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이야기 2 -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 일본인 이야기 2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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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고 읽는 저자 김시덕. 임지왜란을 다루는 몇 권의 저술 또는 해설(<<그들이 본 임진왜란>> <<그림이 된 임진왜란>> <<교감.해설 징비록>>)로 처음 알게 되었고, 또 다른 흥미로운 저서인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과 작년에 출간된 <<일본인 이야기1>>로 그의 책이라면 믿고 읽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1년 만에 기다리던 2권이 나왔다. 이번 2권을 읽으며 작년 1권 출간 당시, 인터넷 매체(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의 했던 김시덕 교수의 아래의 언급을 되새겼다.

 

저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바뀌며 영원한 것은 없으며 당신은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통찰처럼, 굳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하면 어떠한 지역의 정치, 경제적 조건은 언제나 바뀌며 그에 따라 그 지역의 주민도 질적으로 변한다는 사실 뿐입니다. 저는 이처럼 영원히 그 조건을 바꾸는 시기의 지역의 전형적인 사례가 155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의 일본이라고 생각해서 일본인 이야기5권 시리즈에서 이 400년을 다루기로 했습니다.”

 

  다섯 권으로 완간될 책이 다룰 시기는 400년간이며, 이 시기가 현대 일본과 일본인을 만든 결정적 시기라는 것. 결국,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일본의 질적변화이며, 이 변화를 만든 대내외적 역사적 사건과 그 속에서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이 시리즈의 핵심인 것이다.

 

  ‘센코쿠 시대, 유럽국가들과의 교섭, 가톨릭의 전파와 수용 및 배척이라는 세 주제를 탁월하게 엮은 <<일본인 이야기1>>을 읽을 때만 해도 1권에서 시리즈가 다루게 될 400년 중 가장 앞선 시긴인 16-17세기 전환기를 다루었으므로, 앞으로의 서술이 특정 주제에 중점을 두되 어느 정도는 통사의 형태를 띠지 않을까 추측해보았으나, 이번 2권에서 이 추측이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시리즈에서 일본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개설하지 않을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시리즈의 목표를 쟁점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와 일본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는 것이며 이번 2권의 쟁점을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네덜란드를 제외한 그 밖의 유럽 세력을 추방하고 유럽으로부터의 고립을 택한 일본이 어떻게 2백년간 퇴보했으며, 지배층이 초래한 이 퇴보 상태에서 일본의 피지배민들이 어떤 움직임을 취했는가... (20)

 

  이번 2권의 시대적 배경은 센코쿠 시대 이후 도쿠가와 가문이 지배하는 에도 시대이며, 피지배민 중에서도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의 삶을 중심으로 다루되, 당시의 의학 발전에 기여한 의사들 또한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2권의 부제는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인데, 에도 시대가 진보였느냐, 퇴보였느냐에 대해서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곳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보통 센코쿠 시대부터 에도시대를 거쳐 지나 메이지 시대까지를 점점 진보된 시기로 평가하지만, 저자는 물론 장기적으로 진보의 흐름인 것은 맞지만 퇴보의 시기가 존재했고, 에도 시대는 진보가 아닌 퇴보의 시기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의 준거 중 하나가 바로 바로 평범한 사람들, 2권에서 다루는 농민의 삶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당시 유럽과의 비교인데, 이는 에도시대의 전반적인 쇄국정책과 관련이 있다.

 

