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홍수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서로 다른 색깔의 불꽃을 지닌 두 남녀의 불꽃같은 사랑을 다룬 문하연 작가의 <불꽃>은 작가의 힘 있으면서도 섬세한 필력과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빛을 발해 개인적으로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전작인 <눈꽃> 또한 작가의 필력과 깔끔한 스토리로 재밌게 읽었지만 초반에 몰입이 쉽지 않았고 조금 난해했었는데 이번 <불꽃> 같은 경우는 초반부터 시작해 끝까지 눈을 떼지 않고 읽어 나가며 글 속의 등장인물들과 같이 호흡했던 시간이었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유진은 어려서부터 자동차 엔지니어인 아버지를 닮아 차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강하고 어머니를 닮아 똑똑하고 다재다능했다. 얌전한 딸을 원했던 아버지로 인해 때때로 억압받기도 했지만 현명하고 다정한 어머니로 인해 자동차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을 가지며 당시 아버지가 엔지니어로 있던 자동차 회사 오닐 모터스를 갖고 말겠다는 꿈을 키워나간다. 더불어 어린 유진은 몰랐지만 전설적인 요부로 알려진, 자유롭고 당당함을 지닌 미제릴의 사진을 보고 그녀같이 되겠노라 결심한다.  


그녀의 재능은 아깝지만 안 될 거라 고개를 저었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자동차업계에서 동양인에, 여자라는 핸디캡을 가지고서도 야망과 열정, 노력으로 고공행진을 해나가는 오닐의 핀업스타 유진. 단순히 성공이 목적이 아닌, 오닐에 대한 애정의 근원에서 시작된 그녀의 야망은 그녀를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꿈꾸는 자리에 앉은 오닐의 CEO 스티븐에게도 각인을 시킨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계약을 맺게 된다. 평생 꿈꿔왔던 오닐의 정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는 유진의 야망과 자신을 배신하고 사촌과 결혼한 엘리스에게 복수하고 자신과 같은 오늘에 대한 애정을 가진 유진을 후계자로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계약... 그녀가 꿈꿔왔던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오닐의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생각에 스티븐의 계약을 받아들인 유진...그녀는 몰랐다. 그 선택이 얼마나 후회하게 하고 가혹한 운명의 길을 걷게 할지……, 그리고 불꽃같은 사랑이 찾아와 사랑하는 한 남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지도…….

 

배관공으로 자신의 집에 방문한 흑요석처럼 새까만, 새벽빛의 눈동자를 지닌 아름다운 남자 알렉스에게 첫 눈에 반한 유진은 그녀의 거침없는 성격답게 알렉스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자신을 무시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알렉스인데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찾아가고 꽃다발이며 과일이며 양말 등을 선물하며 마음을 표현하며……. 바위처럼 끄떡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알렉스……, 역시 남녀 사이에 '치고 빼는'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출장을 다녀온 사이 유진 자신이 알렉스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그를 기다렸듯 유진을 기다리고 있는 알렉스를 보면서 그들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관계는……, 책임이야”

“순간의 감정으로 널 만나진 않을 거야. 너도……, 그러길 원해”

 

 

불우했던 가정 속에서 자라나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신중했던, 상처 입을 것이 두려워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았던 알렉스는 유진에게 첫눈에 끌렸음에도 쉽게 다가서지도 마음을 열지도 못했다. 그런 그가 유진에게 마음을 열고 온 애정을 다하는 모습이 마음을 아릿하게 했고 유진을 부럽게 했다. 벽을 쌓고 살았지만 그 벽을 허문 상대에게만은 오롯이 사랑을 주고 충실한 그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그를 두고 뒤돌아선 유진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야망과 사랑 중 야망을 선택한 유진이……, 뻔한 선택을 할 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븐과 계약을 한 상태에서 두려워 무시하는 알렉스에게 다가갔던 그녀의 이기심과 후회할 것을 알고서도 사랑을 저버린 그녀의 어리석음이……. 알렉스에게 있어서 믿는다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깊은 고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배신한 유진이……. 
 

