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천은 모두 하찮은 것이고ㅡ나는 여전히 육식을 포기하지 못했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여행 역시 포기할 수 없다. 마감이 급할 때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올 걸 알면서도 음식을 배달시킨다-내 삶의 태도는 ‘완벽‘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이란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말이 게으름의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되겠지만 완벽한 것만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결국 그 누구도 행동할 수 없게 만드는 나쁜 속삭임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존재들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팔짱 끼고 앉아 ‘당신은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렀으니, 당신의 행동들은 결국 무의미해‘라고 먼 곳에서 지적만 하는 건 언제나 너무도 쉽다.
내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이 여러가지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고매일매일 흔들린다는 걸 아는 사람들 쪽으로 흐른다. 나는우리가 어딘가로 향해 나아갈 때, 우리의 궤적은 일정한 보폭으로 이루어진 단호한 행진의 걸음이 아니라 앞으로 갔다 멈추고 심지어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는 춤의 스텝을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만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고.
그럼에도 사람들은 슬픔에서 빠져나온 이후엔 그 사실을 잊은 채 자신이 겪은 슬픔의 경험을 참조하여 타인의 슬픔을 재단하고, 슬픔 간의경중을 따지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크기로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쉽게말한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행복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밤 찾아오는 도둑눈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사라지는 찰나적인 감각이란 걸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스무살이었던 나의 빈곤한 상상 속마흔과는 다르지만 나의 40대가 즐겁고 신나는 모험으로가득하리란 걸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어린 날들에 소망했듯 나 자신을 날마다 사랑하고 있진 않지만, 나쁘지만은 않다. 앞으로 살아가며 채울 새하얀 페이지들에는 내 바깥의더 많은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적어나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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