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원숭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열림원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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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많은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그의 진수는 단편과 에세이에서 나온다.하루키도 책머리에서 '단편은 그저 생각나는대로 줄줄 써내려간다.그게 끝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에게 있어서 단편은 장편을 쓰면서 간간히 쉬어갈때 활력제가 되어 주는,기분을 가볍게 해주는 요소이다.작가가 그 과정을 즐긴다면, 거기서 나오는 작품 또한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지 않을까?

하루키 단편이 대부분 그러하지만,'밤의 원숭이'는 하루키만의 기발한 상상력의 결정체이다.게다가 그와 많은 작업을 해온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는 이러한 상상력을 더욱 배가시켜며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바닷거북이랑 카드를 친다거나,신문의 활차체를 좌우로 바꿔버리는 원숭이 얘기 등 황당한 얘기들이 가득하다.그러나 이러한 얘기들이 황당스럽지만은 않은 것은,'하루키'이기 때문이다.웃긴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대체 이런 게 말이 되느냐고 따진다면 당신은 하루키의 독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그냥 딴 책을 찾아나서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책은 '그냥 읽는' 책이다.손가는대로,마음가는대로.가끔 세상일에 지칠 때,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을때.세상의 논리고 철학이고 다 우습고 귀찮을때 말이다.특히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한없이 쓸쓸함을 느꼈다면 이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결국 사랑이란 이런 것인가,인간이란 이런 것인가 하며 울적해하다가 이 책을 읽는다면 '이게 뭐야,우하하!'하며 한결 기분이 상쾌해질지도 모른다.마치 시원하고 톡톡 튀는 콜라를 마신 뒤처럼 말이다.

또한 하루키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단지 '상실의 시대'나 '태엽감는 새'로만 그를 평가하지 말고.유쾌하고도 기발한 그의 일면을 알아야 진정한 하루키의 독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건대,이 책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말라.하루키의 상상력과 유쾌함을 맛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를 바란다.그 이상의 것은 다른 작품에 숱하게 나타나있기 때문이다.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그래서 황당해보이는 그의 상상력을 욕할(?) 사람도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말길.이 책은 그러한 상상력을 위한 책이다.'이런 얘기가 어딨어?'라고 욕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뭐랬나? 누가 있댔어?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다구!! 심각하게 그러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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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2
리처드 바크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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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도대체 그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알고나면 조금은 웃음이 나온다. 바로 '높이높이' 비상하는 것. 이 갈매기는 혹 다쳐서 날지 못하는가? 세상에. 날지 못하는 갈매기도 다 있나? 어떤 갈매기나 하얗디하얀 넓은 날개로 날지 않는가? 하지만 조나단은 조금 다르다. 그는 '날기'가 인생최대의 목표인 갈매기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날수 있을까'가 그의 행동을 만들고, 그의 정신을 곤두세우게 한다.

하지만 갈매기 조나단이 속해 있는 사회는 먹이를 구하는 목적 이외의 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개성을 무시하는 몰개성의 사회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조나단은 나는 것을 '즐기는' 희귀한 갈매기이다. 그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자신의 이상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가 속한 사회의 이상에 맞지 않았던 그는 추방당한다.

'갈매기의 꿈'은 흔히 교육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읽히는 책이다. 그것은 교육의 이상향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이상을 추구하는 갈매기와 그것을 봉쇄하려드는 사회의 모습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읽어낼수가 있다.

교육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고 인간에게 잠재된 능력을 일깨우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가? 오히려 '제도권'이란 이름으로 개성과 이상을 뭉개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추방당한 후 조나단은 피나는 노력 끝에 '특별하게' 나는 법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조나단은 자신을 추방했던 사회로 다시 돌아온다. 왜일까? 자신을 핍박했고, 환영해주지도 않는 사회로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점을 하나 던져보자. 그렇다면 이러한 교육이 계속 시행되는데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이 어떻게 나온 것일까? 우둔한 갈매기들 속에서 조나단 같은 갈매기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일까?

