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튼, 발레 - 그래도 안 힘든 척하는 게 발레다 ㅣ 아무튼 시리즈 16
최민영 지음 / 위고 / 2018년 11월
평점 :
한 때, 주말마다 재즈댄스를 배웠다.
재즈댄스가 뭔지도 잘 모르고 그냥 취미로 춤을 배우고 싶어서 무작정 등록해버렸다. 재즈
댄스 강의는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우선, 클래스 초반부에
하는 엄청난 근력 운동 시간. 전체 강의의 절반은 차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걸 하고 나면 이미 모든 힘이 다 빠져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재즈 워킹. 앞으로, 옆으로 워킹을 하면서 간간이 멈춰 서서
춤 동작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내가 기대했던 음악에 맞춘 춤 같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전체 강의 시간의 1/3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힘들기는 하지만, 워킹이든, 재즈 댄스든 심지어 근력운동이건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나면 일주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요즈음에는 재즈 댄스나 방송 댄스 같은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것뿐 아니라, 전공자들과 어린
소녀들의 전유물로 여겨 지던 발레까지도, 원한다면 취미로 배울 수 있어졌다. 이미 오래 전에 취미로 발레를 하는 지인도 보았고, 최근에는 취미
발레 이야기를 쓴 에세이도 종종 보인다. 호기심에 책장을 팔랑팔랑 넘겨보면, 발레에 대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된다. 전공자들이
은퇴하는 나이에, 또는 그 한참 후에 진입 장벽이 높은 발레를 배우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발레 사랑을 불태우는 그들의 이야기가 항상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 아무튼 북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서 그런지 특유의 즐거움과 에너지가 있어서 즐겨 보는데
<아무튼, 발레>의 저자는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에 발레를 시작했다.
내가 재즈댄스를 시작한 것은 이십대 초반이었고, 그것도 이십 대 후반을 지나 삼십대가 되면서
바빠지고 체력이 떨어져 점점 가지 않게 되었다. 그저 가끔 있는 장기 자랑에서 춤을 선택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마흔을 앞에 두고 무려 발레를 배우다니. 저자는 어릴 적
발레를 배우고 싶었으나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못 하고 있다가, 어린 시절 꼭 해보고 싶었던 일에 무려
마흔을 앞두고 도전하는 용기를 냈다.
전공자들은 어린 나이에 배우기 시작해서 매일 엄청난 시간을 연습하고, 나이가 들면 은퇴하는데, 취미로 일주일에 두 세 번 연습할 뿐에다, 늦은 나이에 유연성과
근력부터 키우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 굳은 몸으로 스트레칭을 하는 고통, 고강도의 근력 운동 시간의 힘듬, 잘 되지 않는 발레 동작 등에
대한 하소연이 유쾌하게 그려져 있다. 몇 번이나 깔깔거리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그런 하소연 속에 발레에 대한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 발레로 인해
넓어지는 인생 이야기가 보여 좋은 에너지를 주는 책이었다.
누구나 인생에 ‘플리에’의 순간이 있는 게 아닐까.
낮아지고, 떨어지고, 주저앉는 순간들 말이다. 원하던 일을 얻지 못했을 때,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어그러졌을 때, 사랑이 어긋났을 때, 누군가에게 거절당했을 때, 그건 넘어지는 게 아니다. 그저 각자의 ‘플리에’를 하는 거다. 높이
뛰어오르는 순간이 있으려면 플리에를 꼭 거쳐야 하고, 내려와야 할 순간에도 플리에는 꼭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에는 ‘오늘은 꽤 깊은 그랑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곤 한다. 플리에 같은 그 시기를
잘 지난다면, 인생의 속근육도 자라는 것이겠지.
(p. 63)
뜬금없이 나도 발레를 배우고 싶어졌다. 재즈댄스를 그만 둔 이후로
만만치 않은 나이를 먹었지만, 나도 다시 음악에 맟춰 춤을 추던 그 시절로 돌아가, 발레를 배우며 행복해지고 싶어졌다. 이 책이 내게 준 선물 같은 순간들 때문에 내 가슴마저도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