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가 당신의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그 중 0순위는 단연코 '독서'일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얼마나 고상하고 지적으로 보이는가. 혹자는 독서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할 행위이므로, 취미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취미는 본업이 아닌 여분의 일이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취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재미를 느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취미라는 항목에 대해서 '당연히' 독서(!)라고, 열렬히 말한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한없이 많겠지만, 그것이 지식이든 쾌락이든 간에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재미를 얻기 위함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앞에서 말한 재미라는 것을 완벽하게 제공한다. 주인공인 미텐메츠가 겪는 갖가지 모험과 위험, 그 와중에 만나게 되는 독특한 캐릭터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하나하나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여름밤을 넘길 수 있는 스릴을 제공한다. 종이로 만들어진 사람, 곤충처럼 생긴 살아있는 책, 진귀한 책을 찾아다니는 책 사냥꾼......이쯤 되면 빈정거리는 소리가 이 책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꺾어놓으려 한다. "흥, 그래서? 또 하나의 판타지로구만! 요새는 그런 책만 인기가 있군!" 걱정 마라. 판타지라는 장르가 책을 망친다고 개탄하고, 그리고 자신이 책 읽는 행위를 진지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제법 심각한 사고를 지니신 분들께도, 이 책은 아낌없는 매력을 선사한다.

모든 모험이 시작되는 곳인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은 그야말로 책의, 책에 의한, 책을 위한 도시다. 싸구려 통속소설(이 말에도 다소 불만이 있지만)부터 그 가치만으로 도시  하나를 살 수 있을 '황금 목록'에 올라있는 책까지, 부흐하임은 말 그대로 책으로 가득한 도시이다. 그뿐인가. 지하에서도 책을 발견할 수 있다. 지하의 동굴에도 책이 보관되어 있고, 책 사냥꾼들은 책을 발견하기 위해 생존을 건 결투를 한다. 책만 있고 사람은 없는가? 당연히 아니다.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모여들고, 독자들은 이를 즐긴다. 날마다 시 낭송회와 사인회가 열리고, 이에 따른 희비가 엇갈린다. 위대한 문학가를 꿈꾸고 도시로 왔던 사람들은 동전 몇 푼을 받고 관광객을 위해 하찮은 시를 지어주는 신세로 전락하고, 그 중 자신이 동경했던 고향의 문학가를 발견한 미텐메츠는 눈물지으며 글쓰기라는 직업에 대해 한탄한다. 진지한 사고를 지니신 분들이여, 문학의 모순과 삶의 허망함이 여기에 있다. 이래도 넘어오지 않을 텐가?

그리고 책을,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흐하임이라는 도시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뻐근해진다. 영국 등 유럽 각지에서 열리는 책 축제를 취재한 화면을 보면서 온갖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저 곳에, 내가 가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시의 모든 초점이 책에 맞춰져 있는 부흐하임은 상상 그 이상의 곳이다. 쓸데없는 책 좀 그만 읽으라고 타박하시는 어머니의 잔소리도 없이, 수업시간이 돼서 읽던 책을 덮지만 결국 살그머니 책을 꺼내다가 압수 당해버리는 아픔도 없이, 읽고 싶은 책이 외국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소식에 발을 동동 구를 필요도 없는 그 곳. 그 곳이라면 독서라는 취미를 극대화할 수 있고, 따라서 행복 또한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곳.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만의 서재를 머리 속에 짓지 않는가?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누구나 나만의 재미를 찾을 수 있고, 이에 공감할 수 있는 곳인 나만의 서재를 찾아낼 수 있는 곳이다.

