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원작을 뛰어 넘는 영화는 없다고 한다. 나도 그 법칙에는 꽤나 동감하는 편이다. 그래서, 원작을 봤을 경우에는 영화를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원작에 대한 비교로 인해 영화에 집중하기 힘들어지고, 심지어는 원작에 대한 모독을 느끼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원작에 앞서 영화를 보았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영화를 소개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통해 맛보기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맛보기가 꽤나 강렬했었다. 배우들이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화면에 나타난 영화의 줄거리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한없이 로맨틱하게만 느껴지는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그 내용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열다섯 소년 미하엘에게 첫 사랑이 찾아온다. 간염으로 길거리에서 구토를 하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친 여인 한나. 미하엘은 그녀에게서 사랑을 보았다. 어쩌면 그건 사랑이기보다 욕정이었을지 모른다. 서른여섯의 여인 한나의 육체에 미하엘은 하염없는 동경을 품는다. 엄마와 비슷한 여인에게 느낄수 있는 감정은 분명히 아니었지만, 미하엘은 한없이 그녀에게 빠져든다. 미하엘의 첫사랑이자 첫경험이었다. 우연히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일시적 관계가 아닌 지속적인 열정으로 변해간다. 매일 계속되는 만남.그리고 이어지는 사랑행위. 샤워하기, 책읽어주기..... 두 사람의 사랑은 일정한 공식에 의해 반복되어 간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책의 제목과도 같은 책읽어주기이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 두사람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행위이기도 하다. 미하엘은 한나의 육체에 호기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한나 또한 자신보다 한참 어린 미하엘의 육체를 탐닉하기 위해 만남을 지속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육체가 아닌 책이었다. 책은 한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한나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며, 살아있지만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나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미하엘은 알지 못했고, 한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우리는 눈치챌수 있었다. 두사람의 이해하기 힘든 관계와 황당한 에피소드에서 한나의 문맹과 두사람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느 순간 한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 미하엘은 자신의 사랑에 대해 자괴감에 빠지고, 어느날 갑자기 한나는 미하엘에게서 떠나간다. 사라진 한나를 찾아 방황하는 미하엘. 하지만 더이상 미하엘의 첫사랑은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었다. 그렇게 두사람의 사랑과 책읽어주기는 잊혀져 갔다. 오랜 시간과 함께 한나와 미하엘은 자신의 삶속에 빠져들게 된다.

 

법대생이 된 미하엘. 수업을 위해 재판을 참관하게 된 미하엘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신의 첫사랑 한나를 만나게 된다. 나치와 관련된 중대 범죄자로써 피고가 되어있는 한나. 과거 나치시절 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있던 한나는 그 시절 행해졌던 일로 인해 재판을 받고 있었다. 재판과정에서 한나는 자신의 죄를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재판관에게 되묻는 한나. '당신 같았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그건 어떠한 변론도,부정도 아닌 진심이었을 것이다. 한나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나치를 옹호하고자 했던 것도 아니고,나치에 대항하고자 했던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이 상황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현실인식에 대한 무지는 커다란 범죄 행위로 이어져 갔다. 폭격속에 포로들을 구하지 않은채 모두 죽음으로 몰아 넣은 죄. 수용소에서 간부의 역할을 했던 죄. 전쟁이 끝난 지금 전쟁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가 져야 한다면 한나는 그 책임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이다. 자신이 져지른 잘못의 경중을 떠나 한나는 자신이 알지 못하고 져지른 죄라 할지라도 그 것에 대한 책임을 모두 짊어 지고자 했다. 자신에게 부여된 죄목에 대해 한나는 전혀 부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어쩌면 한나의 행위가 정상참작 될수 있는 사실은 그녀가 문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는 끝내 그 사실을 숨기고자 했다. 숨기고자 하는 마음이 클수록 한나의 죄는 무거워졌고, 미하엘은 그 때서야 한나의 문맹을 눈치채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떠나간 이유도 알게 된다.