나의 대답은 두가지다. 첫번째는 원래 뛰어난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천재는 어디서나 존재하고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가 어떠하든, 자신의 능력과 그 사회의 관습을 조화시키며 성공을 일구어간다. 두번째는 몰개성의 교육을 받아온, 평범하다면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잘못된 교육을 받으면서 그것의 잘못된 점을 깨우치고 그것을 타파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즉, 잘못된 제도를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체험하면서 그것을 고쳐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이다.

조나단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과거 속했던 집단에게서 버림을 받지만 다시 돌아온다.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자신의 가르침을 알아들을 수 있는 몇몇의 소수를 해서. 그리고 자신이 배우고 체험한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성공을 거둔다. 가르침을 받은 플레처는 또 다른 아기갈매기들을 찾아서 가르침을 전달한다.

이 책에서 교육의 이상향을 찾았다면 무리일까? 하지만 나는 '발견했다'고 말하고 싶다.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당당히 펼치며 또한 그것을 전해주려는 조나단의 모습에서 이상적인 학생과 교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교육의 이상적인 모습을 향한 작은 밑받침일 것이다.

갈매기의 꿈을 쓴 작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안에 숨어있는 진정한 조나단 시걸'에게.

누구 안에나 조나단 시걸은 숨어있다. 그것이 태동되려면 수많은 시련과 아픔을 겪어야 한다. 그것이 개인적 시련이든, 사회적 시련이든 말이다. 교육은 이러한 시련을 줄여줄 수도 있고, 늘여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 혀를 차면서도 희망을 발견해내려고 하는 것은 이 책을 읽어서일 것이다. 진정한 조나단 시걸의 태동을 위한 날개짓이 허망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작가의 또다른 바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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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의 제국
에릭 슐로서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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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를 싫어하는 신세대가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20대 초반이니 어지간한 신세대에 속한다.따라서 대중문화와 함께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정해진 듯한 패스트푸드에 대해 특별한 거부감은 없었다.오히려 좋아했었다.단지 살찔 염려가 좀 많다는 것이 찜찜하다면 찜찜했을까.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나면 '특별한 거부감'이 생긴다. 따끈한 감자튀김과 햄버거, 차가운 콜라에 대해서.

'패스트푸드의 제국'은 제목 그대로 이제는 거대산업과 문화의 전도사가 되어버린 패스트푸드의 제국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날카롭게 파헤친 책이다.로마제국이 사치와 항략에 들떴다가 망했듯이,패스트푸드 또한 그럴거라는 메세지를 은연중에 던지는 듯하다. 이러한 단점들을 계속 간과한다면 말이다.

햄버거 안에 들어가는 '패티'의 원료인 쇠고기와 프렌치프라이를 둘러싼 도살장,농장,농부들,거대기업,의회,로비스트 등과 변해가고 몰락해가는 도시들의 모습까지 풍부한 예시를 통하여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앞에 나열한 단어 때문에 혹 겁을 먹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사회과학 분류라는 딱딱함마저도 이 책을 어렵게 만들진 못한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즐겨먹는 패스트푸드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가?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으면 살찐대'라는 단순한 상식에 대해서도 우리는 제대로 알고나 있는가?

패스트푸드를 둘러싼 고용문제,거대기업의 이해관계,몰락해가는 목장주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인간의 가장 기본적인,그래서 더욱 사소해보이는 '먹는 행위'가 또다른 인간을 이렇게 비참하게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것 말이다. 게다가 그 비참함은 우리의 위장속에 또다른 비참함을 가져다 줄 수 있다.엄청난 자본의 힘에 한없이 왜소해지는,기본권리마저 침해받는 바로 인간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고,나의 모습이다.

하지만 저자는 절망만을 말하지는 않는다.책의 마지막 부분에 양심적이고 올바른 방법으로 소를 키워내는 사람들과 위생적인 방법으로 햄버거를 만드는 사람들을 제시하면서,'당신의 식단은 당신이 바꿀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비자의 권리는 끓임없이 주장하고 요구하고 외쳐야 이루어낼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가 먹는 것에 대해서 끓임없이 궁금해하고 요구하자.그것은 우리의 위장에 들어가서 살과 뼈를 만들고 힘을 이끌어내고 삶의 원동력을 만들어낸다.삶의 질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수고쯤은 당연시해야 하지 않을까.

