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이 23년 Best Book 중 하나로 손꼽았다 하여 읽었는데, 마지막 장 즈음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공감했던 한 구절 :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 생각 없이 그 옆을 지나간다….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막히게 하는 아름다운 일상…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PS. 중간중간 옮긴이의 주석이 이야기의 흐름을 너무 방해해서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주석을 무시하고 읽기 시작하니 이야기에 몰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책의 번역은 차라리 소설 번역가에게 맡기는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았다. 이 책은 인문예술 분야가 아닌 에세이니까…
스티븐 킹의 소설을 여러권 읽다 보면 다양한 서술 방식을 만나게 된다. 전형적인 일인칭 시점이나 관찰자 시점, 혹은 전지적 작가시점 외에도 편지에 서술된 내용으로만 이루어진 서술 구조도 있고, 주로 단편의 경우 풍문으로 들은 얘기를 전하는 서술 구조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한 노인의 사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타살을 염두에 두고 벌어진 심문을 받게된 용의자의 진술을 그대로 서술 구조로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서술방식이 모두 사용되고, 서술에서 주인공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마치 심문 장소에서 이야기를 같이 듣는 현장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주인공의 행동 뒤의 감정선도 나에게 대입해 보면서 몰입감을 증폭 시킨다. 이러한 서술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자칫 너무 산만해져서 이야기를 따라갈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특히 화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상상과 수많은 생각들이 언급되는 장면이 길어지면 이야기의 맥이 끊어지는 위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적절한 호흡으로 내면과 바깥을 오가며 독자의 흥미를 계속 유발시킨다. 스티븐킹의 소설을 잠시 멀리하고 다른 책들을 여러권 읽다 돌아온 터라 그런지, 오랜만에 속도감 넘치는 이야기의 흐름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었다. 정말 대단한 글쓰기 장인이다.
이 책의 서평의 일부를 대신하는 작중 한 글귀, 가끔은 옛 친구를 잊어버리고 다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인생의 의도인 것처럼 보인다. 인생이란 기본적으로 몇 년마다 한번씩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던져버리며 빙빙 돌아가는 원심분리기와 같다. 그러다가 이 원심분리기가 멈추면 우리는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채 삶이 들이미는 수많은 새로운 걱정거리에 둘러싸인다. 연말에 읽기에는 더 없이 좋은 책이었다. 연말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난 친구들과 계절이 네 번 바뀌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이 인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 인생의 축약판과도 같다. 일년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메세지는 모두 에필로그에 있으니, “올드랭 사인”을 들으며 에필로그를 맞이해 보라. 잊지 못할 피날레의 순간을 맞이하리라.
로알드 달 단편 세트를 모두 완독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 묘한 쾌감과 같았다. 신비로운 이야기와 약간은 으스스한 별난 캐릭터들에 함께 있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 속 장면에서 관찰하는 기분이었다. 단편의 매력은 짧고 강력한 이야기의 흐름에 있다. 거기에 반전과 결말을 유추하게 만드는 엔딩이 있다면 모골이 송연해 진다. 로알드의 단편들이 모두 그랬다. 세권의 단편집을 읽는동안 정말 행복했다. 크리스마스 advent calendar 를 하루이틀만에 모두 다 뜯어 먹어버린 듯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