 

그녀가 그리도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그녀는 공허했다.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곧바로 후회했고 알렉스에게 돌아가고자 했지만 그와의 사랑의 결실을 잃고 알렉스가 세계 최고의 거부 중 하나인 스털링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이며 그의 곁에 다른 여자가 있다가 오해하고는 더 혹독하게 차갑게 자신을 다그치며 정상만을 위해 달린다. 오랜 꿈이었지만 정작 행복하지 않는 삶 속에서 외로이…….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스티븐이 죽으면서 오랜 꿈이었던 오닐의 CEO가 된 유진 앞에 나타난 알렉스. 그는 유진이 알던 예전의 자상한 알렉스였다. 비록 가난했던 법대생에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스털링의 후계자로 바뀌었지만……. 자신을 향해 웃고 다가서는 알렉스에게 죄책감과 경계심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유진. 결국, 마음이 원하는 대로 알렉스에게 마음을 열지만……, 그것은 상처받음 속에서도 유진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워했던 알렉스의 복수였다. 
 

 

“사랑에 빠져, 이유진.”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와 사랑에 빠져.”

“내가 정말 기다리는 건, 네가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난 널 여유 있게 버리고 떠나가 줄 테니까.”

 

상처받기 싫어 벽을 쌓고 살아온 자신의 삶을 조금씩 흔들며 가슴에 스며들고서는 상처와 고통만 안기고 뒤돌아선 유진을 향한 애증의……. 과연, 알렉스의 복수는 이루어졌을까? 
 

 

두 사람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책을 통해서 만나보길 바란다. 너무 많이 이야기하면 재미없을 테니깐! 읽으면서 유진을 참 많이도 원망했다. 야망을 위해 자신이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버렸다는 것에서. 그리고 참 많이 안타까웠다. 눈에 보이는 꿈을 좇다 보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과오를 저질렀다는 것에……. 비록 사랑을 버리고 숙원(宿願)을 이룬 그녀였지만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허울뿐인 명성과 자리,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추문뿐……. 어느새 그녀는 어릴 적 그녀가 바랐던, 돈과 명성을 좇으며 여러 남자의 품에 안겼던 미제릴이 되어 있었다. 진실만을 본다면 야망을 좇은 것은 비슷하다 할지라도 그 외에는 달랐건만 언론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는 마녀와 같았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남긴 그녀의 모습에 안쓰러웠다. 그리고 어긋난 그녀의 인생이, 사랑이 바로잡히길 바랐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남자, 알렉스.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림받고도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복수라는 미명아래 유진을 다시 찾은 남자 알렉스. 알렉스에게 사랑도 여자도 하나뿐이었다. 처음이라서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유진이었기에 마음이 움직였던 알렉스에게 있어 여자는 사랑은 유진뿐이었다.

 

“사랑과 증오는…….”

“……상반되는 감정이 아냐.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라면 서로를 상쇄시켜야 하지. 그런데…….”

“사랑한다고 해서 증오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증오한다고 해서 사랑이 줄어들지도 않더군. 희한하게도 둘의 감정은, 더해지며 더해질수록 서로를 강렬하게 하는 그런 감정인 것 같아.”

 

엘리스에게 배신당한 것에 복수하기 위해 유진과 결혼했던, 유진에게 있어 남편이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상사이자 비뚤어진 조련사였던 스티븐 오닐의 회한이 담긴 마지막 말처럼 애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을 향한 알렉스의 사랑을 보면서 더더욱! 자신이 아픈 것보다 유진의 아픔이 더 아프게 다가왔고 견딜 수 없었던 알렉스의 깊고 깊은 그 사랑에 감명했다. 그런 그의 깊은 사랑을 받는 유진과 진정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알렉스가 행복하길 바랐다. 더 이상은 상처입지도 후회할 일도 하지 않길…….  

 

비록 야망을 따르긴 했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불가능하다는 일들을 해내는 우먼파워 유진과 한 사랑만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남자 알렉스 두 사람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스토리도 은근히 긴장감과 박진감이 느껴졌고 문장 하나하나가 대사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고 마음에 와 닿았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작가의 필력을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 두 번째 출간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문체와 자연스러우면서도 전문적인 지식과 현실성을 반영한 스토리.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그렇기에 책을 덮으면서 만족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으로 손꼽을만한 작품이었다.