 

결국 종신형이 선고된 한나.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되는 한나를 두고 미하엘은 그녀를 변론할수도 있었지만 끝내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한나가 선택한 길을 미하엘은 겸허히 인정하고자 한다. 감옥에 있던 한나에게 미하엘은 다시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 사랑하기, 책읽어주기, 목욕하기...... 불행히도 그들이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때부터 미하엘은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를 보내기 시작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카세트 테이프. 그 속에서 미하엘은 다시금 한나와의 사랑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한나또한 평생 자신을 옭아맨 문맹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쓸수 있다는 것. 그것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또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올바르게 돌이켜 볼 수 있는 자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나치시절 자신이 행했던 일이 과연 어떠한 행위 였는지. 한나는 글이라는 것을 통해 서서히 눈을 뜨게 된 것이다. 18년간의 수감생활동안 한나와 미하엘은 책이라는 것을 통해 소통을 한다. 그건 일방적이지만 상대방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에 의한 소통이었다. 기나긴 소통 속에 한나는 드디어 수감 생활을 마치게 된다. 출감을 앞둔 어느 날 만나게 된 한나와 미하엘.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건 지난 세월 이루지 못한 사랑의 결실일까? 그동안 소통해온 책에 대한 예찬일까? 아니면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들일까? 단절된 시간은 두 사람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21년이라는 나이차를 둔 남,녀의 사랑. 그것도 육체적 관계로부터의 시작이라는 주제는 결코 예사롭지 않다. 자칫 막장이라는 말로 폄하되기 쉬운 주제이지만 작가는 결코 독자들의 뻔한 상상을 용납하지 않고있다.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주제 속에 육체적 관계는 아주 작은 행위일 뿐이며, 단지 사랑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도 않다. 독일이라는 특수한 현실이 가져다 준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와의 갈등.그 속에서 만난  어울리지 않는, 이루어질수 없는 남,녀를 등장시켜  책임,용서,화해와 같은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 하고있는 듯 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던 나에게 작가는 너무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작품이 가져다 주는 비극적인 결론 보다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서로 다른 고통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책을 다 읽고나니 영화 또한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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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불량야구단
주원규 지음 / 새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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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글은 잘 쓰지 못하는 나에게 작가들은 항상 선망 과 질투의 대상이다.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도 흥미롭게 펼쳐보이는 재주뿐만 아니라, 기상 천외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 거기에 치열한 공부와 고증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노력까지. 모두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어차피 천재적인 기질도 없고, 엄청난 노력을 할 만한 끈기도 없는 내게 ,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기는 분야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쉬우면서도 시도해 보지 못하는 일일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천하무적 불량야구단은 정말 기막힌 책일수 밖에 없다. 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 과거에는 거의 광적이다 할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구단의 경기는 빼 놓지 않고 중계방송을 봤으며, 소속 선수들의 기록들까지 줄줄 외울정도로 대단한 열성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 관심이 어느정도 희석되었지만, 그래도 많은 스포츠 중에서 야구는 내가 가장 즐기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천하무적 야구단이라는 텔레비젼 프로가 있다. 연애인들이 야구단을 만들어 시합을 통해 벌어지는 재미난 상황들을 연출하는 예능프로그램이다. 이 책은 천하무적 야구단도 아닌 천하무적 불량야구단이다. 천하무적이라는 말과 불량이라는 말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지만, 일단 책을 펼쳐보면 그 의미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배경은 국내 프로야구. 