  1장에서는 이러한 농민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에도 시대에 광범위했던 기근의 참상을 자세 히 설명하고 있으며,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마비키(영아 살해), 아이 버리기 등의 행위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에도 시대에 농민들이 가난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정책과도 관련 있는데, 네덜란드와의 소규모 교류를 제외한 어떤 교류도 통제하였기 때문에 유럽의 새로운 기술들이 도입되지 못하였고, 이는 곧 농업 기술과 생산력 향상의 정체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난학이라는, 보통 일본 의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네덜란드인들을 통해 전해진 유럽의 의학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와 달리 난의학이 일본 의학에 미친 영향은 우두법라는 분야 정도에 그쳤으며, 오히려 당시 일본 의학인 한의학의 발전이 난의학의 영향력 확대에 기여했음을 당시 일본에서 활약한 수많은 의사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번 2권에서는 1권에서 느낀 장점을 훨씬 뛰어넘는 서술을 보여준다. 우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것. 1권에서 일본에 전해진 카톨릭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센코쿠 시대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주었다면 이번 2권에서는 농민과 의사라는 당시의 피지배민들을 중심으로 에도 시대를 재고할 수 있게 한다. 수많은 원사료와 참고 문헌에서 길어온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례들과 이를 엮어 나가는 글 솜씨는 상인을 다루는 3권을 기다리게 만든다. 이 시리즈와 더불어 국내에 출간된 일본 통사, 예컨대 마리우스 젠슨이나 앤드루 고든의 통사를 함께 읽는다면 일본을 이해하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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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기다리는 시간 강석기의 과학카페 9
강석기 지음 / Mid(엠아이디)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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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시즌9. 2012과학 한잔 하실래요?’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강석기의 과학카페 시리즈 아홉 번째 책이 나왔다. 책장에는 그의 책이 1년에 한 권씩 늘어나고 있다. 1권부터 과학카페 시리즈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과학카페를 처음 접한 것은 2년 전 시즌7 <<컴패니언 사이언스>>를 통해서였고, 단번에 이 시리즈에 흥미를 느꼈다. 다양한 분야의 최신 과학 연구 결과를 독자들에게 부담 없는 분량으로, 친절하고 재치 있게 전달하는 강석기씨의 글에서 느꼈던 신선한 매력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과학카페 이전 시즌들을 한 권씩 구입하게 되었고, 매년 3~5월 경 출간되는 새로운 과학카페 시리즈를 손꼽아 기다린다. ‘과학카페에 대한 애정을 너무 드러내지 않았나 싶다. 이참에 개인적으로 느낀 과학카페의 매력을 이번 시즌9 ‘과학을 기다리는 시간과 이전 시즌들을 통해 적어보고자 한다.

 

  과학카페의 매력 첫 번째, 책 제목과 연관된 기획 파트의 훌륭함. 시즌 7의 제목은 <<컴패니언 사이언스>>로 여기서 컴패니언(companion)은 동반자를 뜻한다. 표지 그림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여기서 동반자는 반려동물을 뜻하며, 기획파트 부분인 파트1에서는 반려동물인 개와 관련된 최신 연구 결과를 다룬 네 기사를 다루고 있다. 시즌8의 제목은 <<과학의 구원>>으로 기획파트는 주로 지구온난화 문제의 연구와 해결에 대한 과학 연구의 기여를, <<과학을 기다리는 시간>>시즌9는 코로나19 사태를 중심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 치료, 백신의 문제를 불확실한 시대, 과학이라는 등불이라는 멋진 표제 아래에 다루고 있다. 시즌7도 유익하긴 했으나, 시즌8,9에서의 세계의 당면 문제를 최신 과학의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보다 집중력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시즌10의 기획파트가 무엇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과학카페의 매력 두 번째, 여러 분야의 최신 연구 결과. 과학카페는 보통 8~9파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획기사를 다루는 1파트, 최신 연구 결과 중 인구에 회자된 핫 이슈 파트 외의 것들은 과학 분야 별로 구성되어 있다. 시즌9는 건강의학, 신경과학과 심리학, 생태환경, 천문학과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정 연구 분야의 기사가 많을 경우 시즌7에서와 같이 인류학을 하나의 파트로 독립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기사들, 그것도 최신 연구 결과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유익한 점이 많다. 나도 그렇거니와 교양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과학의 여러 분야 중 좋아하는 한 두 분야가 있고 주로 해당 분야의 책을 읽기 마련이다. 때문에 과학카페에서 접하는 흥미가 덜한 분야의 연구 결과들을 읽음으로써 독서의 편식을 보완해주며, 그 분야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킨다. 개인적으로 건강의학 부분의 책들은 왠지 개인적으로 멀리하는 자기계발서처럼 느껴져 잘 안 읽는 편인데, 시즌9 건강의학 파트에 나오는 백내장 및 녹내장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설명, 유산소 운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진화론적 연구 결과에 대한 기사는 매우 흥미롭게 읽었으며 앞으로 해당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과학카페의 매력 세 번째, 기사의 분량과 사진 및 그림. 최신 과학 연구 결과라고 하면 네이처나 사이언스지에 게재되는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논문을 생각하기 마련이고 지레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카페에서는 해당 논문들의 연구 결과를 다루되, ‘적절한분량과 최대한 쉬운언어로 전달하고 있다. 시즌9의 양자컴퓨터를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평소 양자역학을 이해하고자 꽤나 노력했으나 생각보다 잘 안되어 뛰어넘을까 하다, 한 번 읽어보았는데, 길지 않은 분량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양자역학이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에 미칠 지대한 영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펼쳐보면 알겠지만 컬러로 된 각종 사진 및 그림과 그래프들이 연구 결과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간혹 강석기씨가 직접 그린 그림도 나오는데 꽤나 실력이 있으신 것 같다.

