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삼사라 서 세트 - 전2권
J. 김보영 지음 / 디플롯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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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누구나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는 데에는 인색하다. 무시와 조롱, 차별과 경멸이 일상에 스며들었고, 거기에서 모멸감이 생겨난다. 우리는 쉽게 타인을 모멸하는 동시에 언제든 모멸의 대상이 된다.

 

이 모멸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으면 어떤 모양이 될까? 흩어져 있던 감정들이 뭉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그곳에서 현실과는 다른 내가 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바삼사라 서』는 어쩌면 그런 상상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수호는 가정폭력의 희생자다. 그는 어느 날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다 낯선 목소리를 듣고, 우연히 ‘심소’로 들어가게 된다. 심소는 사람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세계다. 이 세계에서는 상처와 결핍이 특별한 무기가 된다. 수호의 굽은 손가락은 심소에서 ‘칼’의 형태로 변화한다.

 

심소에는 인간의 욕망이 실체화된 ‘카마’라는 존재가 있고, 이를 물리치는 퇴마사들이 있다. 카마 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두억시니다. 두억시니의 힘은 모멸에서 나온다. 그는 인간에게 모멸을 심고,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기도록 만든다. 모멸을 당한 사람은 그 모멸을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되갚는다. 이러한 악순환이 두억시니가 몸집을 불리는 방식이다.

 

수호를 비롯한 퇴마사들은 이를 막기 위해 싸운다. 이 과정에서 폭력, 장애인 차별, 젠트리피케이션 등 실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회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개인적으로 『사바삼사라 서』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이다.

 

수호는 이 싸움을 결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그는 진, 선혜와 함께 서로 연대하며 싸움을 이어 나간다. 현실 세계에서는 약자의 모습을 한 이들이 심소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퇴마사들은 오랜 시간 윤회를 되풀이하며 싸워왔다. 수호, 진, 선혜도 전생부터 무수한 연을 이어왔음이 드러난다. 그들의 과거는 작품 전반에 걸쳐 조금씩 밝혀지며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래서 몹시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바삼사라 서』에서 싸움의 대상은 단순히 ‘악’뿐만이 아니다. 작품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모멸감은 타인을 향한 모멸로 이어진다. 저자는 내가 받은 모멸을 다른 사람에게 되갚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모멸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든 작품이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계관이나 인물도 너무나 매력적이라 정말 몰입해서 읽었다. 부디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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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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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총 14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로 갈수록 이야기 사이의 연결지점이 드러나며 하나의 커다란 세계관이 완성된다.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영리한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인류의 멸망을 소재로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처럼 인간이 악으로 치닫고 끔찍한 행태를 보이는 모습을 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뒤의 세상, 남아있는 인간의 수는 얼마 되지 않고 그중에서도 남성이 극소수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가 살아간다. 초록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 눈이 세 개 달리거나 코가 없는 사람들, 타인의 생각을 읽고 영혼을 옮겨 다닐 수 있는 존재들. 국가라는 형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각각의 군락은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 오직 ‘관찰자’라 불리는 이들만이 세상을 돌며 이들을 지켜볼 따름이다.

 

인류가 얼마 남지 않은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와 같은 모습을 반복한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던져진 의문이 더 씁쓸하게 다가온다.

 

“인간은 어째서 자신과 다른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는 걸까?”

 

인간은 왜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것일까. 수많은 과거의 역사를 보아왔으면서도 왜 다르게 행동하지 못하는 걸까.

 

이처럼 디스토피아적인 주제를 담고 있음에도 작품의 문체는 담담하고 서정적이다. 인간이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못 박으면서도 동시에 애잔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인간들은 마지막까지 서로 사랑하고 미워했어?” 하는 작중 인물의 대사처럼, 끝내 애정 어린 시선을 거두기가 어렵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인간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왜 이 씁쓸한 생을 계속해서 반복해나가는지 자꾸만 생각해보게 됐다. 나중에 다시 한번 곱씹으며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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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회한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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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추리소설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일까.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사건들? 치밀한 구성? 물론 이런한 요소도 중요하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또 한 가지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인물의 매력이다.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개성이 톡톡 튄다. 사건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혈 형사 고테가와, 사회성 제로지만 부검 실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수 미쓰자키, 그리고 형사 못지않은 행동력으로 사건에 뛰어드는 우라와 의대 조교 마코토. 이들은 성격도 가치관도 다르지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한 몸처럼 움직인다.


『히포크라테스의 회환』은 그중에서도 미쓰자키가 사건의 중심이 된다. 미쓰자키는 방송에서 사법해부(범죄가 의심되는 사망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형사 수사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부검)에 대해 소신 있는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그리고 이날 방송의 여파로 익명의 상대에게 협박을 받는다.