그 중 천하무적 불량야구단은 삼호 맥시멈즈 이다. 만년 하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김인석이라는 희대의 명장(?)을 영입한 이후 시즌 90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수립한 채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한 강팀이다. 그런데, 왜 삼호맥시멈즈에 불량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까? 그 가운데에는 당연 명장 김인석 감독이 자리잡고 있다. 잘나가던 투수에서 부상으로 인해 은퇴를 한 비운의 선수. 전성기 시절 이름값에 걸맞게 세기의 결합이라는  연애인과의 결혼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스타중의 스타였다. 만년 하위에 머물러 있던 맥시멈스에서 김인석 감독을 영입한 것은 절대로 팀의 리빌딩과는 상관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맥시멈즈는 우승에 대한 열망이 전혀 없었던 팀이다. 하지만, 김인석 감독은 많은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 얼통당토 않는 성과를 이루어 내고 만다. 마치 아마츄어와 같은  스파르타 식의 강한 훈련으로 전성기가 지났다는 퇴물 선수들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 놓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 낸 것이다. 벌떼 마운드 와 열점차 이상의 승부에서도 번트를 대는식의 철저한 승리 위주의 게임 운영으로 팀은 우승을 했지만, 인기는 최하위에 그치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재활공장 공장장 김인석 감독.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김인석이라는 이름 때문에 주인공을 한화의 전 감독 김인식 감독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팀의 운영방식은 마치 sk의 김성근 감독을 떠올리게했고, 목동을 연고지로 하는 열악한 재정난에 시달리는 삼호 맥시멈즈는 당연히 넥센 히어로즈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한국시리즈 상대로 나선 팀이 있다. 자칭 국내 최고의 재력과 두꺼운 팬층을 자랑하는 미성 스틸러스. 국내 굴지의 모기업인 미성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는 국내 최고의 인기구단이다. 페넌트 레이스 4위를 차지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현재 최고의 인기팀이다. 미성은 잠실을 연고지로 한다는 이유때문에 LG를 연상케 했으나, 모기업의 상속문제등이 불거지는 현실등을 감안했을 때, 아마도 삼성쪽에 무게가 더 기울어진다. 어쨌든 작가는 국내 프로구단 모두를 모델로 삼았을 것이며, 실제로 이 책에는 실존하는 선수와 구단이 심심치않게 등장하고 있다. 그가 누구인지를 짐작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단순히 한국시리즈 7차전 동안의 승부만을 이야기 한다면 이 책은 그다지 재미있는 책이 되지 못한다. 스포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깨끗한 승부. 거기에 따른 당당한 승자와 패자가 아닌 지저분한 거래가 숨겨져 있기에 이 책은 단순히 야구 이상의 재미를 느끼게 하고 있다.  삼호의 자금난으로 인해 모기업의 매각설은 결국 프로야구 구단인 삼호 맥시멈즈의 존폐 위기 까기 거론된다. 그 시점에서 미성 스틸러스의 모기업인 미성이 삼호를 인수한다는 조건 아래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뒷거래가 시작된다. 여기에는 삼호의 단장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물론 대부분의 주력 선수들이 가담하게 된다. 오로지 감독인 김인석과 더이상 선수 생활이 불가한 장석준,기량의 편차가 극심한 외국인 용병투수만이 가담하지 않을 뿐이었다. 물론 강태환이라는 국내 최고이자 삼호의 에이스가  남아 있었지만, 그는 시리즈 직전 터진 음주파동으로 출전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였다. 최상의 전력으로 승부를 한다면 미성은 삼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삼호에는 이미 승부에 대한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자신의 향후 거취를 위해 대부분의 선수들은 져주기라는 승부 조작에 가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하지만 프로 스포츠이기에 한 번 쯤은 일어날 수도 있는 초유의 승부조작. 더군다나 한국시리즈라는 국내 프로야구 최고이자 최후의 경기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을 것인가? 예상대로 시리즈 1,2,3차전은 철저한 조작으로 인해 어이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안치고 놓치기라는 막강 작전을 구사하는 삼호앞에 미성은 자신의 기량 이상을 뽐내며 쉽게 승수를 챙겨갔다. 4차전으로 시리즈를 매조지할수 있었지만 5차전이 열리는 날이 미성 스틸러스의 창립기념일이라는 이유만으로 4차전은 삼호가 승리하는 체면 치례를 한다. 하지만 5차전부터 진정한 승부가 펼쳐진다. 강태환이라는 막무가내식 에이스의 등장으로 인해 시리즈는 다시 한번 안개정국에 쌓이게 되고, 여기서 김인석 감독은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게 된다 바로 2군 선수들의 출전과 장석준이라는 한물 간 거포의 등용이다. 미성 스틸러스는 모기업 창립기념일에 맞추어  그룹 회장 눈앞에서 최초의 우승 세레머리를 준비했지만, 결과는 노히트노런이라는 참단한 패배를 당하고 만다. 그 이후 이어지는 6차전에서도 김인석 감독의 귀신 같은 용병술로 시리즈 전적은 3승3패 동률을 이루게 된다.남은것은 마지막 7차전. 이제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두 팀의 최후의 승부가 펼쳐지게 된다.

