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순은 줄곧 얼굴에 웃음기를 띠고 있다가 이 말을 듣자 얼굴색이 점점 변하더니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 "소강, 그런 옛날 얘기는 그만두고 어서 잡시다!" "아니요.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도 며칠뿐이잖아요? 오늘 이후로 우리 두 사람은 다시 보지 못할 테니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 다 할래요. 단랑, 제가 왜 당신한테 이런 옛날 얘기를 하는지 아세요? 어릴 때부터 제 성격이 그랬다는 걸 당신께 알려드리고 싶어서예요. 만일 제가 밤낮으로 그리워하는 걸 손에 넣지 못했는데 운 좋은 누군가가 그걸 얻었다면 전 그걸 무슨 일이 있어도 망가뜨려야만 해요. 어릴 때는 바보 같은 방법을 썼지만 나이가 점점 들고 머리도 점점 좋아지면서 교묘한 방법을 쓰게 됐어요."
사내대장부라면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영웅이건 간에 주색재기酒色財氣19라는 관문을 넘기가 매우 힘든 법이에요. 옛말에도 ‘영웅은 미인이란 관문을 지나가기 어렵다’는 말이 있어요. 열네다섯 살 된 어린애든 80~90살 먹은 노인이든 날 보는 순간 누구나 뒷말을 해대면서 제 몸을 더듬으려고만 하지 뭐겠어요.
"네까짓 게 뭐라고? 넌 더러운 냄새가 나는 비렁뱅이들 우두머리에 불과할 뿐인데 뭐 대단해서? 그날 백화회에서 난 흰색 모란꽃 옆에 서 있었다. 거기 참석한 영웅호한들 중 날 멍하니 바라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었단 말이냐? 하나같이 나한테 정신이 팔려 넋을 잃고 바라봤단 말이다. 한데 유독 네놈만은 나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네가 정말 날 보지 못했다면 그뿐이야. 그럼 널 탓할 생각 없었다. 하지만 넌 날 본 게 분명한데도 마치 보지 못한 척했어. 눈빛은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갔음에도 잠시도 머물지 않았단 말이다. 마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보통 여자를 보는 것처럼 말이야. 위선자! 이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놈 같으니!"
"교봉, 이 개 같은 도적놈아! 과거 난 네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은 데 화가 나 마대원한테 네 약점을 들춰내라고 했었다. 한데 마대원이 무슨 말을 해도 들어먹질 않아 백세경을 시켜 마대원을 죽인 거야. 그… 그럼에도 넌 오늘 나한테 추호의 흔들림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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