또는 배신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제목이나 줄거리만을 보고 속단하는 것에 대한 오류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소설이었다. 

잡지 스타일리스트로 촬영차 파리에 갔던 참이와 그녀의 친구들이 평소의 모습에서 탈피해 파리의 밤을 즐기고 일탈을 꿈꾸는 것을 시작으로 여주 참이는 나이트 클럽에서 만난 멋진 이국의 남자 루카스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서로에게 빠져든 두 사람은 며칠 더 함께 하기에 이른다. 첫 만남부터 끌렸던 두 사람은 함께 할 수록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문제라고 한다면 루카스가 참이를 콜걸로 오해한 것. 그 때문에 참이에게 상처준 채, 루카스에게는 후회만 남긴 채 이별을 하게 된다. 참이를 잊지 못한 루카스가 참이를 다시 만나고 되찾기 위해, 사진작가와 스타일리스트라는 자신과 참이의 직업에서 접점을 찾아 엄청난 프로젝트를 꾸며서 한국으로 오게 되고 재회한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에 이른다.

뭐, 이 스토리만을 본다면 무난한 전개가 아닌가 싶지만 그 전개되는, 표현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근래 들어 자극적인 소설을 많이 내고 많이 찾는 것이 로맨스소설의 풍토이긴 하지만 이 소설 또한 그러한 부분에 집중을 둔 점이 아쉽기 그지 없었다. 그런 부분에 주력할 것이 아니라 파리의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를 보여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 또한 지울 수 없었다.

책을 덮으면서도 도대체 어떤 사랑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저 자기만족, 일탈, 쾌락에 치우친 로맨스가 아니었나 싶다. 좀 더 알맹이가 있는 소설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해지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센 공작家의 매 맞는 아이 1
문정 지음 / 효월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접한 판타지로맨스소설 <헤센 공작家의 매 맞는 아이>는 유쾌하면서도 아련함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매 맞는 아이, 작가후기에 언급된 것처럼 제목만 보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나도 연재를 안 봤더라면 그런 오해를 할 수도...그런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지나쳐간다면, 후회할지도 모른다고...뭐, 사람들마다 취향차라는 것이 있기에 장담은 못하겠지만 제목만 힐끗 보고 지나치지 말고 읽어 보고서 판단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책이었다.

매 맞는 아이? 처음에 고개를 갸웃했었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이 풀려갔지만..
매 맞는 아이는 귀족가 자제가 본격적으로 교육을 받게 되면, 정식 가정교사와 함께 자제와 나이가 같고 성별이 같은 아이를 매 맞는 아이로 들여 대신 체벌을 받게 하는 것으로 귀족들간에 흔히 이루어지는 일이다.

천민 출신의 에드 또한 다섯살이 되던 해, 루메인 헤센 공작가문의 ’아르기리온의 빛(은색의 빛)’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레오나드 폰 헤센, 일명 레온의 매 맞는 아이로 들어가게 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에드가 레온과 같은 성별을 가진 남자가 아니라 남장여자라는 사실! 흔한 남장여자 소설과 다른 점은 에드가 여자라는 것이 레온에게 들킨 채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

밝은 천성과 영민함을 가진 에드는 레온의 매 맞는 아이의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귀동냥으로 많은 것을 배워 나가고, 그런 에드의 영특함을 알아 본 레온 또한 에드를 아끼며 학문과 검술을 가르쳐 준 덕분에 에드는 천민치고서는 드물게 아는 것이 많은 아이다.

매 맞는 아이에서 시종으로, 한결같이 레온을 따르는 에드.
열 다섯살이 된 레온이 루메인 왕립학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두 사람은 이별할 뻔 하지만, 에드를 시종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레온의 강경함에 두 손 다 든 헤센 공작부부 허락하게 되면서 에드는 레온을 따라 루메인 왕립학원에 들어가게 된다.