이 책의 절정은 부흐링 족이다. (물론 다른 의견을 지니신 분들도 있겠지만.) 책을 읽음으로서 식사를 대신하고, 하나의 작가를 정해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빈틈없이 외워버리는 그들을 보면 그저 세상에! 세상에! 라는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는다. 말 그대로 책과 함께 살아 숨쉬는 그들이 아니던가! 게다가 소설은 영양가가 너무 높아서 조심해야 하고, 이를 위해 서정시로 다이어트를 한다니. 사람마다 달라서 소설을 읽어도 살이 찌지 않는 부흐링도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그저 으하하! 하고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부흐링을 비웃진 마라. 그들은 독서에 관해서는 절대 농담하지 않는다는 진지한 종족이니까. 미친 거 아냐-라고 비웃는 사람들은- 그러는 당신들은 책에 감동한 적이 없는가? 읽고 읽어도 새로우며 동시에 배고프고, 너무 좋아서 그 책을 쓴 작가에게 그저 감사하고 싶던 경험. 책의 구절이 하나하나 가슴에 박히던 그럼 경험이 없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로 불쌍한 사람이다. 가지지 못한 진귀한 경험을 부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웃고 있으니. 부흐링 족은 가끔가다 겪게 되는 '오름'처럼 소중한 우리들의 체험을 생활화하고 있는, 축복 받은 종족이다. 그런 그들에게 지정된 미텐메츠 또한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소중히 여겨줄 진정한 독자를 찾아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부흐링 족 같은 독자만 있다면 작가들은 과연 행복할까? ^^)

책에 흠뻑 빠져들고 싶다는 분들에게, 책만 읽으면서 살 수 없을까-라고 한탄하는 분들에게,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황홀한 꿈이자 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동시에 남긴다. 그렇지만 사람 인생이라는 것이 어차피 일장춘몽일진대, 그 꿈을 이왕이면 아름답게, 그리고 책들과 함께 보내는 것. 결코 후회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꿈을 좀 더 지속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살아 숨쉬는 책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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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또니 2005-08-10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오름'이 무슨 뜻인가요..님의 글 중에 있는 그 오름 말예요..사전에도 안나오는데...말이예요..참,글 잘읽었습니다.

normal80 2005-08-13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님의 답글을 이제서야 봤답니다. 늦게 답글을 올린 걸 용서해주시길. ^^

'오름'이라는 것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나오는 말이에요. 이 책을 쓴 작가가 독일사람이니 독일어에 '오름'이란 표현이 있는 건지 아니면 번역자가 그렇게 번역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이 책에는 '오름'이라고 나와있더군요. 이 책에서 오름이라는 것은 두가지로 나옵니다.

하나는(거의 이게 본뜻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위대한 문학작품을 쓸 수 있는 창조적인 힘입니다.

부흐링 족의 설명에 따르면, 우주 속에 하나의 오름이 존재하고, 위대한 예술적 착상들은 모두가 그것과 연결되고 마찰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생겨난다고 합니다.음악의 바다와 순수한 영감의 강물들, 그리고 번뜩이는 정신들에 둘러싸여 움찔거리면서 생각들을 분출하는 화산들로 가득 찬 보이지 않는 천체입니다.그것이 오름입니다.거대하게 자신의 에너지를 흘려보애는 힘의 장입니다.그러나 모두에게 내보내는 것은 아닙니다.오직 선택된 이들에게만 보여집니다.(꿈꾸는 책들의 도시 2권,42쪽 발췌)

설명이 좀 복잡하죠? ^^ 결국 오름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위대한 문학을 쓸 수 있는, 우주적이고도 천부적인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오름이라는 발음 때문인지 저에게는 '문학적 오르가즘'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답니다. ^^ 말 그대로 그것을 쓰는 작가도 흔들어버리고,그것을 읽는 독자들도 흔들어 버리는, 축복받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힘 같아요. 혹시 책을 구입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이 책의 2권 269,270쪽과 316쪽도 참고하세요. 오름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답니다.

그리고 나머지 뜻은, 오름을 하다-라는 표현도 이 책에서 나오는데, 이것은 부흐링 족의 의식입니다.부흐링 족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한명 정해서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외워버리는 종족이죠. 그야말로 문학에 파묻혀 사는 종족인데, 주인공인 미텐메츠가 부흐링족을 처음 만나 그들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 이 의식을 제안받습니다. 부흐링족 각자가 외우고 있는 작가의 작품 중 아무 것이나 한 구절을 외우면 그 구절만 듣고 미텐메츠는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맞춰야 하죠. 책을 정말로 사랑하는 부흐링 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치르는 일종의 '문학적 의식' 같아요. 그들의 기준에 맞는 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느냐죠. 그것이 이 책에서는 오름을 하다-라고 설명되어 있어요.

답변이 너무 길고 장황하죠? 그래도 책에 나와있는대로 답해드렸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