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지의 기사나 짧은 소설처럼, 뭔가 세심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감정들이 가득한 복잡 미묘한 얘기인 듯 한데, 알고보면 핵심은 단순하고,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경로가 무지 센서티브한 것 같은데 실상 변화에 대한 두려움, 나와는 다른 사람에 대한 경외감, 보호받고 싶은 마음 같은 매우 투박한 감정이 행동의 원인임을 빙둘러서 알게되는 단편을 한 무더기 모아 놓은 것 같다. 헉헉… 물고기는존재하지않는다 를 읽으며 느꼈던 복잡 미묘한 허무함을 또 느낌.
감명깊게 본 영화의 원작을 찾아 보는 일은, 글쎄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큰 기대감과 함께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진 않을지 두려워하는 마음과도 같지 않을까 생각된다. 둘 중 하나는 실망이나 졸작으로 남을지 모르니 말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서도 샤이닝과 미저리는 원작을 읽음으로서 영화가 한순간에 졸작이 되어 버린 경험이었다. 반면 쇼생크탈출과 더불어 이번에 읽은 그린마일은 원작과 그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모두 인생의 걸작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어, 아직까지는 2:2로 비긴셈이다. 원작은 영화가 그리도 아름다웠던 이유를 보여줬고, 거기에 더해 인생이라는 긴 그린마일의 의미를 살린 엔딩을 오래 기억하게 해 주었다. 작가가 주인공의 삶을 길게 만든 것 역시, 많은 이들의 그린마일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그린마일을 걸어나가게 하는 숙명을 표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정교한 작가의 장치를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는 재미는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즐거움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 중 가장 공포스럽다는 평을 보고 읽기 시작했고, 난 읽었던 그의 공포소설 중 가장 슬픈 소설이라고 평가했다.주인공의 슬픔과 그 배경을 읽는 나도 같이 슬픔에 잠겨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흐트러지는 걸 느낄 정도였다.결말 역시 가장 슬프고 비극적이다. 단란한 가족이 보이지 않는 악령의 힘 아래에서, 고양이 손에서 유린당하다 죽는 쥐새끼 마냥 파괴되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스티븐 킹이 만일 신파 소설을 썼다면 크리넥스를 옆에 두고 읽었어야 했을 것이다. 서정적인 표현의 풍부함이 주인공의 감정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되었다.
이번 하권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고무 탄환의 발라드’였다. 어릴 때 세계명작만화에서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처음 보았을 때 공포심과 신비감이 어우러져 묘한 기분을 느꼈는데 이 작품을 읽는 동안에도 그런 느낌이 함께했다. 타자기 속에 숨어있는 작은 요정들에 대한 망상에 대해 터무니 없는 광기라고 정의하면서, 상대방에게 장난삼아 맞장구 쳐주던 것이 계기가 되어 함께 광기에 물들어 간다는 소재가 섬뜩하고, 신비로운 결말의 반전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스티븐 킹 소설은 참 끊기 힘들다… 끊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생각해 보면,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부터 불안이 마음과 육체를 갉아 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불안할 때 드는 생각은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고 불안이 현실이 되는 몇 번의 경험은 마치 불안이 안 좋은 일의 전조라도 되는 듯 나쁜 징크스를 만들어 주었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도 불안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고 점점 약물과 알콜에 의존해 잠시 불안감에서 해방되는 과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만났다. 과거에 관한 생각과 미래에 관한 생각의 무거운 두 짐을 내려 놓고 현재에 충실할 때, 강렬히 열망하거나 집착하던 것에서 자유로워질 때, 겸손하고 너그러워질 때 비로소 불안에서 자유로워 진다는 참 실행하기 어려운 철학.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이 한마디라도 실천하며 지금의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고 나에게 자애롭고 위트있게 다가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