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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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좋아한다. 야구선수에게 있어 스프링캠프는 1년 농사의 밑천이라고 할 수 있다. 기나긴 정규시즌을 마치고 짧은 휴식기를 가진후에 본격적인 시즌에 앞서 합동으로 행해지는 훈련을 스프링캠프라고 한다. 우리 나라같은 경우에는 비교적 길고 추운 겨울철이 있기에 스프링캠프는 좀더 따뜻한 나라를 찾기 마련이다. 말그대로 해석하면 봄철에 이루어져햐 하는 일이지만, 우리 나라는 가장 추운 겨울철에 스프링캠프를 행하고 있다. 따뜻한 봄이 있는 나라를 찾아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스프링캠프는 무엇일까? 좀더 치열한 삶의 현장에 발을 딛기 전에 행해지는 것이 스프링캠프라고 한다면, 우리의 학창시절이 가장 비슷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수를 해도, 실패를 해도 용서가 되고 자신의 약점은 고치고 장점은 좀더 극대화 시키는 과정을 우리는 학창시절을 통해 보낼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학창시절이 지난 후 평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세계일보 지정 제1회 세계청소년 문학상 당선작인 이 작품은 청소년 시절을 인생의 스프링캠프에 비유,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엄청난 속도감과 재미 그리고,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1986년 8월 14일 정오의 하늘을 기억한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을 한다.열다섯 중학생 들에게 1986년 여름은 인생의 가장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 내용은 청소년 소설답게 복잡하지도,심오하지도 난해하지도 않다.이야기의 전체 구성이 황당할수도 있겠지만 그들 나이때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들에게 죽을만큼 심각한 것이 전혀 대수롭지 않은 것일수도 있고 또한 정반대의 일이 벌어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라 할수 있는 준호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가출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안달을 하는 소년이다. 그러던 중 단짝 친구인 규환의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어마어마한 비밀 계획을 대신 수행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핵심 운동권 학생인 규환의 형에게  도피자금과 여권을 전달하게 될 막중한 임무를  맞게 된 것이다. 엄마가 재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난 날 준호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할 놀라운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그 길은 결코 순탄할수가 없었다. 은밀하게 진행되던 여행길에 난데없는 불청객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은밀한 여행과는 전혀 개연성이 없는 양조장 아들 승주와 개 사육장의 딸 정아. 훌륭한 족보를 자랑하지만 하는 짓은 전형적으로 똥개스러운 개 루스벨트.설상가상으로 술주정꾼에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정체불명의 할아버지까지 가세하게 된다.예정에도 없던 불편한 동거의 시작이다. 은밀한 여행의 목적에는 관심도 없었던 동거인들은 사실 저마다 깊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러기에 전혀 공통점이 없는 여행이 그들을 끝까지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엮어 놓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의 이별과 어머니의 재혼을 받아들이기 힘든 준호.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극단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정아. 과잉보호의 차원을 떠나 과잉 사육의 단계에 까지 이른 어머니의 치마폭을 벗어나고 싶어했던 부잣집 도련님 승주. 젊은 시절 수양딸을 먼저 떠나보낸채 살인의 누명을 쓴채 도피 생활을 하다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묘령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을 극단적으로 따라다니는 명견(?) 루스벨트.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깊은 슬픔이 깃들어져 있었다. 깊은 슬픔은 나흘간의 고된 여행길을 통해 묘한 공감대로 거듭나게 된다. 할아버지의 과거 경력으로 인해 빠르고 편한길을 택할 수 없던 그들은 남쪽 작은 섬까지 힘든 산길과 폭풍우 속의 바닷길을 거쳐야 했다.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밤길을 걸어야 했고, 방학인 학교의 숙직실에 몰래 잠입해 도둑잠을 자야 했다. 때론 남의 농장에 무단 침입한 죄로 축사를 청소해야 하는 벌을 받기도 했으며, 끝내는 정신병원 탈출,가출,유괴등의 혐의로 수배령이 떨어져 경찰에 ?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나흘간의 짧지만 힘들었던 시간은 처음에는 앙숙처럼 으르렁대고 , 상대방의 일에 냉담했던 그들에게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이해라는 따뜻함을 깃들게 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실종과 수양딸의 죽음 , 완규형의 도피생활에는 공통적으로 광주라는 거대한 아픔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광주는 아픈 현실일 뿐 어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개입도 허용하지 않는다. 데모로 인해 쫒고 쫒기는 행위 또한 최류탄으로 인해 눈물,콧물 쏙 빼는 곤욕 이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15살 중학생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일수 밖에 없으며,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작품의 완성된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굵고 짧은 모험이 끝나고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성장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그 들 각자는 자신의 면역력을 키울수 있었다. 모험의 결말이 어떻든 간에 그들이 바라던 결과는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기쁨인지 슬픔인지는 인물 당사자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절대적인 행복의 틀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무의미할 수 밖에 없다.그러기에 그들이 겪었던 아픔과 지나온 시간들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살아가야 할 그들의 삶의 방식은 더더욱 다르기 때문이다. 삼십대 중반이 되어 별로 유명하지 않은 소설가가 된 준호. 끝내 절필이라는 절망의 순간에 마지막 한줄기 빛이 되어준 것은 1986년 8월에 있었던 그들만의 행복한 여행 때문이었다. 결코 즐겁고 편하지 않았던 여행이었지만, 그들의 슬픔을 치유하기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여행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교훈만 주는 딱딱한 소설이 아닌, 재미있고  유익한 청소년 소설을 만나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들의 여행내내 나 또한 매우 긴장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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