 

  호흡이 길지 않은 기사들을 분야별로 4~5개 정도씩을 한 파트로 다루고 있어 흥미 있는 부분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최신 연구 결과들을 읽다보니 똑똑해지는 듯한 느낌도 들고 간혹 아는 척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으니 읽는 재미는 빠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최신 시즌부터 역으로 한 기사씩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시즌9부터 찬찬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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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 - 인류세가 빚어낸 인간의 역사 그리고 남은 선택
사이먼 L. 루이스.마크 A. 매슬린 지음, 김아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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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세(anthropocene)’, 인류가 만든 급격한 환경 변화의 위험성을 지적하기 위해 20년 전인 2000,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첸에 의해 처음 제창된 이후 이제 이 용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소한 지질시대개념만은 아닌 듯하다. ‘인류세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지식백과의 용어 설명뿐만 아니라 관련 기사, 다큐멘터리 등도 꽤나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세와 관련된 책들도 생각보다 많은데, 읽어본 책들만 살펴보면 인간에 의한 생물종의 대량 멸종이라는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한 생태학적 관점의 책인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여섯 번째 대멸종>>,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절반>> 등이 있으며, 인류세가 미친 전 지구적 양상을 살핀 가이아 빈스의 <<인류세의 모험>>, 다이앤 애커먼의 <<휴먼에이지>> 도 훌륭하다. 이 책 <<사피엔스가 지배한 행성>> 또한 인류세를 다루고 있으나, 앞의 책들과는 서술의 초점이 달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사이먼 루이스와 마크 매슬린이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듯, 이 책은 크게 네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첫째, 인류 역사와 지구 역사가 얽힌 인류세를 지질학과 지구시스템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기(11장 중 1~3). 둘째, 인간의 생활양식에 변화를 가져온 주요 전환점 네 가지, 1만 년 전의 농경의 시작, 16~17세기의 콜럼버스적 전환,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로의 화석에너지의 사용과 1945년 이후의 소비자본주의(4~7)를 다루고 있다. 셋째, 네 전환점을 검토하며 지질학적 관점에서 인류세의 시작을 정의하고(8~9), 넷째, 지구 시스템 과학의 관점에서 인류세를 살아가는 인류의 미래를 살펴본다(10~11).

 

   개인적으로 체계가 잘 잡혀 있고 서술 목적이 뚜렷이 드러난 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그렇다. 각 주제별 분량이 적절히 분배되어 있으며, 뒤의 주제들은 앞의 주제들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서술되어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첫째, 둘째 주제를 다 1~7장은 과학사, 고인류학, 고생물학, 지질학, 고고학, 역사학(주로 근세 또는 근대) 지식을 활용하여 인류세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이게 되었는지 검토하며, 인류세라는 지질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지질시대의 기초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고,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과정을 한 번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 정착생활과 농경이 인류의 보편적인 생활양식으로 자리잡게 된 과정과 콜럼버스적 전환이 가져온 생태적, 전지구적 변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인류의 변화된 모습을 짧지만 압축적으로 설명한다.(개인적으로 익숙한 내용들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정리해주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7장까지는 큰 이견이 없는 부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8~11장까지는 꽤나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7장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저자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도 이 뒷부분에 있다. 뒷부분을 읽으면 책 뒷면에 나오는 인류세 논쟁에 불을 붙인 책이라는 홍보문구가 왜 붙었는지 금방 이해가 간다. 이 책의 핵심은 다음의 두 가지 질문 또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첫째, ‘인류세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인류세의 시점 또는 그 정의가 중요한 이유는 그 시기가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치적 대응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인류세의 시작 논의에서의 기존 견해들인 농경의 시작이나 종전 직후 1945년이라는 견해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인류세의 시작은 1610년이라고 주장한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으로 전환되는 시기이자, 인간이 생태계에 직접적이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둘째 질문은 인류세에서의 인간의 삶(생활양식)은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현재의 소비 자본주의 생활양식은 점점 늘어가는 에너지의 가용성, 정보의 흐름, 인적 집단과 단체의 빠른 증가로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물론 현 생활방식의 붕괴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탄소 배출에 대한 전 지구적 행동뿐만 아니라, 과잉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기본 소득 제공’, 생물종을 보호하기 위하여 (에드워드 윌슨이 주장한) ‘지구의 절반을 다른 종을 위해 양보하기 등의 급진적이면서도 논쟁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장기적인 사회의 정책과 관련된 부분이라 이러저러한 생각을 많이 하고 읽었으며, 논쟁이 많이 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한편으론 매우 다행스럽다. 저자의 말대로 인류세에서 현재의 인류는 언제까지나 지금의 소비자본주의 생활양식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이후의 삶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때가 아닐까,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