아름다운 외모, 뛰어난 학식, 훌륭한 검술 등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완벽한 레온은 루메인 왕립학원에서도 모든 학원생들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 된다. 모든 것에 무관심한 듯 하지만 자신의 시종 에드앞에서만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덕분에 학원생들의 질투어린 눈초리를 받긴 하지만 레온을 따르고 보살피는 것을 자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에드는 평범한 외모이지만 그녀의 밝은 모습과 누구에게나 관대하고 베풀 줄 아는 모습을 지켜 본 사람들은 그녀의 매력을 알고 그녀를 마음에 담게 되기도 한다. 물론 에드를 향한 레온의 소유욕 덕에 한번씩 에드가 꺼이꺼이 울거나 그의 꽁함을 풀어 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쓰긴 하지만 말이다.

레온의, 레온에 의한, 레온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에드의 두문불출하는 모습과 에드를 매력을 알아 보고 호시탐탐 누리는 몇 몇 사람들을 견제하기 바쁜 레온의 평화롭고 즐거운 학원생활이 이어지던 가운데, 전시상황에 놓이면서 레온과 에드는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다. 전쟁에 참가해야만 하는 자신을 따라 나서려는 에드의 안전을 위해 고향으로 돌려 보낸 채...

하지만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레온을 따르기로 결심한 에드는 륜 용병단에 들어가게 되고 그 때부터 레온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그 쉬울 줄 알았던 재회가 5년이나 걸릴 줄은 모르고...
천성적으로 건강한 체질과 밝은 천성, 그리고 탁월한 요리 실력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 자신의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을 정도의 검술 덕에 어느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가 된 에드는 5년이라는 시간을 흘러 레온을 만나게 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만나게 된 레온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차가운 기사단장일 뿐이다. 부하를 구하려다 중상을 입어 에드와 관련된 기억을 잃은 채 ’아르기온의 빛’에서 ’울지 않는 아르기온’으로 바뀐 별명 답게 뼛속까지 차가워진 레온과 마주했음에도, 그에게 상처입었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다 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도와주는 에드의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언제나 활기찬 모습에 웃음이 지어졌다.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도 에드에게 반응하고, 자신을 구해 준 에드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에 당황하기 시작한 레온은 서서히 기억을 찾아가고, 자신을 좋아하던 황녀가 에드를 못마땅하게 여겨 함정을 놓아 위험에 놓이게 되면서 모든 기억을 되찾게 된다.

모든 기억을 되찾고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 에드의 생명과 사랑을 위해 그 동안 살아왔던 남자로서의 삶을 버리고 여자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기로 결심한 에드와 그런 그녀를 지키고자 한 레온이지만 두 사람의 앞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결국 제 3국에 망명,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되는 듯한 열린 결말을 맺으면서...

내가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두 권을 읽는 내내 울고 웃고 하면서 그 두 권조차 짧게 느껴졌던 것 같다. 더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아주 일부분들만 본 듯 해서 아쉬움이 남고 책을 놓기가 싫어졌다. 그 책을 붙들고 있기라도 하면 그 숨은 이야기들이 나와줄 것처럼...가족의 생계를 위해 성별까지 숨기며 남자아이로 살아왔던 에드, 그녀의 상황만을 본다면 그리 녹록치 않은 삶이었을텐데도 항상 밝고 생활력 강한 모습을 보면서 역시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민인 에드를 사랑하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 레온! 물론, 왕립학원에서는 꽁한 모습에 유치한 듯한 설익은 감정이었고, 그 후는 기억을 잃은 채 에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에드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 내고 사랑한 그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판타지 소설이기는 하나,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한 중세배경의 <헤센 공작家의 매 맞는 아이>는 신분을 넘어선 단순한 사랑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한 곳만을 바라보며 따라가는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향한 따뜻함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런 점에서 만족스러우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증만 유발하고 끝난 듯해서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레온과 에드, 두 사람과 함께 했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꼭 만나봤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 본다.

"떠돌이 개만도 못한 천민이라 할지라도 레온 님의 뒤를 따를 기력만 있으면 그걸로 족합니다. 나란히 서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인님의 그림자를 쫓겠다는 것입니다. 그림자가 닿은 땅은 천민도 밟을 수 있으니까요. 대지는 엘께서 인간들에게 공평하게 주신 축복이니..."

"함께 가자, 에드. 내 그림자를 뒤쫓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나란히 서서 함께 가자."

