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 유전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케빈 J.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9월
평점 :
당신은 예민한 편인가?
첫 페이지의 적인 글을 보고 느낀 점.
예전에 자기소개서에 나는 예민한 편이라고 적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예민하다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무시하진 않았지만, 창작자로서 예민하다는 단어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면접관은 예민하다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렇게 자기소개서는 하나도 쓸데없다란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는 외향적이고 동료들과 올타임 스마일리하게 지내고 창의적이고 상사에게 충성하며 책임감이 높고 친절하고 성실하며 연봉도 적게 줘도 만족하는 슈퍼 인재를 원한다. 근데 진짜 그런 인재가 존재하긴 할까. 그렇게 완벽한 인재가 왜 그런 별 볼일 없는 회사에 지원하겠는가. 그냥 대충 적당히 일을 하고 돈 벌려고 지원한 것이고, 내 수준에 딱 맞는 회사라 생각한 건데. 뭔가 앞뒤가 맞질 않는다.
누구나 가면을 쓰고 다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면을 쓰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원하는 인재상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근데 그런 인재가 세상을 바꾼 적이 있는가? 반대로 우린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하기에 이렇게 빌빌거리면서 사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빌빌거리는 것도 행운인지도 모르면서.
—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부제가 가장 정확하게 설명했다. -유전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메치는 영향- DNA 유전 공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누가 저런 설계도를 만들었을까. 자연은 너무나 위대하고 아름답다.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 편견을 깨부수는 내용들에 놀라고, 환경의 영향도 받긴 하지만 거의 모든 것은 유전자를 타고나며 그것이 발현되는 건 우연이라는 대담한 내용에 두 번 놀랐다.
* 파티를 즐긴다.
* 여행을 좋아한다.
* 자주 불안해진다.
* 경쟁심이 강하다.
*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좋다.
* 규칙을 잘 지킨다.
이것은 168p에 나오는 설문으로 다섯 가지 특성을 수치로 측정할 수 있단다.
난 항상 이런 질문이 불편하다. 불편하기보단 너무 어렵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파티를 즐긴다? 아니다. 그런데 친한 사람들과 파티는 가끔 좋아한다.
여행을 좋아한다? 맞다 그런데 돈 때문에 어렵고, 귀찮아서 이내 포기한다.
불안은 머 항상 불안하고.
경쟁심이 강하다? 맞다 그런데 포기도 빠르다.
새로운 것? 물론 좋은데 내가 잘해야 좋다.
규칙? 지켜야 되는 건 아는데 그게 잘 지킨다는 몇 퍼센트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저런 단답형으로 점수를 매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 아닌가. 하나의 질문에 수많은 하위 질문들이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모르겠다.
학자의 글이라 문체가 다소 딱딱하고 전문용어가 많으며 설명적이지만, 큰 맥락을 이해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직관적으로 이해를 도와줄 그림표들이 조금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영화 가타카와 같은 문화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이런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과학서는 꽤 드물다. 좋은 돌연변이 시리즈도 보고 싶다. 우리의 편견을 명쾌하게 재구성해 주는 과학 교양서임이 틀림없다. 이기적 유전자급이다.
—
결론적으로 공유하는 유전자가 양육 환경보다 심리적 특성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44p
다만 부모의 양육이 자녀의 근본적 성향이나 행동 형질까지 크게 변화시키지 않을 뿐이다. -60p
따라서 처음으로 돌아가 수정란부터 다시 시작하더라도, 그때의 당신은 지금의 모습과 동일하게 발달하지 않을 것이다. -99p
최종적으로 연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관객은 '자연 선택 natural selection’ 이라는 비평가뿐이다. -102p
본질적으로 뇌는 외부 세계의 상태를 예측하고, 이를 실제 감각 정보와 비교하여 오차를 계산한다. -210p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싸움 놀이를 더 많이 하리라 기대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러한 모습을 꾸준히 보아 왔다는 점에서였다. -318p
그러므로 집단의 평균 특성만으로 개인을 판단하는 것은 말 그대로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330p
생물학적 성 차이를 성차별의 근거로 이용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되었으며 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 차이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330p
중요한 점은 유전적 차이가 반드시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대개는 정자나 난자에서 새롭게 생긴 돌연변이이기 때문이다. -341p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로 이어지는 유전적 변이는 때때로 위대한 시인이나 예술가에게서 보이는 창조적 천재성을 끌어내기도 했다. -365p
•••자연 선택은 우리가 얼마나 창조적인지 는 관심이 없다. 자연 선택이 관심을 보이는 창조물은 오직 생존하여 다시 자손을 남길 수 있는 자녀뿐이다. -365p
개인이 특정 질환에 걸릴 확률을 유전적으로 물려받는다. 그러나 실제 발병 여부는 발달 과정에 발생하는 우연한 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370p
예컨대 책이 많은 집에 사는 아이의 1Q가 높아진다는 주장에는 치명적인 혼란 변수가 존재한다. 바로 부모의 IQ다. IQ가 높은 부모일수록 집에 책이 많을 테고, 그 자녀도 유전적 이유로 IQ가 높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98p
거대해진 자기 계발 산업은 우리가 습관이나 행동, 심지어 성격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토대로 한다. -404p
하지만 우리가 성격 특성을 정말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거의 없다. -405p
자기 계발 산업은 인간 심리에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돈이 더 많은 이웃이나 먼저 승진한 직장 동료, 또는 완벽해 보이는 여자의 삶 등을 떠올리게 하면서 부러움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주로 불안감이 큰 사람들을 겨냥해••• -40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