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책상에 앉아서 논문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이해했다. 터놓고 얘기하면서 내가 괴로웠다. 내가 상처 입었다, 라고 말할 자격조차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렇지만 상처받았다는 사실은사실 그대로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말을.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이 질문에 나는 온전한 긍정도, 온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그대로라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라고 말하는것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한다고, 그사실이 내 눈에 보인다고 서로에게 일러주는 일에 가까웠다. 정윤
좋은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고 있다는 생각은고통이었으므로, 그녀는 차라리 나쁘고 냉혹한 인간들이 자신을무시하고 있다고 여기는 편을 택했다. 그들이 자신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들을 거부할 이유를 발견하는 쪽이 덜 아팠으니까. 그들은 가치 없는 인간들이어야 했다. 네가 뭐라고 날 무시해? 그녀는 회사 사람들의 얼굴, 목소리, 몸짓, 혹은 그들의 존재 자체에서 그들을 혐오할 수밖에 없는 혐의를 발견해냈다. 자기속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녀는 그 일을 매일 반복했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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