                                                 문정’s <헤센 공작가의 매 맞는 아이>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꽃의 항해 - 알래스카로의 눈부신 여행
정선영 지음 / 여우비(학산문화사)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바다 한 가운데, 크루즈에서 펼쳐지는 ’쿠키’처럼 달콤한 사랑이야기 <불꽃의 항해>.

백화점 크리스마스 행사로 알래스카 크루즈에 당첨된 국희는 같이 가기로 했던 사촌동생 애정이 다치게 되면서 홀로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된다. 기대감과 설렘에서 시작된 국희의 여행은 처음부터 순조롭지가 않다. 공항의 실수로 짐을 분실하기에 이르고, 호텔의 안내를 통해 배정받은 호화로운 방에 놀라며 호사를 즐기며 잠들었다 깨어난 순간 마주하게 된 낯선 남자에게 콜걸로 오해받는 당황스런 일까지 겪게 된다. 프런트의 실수로 빚어진 오해로 판명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까지 같았다.

마치 운명이 이끄는 것처럼 크루즈에서 다시 재회하기에 이른 두 사람.
아주 인상적인 첫만남의 주인공이자 구릿빛 피부의 낯선 남자는 억만장자의 후계자인 자하드로 여느 여자들과 다른 국희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되고 점점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평범하지 않은 첫만남 덕에 자하드를 변태 취급하며 피했던 국희 또한 자하드와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마찬가지로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팔색조처럼 다양한 매력을 보이는 국희에게 갈수록 빠져들길 시작하는 자하드와 자신을 쿠키라며 달콤하게 부르는 자하드를 사랑하게 된 국희는 결국 하나가 되고 열정적인 연인이 된다. 

<불꽃의 항해>라는 제목처럼 순식간에 타올랐던 두 사람은 사랑은 그러나 쉽게 식지는 않았다. 한시적이었던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서로를 그리워 하며 사랑해가는 국희와 자하드. 자하드의 옛연인의 농간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국희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들을 겪기도 하지만 밝은 성격으로 이겨내는 국희와 그런 국희를 지켜주는 자하드.

행운처럼 우연히 찾아왔던 여행을 통해 자신의 반쪽을 만난 국희와 자하드. 두 사람의 사랑은 운명이 아니었는가 싶다. 백화점 이벤트에 응모한 것도, 자신이 적은 숫자들이 모두 들어맞아 1등을 한 것도. 그리고 인상적인 호텔에서의 첫만남에 이어 크루즈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우연같은 만남들까지.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잡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즐길 줄 알았기에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든 시련이든 어떠한 것이 다가오더라도 피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처럼...평범하지만 자신만의 매력으로 자하드와 크루즈의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처럼 국희의 사랑은 나 또한 매료시켰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완벽남 자하드의 부드럽고 로맨틱한 면모도 보기 좋았다. 불꽃처럼 열정적이면서도 밝았던 두 사람의 사랑이 아주 부러웠던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월성연화 첫 번째 이야기
이서정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표지와 책소개글에 매료되어 읽게 된 이서정작가의 <월성연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짜여진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창조되어 한편의 시대극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와 더불어 '눌지마립간'의 일대기을 엿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역사적 고증문제때문에 가상국을 배경으로 시대물을 쓰는 대부분의 로맨스소설 작가들과는 달리 신라를 배경으로 '눌지마립간'의 정치와 사랑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시도와 노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역사수업을 통해 배웠던 인물들의 등장과 그에 얽힌 설화를 엮어 나가는 것도 꽤 참신했으며 글에 흥미를 더하고 한층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때는 4~5세기경, 전성기전의 신라를 배경으로 고구려, 백제, 왜와의 관계 속에서 국가의 존립과 생존을 위해 고개 숙일 수 밖에 없었던 신라의 실정을 토대로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월성연화>의 주인공이자 훗날 통일신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눌지마립간의 아버지이자 당시의 마립간이었던 내물왕은 고구려와의 우호관계를 위해 원자인 '눌지'를 대신해 왕위를 위협하는 진골귀족인 실성을 질자로 보낸다. 그를 통해 훗날 눌지마립간이 되는 마루하와 귀아의 인연이 시작된다. 실성이 고구려의 질자로 간지 1년후 태어난 실성의 딸 '귀아'. 내물왕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해 질자로 보내어진 실성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과 '눌지'를 보호하기 위해 '귀아'를 태자비로 책봉한다. 당시 귀아의 나이는 아홉살, 그리고 눌지 마루하의 나이는 열일곱이었다. 어린 귀아를 신부로 맞이한 마루하의 어린 신부 키우기 혹은 마루하의 보모생활기라고나 할까! 초반의 이야기는 어린 신부인 귀아와 그런 그녀를 보살피는 마루하의 알콩달콩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나이도 어리고 갑작스레 바뀌어 버린 생활이 생소하기만 한 귀아는 실수연발에 마루하에게 야단 아닌 야단을 맞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자신을 감싸주며 지켜주는 마루하를 사랑하게 된다. 마루하 또한 자신이 원하던 태자비는 아니었지만 귀아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에 사랑스러움을 느끼며 그녀를 감싸안고 사랑한다. 그렇게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두 사람. 그런 그들에게 어쩌면 예고되었을지도 모를, 애써 부인하려고 했던 거친 풍랑이 몰아친다.