혹 시간이 되신다면,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이 책과 비교하며 읽어보시길 권한다. '먹거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소박한 이야기들을,'패스트푸드의 제국'에서 느낀 문제점과 비교하며 읽어보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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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인형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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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인형은 배수아의 초기작품이다.작가의 초기작품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로 비춰질까? 아직 그녀(혹은 그)를 주시하는 고정독자나 출판사의 신경을 무시할 수 있는 자유로운 글터? 그런 과점에서 본다면 '바람인형'은 대단한 성공작이다.

흔히 배수아를 칭할때 '이미지'라든가 '독특함','감각적'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는다.'바람인형'은 그러한 수식어가 총집합된 책이다. 제목부터 '갤러리 환타에서의 마지막 여름'이라든가 '검은 저녁 하얀 버스' 등 범상치 않다. 제목에서의 긴장감을 계속 이어가야 내용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내용은 이미지와 서사가 숨가쁘게 결합해 있다. 즉, 머리 속으로 책의 내용을 끓임없이 상상하며 줄거리 또한 이어가야 한다. '그렇게 읽지 않는 책이 어디있냐'고 항변한다면 그또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바람인형'에 나오는 이미지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듯 하면서도 아련한 이미지들,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구조들. '도대체 이게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거지?'라고 그 이미지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앞의 이야기를 잊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머리아픈 일을 잊으려고 쉽게 고르게 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머리를 더욱더 아프게 할수도 있다. 그러나 배수아의 독특한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리고 한번쯤 단순해진 머리를 엉키게 하고 싶다면.나른해진 정신의 일탈을 꿈꾼다면.......바람처럼 출발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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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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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큼 이원적인 것이 또 있을까?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눈이 멀어야 할만큼' 단순함이 필요하지만, 사랑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사랑을 둘러싼 '여러가지를 생각해야만 하는' 복잡함이 필요하다.

아니 에르노는 그 단순함과 복잡함에 대해서, 숨이 막힐만큼 덤덤하게 그려낸다. 열정의 순간들을,그저 써내려간 것처럼 느껴진다.(본인은 어떨지 모르지만.) 게다가 '난 겪지 않은 일은 쓰지 않는다'라는 단서까지 달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열정의 달콤함만 그려내지는 않는다. 하루하루 지나며, 열정이 식어가며, 연인이 떠나간 후의 감정까지도 생생하게 그려낸다.

왜였을까.그 사람을 위해 옷이며 악세사리를 고르고, 침대 시트를 갈고 꽃을 바꾸고. 차라리 행복한 시절만을 그려보는 것이 그녀에게 더 낫지 않았을까. 서서히 전화도 하지 않는 그 남자의 모습을 필사적으로 떠올리려고 애쓰는 그녀의 모습에서 누구나 어쩔수없는 사랑의 씁쓸함을 느낄 것이다.

굳이 '단순한 열정'이라는 책을 보태지 않아도, 주위에는 사랑의 이야기가 넘쳐난다.TV 드라마나 대중가요에서 다양한 사랑을 얘기하고, 라디오의 독자엽서나 잡지의 한켠에도 여김없이 사랑고백은 실려있다.

정말 강가의 돌처럼 흔하면서도 막상 자신에게 그것이 쥐어지면 사랑은 다이아몬드가 되고 만다. 그렇게 찬란하게 자신을 빛내다가 사랑이 식어지면, 그것은 다시 강가의 돌로 돌아가고 만다. 이 때까지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돌'로서의 사랑이나 '다이아몬드'로서의 사랑만 얘기했다면 '단순한 열정'은 돌이 다이아몬드가 되고, 다시 돌로 돌아가버리는, 단순하고도 쓸쓸한 과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사랑의 단순함과 복잡함에 놀랄지도 모른다. 정말 사랑이 이런거냐고.난 이런 사랑은 하고싶지 않다고. 하지만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정의가 조금씩 진실로 다가가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원래 진실이라는 것이 단순하고도 복잡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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