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 아우슈비츠와 그 이후
샤를로트 델보 지음, 류재화 옮김 / 가망서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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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샤를로트 델보는 프랑스 극작가이다. 델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독 저항 활동을 하다가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되었다. 그녀는 1945년 4월 석방될 때까지 약 27개월을 수용소에서 보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는 저자가 자신의 수용 생활에 대해 증언한 기록이다. 이 책은 인쇄 방식이 굉장히 독특하다. 전체가 총 세 개의 챕터로 나뉘는데, 수용 생활을 담은 앞의 두 챕터는 검은색 바탕 위에 인쇄되어있다. 검은색 바탕 위에 놓인 활자들은 그 자체로 감옥에 갇힌 듯 답답한 느낌을 자아낸다. 작가가 석방된 뒤의 삶을 다룬 마지막 챕터는 반대로 흰 바탕에 인쇄되어 있다. 그러나 까만 블록 속에 인쇄된 활자들은 여전히 폐쇄적인 느낌을 준다. 마치 델보가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에도 아우슈비츠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나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영화, 다큐멘터리를 많이 본 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좀처럼 읽기가 쉽지 않았다.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실 수 없어 정신착란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몰리는 사람들, 티푸스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몸에 자신의 인분이 묻었어도 씻지 못해 그것을 묻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그럴듯한 신발이 없어서 대충 만들어 신고, 자신의 발이 썩어가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의 일상은 너무나도 참혹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인간이 인간한테 정말로 그럴 수 있는가? 책장을 넘길수록 인간을 향한 혐오와 거부감이 몰려왔다. 델보가 수용 생활 중 구한 단 한 권의 책 제목이 『인간 혐오자』였다는 사실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묘하다. 이런 잔혹한 현실이 담겨 있는 내용과 다르게 델보의 문체는 시적이다. 짧고 건조한 문장들 사이로 리듬감이 느껴지고, 이는 아우슈비츠의 참혹함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끔찍한 이야기들을 보면서 델보의 문체에 감응하는 나를 보며 어쩐지 죄책감도 들었다. 델보는 이 책을 석방된 이듬해에 썼지만, 출간은 20년이 지난 후에나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전쟁의 상처를 돌아보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문학’이 필요했고, 여성들의 증언은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델보 역시 자신이 겪은 일을 사람들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프랑스 레지스탕스 여성은 델보를 포함해 총 230명, 그중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49명뿐이다. 그러니 살아남은 자들이 서로에게 갖는 끈끈한 유대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그곳에 두고 온 동료들을 향한 기억과 죄책감 역시 그들을 오래도록 괴롭혔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갑갑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괴로움조차 이들이 보낸 어느 하루의 고통에도 비할 수 없을 것이다. 나였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콕 박히는 것 같다. 아마도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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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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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개개인의 정의로움과 부덕함이 눈앞에 수치화된다면, 이 사회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 사회는 정말로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머리 위에 수레바퀴 모양의 원판이 떠 있다. 원판에 청색 영역이 많다는 것은 그 사람이 정의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고, 적색 영역이 많다는 것은 부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원판의 색깔은 개인의 행동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며, 그 비율은 죽어서 천국 혹은 지옥에 갈 확률과도 연결된다.

 

그렇다면 수레바퀴가 등장한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람들은 청색 영역을 늘리기 위해 더 정의롭게 행동하게 되었을까?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는 르포 형식으로 진행된다. 르포 작가인 ‘나’는 여러 사람들을 취재하여 수레바퀴가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기록한다.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수레바퀴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누군가는 오히려 이전보다 삶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청색 영역을 늘리기 위해 선행을 펼친다. 결과론적으로만 본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진정한 선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나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계산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삶은 과연 행복한 삶일까?

 

수레바퀴가 개인의 삶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사회·경제·문화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 역시 수레바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업을 구성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한다. 그러나 수레바퀴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경제적 합리성과 윤리적 선택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업이 정의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그 결과로 존폐의 위기에 처한다면 어떨까. 그것은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이렇듯 수레바퀴는 끊임없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정의란 무엇인지, 더 나은 사회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원하는가. 우리의 인생에도 수레바퀴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세상에는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인간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망가져가는 지구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지금보다 현명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레바퀴는 어쩌면 이런 세상에 던지는 질문 같다. 세상이 이토록 엉망인데도 너는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이냐고. 네가 지금 심판대 앞에 서 있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할 수 있겠냐고.

 

결국 본질은 ‘수레바퀴가 없어도 우리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갈 숙제인지도 모른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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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
최인서 지음 / 다이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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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솔직히 처음엔 좀 낯설었다. 괴기스러운 상황 설정과 그에 따른 행동 지침들이 제시되어 마치 내가 가상현실 게임 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근데 이제.. 실제 목숨을 건...

 

초반부의 낯섦을 지나 본격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의 일상을 볼 수 있다. 다른 직장인들과 하나 다를 바 없는 모습들, 그렇지만 조금 더 끈끈하고 결속력 있는 모습들. 툭툭 내뱉는 말속에 담긴 진심 어린 걱정들과 그 속의 유대감을 엿보며 나는 조금 두려워졌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건이 펼쳐지려고 그래?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은 말 그대로 어느 날 역사 유적지에 갑작스레 벌어진 이상현상들을 파헤친다. 분명 유적지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딴 세계에 떨어진 듯 참혹한 세상을 마주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연이은 실종· 사망 사건.