복수의 칼날을 갈던 실성이 고구려를 등에 업고 9년만에 고국으로 돌아 와 내물왕을 물리치고 마립간의 자리에 오르면서 복수는 시작된다. 왕위를 위협하는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 내물왕의 아들이자 눌지의 동생인 복호와 미해를 각각 고구려와 왜의 질자로 보내는 그. 눌지 또한 그의 왕위를 위협하는 가장 견제해야 될 대상이었지만 자신의 사위이기에 그냥 둘 수 밖에 없었다. 귀아를 사이에 두고 장인과 사위라는 관계이지만 서로 대치될 수 밖에 없는 실성과 눌지. 여기서부터 두 사람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그와 더불어 눌지의 고뇌 또한 시작된다. 무너져가는 신라를 바로 잡고 왕권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실성을 물리치고 원래 본인의 자리였던 마립간으로 올라서야 하지만 그 상대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자 부인인 귀아의 아버지이기에 그는 고뇌할 수 밖에 없다. 나라이냐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인 실성에 대한 사위로서의 도리이냐 그의 갈등은 극에 치닿는다.

실성뿐 아니라 눌지가 마립간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은 많다. 그런 면에 있어서 눌지는 왕재이나 외롭다. 그런 그에게 위안이자 힘이 되어 주는 존재, 귀아. 지키고 싶은 것이 있기에 사명이 있기에 그는 강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결국 실성이 죽고 눌지는 마립간에 오른다. 그리고 신라를 재정비하며 치세를 떨친다.

글의 대부분은 눌지와 실성의 갈등이 주이다. 실성이 죽음으로써 그 갈등이 해소되기까지 그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솔직히 읽으면서 로맨스소설보다는 역사소설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로맨스보다는 역사적 사건과 눌지가 마립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조금 아쉽기는 했다. 좀 더 로맨스요소를 많이 넣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랬더라면 이렇게 긴장감을 느끼면서 읽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배경이 되는 역사와 눌지마립간보다는 그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췄을 테니깐. 읽는 내내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풍부한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픽션이 가미되었음에도 최대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려고 했던 작가의 의도와 짜임있는 필력이 돋보였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꽤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이고 읽는 내내 책 속에 빠져들어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후반부에 눌지의 막내동생인 미해와 박제상의 차녀인 아리의 사랑이야기도 꽤 마음에 와 닿았다. 첫눈에 아리에게 반해 죽자 사자 쫓아다니며 아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해이지만 실성에 의해 왜의 질자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사정과 그런 그를 기다리겠다는 아리의 마음, 기약없는 두 사람의 언약. 그런 그들의 그리내 또한 흥미있었던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딸을 위해 미해를 구하고 죽는 박제상의 이야기는 일화적인 요소에 딸의 사랑을 이루어 주기 위한 아버지 박제상으로서의 면모 또한 더해 흥미롭고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또 하나의 역사로맨스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지식을 엿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며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허상의 나라에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어렵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와 역사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로맨스라는 것과 사담을 가지고 엮다보면 의도치 않게 역사라는 벽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역사와 픽션을 리얼하게 다가오도록 잘 조화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이서정작가와 그리고 이 소설은 앞으로 나에게 깊이 각인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