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라며 펜데믹 때 아내가 사준 생일 선물이었는데 펜데믹이 끝나고 한참을 지나 읽게 되었다. 당시 펜데믹에 기인한 여러가지 사회적 정서가 배경으로 보여져 새삼스러웠다. 그래도 작가는 인류는 병마를 곧 이겨내고 펜데믹과 함께 찾아온 새로운 문화는 이어질 것이라는 통찰을 소설 곳곳에서 보여준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작가 특유의 추리소설의 장치는 약간 느슨해 진 느낌이어서 아쉬웠지만, 사건의 배경에서 볼 수 있는 작중 인물의 심리와 감동적인 에피소드는 여전했다. 빽빽한 서술이 가득했던 찰스 디킨스의 책을 읽다가 대화 중심으로 흘러가는 소설을 읽으니, 같은 600여 페이지의 두께였지만 순식간에 끝을 봤다. 역시 쉽게 쓰고 공감을 얻는 소설은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다. 블랙 쇼맨의 제스쳐에 다소 부자연 스러운 화려함이 있었지만, 주인공에게 부여한 세심한 장치들이 납득하게 한다. 세심한 작가의 터치는 역시 다르다.
올리버에게는 냉혹한 사회와 잔인한 어른들에 맞서는 충실한 창과 방패 역할을 했던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는 압제에서 생겨난 혁명이 또 다른 압제를 낳는 모순을 중립적인 시각으로 기술하는 역사의 관찰지 역할을 해냈다. 난 이런 중립적 시각을 유지하는게 좋다. 그래서인지 어느 한 쪽에 휩쓸려 감정에 동요하는 것 만큼 쓸데 없는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 쪽에서 열렬한 지지를 보이는 사람들은 이도저도 아닌 방관자라며 멸시 하겠지만, 찰스디킨스나 조지오웰처럼 현상을 꿰 뚫어 해석하고 중립의 자세를 유지하는 작가들은 혼란 스러운 시대에 꼭 필요하고, 나 같은 방관자는 그들의 글을 읽어야 한다.
위대한 유산은 유동자산이 아니라 진정한 신사의 품격을 가진 사람을 가려낼 줄 아는 통찰력이었다. 그래도 작 중에서 주인공이 조금은 성취하길 바랐다. 하지만 끝까지 그는 열망하던 것을 가질 수 없었다. 하긴 그 가지길 열망하였던 것이 결국 허영에서 비롯 되었던 상징들인데, 작중에 가지게 된다면 이치에도 맞지 않다. 하지만 고구마 열댓개 먹고나서 물도 못 마신채 마지막 책장을 덮는 이 느낌은 어떡할까…1800년대 영국의 정취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여행한 기분으로 몇주 보낸 시간이 나에겐 소박한 유산이었다.
1,557 페이지에 걸쳐 같은 시대에서, 같은 이름으로, 같은 사람이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네 명의 이야기… 하지만 마지막 장에서 관찰자로서의 작가가 등장하며 이 소설의 평행 세계가 한낱 농담에서 시작한다는 걸 알게 된다. 문학은 현생을 사느라 바빠서 미처 알지 못하고 단조롭게 끝날 수 있는 우리의 인생을,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그나마 풍족하게 채울 수 있는 도구로서 마땅히 가까이 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