 

‘이젠 그냥 이 불이 이끄는 길대로 따라가 그렇게 살 거라고. 아무도 꺼뜨리지 못하는 이 불이 이끄는 그 길대로’

 

알렉스 스털링,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게 성공시킨 유진 스털링, M&A(기업인수합병)! 힘들었던 만큼 부도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행복하길! 물론 그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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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스타
신해영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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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에스타>. 작가의 글을 좋아하고 나와 코드가 맞다고 생각해왔기에 <시에스타> 또한 나름 잘 읽은 소설이었다. 여기서 초점은 '잘 읽은'이다. 아주 재밌다기 보다는 잘 읽혀지는 소설이었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해 몰입도 잘되고 술술 넘어가는 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소재도 참신하고,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뭐, 나만 그렇겠냐마는-피겨를 다뤘기에 흥미를 가지고 읽어 나갔고, 연우를 향한 승하의 해바라기 사랑이 너무도 따뜻해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건만! 기대가 컸고 욕심도 컸던 만큼 아쉬움의 한 자락 또한 남긴 소설이었다.

피겨유망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받는 기대와 부담감, 고독 속에서 슬럼프를 맞이하고 이겨내는 연우와 비록 TV를 통해서 처음 보았지만 아름다운 연우의 연기에 매료되어 상대는 알지도 못하는 오랜 짝사랑을 이어가는 승하. 거부했지만 자신을 향한 크나큰 승하의 사랑에 진심으로 응하게 되는 연우와 드디어 오랜 짝사랑이 이루어지는 승하의 따스한 이야기.

이름도 비슷하고 보여지는 인상도 비슷해 연아가 연상되곤 하는 연우와 여섯살이나 어린 소녀에게 반해 일편단심 바라보는 승하의 순애보가 두 주인공의 시점이 교차되며 진행되어, 두 주인공의 심리가 잘 이해되고 그 덕에 몰입도 잘 되었다.

소재도 좋아, 작가의 필력도 좋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건만! 읽고 나서 드는 이 아쉬움은 무엇일까?
그 아쉬움의 흔적을 쫓아가며 내린 내 개인적인 결론은 이 아쉬움의 근원은 작가의 절제에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충분히 재밌을 수 있었던 글임에도 재미보다는 작가 특유의 스타일을 살리려 했던 작품이기에 독자와 공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오픈하는 것보다 한 가지에 치중하는 것보다 잔잔한 분위기로 글을 절제하다 보니, 독자의 궁금증과 바람을 채워가기에는 책에서 표현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절제가 과했던 소설이었다. 여러 소설을 읽다 보면 너무 과하다 싶은, 절제가 좀 필요해 보이는 책들을 종종 만나곤 했는데 <시에스타>는 너무 절제가 되어서 소설을 통해서 느끼고자 했던 것들을 모두 채우기에는 부족했던 듯. 그래서 허전하기도 하고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오버는 아니되지만 극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꾸밈, 또는 부풀리기는 필요하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야 더 생동감이 느껴지고 글이 활기 있어져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도 강약이 주어질 테니깐. <시에스타>는 강약의 고저 없이 그저 중의 흐름이었던 것 같다.
살을 조금만 더 붙였더라면, 인물들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스토리를 살렸더라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작가 특유의 매력과 필력이 느껴지는 글이었기에 다음 작품에서 이 아쉬움을 채울 수 있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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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몇 가지
한승희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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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몇 가지>,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작가에 대한 기대감 보다는 단순히 책 표지와 출판사에 이끌리 듯 읽게 된 소설이다. 의미심장한 제목처럼 연애에 있어서 '절대적인 몇 가지' 지침들을 알려주는, 행복한 연애를 위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은 소설이라는 생각에, 연애가 너무 하고픈 이 외로운 처자의 눈길이 꽂혔다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전체적인 느낌은 괜찮았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도, 스토리도 꽤 마음에 들었다. 뭐, 그렇게 특별한 소재가 아닌 예전에 꽤 접했던 설정과 비슷하지만 작가가 나름 맛깔나게 그려나가려고 하는 노력이 보였던 소설이다. 다만, 끝으로 갈수록 흐지부지한 느낌과  중간 중간 끊기는 듯한 흐름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져 확 와닿지 않고 각인이 되는 소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초반이 조금 덜 익었다가 맛있게 익어가는 라면과 같았다면, 후반은 퍼져서 어떤 맛인지 알 수 없는 의식적으로 먹게 되는 라면 같다고나 할까! 뭐, 퍼진 라면도 맛있긴 하지만 이 경우를 들자면 너무 퉁퉁 불었던 것 같다. 라면이라는 게 물의 양과 타이밍, 맛을 더해주는 첨가물이 그 맛을 좌우하듯 소설 또한 그러한 것들이 중요한 법인데 이 소설은 그게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아님, 너무 욕심을 부렸던가.