 

승부조작이라는 이름아래 더이상 누가 이겼는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정의라는 이름의 도덕성이 이겼을 수도 있고, 현실이라는 무서운 위력이 이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포츠이든 인생이든 결과의 중요성 보다는 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중요성도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진실은 결코 현실이기에  쉽게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1등만이 기억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막무가내식의 김인석이라는 인물을 보는 것만으로, 그렇지 못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말의 안도감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에게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것이 야구에 대한 책이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의문점 ]

5차전 9회 노아웃 만루상화에서 벌어진 일이다. 강태환은 노히트노런을 앞둔 9회에 노아웃만루라는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된다. 그 순간 타자가 친 타구가 3루수 앞으로 치솟는 플라이 볼이 된다. 3루수는 이미 져주기 게임에 동참한 선수였기에 전혀 잡을 의사가 없었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투사 강태환이 몸을 날리는 투혼을 발휘해서 가까스로 아웃카운트 하나를 추가하게된다.  여기서 나의 의문점은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인필드플라이 아웃이 성립되어야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노아웃 혹은 원아웃 상황에서 수비 쪽의 고의 낙구를 막기위해 내야에 쉽게 잡을수 있는 플라이 볼이 뜨면 심판진은 자연스럽게 인필드플라이를 선언하고 공의 낙구 여부에 상관없이 아웃카운트 하나가 추가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주자는 1,2루 혹은 만루상황에서 말이다.  작가가 착가을 한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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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도둑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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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마크 레비의 11번 째 작품이다. 역시 나는 외국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지 않는 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었고, 당연히 기존 10개의 작품중 한번도 읽어 본적이 없었다. 작가의 이력이 꽤나 독특하다. 컴퓨터관련 CEO를 거쳐 건축설계가의 길을 걷다가, 뒤늦게 유아불면증에 걸린 아들을 위해 동화를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간혹 글쓰기 외에도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의 이력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불면증에 걸린 아들을 위해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라면 그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정도가 최선이었을 텐데 직접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의 열정이 대단할 뿐이다. 그래서 인지 이 작품에도 여러 군데에서 동화적 색채가 강하게 풍긴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꼭지로 나누어져 있다.첫번 째 꼭지는  그림자를 훔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청소년기를 그리고 있고, 두번 째 꼭지에서는 진정한 소울메이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청년기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누군가의 그림자를 빼앗을 수 있다는 것. 단순히 그림자를 훔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만을 이야기 했다면 , 이 작품은 만화적 상상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유치한 작품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림자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림자는 또 다른 자아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림자를 훔친다는 것. 그림자와 이야기를 나눌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대상의 또 다른 자아를 알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빛이 통과할 수 없는 무엇인가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림자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림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빛을 쫓을 뿐이다. 그리고, 그림자에 대해서는 항상 잊고산다. 아니 어쩌면 나의 그림자를 숨기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그림자 속에는 결코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그림자 만이 나의 모든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 소중한 그림자를 훔칠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름이 명확히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림자 도둑이라고 표현하기로 하자. 그림자 도둑은 어린시절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결손가정에서 자라게 된다. 외모는 작고 나약한데다 소심하기까지 하다.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가 있지만 자신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아이에게 속절없이 뺐기고 만다. 물론 한번도 좋아한다는 말을 표현하지 못했으니 뺐겼다는 말 조차 이상하게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림자 도둑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일이 생긴다. 