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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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순간은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인 것 같다.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나지만, 그 또한 내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저자 박애희는 13년간 방송계에서 일했던 경험들, 또 아이를 키우면서나 인간관계 속에서 느꼈던 일상의 소회들을 허심탄회하게 풀어 놓는다.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면, 사람이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고.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다독여주는 것만 같다.

그 후로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안달복달하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인생의 그 어떤 것도 '살아있다'는 것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내 안의 에너지들을 함부로 소진하지 않고 아끼며 살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걸 절감했기에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나만의 삶을 살리라 다짐했다.

 

그녀가 부모님을 잃고 느낀 감정들을 마주하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라는, 감당할 수 없는 일에 안달복달하지 말라는 그녀의 말이.

좀 더 자기 자신에 집중하라는 그녀의 말이 가슴으로 와닿았다.

늘 퍼주기만 하는 우리의 부모님들도, 살아남기 위해 버티느라 오늘도 신발끈을 조여 매는 당신도, 나도, 때로 혼자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잠시 나를 바라보는 존재를 잊고 나 자신만을 사랑한 그 시간이 또 일상을 버티게 해줄 테니까. 그것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그토록 바라는, 내가 행복해지는 길일테니까.

 

내가 조금은 더 행복해져도 된다고.

잠시 타인의 존재는 잊어도 되는 거라고.

그래야 우리도 살아나갈 수 있다고 건네는 말에도 무척이나 큰 위안을 받는다.

딸의 웃음을 듣고 있자면, 아무런 성취 없이 지나간 하루도 용서할만한 것이 된다는. 그 말을 곱씹으면서 생각했다. 하루에 한 끼를 제대로 차려내는 것도 그토록 고단해했으면서 나는 왜 매일매일 인생의 진수성찬을 차려야 한다고 안달했던 것일까. 이것도 해야해, 이것도 이것도. 삶에 늘 부대끼는 기분이 들었던 건 그런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소박하고 부담없는 한 끼로도 일상은 얼마든지 충만해질 수 있을텐데.

 

조금 더 내려놓을 것.

욕심부리지 말 것.

눈 앞에 펼쳐진 사소한 일상에 기뻐할 것.

그토록 사소한 지혜를 우리는 왜 자꾸만 잊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일텐데 말이다.

차근차근 그녀의 글을 읽어내려가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조금은 어긋나도 괜찮은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너무 오랜시간 아파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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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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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사회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 요즘, 이 책은 또 한 번 내게 무모한 믿음이 사회에 얼마만큼 소름 끼치는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국민을 고분고분하게 길들이고 싶어 하는 대통령과 모든 사람들이 성경의 교리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 목사가 권력을 장악한다. 이들은 '순수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이 과거처럼 순종적이고 소극적인 존재로 돌아가고, 남성이 사회의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여성이 하루에 단 100 단어만 말할 수 있도록 제한되는 시대.

손목엔 단어를 카운팅 하는 팔찌를 차고, 100단어가 넘어가면 전기 충격을 받는 여성들.

자신을 표현할 권리는커녕, 여권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어 다른 나라로 이주조차 할 수 없다.

 

 

설정만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는 책이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가정이라니 말이 되나? 싶었던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 이거 까딱하면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는데? 싶으리만큼 끔찍한 상황이 너무나도 현실감 있게 그려진다.

 

 

이 와중에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된다면? 그 아이가 혹시나 딸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발상 자체로도 충분히 분노할만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던 부분을 꼽아본다.

스티븐이 우유 한 잔을 또 따르더니 꿀꺽꿀꺽 마셨다.

"내일 시리얼을 위해 좀 남겨둬."

내가 말했다.

"이 집에 너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럼 나가서 우유 한 통 사 오시는 게 어때요? 그게 엄마 일이잖아요."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스티븐의 얼굴로 향했다. 스티븐의 오른쪽 뺨에 벌건 손바닥 자국이 피어올랐다.

