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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홍수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서로 다른 색깔의 불꽃을 지닌 두 남녀의 불꽃같은 사랑을 다룬 문하연 작가의 <불꽃>은 작가의 힘 있으면서도 섬세한 필력과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빛을 발해 개인적으로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전작인 <눈꽃> 또한 작가의 필력과 깔끔한 스토리로 재밌게 읽었지만 초반에 몰입이 쉽지 않았고 조금 난해했었는데 이번 <불꽃> 같은 경우는 초반부터 시작해 끝까지 눈을 떼지 않고 읽어 나가며 글 속의 등장인물들과 같이 호흡했던 시간이었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유진은 어려서부터 자동차 엔지니어인 아버지를 닮아 차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강하고 어머니를 닮아 똑똑하고 다재다능했다. 얌전한 딸을 원했던 아버지로 인해 때때로 억압받기도 했지만 현명하고 다정한 어머니로 인해 자동차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을 가지며 당시 아버지가 엔지니어로 있던 자동차 회사 오닐 모터스를 갖고 말겠다는 꿈을 키워나간다. 더불어 어린 유진은 몰랐지만 전설적인 요부로 알려진, 자유롭고 당당함을 지닌 미제릴의 사진을 보고 그녀같이 되겠노라 결심한다.
그녀의 재능은 아깝지만 안 될 거라 고개를 저었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자동차업계에서 동양인에, 여자라는 핸디캡을 가지고서도 야망과 열정, 노력으로 고공행진을 해나가는 오닐의 핀업스타 유진. 단순히 성공이 목적이 아닌, 오닐에 대한 애정의 근원에서 시작된 그녀의 야망은 그녀를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꿈꾸는 자리에 앉은 오닐의 CEO 스티븐에게도 각인을 시킨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계약을 맺게 된다. 평생 꿈꿔왔던 오닐의 정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는 유진의 야망과 자신을 배신하고 사촌과 결혼한 엘리스에게 복수하고 자신과 같은 오늘에 대한 애정을 가진 유진을 후계자로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계약... 그녀가 꿈꿔왔던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오닐의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생각에 스티븐의 계약을 받아들인 유진...그녀는 몰랐다. 그 선택이 얼마나 후회하게 하고 가혹한 운명의 길을 걷게 할지……, 그리고 불꽃같은 사랑이 찾아와 사랑하는 한 남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지도…….
배관공으로 자신의 집에 방문한 흑요석처럼 새까만, 새벽빛의 눈동자를 지닌 아름다운 남자 알렉스에게 첫 눈에 반한 유진은 그녀의 거침없는 성격답게 알렉스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자신을 무시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알렉스인데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찾아가고 꽃다발이며 과일이며 양말 등을 선물하며 마음을 표현하며……. 바위처럼 끄떡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알렉스……, 역시 남녀 사이에 '치고 빼는'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출장을 다녀온 사이 유진 자신이 알렉스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그를 기다렸듯 유진을 기다리고 있는 알렉스를 보면서 그들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관계는……, 책임이야”
“순간의 감정으로 널 만나진 않을 거야. 너도……, 그러길 원해”
불우했던 가정 속에서 자라나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신중했던, 상처 입을 것이 두려워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았던 알렉스는 유진에게 첫눈에 끌렸음에도 쉽게 다가서지도 마음을 열지도 못했다. 그런 그가 유진에게 마음을 열고 온 애정을 다하는 모습이 마음을 아릿하게 했고 유진을 부럽게 했다. 벽을 쌓고 살았지만 그 벽을 허문 상대에게만은 오롯이 사랑을 주고 충실한 그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그를 두고 뒤돌아선 유진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야망과 사랑 중 야망을 선택한 유진이……, 뻔한 선택을 할 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븐과 계약을 한 상태에서 두려워 무시하는 알렉스에게 다가갔던 그녀의 이기심과 후회할 것을 알고서도 사랑을 저버린 그녀의 어리석음이……. 알렉스에게 있어서 믿는다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깊은 고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배신한 유진이…….
