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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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은 조정래의 초기작품이다. 초판이 1976년이니 벌써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이 책에서 35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작가의 혼을 느낄수 있었다. 오래전 부터 민족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들이 수많은 대작을 쏟아놓게 된 계기가 된 듯 하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인 곧은 정신. 우리 민족의 고난의 시간들을 잘 견뎌온 곧은 정신이 돋보인다.

 

우리가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팔만대장경에 관한 책이다. 팔만대장경하면 떠오르는 것이 합천 해인사이고,  불심의 힘을 빌려 외세를 물리치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신이 깃들어져 있는 국보급 문화재라는 사실 뿐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왜 만들어졌는지, 팔만대장경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팔만대장경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한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알아가는 그릇된 방법중의 하나일것이다. 그저 겉모습과 결과만 아는것에 만족하는 태도. 숲도 나무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그릇된 시선이 언제부턴가 우리의 몸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팔만대장경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고, 생각해 볼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목판이라는 것 밖에는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전무했었다. 하지만, 조정래의 대장경을 읽고나니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아마도 그 속에 깃들어져 있는 뜨거운 혼을 느꼈기 때문일것 같다.

 

이야기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우를 필두로한 무인정권의 병폐가 심했던 시절. 더군다나 고려는 몽골군에 의해 백성과 국토가 쑥대밭이 되어가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철저하게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오로지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할 뿐이었다. 그들에게 백성들의 피흘리는 원성은 그저 저잣거리의 개 짓는 소리만도 못 할 뿐이었다. 왕을 비롯한 수많은 위정자들은 백성들을 뒤로한 채 강화도로 들어간다. 강화도에서도 그들의 생활은 전쟁전과 아무것도 다를것이 없었다. 힘들고 아픈건 가진것 없고 힘없는 백성들 뿐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버림을 받을 망정 자신이 먼저 나라를 버리는 법은 없었다. 힘없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나라를 위하는 마음 만큼은 위정자라 자칭하는 사람들 이상으로 진솔했다. 그들 속에는 자신만의 부처님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신 과 가족들의 극락왕생을 바라고, 못난 나라님을 바라는 불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고려시대는 어떤 시대보다 불교가 널리펴져있던 시절이었다. 승려들의 지위도 그만큼 높았으며 불심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보다 우선순위에 놓였던 시절이었다. 어느시절이나 마찬가지만 권력이 커지면 그에 따른 병폐도 심해지는 법이다. 불심을 핑계로 승려라는 이름을 달고 저지른 병폐도 상당히 심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도 불심뿐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시절.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그들에게 그저 극락왕생만을 바라며 나무아미타불을 읊조리는 것 외에는 어떠한 삶의 저항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부인사에 보관된 대장경이 고려를 지탱하는 마지막 힘이라고 생각한 몽골군은 부인사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고려는 이미 대장경의 불력을 빌어 거란군을 퇴치했다고 믿고 있었기에 이번 몽골군의 침입또한 불심으로 이겨내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대장경의 존폐 위기에서도 정권을 가진 이들은 아무도 부인사를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나선것은 승려들과 진정한 불심으로 가득찬 백성들 뿐이었다. 그들은 현격한 힘의 논리에 의해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끝까지 대장경과 함께 했다. 불타오르는 대장경을 바라보며, 그들은 자신의 몸이 타들어가는지도 모른채 그저 고려의 앞날을 걱정할 뿐이었다. 그렇게 불꽃은 사그라 들었다. 모든것이 소멸된 그 곳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은 부인사 주지스님의 사리와 목수 근필 뿐이었다.