스티븐은 움찔하지도, 손을 들지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좋아요, 엄마. 언젠가는 그게 범죄가 될 거예요."

"이 개자식."

.

.

(중략)

.

.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지만, 새로운 장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마 다음 장치는 장갑처럼 생겼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제가 할 말은 그게 다예요."

스티븐이 미소를 지으며 몸을 곧추세웠다.

"제가 모의실험에 자원했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뭐라고?"

"그런 게 바로 리더십이라는 거예요, 엄마. 그리고 순수한 남자들이 하는 일이고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닥치는 대로 먼저 떠오르는 말을 쏘아붙였다.

"이 빌어먹을 놈."

스티븐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시든지요."

그러고는 부엌을 슬금슬금 걸어 나오며 빈 유리잔 옆에 '우유 살 것'이라고 적힌 쪽지를 남겨두었다.

샘과 레오가 부엌 문간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참았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그것도 내 무엇을 내줘도 아깝지 않을 자식이 이 끔찍한 믿음에 사로잡혀 여성의 순종과 침묵을 당연시 여긴다면? 엄마인 나조차 무시하고 깔보며 그들의 원리원칙에 따라 나를 재단한다면?

나는 그래도 여전히 그 아이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을까?

 

주인공 매클렐런은 이런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저명한 언어학자였기에 이 뭣 같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잠시나마 갖게 된다지만, 그렇지 못한 무리들, 심지어 여성이면서도 '순수운동'에 세뇌되어 버린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여성이 입을 다물고, 집에 처박혀 내조나 잘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희열을 느낄까?

어딘가에는 정말로 이런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걸까?

 

불쾌한 소재와 끔찍한 상상이 맞물려 머리가 지끈 지끈하면서도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반전시킬 것인가? 끝내 이 뭣 같은 세상이 승리하며 여성들이 침묵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인가?

결말이 궁금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을 만큼 흡인력 있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이따위 세상이 절대로 도래하지 않기를.

아니, 그런 바람이라도 갖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지 않기를.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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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 위에서 이따금 우울해진다 - UNTRUE
웬즈데이 마틴 지음, 엄성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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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즈데이 마틴, <나는 침대 위에서 가끔 우울해진다>

이 책은 여성의 성(性)과 욕망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솔직히 '성'을 주제로 한 책 치고 비교적 잘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끊임없이 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적 자주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꼭 불륜이 긍정되어야 하는 걸까?

인간이 가진 많고 많은 욕망 중에 '성'이 그토록 절대적인 위치를 가지는 걸까?

평소 '폴리아모리(다자 연애) = 개소리'라고 생각해왔던 나였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는 너무나 보수적인 걸까?

여성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시점에 꽉 막힌 사람이 되는 걸까?

·여성들이 성적 자주성을 갖지 못하고서도 정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성적 자주성을 갖지 못하고서도 진정한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여성들은 특정 이데올로기들을 지금처럼 계속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고 옳은'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 우리가 한 번씩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우리 사회는 왜 불륜을 저지른 남자 보다 불륜을 저지른 여자에게 더 많은 비난을 쏟아내는가.

정말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성욕이 적고, 결혼생활이 불행할 때만 바람을 피우며, 불륜을 통해 성적인 만족보다 정서적 연결감을 추구하는가?

정말로 여성은 일부일처제를 선호하며, 결혼을 통해 남성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어 하는가?

저자는 각종 인문학적 연구, 동물 연구, 실제 주변인들의 인터뷰 사례를 예시로 들며 여성의 성에 관해 다양한 의문들을 던지고 이야기해 나간다.

'그가 거절하면 어쩌지?', '나를 매춘부 같은 여자로 생각하면 어쩌지?', '내가 진짜 매춘부 같은 여자라면 어쩌지?' 우리는 지금 생태학적 해방 상태에서 살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적 해방(비난과 판단과 자기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산다는 건 보다 복잡하고 힘든 일이다. 여성과 남성의 성 문제에 대한 이중 잣대, 여성의 성욕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이 팽배한 문화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여자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불편한 느낌을 가지는데, 우리가 진정한 '이데올로기적 해방 상태'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꼭 이렇게까지 예시를 들어야 하나? 인간이 욕망밖에 모르는 짐승인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저자가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래 들어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면서 급진적이고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의 언행이 논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웬즈데이 마틴의 글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현상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먼저 당신을 화나게 할 것이다.