바로 자신의 그림자가 다른 이의 그림자와 바뀌어 버린것이다. 그 순간 그림자 도둑은 상대방의 그림자를 통해 그 사람의 본심을 읽을 수 있게 된다. 희대의 그림자 도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시절 유일한 벗이었던 이브아저씨의 그림자를 통해 그의 가슴아픈 어린시절을 훔치게 된다. 자신의 첫사랑 엘리자베스를 빼앗아간 마르케스의 그림자를 통해서는 결코 화목하지 못한 그의 가족들의 모습을 훔치게 된다. 또한 그림자를 통해 상대방의 미래까지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림자로 인해 자신감을 얻게 된 소년은  빵집 아들 뤼크를 만나게 되어 평생의 우정을 쌓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의 능력이 마냥 즐겁지 많은 않다. 자신의 능력으로 타인을 곤경에 빠트리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인해 소년에게 그림자를 훔칠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와 함께 찾은 바닷가에서 소년은 새로운 연인을 만나게 된다.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클레라. 소년은 클레라를 보는 순간 영혼의 교감을 느끼고, 클레라의 웃음소리에서는 첼로의 선율을 느낀다. 잠깐 훔친 클레라의 그림자를 통해 소년은 그녀가 자신의 소울메이트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폐허가 된 등대와 독수리연과 같은 짧은 추억을 뒤로 한 채 훗날을 기약한다. 하지만, 짧았던 며칠이 그들이 보낸 유년시절의 마지막 여름이었다.   수년이 지나 의대생이 된 소년. 낯선 도시에서 의대생으로 보낸 시간은 자신의 비범한 능력까지도 잊게 만들정도로 정신 없는 시간들이었다. 대학 생활을 통해 그는 새로운 연인이자 동료 소피를 만나게 되지만, 사랑과 우정사이의 딜레마에서 방황하게 된다. 하지만 소년은 사랑을 찾기 위해 소피의 그림자를 훔치지는 않는다. 아마도 자신의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잡고 있는 소울메이트를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년의 영원한 뤼크를 위해서는 자신의 비범함을 다시 한 번 발휘하게 된다.학업을 중단한 채 가업을 계승하기 위해 제빵사의 길을 걷도 있는 뤼크를 의대에 진학시키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소년과 소피,뤼크의 위태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터질듯한 의대생활의 과감한 일탈을 위해 세사람은 묻지마 여행을 떠난다. 오로지 바다를 보기 위해 오랜 시간을 달린 그들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아닌 소년의 영원한 마음속 고향. 클레라와의 추억이 담긴 바로 그 바닷가 였다. 그들만의 아지트였던 등대에 올라 독수리 연을 발견한 소년. 그리고 클레라의 또 다른 흔적. 소년은 그 순간 자신의 영혼을 다시 찾을 것을 결심한다. 그러고는 소피와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랑을 포기하고 우정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품의 후반부는 소년이 클레라를 찾는 과정이 숨가쁘게 묘사되고 있다. 벙어리이자 귀머거리였던 소녀 클레라. 첼로의 선율을 연상시키는 맑은 웃음을 지었던 클레라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을까? 오랜시간이 지난 후 두 사람만의 만남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단절된 시간을 꿰어 맞추며 자신의 진정한 그림자를 찾는 과정은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동화적 이긴 하지만 결코 허황되지는 않다. 친구와의 우정과  소울메이트와의 사랑을 찾는 과정은 낭만적이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애틋함을 남긴다. 모든 사람과의 만남에서 보여주는 진실함은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우치게 해준다. 재미있으면서 따뜻함이 물씬 풍겨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대함에 있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때때로는 그 뒤에 조용히 숨어있는 그림자의 본질을 파악해 보는 것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다른것이 아닌 바로 내 그림자와의 대화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괜찮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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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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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좋아한다. 야구선수에게 있어 스프링캠프는 1년 농사의 밑천이라고 할 수 있다. 기나긴 정규시즌을 마치고 짧은 휴식기를 가진후에 본격적인 시즌에 앞서 합동으로 행해지는 훈련을 스프링캠프라고 한다. 우리 나라같은 경우에는 비교적 길고 추운 겨울철이 있기에 스프링캠프는 좀더 따뜻한 나라를 찾기 마련이다. 말그대로 해석하면 봄철에 이루어져햐 하는 일이지만, 우리 나라는 가장 추운 겨울철에 스프링캠프를 행하고 있다. 따뜻한 봄이 있는 나라를 찾아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스프링캠프는 무엇일까? 좀더 치열한 삶의 현장에 발을 딛기 전에 행해지는 것이 스프링캠프라고 한다면, 우리의 학창시절이 가장 비슷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수를 해도, 실패를 해도 용서가 되고 자신의 약점은 고치고 장점은 좀더 극대화 시키는 과정을 우리는 학창시절을 통해 보낼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학창시절이 지난 후 평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세계일보 지정 제1회 세계청소년 문학상 당선작인 이 작품은 청소년 시절을 인생의 스프링캠프에 비유,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엄청난 속도감과 재미 그리고,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1986년 8월 14일 정오의 하늘을 기억한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을 한다.열다섯 중학생 들에게 1986년 여름은 인생의 가장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 내용은 청소년 소설답게 복잡하지도,심오하지도 난해하지도 않다.