그녀가 그리도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그녀는 공허했다.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곧바로 후회했고 알렉스에게 돌아가고자 했지만 그와의 사랑의 결실을 잃고 알렉스가 세계 최고의 거부 중 하나인 스털링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이며 그의 곁에 다른 여자가 있다가 오해하고는 더 혹독하게 차갑게 자신을 다그치며 정상만을 위해 달린다. 오랜 꿈이었지만 정작 행복하지 않는 삶 속에서 외로이…….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스티븐이 죽으면서 오랜 꿈이었던 오닐의 CEO가 된 유진 앞에 나타난 알렉스. 그는 유진이 알던 예전의 자상한 알렉스였다. 비록 가난했던 법대생에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스털링의 후계자로 바뀌었지만……. 자신을 향해 웃고 다가서는 알렉스에게 죄책감과 경계심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유진. 결국, 마음이 원하는 대로 알렉스에게 마음을 열지만……, 그것은 상처받음 속에서도 유진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워했던 알렉스의 복수였다.
“사랑에 빠져, 이유진.”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와 사랑에 빠져.”
“내가 정말 기다리는 건, 네가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난 널 여유 있게 버리고 떠나가 줄 테니까.”
상처받기 싫어 벽을 쌓고 살아온 자신의 삶을 조금씩 흔들며 가슴에 스며들고서는 상처와 고통만 안기고 뒤돌아선 유진을 향한 애증의……. 과연, 알렉스의 복수는 이루어졌을까?
두 사람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책을 통해서 만나보길 바란다. 너무 많이 이야기하면 재미없을 테니깐! 읽으면서 유진을 참 많이도 원망했다. 야망을 위해 자신이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버렸다는 것에서. 그리고 참 많이 안타까웠다. 눈에 보이는 꿈을 좇다 보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과오를 저질렀다는 것에……. 비록 사랑을 버리고 숙원(宿願)을 이룬 그녀였지만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허울뿐인 명성과 자리,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추문뿐……. 어느새 그녀는 어릴 적 그녀가 바랐던, 돈과 명성을 좇으며 여러 남자의 품에 안겼던 미제릴이 되어 있었다. 진실만을 본다면 야망을 좇은 것은 비슷하다 할지라도 그 외에는 달랐건만 언론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는 마녀와 같았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남긴 그녀의 모습에 안쓰러웠다. 그리고 어긋난 그녀의 인생이, 사랑이 바로잡히길 바랐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남자, 알렉스.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림받고도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복수라는 미명아래 유진을 다시 찾은 남자 알렉스. 알렉스에게 사랑도 여자도 하나뿐이었다. 처음이라서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유진이었기에 마음이 움직였던 알렉스에게 있어 여자는 사랑은 유진뿐이었다.
“사랑과 증오는…….”
“……상반되는 감정이 아냐.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라면 서로를 상쇄시켜야 하지. 그런데…….”
“사랑한다고 해서 증오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증오한다고 해서 사랑이 줄어들지도 않더군. 희한하게도 둘의 감정은, 더해지며 더해질수록 서로를 강렬하게 하는 그런 감정인 것 같아.”
엘리스에게 배신당한 것에 복수하기 위해 유진과 결혼했던, 유진에게 있어 남편이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상사이자 비뚤어진 조련사였던 스티븐 오닐의 회한이 담긴 마지막 말처럼 애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을 향한 알렉스의 사랑을 보면서 더더욱! 자신이 아픈 것보다 유진의 아픔이 더 아프게 다가왔고 견딜 수 없었던 알렉스의 깊고 깊은 그 사랑에 감명했다. 그런 그의 깊은 사랑을 받는 유진과 진정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알렉스가 행복하길 바랐다. 더 이상은 상처입지도 후회할 일도 하지 않길…….
비록 야망을 따르긴 했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불가능하다는 일들을 해내는 우먼파워 유진과 한 사랑만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남자 알렉스 두 사람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스토리도 은근히 긴장감과 박진감이 느껴졌고 문장 하나하나가 대사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고 마음에 와 닿았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작가의 필력을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 두 번째 출간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문체와 자연스러우면서도 전문적인 지식과 현실성을 반영한 스토리.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그렇기에 책을 덮으면서 만족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으로 손꼽을만한 작품이었다.
‘이젠 그냥 이 불이 이끄는 길대로 따라가 그렇게 살 거라고. 아무도 꺼뜨리지 못하는 이 불이 이끄는 그 길대로’
알렉스 스털링,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게 성공시킨 유진 스털링, M&A(기업인수합병)! 힘들었던 만큼 부도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행복하길! 물론 그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