'꽃보다 연애'라는 모토로 연애에 있어 자유분방한 어머니와 '과속스캔들'로 어린 엄마가 된 여동생으로 인해 연애에 있어 어떠한 환상도 없는, 오히려 조금은 회의적인 시정은 유야무야 흘러가는 자신의 청춘에 한 남자를 들여 놓게 된다. 사고뭉치 동생 이진으로 인해! 시정은 어머니와 동생으로 인해 연애라는 것에 학을 뗐다면, 관상용으로 아주 바람직한 훈남 진휘는 연애를 너무 즐겨 시들해진 상태. 원인이야 달랐지만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에 환상 없이 지내오던 두 사람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고 필연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어느 새 연인사이로 급진전된다.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닮은 두 사람이 연애라는 것을 하나 하나 해가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연애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허물어가는 점은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인 나 또한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이렇게 쭉 스토리가 이어져 갔다면 좋았을 것을!! 남주가 재벌아니랄까봐 들어오는 태클에 뒤돌아서는 여주나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식상하게 다가왔다. 여주 어머니의 반응은 뭐 색달랐지만...

연애에 대해서 실전경험 전무한, 그저 로설을 통한 이론으로만 빠삭한 나이기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중간 중간 고개를 끄덕이게금 하는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있었고, 캐릭터들의 개성과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후반에 들어, 초반의 페이스를 잃어간다는 점이나 조금은 뜬금없는 전개가 이어진다는 점을 제외, 감안하면 뭐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느낌의 소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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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의 고백 - 법의학자가 들려주는 살인 조서 이야기
마크 베네케 지음, 송소민 옮김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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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범인을 검거하는 CSI를 다룬 드라마를 통해  법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저자가 법의학자라는 점에서 이 책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연쇄살인범의 고백>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연쇄살인범의 고백이라기 보다는 저자이자 법의학자인 마르크 베네케에 의한, 말그대로 '법의학자가 들려주는 살인 조서이야기'로,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보고서에 가까운 책이라는 점에서 '연쇄살인범'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전개와 긴박함을 느끼고자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느끼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을 놀라게 했던 연쇄살인범들의 인면수심의 행각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각적인 자료와 함께 전문적인 그의 학식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새로웠고 이 잔혹한 연쇄살인범들이 그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그 심각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연쇄살인'
빈번하지는 않지만 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비인륜적인,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참혹한 사건들.  그에 대한 공포와 경각심을 가지면서도 딴 세상의 일마냥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뉴스나 토픽, 영화, 책 등을 통해서 연쇄살인에 대해 접하면서도 인간이 인간에게 해서는 안되는 사악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온 국민을 경악케 한 연쇄살인범이 검거되고 그의 실체와 사건이 알려지면서 '연쇄살인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쇄살인이 특수한 것만이 아닌, 내 주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잔인하고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체감했고 평범하기만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내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책 속에 담긴 수 많은, 잔인한 연쇄살인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에...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부터 시작해 내가 어릴 때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들.
몇 몇 사건은 해외토픽이나 또 다른 서적에서도 본 적 있는 사건들이기도 했지만 다시 봐도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막연하게 상상했던 사건들을 여러 자료를 통해 보면서 더 실감이 났고 법의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그러한 잔인한 행각들을 벌인 연쇄살인범 또한 탐구해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잔악한 연쇄살인범들에게 분노하기도 했다.   

