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읽었을 때 카버의 소설은 기이함과 삶의 불가항력적 비극 사이에서 기이함 쪽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번에는 후자의 요소가 내게 더 강하게 다가왔다.이 소설집에 실린 모든 단편들이 놀랍고 대단하다고(It‘s really something)밖에는 말할 수 없다.
조금은 부러운 마음으로 금기를 금기시하며 자기만의 방식대로 조금씩 앞으로 가는 나라 사람들-진보란 원래 앞으로 걸어간다는 뜻 아니었던가-을 읽는 시간은 신선한 충격의 경험이었다. 18세기에 혁명을 이룬 나라답게 모든 삐딱한 시선과 행동이 용인되는 나라...시위를 응원하며 반항심을 부추기는 나라. 그러나 때로 이들이 보여주는 좌파의식이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생활 속에 파고드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이러한 것이 좌파의 품격일까. 이 책 속 누군가의 말처럼 좌파가 시간을 갖고 삶을 음미하며,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수에 맞서 소수를 대변하는 자라면 나또한 그 부류에 한 발은 걸친 것이 아닌가 조금은 위안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한국적 토양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이예다 같은 청년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하며 한국의 생활좌파를 응원한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개츠비가 그리고 이 책이 왜 위대한지 몰랐다. 두 번째 읽었을 때 개츠비의 어리석은 집착과 사랑이 모든 부정과 쓰레기 같은 인물들 속에서 오히려 숭고하게 빛나서 씁쓸했다. 세 번째에 가서야 피츠제럴드가 보였다. 상징과 은유에 쌓인 아름다운 문체와 형식미가... 세 번을 읽어야 피츠제럴드의 위대함이 납득이 되다니...어쨌든 이제 나도 와타나베 선배의 친구가 될 조건을 갖춘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