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산다는 것 - 조선의 리더십에서 국가경영의 답을 찾다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신병주 교수님을 ‘KBS역사저널 그날’을 통해 알게 되었다.


평소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특히 조선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책을 내신 걸 알게 되어 구입하였다.


구입은 예전에 했는데 책장에 놓았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조선의 왕은 고대나 고려의 왕들에 비해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지는 못하였다.


제도가 정비되면서 왕을 견제하는 장치도 적절히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조는 500년 이상 장수한 왕조였고, 27명의 왕이 재위하였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왕들은 체제의 정비가 요구되던 시기를 살기도 했고, 강력한 개혁이 요구되던 시기를 살기도 했다.


태종이나 세조처럼 집권의 정당성을 위해 강력한 왕권을 확립해야 했던 왕, 세종이나 성종처럼 개혁이 시대적 요구가 되던 시대를 살아간 왕도 있었다.


선조와 같이 전란을 겪고 수습해야 했던 왕, 인조처럼 적장에게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왕, 원인은 달랐지만 부왕의 복수와 명예회복을 위해 살아간 효종과 정조도 있었다.


조선의 왕들은 시대적으로 요구하는 바가 달랐고 각기 다른 배경 속에서 즉위했지만 성리학 이념으로 무장한 신하들과 학자, 그리고 왕의 통치력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국가를 합리적으로 이끌어 갈 임무를 부여받았다.


왕들은 때로는 과감한 개혁정책을 선보였고, 때로는 왕권에 맞서는 신권에 대해 대응도 하고 조정자의 역할도 하였다.


모두들 백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대동법과 균역법처럼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서 성공적인 평가를 받는 정책들도 있었고, 무리한 토목공사와 천도처럼 실패한 정책들도 있었다.


체제의 안정, 변화와 개혁의 중심에 왕의 리더십이 있었고, 왕의 리더십은 국가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었기에 왕으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선의 여러 왕들의 리더십 중 광해군의 외교 역량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후금은 명나라의 무순 지역을 공격했다.


명의 위기의식은 커졌고 임진왜란 때 명이 조선을 도와준 것을 구실로 광해군에게 파병을 요청하였다.


결국 자신의 측근인 강홍립을 파견하게 된다.


파견하면서 소극적으로 전투하다 항복해도 좋다는 비밀 지침을 내렸다.


강홍립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조선은 전쟁에 뜻이 없으며 항복하겠다고 후금 진영과 적극적인 강화협상을 했다.


조선이 자신들과 친교의 뜻이 있음을 확인한 후금은 조선 침공을 유보한 채 명나라 공격에 주력군을 파견했고, 이로써 조선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후금과의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속에도 평화를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냉철하게 힘의 현실을 인식하고 후금을 자극하지 않은 광해군의 외교 전략이 큰 몫을 했던 것이다.


광해군이 수행했던 강력한 전란 복구 정책과 실리적인 외교를 통해 조선이 불바다가 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했던 국제적인 감각은 오늘날에도 재평가 되어야 할 부분이며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는 현재, 광해군이 보여주었던 능동적인 실리외교의 지혜가 필요한 듯하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왕조 시대가 끝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가 되었지만, 적절한 정책의 추진, 여론의 존중, 도덕과 청렴성,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 언론의 존중 등 전통사회 왕들에게 요구되었던 덕목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이 출판 되던 해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비선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현재의 정치적 충격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 속 리더십의 면모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하고 있다.


특히 가까운 시대인 조선 왕조에서 최고의 지위를 갖고 있던 왕들의 모습은 현재의 거울처럼 더욱 생생한 모습으로 생생하게 다가오고 있다.


조선시대 왕들이 보인 리더십을 교훈 삼아 현재의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생각해보고 참고 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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