이야기의 전체 구성이 황당할수도 있겠지만 그들 나이때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들에게 죽을만큼 심각한 것이 전혀 대수롭지 않은 것일수도 있고 또한 정반대의 일이 벌어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라 할수 있는 준호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가출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안달을 하는 소년이다. 그러던 중 단짝 친구인 규환의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어마어마한 비밀 계획을 대신 수행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핵심 운동권 학생인 규환의 형에게  도피자금과 여권을 전달하게 될 막중한 임무를  맞게 된 것이다. 엄마가 재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난 날 준호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할 놀라운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그 길은 결코 순탄할수가 없었다. 은밀하게 진행되던 여행길에 난데없는 불청객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은밀한 여행과는 전혀 개연성이 없는 양조장 아들 승주와 개 사육장의 딸 정아. 훌륭한 족보를 자랑하지만 하는 짓은 전형적으로 똥개스러운 개 루스벨트.설상가상으로 술주정꾼에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정체불명의 할아버지까지 가세하게 된다.예정에도 없던 불편한 동거의 시작이다. 은밀한 여행의 목적에는 관심도 없었던 동거인들은 사실 저마다 깊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러기에 전혀 공통점이 없는 여행이 그들을 끝까지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엮어 놓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의 이별과 어머니의 재혼을 받아들이기 힘든 준호.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극단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정아. 과잉보호의 차원을 떠나 과잉 사육의 단계에 까지 이른 어머니의 치마폭을 벗어나고 싶어했던 부잣집 도련님 승주. 젊은 시절 수양딸을 먼저 떠나보낸채 살인의 누명을 쓴채 도피 생활을 하다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묘령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을 극단적으로 따라다니는 명견(?) 루스벨트.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깊은 슬픔이 깃들어져 있었다. 깊은 슬픔은 나흘간의 고된 여행길을 통해 묘한 공감대로 거듭나게 된다. 할아버지의 과거 경력으로 인해 빠르고 편한길을 택할 수 없던 그들은 남쪽 작은 섬까지 힘든 산길과 폭풍우 속의 바닷길을 거쳐야 했다.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밤길을 걸어야 했고, 방학인 학교의 숙직실에 몰래 잠입해 도둑잠을 자야 했다. 때론 남의 농장에 무단 침입한 죄로 축사를 청소해야 하는 벌을 받기도 했으며, 끝내는 정신병원 탈출,가출,유괴등의 혐의로 수배령이 떨어져 경찰에 ?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나흘간의 짧지만 힘들었던 시간은 처음에는 앙숙처럼 으르렁대고 , 상대방의 일에 냉담했던 그들에게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이해라는 따뜻함을 깃들게 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실종과 수양딸의 죽음 , 완규형의 도피생활에는 공통적으로 광주라는 거대한 아픔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광주는 아픈 현실일 뿐 어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개입도 허용하지 않는다. 데모로 인해 쫒고 쫒기는 행위 또한 최류탄으로 인해 눈물,콧물 쏙 빼는 곤욕 이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15살 중학생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일수 밖에 없으며,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작품의 완성된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굵고 짧은 모험이 끝나고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성장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그 들 각자는 자신의 면역력을 키울수 있었다. 모험의 결말이 어떻든 간에 그들이 바라던 결과는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기쁨인지 슬픔인지는 인물 당사자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절대적인 행복의 틀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무의미할 수 밖에 없다.그러기에 그들이 겪었던 아픔과 지나온 시간들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살아가야 할 그들의 삶의 방식은 더더욱 다르기 때문이다. 삼십대 중반이 되어 별로 유명하지 않은 소설가가 된 준호. 끝내 절필이라는 절망의 순간에 마지막 한줄기 빛이 되어준 것은 1986년 8월에 있었던 그들만의 행복한 여행 때문이었다. 결코 즐겁고 편하지 않았던 여행이었지만, 그들의 슬픔을 치유하기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여행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교훈만 주는 딱딱한 소설이 아닌, 재미있고  유익한 청소년 소설을 만나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들의 여행내내 나 또한 매우 긴장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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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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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은 조정래의 초기작품이다. 초판이 1976년이니 벌써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이 책에서 35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작가의 혼을 느낄수 있었다. 오래전 부터 민족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들이 수많은 대작을 쏟아놓게 된 계기가 된 듯 하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인 곧은 정신. 우리 민족의 고난의 시간들을 잘 견뎌온 곧은 정신이 돋보인다.