인육을 먹는 식인종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수 많은 아이들을 유린하고 살해한 성도착자 등 대표적인 연쇄살인 케이스를 나열하고 그것들을 법의학적인 수사로 추리해가는  <연쇄 살인범의 고백>.  영화와 같은, 소설과 같은 전개와 흥미를 바란다면 이 책은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솔직히 나 또한 그런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사건과 법의학적 수사의 정확한 전달에만 치중한 것 같아서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저자가 말했던 '추리의 세계'에 몰입하며 읽기에는 무리가 있는 책이었다. 물론 소재가 소재인만큼 흥미와 재미를 추구해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독자가 좀 더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더라면 어땠을 까 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인용한 '밝음을 이해하려는 자는 어둠을 알아야 한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인간의 잔혹한 어둠의 일면을 엿본 시간이었고 더 이상은 이러한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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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余命 : 1개월의 신부
TBS 이브닝 파이브 엮음, 권남희 옮김 / 에스비에스프로덕션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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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편 순간부터 책을 덮는 순간까지 하염없이 내 눈시울을 적시고 눈물 짓게 했던 <여명 余命, 1개월의 신부>는 스물네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나가시마 치에라는 한 여자의 투병기를 다룬 책이었다. 나가시마 치에, 여느 또래들처럼 좋아하는 가수의 스타일을 따라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에 건강하기만 했던 그녀에게 뜬금없이 찾아든 암의 존재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가슴에서 만져지는 낯선 응어리에 설마하며 찾아갔던 병원에서 받게 된 믿기 힘든 유방암 선고. 그녀는 그렇게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물세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몸안에 자리잡은 암의 존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가슴에 응어리가 생겼어. 실은 엄마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내게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낫지 않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야. 나는 설령 암이라 해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할 수 있다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 그러나 타로와 사귀면 타로에게 고통만 안겨 주게 될 거야."
"그런 건 걱정하지 마. 치에의 병이 낫도록 나도 도와줄테니까."
"그렇지만 말이야. 엄마가 옛날에 투병할 때 봤었는데, 항암제 치료를 하면 머리카락도 흉하게 빠지고……. 나중에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진심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
"나는 외모만으로 치에를 좋아한 게 아니야. 치에가 지금 그대로의 치에로만 있어 준다면 세상 끝이 오더라도 사귀고 싶어."-p37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어떠한 결정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변함없는 일상을 살아오던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 아카스 타로. 그녀가 유방암이라는 사실을 밝혔음에도 함께 이겨내자며 손을 잡아주는, 그녀의 든든한 연인이자 마지막 사랑인 타로와 가족, 친구들과 함께 그녀는 암과의 힘겨운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치에 그녀가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고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를 여러 감상에 젖어들게 하고 많은 것을 상기시키게 했다. 아파도 봤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만 했던 경험도 있기에. 치에처럼 중병도 아니었고 수술을 통해 씻은듯이 나아 지금은 건강한 나 이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과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열여섯의 나를 잠시 회상하게 되었다. 치에처럼 건강한 줄만 알았던 내게도 늑골에 자리잡은 종양의 소식은 비록 양성으로 판정받긴 했지만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철부지였던 열여섯의 소녀는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도 수술을 받아야한다는 것도 남의 일인마냥 낯설기만 했다. 갑작스러웠던 종양의 소식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졌던 수술.  모든 것이 꿈인 것만 같았다. 건강한 지금도 여전히 꿈인 것만 같은 그 때의 일이지만 어느 새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옅게 자리잡은 수술자국을 볼 때마다 그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수술을 받고나서도 건강한 지금도, 이제는 희미해졌다고는 하나 가슴 윗쪽으로 자리한 수술자국은 여전히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은 존재이다. 하물며 한쪽 가슴을 적출해야만 하는 치에의 마음은 어땠을까! 같은 여자로서도 충분히 공감가는 일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그녀의 마음이, 그녀가 수술을 최후의 보루로 삼았던 것이 더 절실히 이해됐다.

탈모, 구토 등 견디기 힘든 항암제 부작용을 이겨내며 암을 조금씩 몰아냈지만 결국 그녀는 최후의 보루인 가슴 적출 수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가슴 한쪽을 잃었지만 성공적인 수술과 꾸준한 치료 덕택에 건강과 평범한 일상을 되찾아가는 치에. 고통스러웠던 치료과정을 그녀 특유의 밝은 성격과 강함으로 이겨내는 모습과 시스템 엔지니어라는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힘들수록 더 힘을 내고 긍정적인,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스러우면서도 나 자신이 정말 부끄럽게 느껴졌다.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며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건강을 되찾으면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주어진 이 모든 시간에 최선을 다하자, 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 어머니께도 내게도 자랑스런 사람이 되자'라고 했던 그 다짐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 새 모든 것을 잊고 그저 현실에 안주하며 작은 어려움조차 이겨내기 버거워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투정을 부리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내 나약함을 인식하고 치에처럼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굳은 다짐을 한번 더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던 치에 그녀가 사랑하는 가족, 연인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무색하게 암은 어느 새 재발, 흉막에까지 전이 되어 그녀를 힘든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된다. 또 다시 충격받고 힘든 기로에 놓인 치에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암과의 싸움에서 또 한번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여전히 밝은 웃음을 지닌 그녀와 달리 그녀의 몸상태는 갈수록 악화되어 가고  여명 餘命,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한달이라는 잔인한 예후가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하면서도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힘든 투병생활을 밝게 이겨내가는 치에와 그런 그녀의 남은 생이 한달이라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한 채 내색하지 않고 평상시처럼 행동하는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발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이미 매듭지어진 결말임에도...아주 간절히 말이다.