 

이 책의 표지에 쓰여있는 두 문장이 그녀의 글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녀의 모든 의견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조금은 어이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해결점을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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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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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녹아버린 막대 아이스크림에서 헛헛한 마음이 느껴진다.

무슨 맛일지 상상도 잘되지 않는 새파란 아이스크림.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라는 제목과 참 잘 어울리는 일러스트다.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의 속도에 걸음을 맞추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이 소진되고 마음 한구석엔 구멍이 뻥 뚫려버립니다. 온전한 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루하루 떠밀리듯 살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즐겁지 않고 누구의 위로를 받아도 위로가 되지 않죠.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외로움이 덮쳐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이렇게 조언해주었죠.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좀 더 힘내. 너는 충분히 강하니까 해낼 수 있어."

분명히 위로를 건네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삶은 여전히 버겁기만 했습니다. 특별히 강해지고 싶다거나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이 더 필요했던 건 아닙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생각해보면 삶의 방향과 모양은 사람마다 다른데, 제가 나아갈 방향을 다른 사람에게 묻고, 비어 있는 부분을 내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직접적인 조언보다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위로가 더 크게 와닿는다는 것, 그저 내 마음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작가 전승환은 그래서 부러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가 책 속에서 만난 문장들, 그에게 위로가 되었던 문장들을 골라 소개해준다.

세상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신 혼자만은 아니라고.

그러니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걸음 떨어져 그렇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도 이 책을 읽었는데. 심지어 내 책장에 고이고이 소장해두고 있는 책인데 이 문장이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도 읽을 적엔 분명 아, 하고 감탄했을 텐데.

작가 전승환이 소개하는 문장들 중엔 내가 좋아하는 문장도 있고, 처음 만나는 문장도 있고, 이렇듯 그저 스쳐 지나갔을 법한 문장들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시각으로 내가 읽었던 책을 바라보게도 되고, 또 깊은 공감을 얻게도 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정호승 시인, <수선화에게> -

 

그렇게 내 마음과 비슷한 문장들과 자꾸만 마주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과거에 비해 상당히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안이 점점 커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가진 것과 현재의 나에 만족하지 말라고, 미래를 생각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지요.

인터넷 기사의 댓글 창들을 보다 보면 인간에게 회의가 느껴질 때가 있다.

따뜻한 위로의 말보다는 차가운 비난의 말들이,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추악한 말들이 가득해서다.

칭찬은 아끼고, 비난과 채찍질은 당연해진 사람들.

이런 환경 속에서 개개인은 점점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당신이 가진 외로움을

부디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기를.

                 

바닥 모를 수렁에 빠져 홀로 내버려진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세상 어딘가에는 반드시

당신처럼 외로워하는 이가 있음을,

아니, 실은 세상 모든 이들이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걸 언제나 잊지 않기를.

                   

그리하여 그 외로움을

함께 견뎌 나갈 수 있기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기에.

 

 그래서 그가 전하는 이 위로의 말들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어딘가에는 이렇게, 누군가의 안위를 생각하고 그것이 안녕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따뜻한 위로가 된다.

모든 걸음에 반드시 목적지가 있어야 할까?

인생도 산책하듯 그냥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 이애경,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

 

이 책은 나도 읽고 따로 리뷰도 했던 책인데, 나는 이 문장과 처음 만난 기분이다.

아마도 그때는 나름의 목표가 있었고, 그래서 이 문장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의 나에게 이 문장은 참 뭉클하게 느껴진다.

은연중에 내 인생의 방향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문장처럼 아마도 지금은 그냥, 산책을 하듯 걸어나가야 할 시간인지도.