 

  21세기 초 인류의 주요 임무는 이 엄청나고 벅찬 힘을 활용해 생명을 떠받드는 지구의 기반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급속한 기후 변화 속에서 다가오는 혼란을 제한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인류의 고통과 생물종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일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과제는 인간의 행동이 가져올 수 있는 파괴력을 먼저 인지하고 그에 따른 손실을 줄이고자 에너지와 경제 시스템을 보다 신속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4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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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방어 - 우리 몸을 지키는 면역의 놀라운 비밀
맷 릭텔 지음, 홍경탁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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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음식(제품)은 면역력을 높여줍니다!’ 티비든 인터넷이든 전단지든 어디서나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광고 문구다. 맷 릭텔의 <<우아한 방어>>를 읽고 나면 이런 식의 광고에 대한 신뢰성이 뚝 떨어질 것이다. 왜냐고? ‘면역력 강화는 무조건 좋다는 이런 통념은 면역에 대해 반만 얘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며(어쩌면 반도 안 될 수도 있다), 또한 저자가 타파하고자 하는 면역에 대한 아주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면역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T세포, B세포, 호중구, 호염기구, 수지상세포, HLA, MHC 등 생소한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면역의 세계지만, 용어의 생경함을 조금만 극복하면 면역의 흥미로운 작동 방식, 저자의 표현대로 면역의 우아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다. 면역학의 역사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다. 메치니코프, 파스퇴르 같은 잘 알려진 인물들은 물론이거니와 잘 알려지지 않은 면역학자들이 면역계의 작동 방식을 밝혀내는 과정과 극적인 발견,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뿐만 아니라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지금까지 읽어 본 면역 관련 (전문서적이 아닌) ‘교양서들 가운데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 캐서린 카버의 <<오늘도 우리 몸은 싸우고 있다>>도 재미있고 유익했으나, 이야기의 치밀한 짜임새 속에서 유익한 지식을 흥미있게 전달하는 대니얼 데이비스의 <<나만의 유전자>> <<뷰티풀 큐어>>를 최고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다. 바로 이 책 <<우아한 방어>>이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이자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이야기의 중심이 인물이라는 데 있다. 면역에 관한 책이니 면역의 비밀을 밝히는 면역학자와 그 비밀과 관련된 환자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다른 책들도 그렇고. 보통은 그렇다. 그리고 여기서 비중 있는 인물은 면역에 관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게 될 면역학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중심은 환자이다. AIDS(밥호프), 자가면역질환(린다와 매러디스), 호지킨병(제이슨)이라는 면역 관련 질환()에 걸린 인물 네 명의 발병 및 치료 과정을 중심으로 그 과정에서의 그들의 변화된 삶의 모습, 관련된 면역학 지식, 생각할 거리들을 제시한다.

 

  맷 릭텔은 균형 잡기 선수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하되, 단순한 투병과 극복이라는 상투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도록 면역학에 대한 논의를 빠뜨리지 않는다. 2부 전체를 할애해서 면역계 전반, 기초지식인 T세포와 B세포부터 근래의 발견인 단일클론항체 및 톨유사수용체들도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위생가설, 마이크로바이옴, 최신 발견인 면역항암치료 등에 대한 논의도 잊지 않는다. 면역의 관점에서 네 인물의 삶을 살펴보지만, 무미건조하지 않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며, 애정이 드러난다. AIDS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나 면역계 덕분에 증상이 없어, 관련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 동성애자인 밥호프의 삶을 응원하고 다양성을 옹호한다. 면역계의 유전적 도구의 다양성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가 다르다고 해서 징벌을 받아서는 안 되며 유전적, 문화적으로 같은 사람인 형제로서 포용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공존의 본질적인 부분이다(478p).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스성 관절염에 시달리는 린다, 루푸스와 류마티스 관절염을 포함하여 세 가지 이상의 자가면역 질환이 있는 메러디스, 이 두 명의 사례는 앞서 말한 강력한 면역계의 신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강력한 면역계는 이들 자신의 몸을 마치 외부의 항원인 것처럼 마구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런 강력한 면역계 때문에 미국 인구의 무려 20퍼센트인 5000만 명이 자가면역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날뛰는 면역계를 더 강력하게 만들라니, 왜 이런 광고 문구가 절로 수긍이 된다. 더군다나 면역계 자체에서도 지나친 면역을 억제하는 신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이토카인 폭풍, 쉽게 말해 면역계에 활동을 시작하라는 지나친 신호 때문에 죽는 사람이 있다는 기사도 자주 접했음을 떠올려보자. 중요한 것은 균형과 조화이다.

