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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풍경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35
E.T.A. 호프만 지음, 권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8월
평점 :
그로테스크 - 고딕 - 환상은 이성적인 태도가 깔려있을 때, 더욱 만개 된다. 이분 책은 처음인데, 직진하는 모습은 하나도 없다. 마치 진짜 인생처럼 꼬불꼬불 꼬부랑길을 그리며, 희로애락을 꿈같은 입체적인 그림처럼 마구 휘갈긴다. 그래서 더욱 생동감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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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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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가 흔히들 알고 있는 샌드맨이었다는 사실에 바보같이 놀라고, 독일 민담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조선시대 도깨비 이야기를 만들면 이런 톤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걸 영화로 만들었을 때, 얼마나 섬찟할까라고 되새겨보게 만든다.
그럴 때면 우리는 마치 안개 속에 잠긴 듯했지. -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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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츠 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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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전자의 모습처럼 배경에 깔려있는 축축한 스산함은, 고도의 긴장감으로 아찔하게 다가오며 누군가 부릅뜬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한다. 이런 작품을 넷플릭스에서 시리즈 및 장편영화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한낮이 되었을 때 그녀는 다시 죽음의 선잠에서 깨어났다. -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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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시의 예수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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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탕 냉탕의 감정 기복이 파동의 형태로 저주파에서 고주파로 점점 늘어나가 한계값에 이르러 소멸되어 버리는 파괴강도 실험극. 신기하게도 데미안이 생각난다. 우리는 적당히 멍청할 필요가 있다.
동물이나 우리 자신은 알지 못하는 왕의 식탁을 위해 어떤 재료를 잘 가공하고 반죽하도록 훌륭하게 설치된 기계들인 거죠. -1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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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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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마법이 풍자를 통해 시전 되면, 그 마법은 치명적일까? 저주에 걸리고 저주가 풀리는 과정이 너무 하찮아, 아무도 모르는 악한 마술사의 광기 어린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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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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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들이 자꾸 내 머리에서 이미지로 떠올리게 해주는데, 아주 모호한 미스터리 공포영화 같다.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환상소설이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방식인, 상보성 혹은 의외성 및 뒤집기 전략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녀의 저주일까.
의사는 함께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얼굴이 창백해졌고, 내 손에서 거울을 빼앗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는 책상 서랍에 집어넣었어. -2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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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상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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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대에 걸친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복선과 상징들이 뒤엉켜 인간의 욕심과 물욕이 부른 만들어진 저주가 남긴 그림자들. 전체적인 그림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이나 앞장을 펼쳤는지 모르겠다. 마이크 플래너건은 빨리 이 이야기를 넷플릭스 시리즈로 만드시길.
사람을 싫어하는 음울한 성격 탓에 고독하게 자리 잡은 옛 성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2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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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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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단순하면서도 흡입력이 뛰어난 스토리. 파이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기만, 죄책감, 도피, 광기 같은 단어들이 연상되는데 고전 소설에서 인생을 배운다는 말은, 이 비극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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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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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건 없이 물처럼 흐르는 세월의 이야기 구조는 이 책의 단편 중 가장 임팩트가 떨어지지만, 여러 캐릭터들의 와글와글 떠드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핏줄의 대립과 은유들이 넘쳐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