 

우리가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팔만대장경에 관한 책이다. 팔만대장경하면 떠오르는 것이 합천 해인사이고,  불심의 힘을 빌려 외세를 물리치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신이 깃들어져 있는 국보급 문화재라는 사실 뿐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왜 만들어졌는지, 팔만대장경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팔만대장경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한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알아가는 그릇된 방법중의 하나일것이다. 그저 겉모습과 결과만 아는것에 만족하는 태도. 숲도 나무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그릇된 시선이 언제부턴가 우리의 몸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팔만대장경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고, 생각해 볼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목판이라는 것 밖에는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전무했었다. 하지만, 조정래의 대장경을 읽고나니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아마도 그 속에 깃들어져 있는 뜨거운 혼을 느꼈기 때문일것 같다.

 

이야기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우를 필두로한 무인정권의 병폐가 심했던 시절. 더군다나 고려는 몽골군에 의해 백성과 국토가 쑥대밭이 되어가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철저하게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오로지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할 뿐이었다. 그들에게 백성들의 피흘리는 원성은 그저 저잣거리의 개 짓는 소리만도 못 할 뿐이었다. 왕을 비롯한 수많은 위정자들은 백성들을 뒤로한 채 강화도로 들어간다. 강화도에서도 그들의 생활은 전쟁전과 아무것도 다를것이 없었다. 힘들고 아픈건 가진것 없고 힘없는 백성들 뿐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버림을 받을 망정 자신이 먼저 나라를 버리는 법은 없었다. 힘없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나라를 위하는 마음 만큼은 위정자라 자칭하는 사람들 이상으로 진솔했다. 그들 속에는 자신만의 부처님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신 과 가족들의 극락왕생을 바라고, 못난 나라님을 바라는 불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고려시대는 어떤 시대보다 불교가 널리펴져있던 시절이었다. 승려들의 지위도 그만큼 높았으며 불심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보다 우선순위에 놓였던 시절이었다. 어느시절이나 마찬가지만 권력이 커지면 그에 따른 병폐도 심해지는 법이다. 불심을 핑계로 승려라는 이름을 달고 저지른 병폐도 상당히 심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도 불심뿐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시절.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그들에게 그저 극락왕생만을 바라며 나무아미타불을 읊조리는 것 외에는 어떠한 삶의 저항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부인사에 보관된 대장경이 고려를 지탱하는 마지막 힘이라고 생각한 몽골군은 부인사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고려는 이미 대장경의 불력을 빌어 거란군을 퇴치했다고 믿고 있었기에 이번 몽골군의 침입또한 불심으로 이겨내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대장경의 존폐 위기에서도 정권을 가진 이들은 아무도 부인사를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나선것은 승려들과 진정한 불심으로 가득찬 백성들 뿐이었다. 그들은 현격한 힘의 논리에 의해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끝까지 대장경과 함께 했다. 불타오르는 대장경을 바라보며, 그들은 자신의 몸이 타들어가는지도 모른채 그저 고려의 앞날을 걱정할 뿐이었다. 그렇게 불꽃은 사그라 들었다. 모든것이 소멸된 그 곳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은 부인사 주지스님의 사리와 목수 근필 뿐이었다.