 

면역계, 우리의 우아한 방어는 건강과 삶의 질의 모든 측면을 흐르는 강이다. 우리 생명의 축제를 돌본다. 그리고 그것은 균형과 조화에 의해 이루어진다(477p).

 

  호지킨병을 앓고 있는 어렸을 때부터 저자의 절친한 친구인 제이슨에 대한 연민과 애정은 매우 감동적이다. 바로 옆에서 지켜본 암을 극복하려는 제이슨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화학요법, 면역항암치료 등의 각종 치료로 인한 기적 같은 회복과 암의 재발, 그리고 결국은 몸의 기능이 다 소진되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제이슨이 준 의미이다. 면역계는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해치기도 한다. 암 자체가 우리 면역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면역계의 작동방식, 예컨대 면역계의 상처 치료 과정에서의 새로운 세포의 성장은 악성 세포가 성장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면역계의 작동 방식은 진화적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 이유는 면역계가 우리를 개별적으로 방어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역계는 우리의 유전형질과 종을 전반적으로 방어하도록 진화했다. 면역계는 우리가 재생산을 하여 자손을 돌볼 때까지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특별한 일을 한다. 그리고는 우리를 치워 버리는 더 좋은 일을 한다(489p).

 

  결국 죽음은 인간 종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는 면역계에 의해 촉진된다. 이는 가혹한 진실이다. 그러나 삶이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인 것만은 아니다. 면역계에 균형과 조화가 중요하듯, 적절한 수면, 스트레스, 식습관 등의 건강하고 조화롭고 균형잡힌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제이슨이 준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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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홍희범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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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칠의 전쟁 회고록[<<2차 세계대전>>(,), 까치] 1943~1945년을 다루고 있는 마지막 4부의 제목은 승리와 비극이다. 처칠은 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냉전이라는 또 다른 비극을 낳았음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이클 돕스의 냉전 삼부작(<<1945>> <<1962>> <<1991>>) 중 가장 최근에 집필된 이 책 <<1945>>는 그 제목이 승리의 해를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냉전이 시작된 근원(가까운 원인,近原)과 과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 책에 부제를 붙인다면, 처칠의 4부 제목에 몇 글자 추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듯싶다. ‘승리와 비극의 서막

      

   이 책의 원제는 ‘six months in 1945’19452월부터 8월까지 약 6개월 동안 2차 세계대전의 주 전장이었던 유럽을 중심으로 종전 직후 세계의 큰 그림을 그리게 될 주요국인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들, 외교관, 군 장성들의 각종 회담과 정치적 거래, 비공식적 만남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구성은 총 3부로 서술되어 있으며, 1부는 전승국의 지도자(미국은 예외로 루즈벨트가 아닌 트루먼)가 될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 3거두의 역사적 회담인 얄타회담을 다루고 있으며, 2부는 얄타회담 이후 폴란드를 중심으로 동유럽을 자신의 진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소련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외교적 협상, 소련에 의한 베를린 함락 이후 독일 땅에서의 미/영과 소련의 기싸움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3부는 성과없는 회담일 뿐만 아니라 미소 냉전 시대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7월 포츠담 회담 및 원자폭탄 투하, 그에 따른 소련의 기습적 만주 점령과 일본의 항복으로 마무리 된다.

        

얄타회담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까지의 6개월은 전혀 다른 두 전쟁과 전혀 다른 두 세계 사이의 결정적 시기였다(서문).