 

부인사 대장경의 소실이후 무인정권은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기는 커녕, 또다른 대장경을 만들고자 한다. 명목은 불력의 힘을 빌려 외세를 물리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부인사 대장경의 소실을 알게된 왕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컸었다. 이미 왕으로써의 권위 및 능력을 상실한 고종은 최우를 중심으로 한 무인정권의 끊임없는 요구에 굴복하게 된다. 물론 왕또한 전쟁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컸을 것이다. 새로운 대장경의 판각은 오랜 전쟁에 지쳐있는 백성들에게 과연 최선책이었을까? 이 물음에 당대 최고의 고승이자 새로운 대장경 판각의 책임자로 지목된 수기대사는 무인정권의 책임자였던 최우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대감은 지금 네 가지 대죄를 짓고 있습니다. 첫째 불사를 빙자하여 패전의 책임을 은폐함과 동시에 권력을 존속시키려 함으로써 상감과 사직에 죄를 범했고, 둘째 상감의 흉중에 자리 잡고 있는 괴로움을 이용하여 판각 불사의 필요성을 거짓 고함으로써 상감을 우롱한 죄를 범했으며, 셋째 전란을 겪느라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성들에게 불필요한 노동과 과세를 강요하게 되어 생활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죄를 범하게되고,넷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도함으로써 신성한 불법을 더럽히고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을 경원케 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수단으로 이용되는 불사를 내 어찌 찬성할 수 있으며 참예할 수 있단 말이오.(본문 119쪽) 정말 속이 시원한 장면이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최우앞에 이렇게 솔직한 말을 할 수 있는 수기대사의 배짱이 돋보인다. 물론 왕이 가장 신뢰하는 스님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종교의 책임자로써 불사를 일으키는 일에 대놓고 반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기대사의 말은 어느 것 하나 거짓이 없었다. 하지만, 왕의 뜻을 거역하기 힘들었고,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다는 전제하에 수기대사는 대장경 판각에 책임자로 나서게 된다. 하지만, 대장경 판각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하는 대작업 이었다. 대장경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판목,필생,각수로 구분할 수 있다. 대장경의 바탕이 되는 나무를 구하고 복잡한 가공 과정을 거쳐 강화도로 옮긴다. 그 과정에 무수한 노동력과 인명의 손실이 따르게 된다. 두번 째 필생은 전국의 명필들을 모아 똑같은 글씨체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연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각수는 글씨를 판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한 획 한획 틀림이 없이 조각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대장경을 보관할 판전을 축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한 장균은 스스로 대장경 필생을 위해 붓을 잡는다. 몇년 째 각수작업을 하던 사내는 부인의 부고를 뒤늦게 어린 아들에게서 듣는다. 부인사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근필은 판전을 짓기 위해 수년 간 혼자서 대목의 길을 걷는다. 그 과정은 모두다 고통스러운 수행의 길이었고,  어느것 하나 쉬울것이 없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아무런 댓가도 없이 엄청난 작업에 자신의 힘을 보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는 어쩔수 없는 것들이었다. 수기대사가 미리 예언했던대로 전란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대장경 판각은 또다른 부역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완성된 팔만대장경. 순수하지 못한 출생의 비밀로 인해 대장경의 의미가 훼손될수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 아로 새겨진 민초들의 따뜻함이 배어 있었기에 팔만대장경은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통해서야 제대로 알게 된 대장경의 의미와 그 과정은 정말 경이로왔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팔만대장경의 방대한 양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 위해 피땀을 흘렸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다. 오로지 나라의 안위를 위해 모든것을 바쳤던 사람들. 사고를 치는 사람과 그 뒷수습을 하는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은 역사또한 예외가 아니다. 군사독재로 인해 피폐화된 국토에 희망의 싹을 심은것은 다름아닌 이름없는 민초들의 몫이 었다. 그 싹을 잘 키우기는 커녕 끊임없이 짓 밟는 것은 또다른 권력을 지키기 위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틴 민초들의 생명력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까지도 이어져 온다. 그것을 우리는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 

 

오래전에 발표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가 않으며, 조정래 선생의 초기 작품들을 새롭게 만나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다. 작가의 3부작 대하소설이 워낙 출중하기에 다른 작품들이 행여 빛을 발하지 못할수도 있었을 텐데, 이번 기회를 빌어 오래전 작품들을 다시 만날수 있어서 정말 반가울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업은 계속해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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