이 밖에도 소개하고 싶은 좋은 문장들이 참 많은데, 이러다가는 책 한 권을 다 옮길 기세라 이쯤에서 마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다른 이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위로를 옮겨본다.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라고 격려하는 소리만 넘치는 세상,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참된 힘이 솟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 잘못된 세계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잖니? 인간이란 사실은 그렇게 힘을 내서 살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 속도에 맞춰 그저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되는 거야.

 

-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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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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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천진 시절>은 주인공 상아가 우연히 오래전 가깝게 지냈던 정숙을 만나면서 과거 천진(天津)에 살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회상하는 '천진 시절'은, 1998년 등소평 이래 개혁개방에 나섰던 중국이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던 시기로, 그 시기를 살아낸 20대 청춘들의 삶과 욕망을 대변한다. (금희는 중국 지린성 출신의 조선족 작가다.)

특히 주인공 상아와 정숙이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당대 여성들의 시대 변화에 따른 불안감과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작 그 시절이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정어리 떼처럼 반짝반짝 들뛰기 시작하자 나는 깜짝 놀랐다. 무의식이라는 창고 속에서 진작 한 줌의 재로 사그라졌을 거라 여겼던 기억이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가슴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고 나의 청춘이 꽤 드라마틱한 시대 속에서 연출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정숙을 다시 만나기 전에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마냥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기만 하는 추억의 순간들이 아니다.

세속적인 욕망과 배신, 좌절도 함께 뒤따른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에덴에 남겨진 단 한명의 남자와 단 한명의 여자 같은 경우,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고 절대적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유일하게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낯익은 상대와 함께 함으로 그에게서 느끼는 안정감과 친밀감, 의지하고 싶은 감정......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상아와 무군의 시작은 애초에 상아의 탈향과 취업에 대한 욕구로 시작되었기에, 그 끝이 이미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 역시 "처음부터 내가 원하던 상황이 아니었으니까"라고 되뇌며 끊임없이 마음의 거리를 두었으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춘란이나 미스신의 삶을 지켜보며 쉬이 흔들렸을 것이다.

나는 삶의 어떤 변화, 질적으로 더 나은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내 욕망이 정당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욕망이 꿈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때는 두 가지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오히려 춘란이나 미스신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녀들은 욕망 앞에서 정직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그녀가 욕망을 좇아 새로이 시작한 삶이 그녀를 더 행복하게 이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녀가 다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는 말속에서 적어도 그녀 스스로 선택한 삶에 후회는 없어 보인다.

그녀는 약하게 떨고 있었다. 나도 그녀를 마주 안았다. 될수록 다정하고 친근하게. 그녀의 팔이 내 등에서 떨어져 나갈 때 가슴이 아려왔다. 우리는 왜 좀 더 일찍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걸까.

 

그러나 천진에서 보낸 시절은 그녀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흔을 남겼던 것 같다.

그러니 부러 꺼내보지 않고 한켠에 묻어 두었던 것이 아닐까.

정숙을 만나기 전, 설레면서도 복잡했던 마음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설 <천진 시절>은 1998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 시대 상황과 비교해봐도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의 청춘들 역시 세속적인 욕망을 품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타인을 이용하기도 배신하기도 하니까.

상아나 정숙의 선택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못하지만, 딱히 비난하기도 힘든 이유다.

그렇다고 그들의 선택이 딱히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삶은 어쩌면 안쓰럽기도 하다.

모두들 자기 나름의 욕망을 좇아 살아가지만, 세상은 누구에게나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므로.

현실은 그저 버석버석할 뿐이다.

정숙의 현재 모습과 과거의 시절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다.

누군가의 어느 한 시절을 통해 그려낸 삶의 모습도 무척 생생하게 다가왔다.

20대 청춘의 모습을 마냥 뜨겁고, 힘차게, 행복하게만 그려내지 않았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어쩌면 이게 더 현실적인 삶의 모습일지도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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