사랑하는 연인 타로와 친구 모모코에 의해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결혼식이 이루어졌다. <여명, 1개월의 신부>라는 책의 제목처럼 여명 1개월을 앞두고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라들의 축복을 받으며 타로와 결혼을 올렸다. 처음에는 죽기 전에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작된 단순하지만 안타깝기 그지 없는 사진촬영이었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 친구들에 의해 두 사람은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치뤘다.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아픈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밝게 웃고 말하며 그렇게. 비록 진짜 결혼식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치에와 타로,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식을 축복한 사람들에게는 그 어느 결혼식보다 아름답고 숭고한, 진정한 결혼식이었다.

내일의 기적을 바라면서도 치에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여명을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음은 더 오래이길 바랐겠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어쩌면 그녀 자신이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지도. 타로의 신부가 되고 싶으면서도 훗날 타로의 곁을 함께 할 사람을 생각해 결혼이라는 것을 바라지 않는 모습이나 자신과 같은 젊은이들에게 투병의지를 보여주고 힘과 용기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치료하고 있다는 감각이 없다."라고 씁쓸하게 말하는 치에에게서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은연중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어머니 또한 암으로 떠나 보냈기에 자신의 상황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더 잘 알았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한다. 여명을 안다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서서히 찾아드는 죽음의 시간을 느낀다는 것은 아주 두려운 일이테니깐. 그래서 여명을 알릴 지 말지 타로와 마사토가 갈등한 것도 이해가 된다. 치에, 그녀의 마지막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조용히 잠들었듯이 그저 편안했길. 암과의 싸움에 지치고 다가오는 죽음에 불안했을 치에가 아닌 눈부시게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행복했던 치에의 모습으로 눈 감았길.

치에 그녀는 비록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녀와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고 치에 그녀가 친구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의 아픔이 더 안타까웠고, 어느 새 그녀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사실에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마치 곁에서 지켜본 것처럼 그녀의 환한 미소가 떠오를뿐만 아니라 병중에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하던 그녀의 소녀같은 순수함이 전해져왔다.


"저도 그랬지만, 병이란게 자기가 걸리기 전까지는 완전 남얘기같죠. 흔히 부모가 죽고 난 후에야 효도를 하고 싶어진다고 말하는데, 정말로 자기가 병에 걸린 후가 아니면 건강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병에 걸린 후에 건강의 고마움을 깨닫는 건 이미 늦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해요. 일찌감치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특히 젊은 사람은 진행도 빠르고, 재발 가능성도 높으니, 젊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건강 관리를 잘 해주었으면 해요." -p116~117

"살아 있다는 건 기적인 것 같아.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 있잖아. 나, 건강해지면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p199



모두가 기적을 바랐지만 기적은 없었다. 치에는 떠났고 남겨진 사람들은 치에를 추모하고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녀의 연인 타로가 어느 새 일상이 된 듯 치에의 아버지 마사토를 찾아가 치에의 이야기를 나누듯 치에는 여전히 모두의 기억 속에 살아 있고, 그녀가 전해준 따뜻하고 소중한 이야기는 그녀를 인터뷰하고 방영한 TBS-TV의 이브닝 파이브에 의해 많은 이들에게 삶의 소중함과 희망을 주었을뿐만 아니라 건강의 중요성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다시 태어나, 치에와 그녀를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힘든 상황에 처해 힘들어하거나 쉽게 좌절하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삶에 대한 의미와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용기와 힘을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가시마 치에, 천가지의 은혜라는 그녀의 이름처럼 내가 그녀를 통해서 너무도 값진 은혜를 받은 것처럼. 치에의 말처럼 내일이 온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기적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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