 

   위의 인용문에서 냉전의 분수령이라고 할 결정적 6개월의 시작인 얄타회담에 저자는 책의 3분의 1을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8일 동안 진행된 회담의 내용을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매일매일의 회담 현장과 회담 내용, 참석자들의 발언과 심리묘사, 각 나라의 정치적/외교적 전략뿐만 아니라 각 정상들이 머문 숙소에 대한 얘기부터, 매일 벌어졌던 연회의 분위기와 차려진 음식에 이르기까지 아주 자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지루하지 않고 매우 흥미진진하며 (과장이 아니라) 마치 얄타회담을 지켜보고 있는듯한 생생함마저 느껴진다. 이 덕분에 미..3거두와 고위급 외교관 및 군장성들 사이에서의 전후 세계의 구상을 둘러싼 치밀한 계획과 주고 받는 한 마디 한 마디의 치밀한 외교적 수싸움들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날마다 벌어진 만찬에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회담에 윤활유 역할을 하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3거두의 의미 있는 만남과 이들의 전후 구상의 기대로 각국의 언론과 국민들이 환호하고 열광한 얄타 회담의 성과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애나 루스벨트가 빛나는 일반론으로 가득 찼다고 한 얄타회담 발표문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서로의 불신은 갈수록 커지고 종류도 늘어났으며, 서로가 상대방이 신뢰를 어기고 신성한 합의를 깼다고 손가락질했다. 2치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을 잠시나마 봉합시켰던 말은 곧 이들을 갈라놓게 된다(131p).

 

    얄타회담 내내 루스벨트 옆을 지켰던 그의 딸 애나 루스벨트의 말마따나 얄타회담은 겉만 번지르 르한 알맹이 없는 회담이었다. 미국의 UN 구상이나 나치의 패전 뒤 대일전 참전에 대한 소련의 동의는 그 당시 결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폴란드 문제였다. 독일을 서쪽으로 격퇴시키며 폴란드를 점령한 스탈린은 폴란드에 우호적인 정권을 세우려는 계획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폴란드 임시 정부 수립에 대해 두루 뭉술한 표현인 확장된루블린 정권(당시 폴란드에 있던 친소 성향의 임시정부)이 민주적 선거를 치른다고 합의했을 뿐이다. 불 보듯 뻔하듯, 이후 확장된이라는 단어는 친미 성향의 고위 인사 1명만 친소 성향의 임시 정부 수립에 허수아비식으로 참여시킴을 의미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얄타회담에서 보였던 미소간의 균열은 베를린 분할 점령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나치의 소련 침략으로 인한 피해의 보상 심리로 소련과 소련 병사들에 의한 베를린의 인적, 물적 약탈은 미국에게는 향후 전쟁 배상금 마련을 위한 독일의 경제 재건뿐만 아니라 당장의 베를린 시민들의 생사 문제를 도외시한 행태로 보였고, 결국 실질적인 경계 없이 경계를 나누어 점령하고 서로 뒤섞여 있는 미소 군인들 사이에서의 충돌로 이어지게 된다.

      

   미소간의 균열과 냉전의 서막은 7월 베를린 인근 포츠담에서 이루어진 포츠담 회담에서 더욱 분명해지고 미국의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과 일본에의 원폭 투하로 그 균열은 더욱 크게 벌어지게 된다(소련은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토 확장과 입지 확보를 위한 군사행동을 일본 항복 직전에 실시하고자 계획보다 훨씬 일찍 급하게 만주로 진격한다). 전쟁의 종결과 더불어 냉전이 도래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은 마침내 끝났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한 세대 전체가 수많은 인명과 에너지, 그리고 이념적 정열을 소모할 새로운 형태의 국제분쟁으로 대체된다. 2차 세계대전의 동맹이 냉전의 라이벌로 바뀌는 과정은 단 6개월 만에 이루어졌다(531p).     

        

   전쟁의 종결 시점인 마지막 6개월이라는 시간을 냉전의 계기라는 관점에서 아주 세밀하게 살핀 돕스의 서술 능력에 여러 번 감탄하며 읽었다. 특히 관련 책들에서 길면 한 두 페이지 정도만 할애하는 얄타회담과 포츠담 회담(특히 얄타회담)에 대한 현장감 있는 서술과 적절한 논평, 인물 묘사는 정말 일품이었다(최근 출간된 세르히 플로히의 <<얄타>>를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또한 남북 분단 과정에서 미소의 분할 점령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인지 미국과 소련의 베를린 분할 점령 또한 매우 흥미있었는데, 책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미소 분할 점령이 미친 동서독 분할 과정을 더욱 알아보고 싶게 만들었다. 다행히 소장중인 <<얄타에서 베를린까지>>를 바로 꺼내들었다. 돕스의 냉전 삼부작에는 이렇게 하나같이 다루고 있는 시기와 주제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 싶게 만드는 서술의 힘이 있다. <<1945>>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를 훌륭한 번역과 만듦새(편집뿐만 아니라 사진도 일품이다)로 완성시킨 출판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188904) 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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