 

부인사 대장경의 소실이후 무인정권은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기는 커녕, 또다른 대장경을 만들고자 한다. 명목은 불력의 힘을 빌려 외세를 물리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부인사 대장경의 소실을 알게된 왕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컸었다. 이미 왕으로써의 권위 및 능력을 상실한 고종은 최우를 중심으로 한 무인정권의 끊임없는 요구에 굴복하게 된다. 물론 왕또한 전쟁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컸을 것이다. 새로운 대장경의 판각은 오랜 전쟁에 지쳐있는 백성들에게 과연 최선책이었을까? 이 물음에 당대 최고의 고승이자 새로운 대장경 판각의 책임자로 지목된 수기대사는 무인정권의 책임자였던 최우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대감은 지금 네 가지 대죄를 짓고 있습니다. 첫째 불사를 빙자하여 패전의 책임을 은폐함과 동시에 권력을 존속시키려 함으로써 상감과 사직에 죄를 범했고, 둘째 상감의 흉중에 자리 잡고 있는 괴로움을 이용하여 판각 불사의 필요성을 거짓 고함으로써 상감을 우롱한 죄를 범했으며, 셋째 전란을 겪느라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성들에게 불필요한 노동과 과세를 강요하게 되어 생활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죄를 범하게되고,넷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도함으로써 신성한 불법을 더럽히고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을 경원케 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수단으로 이용되는 불사를 내 어찌 찬성할 수 있으며 참예할 수 있단 말이오.(본문 119쪽) 정말 속이 시원한 장면이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최우앞에 이렇게 솔직한 말을 할 수 있는 수기대사의 배짱이 돋보인다. 물론 왕이 가장 신뢰하는 스님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종교의 책임자로써 불사를 일으키는 일에 대놓고 반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기대사의 말은 어느 것 하나 거짓이 없었다. 하지만, 왕의 뜻을 거역하기 힘들었고,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다는 전제하에 수기대사는 대장경 판각에 책임자로 나서게 된다. 하지만, 대장경 판각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하는 대작업 이었다. 대장경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판목,필생,각수로 구분할 수 있다. 대장경의 바탕이 되는 나무를 구하고 복잡한 가공 과정을 거쳐 강화도로 옮긴다. 그 과정에 무수한 노동력과 인명의 손실이 따르게 된다. 두번 째 필생은 전국의 명필들을 모아 똑같은 글씨체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연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각수는 글씨를 판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한 획 한획 틀림이 없이 조각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대장경을 보관할 판전을 축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한 장균은 스스로 대장경 필생을 위해 붓을 잡는다. 몇년 째 각수작업을 하던 사내는 부인의 부고를 뒤늦게 어린 아들에게서 듣는다. 부인사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근필은 판전을 짓기 위해 수년 간 혼자서 대목의 길을 걷는다. 그 과정은 모두다 고통스러운 수행의 길이었고,  어느것 하나 쉬울것이 없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아무런 댓가도 없이 엄청난 작업에 자신의 힘을 보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는 어쩔수 없는 것들이었다. 수기대사가 미리 예언했던대로 전란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대장경 판각은 또다른 부역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완성된 팔만대장경. 순수하지 못한 출생의 비밀로 인해 대장경의 의미가 훼손될수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 아로 새겨진 민초들의 따뜻함이 배어 있었기에 팔만대장경은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통해서야 제대로 알게 된 대장경의 의미와 그 과정은 정말 경이로왔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팔만대장경의 방대한 양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 위해 피땀을 흘렸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다. 오로지 나라의 안위를 위해 모든것을 바쳤던 사람들. 사고를 치는 사람과 그 뒷수습을 하는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은 역사또한 예외가 아니다. 군사독재로 인해 피폐화된 국토에 희망의 싹을 심은것은 다름아닌 이름없는 민초들의 몫이 었다. 그 싹을 잘 키우기는 커녕 끊임없이 짓 밟는 것은 또다른 권력을 지키기 위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틴 민초들의 생명력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까지도 이어져 온다. 그것을 우리는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 

 

오래전에 발표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가 않으며, 조정래 선생의 초기 작품들을 새롭게 만나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다. 작가의 3부작 대하소설이 워낙 출중하기에 다른 작품들이 행여 빛을 발하지 못할수도 있었을 텐데, 이번 기회를 빌어 오래전 작품들을 다시 만날수 있어서 정말 반가울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업은 계속해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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