 

탐사원들은 이 현상을 파헤치고 실종자들을 구하고자 ‘그’ 세계로 들어간다. 수도 없는 접근 끝에 만들어낸 활동지침이 있지만 그것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돌발상황이 더 자주 발생하며 상황은 점점 극적으로 치닫는다.

 

과연 이 세계는 왜 창조되었으며, 그곳을 창조한 이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들의 운명은 괜찮은 걸까?

 

후반부로 갈수록 심장이 쫄깃쫄깃해져서 입안이 바짝 말랐다. 책을 읽으면서 진심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 경우는 많지 않은데, 이 책을 보며 좀 서늘했다. 흔히 볼 수 있는 유적지를 배경으로 하여 상상 가능한 공포가 더해지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다음에 내가 역사 유적지에 간다면 전과 같은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볼 수는 없지 않을까?

 

이 책의 추천사를 쓰신 설재인님은 작가의 뇌를 파먹고 싶다는 파격적인 표현을 썼는데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이토록 천재적인 구성에 결말까지 완벽한 책은 만나기 힘들다. 진짜 글을 잘 쓰시는 분 같다. (작가님 2001년 생이라니.. 아직도 믿을 수 없어....) 최인서 작가님이 앞으로도 더 더 좋은 책 많이 내주시기를 바란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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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9
박에스더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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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시대극 + 판타지 + 로맨스? 이 정도면 설정 과다 아닌가?

 

처음엔 이런 생각에 염려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작가는 이 모든 요소를 적절히 녹여내어 매력적인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칠보』는 일곱 가지 보물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무당 ‘동효’는 나라의 독립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모아 일곱 개의 보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보석을 일곱 명의 아이들 몸에 숨긴다. 동효는 ‘소화’에게 칠보를 지켜줄 것을 부탁하고, 소화는 만삭의 몸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조선을 떠난다.

 

하지만 곧 일본군 비밀 부대인 ‘고독’이 이들을 뒤쫓는다. 칠보에게 조선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믿고, 이를 파괴하기 위해서다. 소화는 도망치는 과정에서 딸 ‘옥희’를 낳는다. 칠보와 옥희는 친남매처럼 서로를 아끼며 자란다.

 

일본군은 수년간 끈질기게 이들을 추적한다. 결국 칠보는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던 중 뿔뿔이 흩어진다. 옥희 역시 목숨을 건 도주 끝에 겨우 살아남는다. 형제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옥희는 홀로 힘겨운 삶을 살아낸다. 그렇게 십오 년이 흐른다.

 

과연 옥희는 칠보를 모두 찾아내 조선의 국운을 바꿀 수 있을까?

 

이야기는 쫓고 쫓기는 칠보의 운명을 따라 숨 가쁘게 전개된다. 그래서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앞에서 뿌려놓은 떡밥들이 어떻게 회수될지 예측하며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다다른다.

 

『칠보』가 무엇보다 매력적인 점은 이야기가 여성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로맨스의 서사를 착실하게 쌓아가면서도, 여성을 사랑이나 남성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옥희가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형제를 위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모습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제목처럼 다양한 매력을 가진 책이었다. 시대극이나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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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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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고도로 기계화된 인간은 로봇과 무엇이 다를까?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일들이 자동화 설비로 대체되고 있다.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마치 기계의 한 부품처럼 움직인다. 인간이 로봇과 다른 점이라면 식욕이나 수면욕 같은 생리적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이러한 생리적 욕구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잠’을 자지 않아도 각성된 상태로 24시간 일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주인공은 강남의 피부 클리닉에서 잘나가던 의사다. 하지만 어쩌다 3억 원의 빚을 지고 김해의 한 물류센터까지 흘러 들어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살피는 일을 맡는다. 그런데 이곳의 노동자들은 무언가 이상하다.

 

정해진 교대 시간이 되어도 교대하지 않고 서로 근무하겠다고 싸운다. 잠도 자지 않고, 식사 시간마저 최대한 줄여가며 오로지 노동에만 몰두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인간과 기계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검은 핏대가 서 있다. 몸은 분명 수면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피로감을 호소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적인 반응은 줄어들고, 고통마저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인간의 몸을 하고 있지만 인간적인 반응은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몹시 기괴하게 느껴진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나는 시종일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오로지 효율성만을 생각한 시스템,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없는 환경. 이것은 비단 이 작품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사회는 인간에게 더 효율적인 사람이 되기를 요구한다. 더 빨리, 더 오래, 더 많은 일을 해내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마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서 이러한 불편함을 모두 제거한다면 어떨까? 잠을 자지 않아도 되고, 배가 고프지도 않으며,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그리고 정말 그런 세상이 온다면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 될까?

 

문득 그동안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다룬 기사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은 조금씩 이 작품 속의 인물들과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230여 페이지 분량의 얇은 소설이지만 굉장히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었다. 과연 한겨레문학상 수상작다운 작품이다.



*본 리뷰는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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