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연화 첫 번째 이야기
이서정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표지와 책소개글에 매료되어 읽게 된 이서정작가의 <월성연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짜여진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창조되어 한편의 시대극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와 더불어 '눌지마립간'의 일대기을 엿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역사적 고증문제때문에 가상국을 배경으로 시대물을 쓰는 대부분의 로맨스소설 작가들과는 달리 신라를 배경으로 '눌지마립간'의 정치와 사랑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시도와 노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역사수업을 통해 배웠던 인물들의 등장과 그에 얽힌 설화를 엮어 나가는 것도 꽤 참신했으며 글에 흥미를 더하고 한층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때는 4~5세기경, 전성기전의 신라를 배경으로 고구려, 백제, 왜와의 관계 속에서 국가의 존립과 생존을 위해 고개 숙일 수 밖에 없었던 신라의 실정을 토대로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월성연화>의 주인공이자 훗날 통일신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눌지마립간의 아버지이자 당시의 마립간이었던 내물왕은 고구려와의 우호관계를 위해 원자인 '눌지'를 대신해 왕위를 위협하는 진골귀족인 실성을 질자로 보낸다. 그를 통해 훗날 눌지마립간이 되는 마루하와 귀아의 인연이 시작된다. 실성이 고구려의 질자로 간지 1년후 태어난 실성의 딸 '귀아'. 내물왕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해 질자로 보내어진 실성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과 '눌지'를 보호하기 위해 '귀아'를 태자비로 책봉한다. 당시 귀아의 나이는 아홉살, 그리고 눌지 마루하의 나이는 열일곱이었다. 어린 귀아를 신부로 맞이한 마루하의 어린 신부 키우기 혹은 마루하의 보모생활기라고나 할까! 초반의 이야기는 어린 신부인 귀아와 그런 그녀를 보살피는 마루하의 알콩달콩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나이도 어리고 갑작스레 바뀌어 버린 생활이 생소하기만 한 귀아는 실수연발에 마루하에게 야단 아닌 야단을 맞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자신을 감싸주며 지켜주는 마루하를 사랑하게 된다. 마루하 또한 자신이 원하던 태자비는 아니었지만 귀아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에 사랑스러움을 느끼며 그녀를 감싸안고 사랑한다. 그렇게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두 사람. 그런 그들에게 어쩌면 예고되었을지도 모를, 애써 부인하려고 했던 거친 풍랑이 몰아친다.

복수의 칼날을 갈던 실성이 고구려를 등에 업고 9년만에 고국으로 돌아 와 내물왕을 물리치고 마립간의 자리에 오르면서 복수는 시작된다. 왕위를 위협하는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 내물왕의 아들이자 눌지의 동생인 복호와 미해를 각각 고구려와 왜의 질자로 보내는 그. 눌지 또한 그의 왕위를 위협하는 가장 견제해야 될 대상이었지만 자신의 사위이기에 그냥 둘 수 밖에 없었다. 귀아를 사이에 두고 장인과 사위라는 관계이지만 서로 대치될 수 밖에 없는 실성과 눌지. 여기서부터 두 사람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그와 더불어 눌지의 고뇌 또한 시작된다. 무너져가는 신라를 바로 잡고 왕권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실성을 물리치고 원래 본인의 자리였던 마립간으로 올라서야 하지만 그 상대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자 부인인 귀아의 아버지이기에 그는 고뇌할 수 밖에 없다. 나라이냐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인 실성에 대한 사위로서의 도리이냐 그의 갈등은 극에 치닿는다.

실성뿐 아니라 눌지가 마립간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은 많다. 그런 면에 있어서 눌지는 왕재이나 외롭다. 그런 그에게 위안이자 힘이 되어 주는 존재, 귀아. 지키고 싶은 것이 있기에 사명이 있기에 그는 강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결국 실성이 죽고 눌지는 마립간에 오른다. 그리고 신라를 재정비하며 치세를 떨친다.

글의 대부분은 눌지와 실성의 갈등이 주이다. 실성이 죽음으로써 그 갈등이 해소되기까지 그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솔직히 읽으면서 로맨스소설보다는 역사소설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로맨스보다는 역사적 사건과 눌지가 마립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조금 아쉽기는 했다. 좀 더 로맨스요소를 많이 넣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랬더라면 이렇게 긴장감을 느끼면서 읽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배경이 되는 역사와 눌지마립간보다는 그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췄을 테니깐. 읽는 내내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풍부한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픽션이 가미되었음에도 최대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려고 했던 작가의 의도와 짜임있는 필력이 돋보였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꽤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이고 읽는 내내 책 속에 빠져들어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후반부에 눌지의 막내동생인 미해와 박제상의 차녀인 아리의 사랑이야기도 꽤 마음에 와 닿았다. 첫눈에 아리에게 반해 죽자 사자 쫓아다니며 아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해이지만 실성에 의해 왜의 질자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사정과 그런 그를 기다리겠다는 아리의 마음, 기약없는 두 사람의 언약. 그런 그들의 그리내 또한 흥미있었던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딸을 위해 미해를 구하고 죽는 박제상의 이야기는 일화적인 요소에 딸의 사랑을 이루어 주기 위한 아버지 박제상으로서의 면모 또한 더해 흥미롭고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또 하나의 역사로맨스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지식을 엿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며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허상의 나라에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어렵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와 역사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로맨스라는 것과 사담을 가지고 엮다보면 의도치 않게 역사라는 벽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역사와 픽션을 리얼하게 다가오도록 잘 조화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이서정작가와 그리고 이 소설은 앞으로 나에게 깊이 각인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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