사람을 딱 하나 죽이겠다고. 그러나 반드시 자연사로 보이게 만들 것이라고. 그러니 시신의 목소리를 들을 테면 들어보라고.


이 협박 때문에 주인공들은 평범한 사망 사건조차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사건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일반 사고로 보이는 죽음까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체를 마음대로 부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검에는 비용이 들고, 사법해부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근거도 필요하다. 결국 주인공들은 제한된 시간과 인력 속에서 반드시 부검이 필요한 죽음을 찾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시신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범인의 흔적을 찾아간다. 시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증거가 시신 안에 숨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검시관에게는 꼼꼼하다 못해 집요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괴팍해 보이는 미쓰자키의 성격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장점이 되기도 한다.


거기에 증거를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할 각오까지 한 형사까지 등장하니 이야기에 극적인 요소가 더해진다. 이처럼『히포크라테스의 회환』은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크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투닥거리는 모습도 이 작품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무엇보다 정교한 법의학 지식이 이야기를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생생한 부검 묘사부터 일반인은 쉽게 알기 어려운 의학 지식, 그리고 그 지식이 사건의 중요한 단서로 바뀌는 과정까지가 몹시 흥미롭다. 


흡사 법의학 드라마를 한 편 보는 기분도 들었다. 수사물이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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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인연 ㅣ 붉은 박물관 시리즈 3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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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작은 단서 하나로 사건을 뒤집는다!


‘히이로 사에코’의 추리가 그렇다.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것에서 단서를 찾아내고, 그 단서들을 연결해 사건을 해결한다. 『죽음의 인연』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죽음의 인연』은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추리소설 단편집이다. 붉은 박물관 시리즈로는 세 번째 작품으로, 총 6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주인공은 히이로 사에코와 그녀를 보조하는 데라다 사토시다. 두 사람은 경시청 부속 범죄 자료관에서 일하며 미해결 사건을 재수사한다. 사에코가 추리를 이끌고 사토시가 이를 돕는다는 점에서 셜록 홈즈와 왓슨이 떠오른다.


사에코는 사건과 관련 없어 보이는 말이나 행동, 사소한 정황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녀의 추리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장면이나 대사가 이야기가 진행되며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덕분에 독자 역시 사소한 장면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고 ‘이게 과연 어떤 단서가 될까?’ 생각하게 된다.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표제작인 <죽음의 인연>이었다. 

어느 날 국회의원과 노숙자가 함께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언뜻 보기에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왜 함께 살해당했는지, 살인범은 누구인지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이 사건이 흥미로운 이유는 결정적인 단서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던 단서가 사에코의 추리를 통해 중요한 실마리로 바뀐다. 사에코는 이를 바탕으로 두 사람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날카로운 관찰력도 인상적이지만, 작은 단서에서 출발해 자신만의 가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죽음의 인연』은 거대하고 복잡한 사건을 다루기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들을 다룬다. 그래서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독특하고 극적인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은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지만 그만큼 현실적인 느낌은 덜하다. 반면 이 작품은 평범한 사건들을 다루기 때문에 단서들을 좇는 재미가 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소설보다는 직접 추리하며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더 즐긴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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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 재앙의 책
오다 마사쿠니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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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기괴하다, 역겹다, 불쾌하다. 


『화』를 읽는 내내 가장 많이 떠올린 단어들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뭘까. 바로 호기심이다. 도대체 이 이야기의 끝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다.


『화』는 총 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은 입, 귀, 눈, 살, 코, 체모, 나신처럼 인간의 신체를 소재로 삼는다. 저자는 우리에게 친숙한 몸을, 낯설고 기이한 대상으로 뒤틀어 놓는다. 때문에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내 몸이 괴이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식서>였다. 말 그대로 ‘책을 먹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우연히 책을 찢어먹는 여성을 발견하고, 기묘한 이끌림에 자신도 책을 찢어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책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책 속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다면 어떨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결코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책과 현실의 경계는 몹시 음습하고, 쿰쿰한 냄새마저 풍기는 것 같다. 흥미로운 소재 위에 불온한 상상력이 뒤섞여 묘한 쾌감과 거부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이는 단지 <식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모든 단편은 인간의 몸을 욕망과 혐오, 매혹과 공포가 뒤엉킨 공간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흥미로움과 동시에 불쾌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특히 여성의 신체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남성 중심적인 시선이 느껴져 거부감이 들었다. 그 불쾌함마저도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저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거울을 보거나 혹은 머리를 말릴 때 문득문득 이 책 속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너무나 익숙해서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내 몸이 어색하고 낯설게만 느껴진다.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는 ‘재앙’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전반적으로 일본 소설 특유의 괴이한 분위기가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기괴한 상상력과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만하다. 다만, 여성 독자라면 작품 곳곳에서 꽤 많이,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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