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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사과를 삼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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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애를 써도 우리 인생에서 상처를 일으키는 사건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이다. 상처를 일으키는 사건을 나와 관련 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마음이 상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는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떤 상처를 받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그 사건과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폄훼에 해당하는 수준인지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그 사건이 자신의 가치를 폄하한 것이 맞는다고 판단됏을 때 상처를 받는다. 다시 말해 기분 나쁜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이 마음의 상처로 남느냐 아니냐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상황에서 처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그 느낌'을 상처로 남길 수도 있고 상대의 문제로 되돌려 줄 수도 있다.
태호야, 나 보이니? 예뻐? 엄마, 예뻐? 내가 네 엄마야. 내가 태호 엄마야.
널 만나서 무척 반가워. 사랑해. 태호야.
내 이름은 정희영...
이번에는 태호의 작은 두 귀가 그 말을 듣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 말들이 갑자기 외롭고 슬프게 들려 엄마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엄마는 부끄러웠단다. 병원 대기석에서, 주차장 정산소에서, 마트에서 미친 여자처럼 중얼거렸던 게. 그다음에는 해일처럼 한없이 슬픔이 목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단다. 그렇게 1년 정도 태호는 엄마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병원을 찾아가 언어치료와 놀이치료를 받았다. 그 1년이 지나는 동안, 엄마는 그때까지 자신이 뭔가를 진심으로 인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내심이란 뭔가 이뤄질 때까지 참아내는 게 아니라 완전히 포기하는 일을 뜻했다. 견디는 게 아니라 패배하는 일. 엄마가 알아낸 인내심의 진정한 뜻이 그게 맞다면, 그 1년이 지난 뒤부터 엄마는 진짜 인내하게 됐다.
나는 여전히 죽음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죽음이 지우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워지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누구에게는 가시처럼 박히는 것이 죽음이다. 선인장의 어떤 가시는 몸뚱어리에 박혀 몸 자체로 둔갑한다. 어떤 사람에겐, 어떤 기억들이 바로 그렇다.
아픈 기억은 최종적으로 가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