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 - 인류세가 빚어낸 인간의 역사 그리고 남은 선택
사이먼 L. 루이스.마크 A. 매슬린 지음, 김아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인류세(anthropocene)’, 인류가 만든 급격한 환경 변화의 위험성을 지적하기 위해 20년 전인 2000,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첸에 의해 처음 제창된 이후 이제 이 용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소한 지질시대개념만은 아닌 듯하다. ‘인류세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지식백과의 용어 설명뿐만 아니라 관련 기사, 다큐멘터리 등도 꽤나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세와 관련된 책들도 생각보다 많은데, 읽어본 책들만 살펴보면 인간에 의한 생물종의 대량 멸종이라는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한 생태학적 관점의 책인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여섯 번째 대멸종>>,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절반>> 등이 있으며, 인류세가 미친 전 지구적 양상을 살핀 가이아 빈스의 <<인류세의 모험>>, 다이앤 애커먼의 <<휴먼에이지>> 도 훌륭하다. 이 책 <<사피엔스가 지배한 행성>> 또한 인류세를 다루고 있으나, 앞의 책들과는 서술의 초점이 달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사이먼 루이스와 마크 매슬린이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듯, 이 책은 크게 네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첫째, 인류 역사와 지구 역사가 얽힌 인류세를 지질학과 지구시스템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기(11장 중 1~3). 둘째, 인간의 생활양식에 변화를 가져온 주요 전환점 네 가지, 1만 년 전의 농경의 시작, 16~17세기의 콜럼버스적 전환,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로의 화석에너지의 사용과 1945년 이후의 소비자본주의(4~7)를 다루고 있다. 셋째, 네 전환점을 검토하며 지질학적 관점에서 인류세의 시작을 정의하고(8~9), 넷째, 지구 시스템 과학의 관점에서 인류세를 살아가는 인류의 미래를 살펴본다(10~11).

 

   개인적으로 체계가 잘 잡혀 있고 서술 목적이 뚜렷이 드러난 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그렇다. 각 주제별 분량이 적절히 분배되어 있으며, 뒤의 주제들은 앞의 주제들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서술되어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첫째, 둘째 주제를 다 1~7장은 과학사, 고인류학, 고생물학, 지질학, 고고학, 역사학(주로 근세 또는 근대) 지식을 활용하여 인류세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이게 되었는지 검토하며, 인류세라는 지질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지질시대의 기초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고,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과정을 한 번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 정착생활과 농경이 인류의 보편적인 생활양식으로 자리잡게 된 과정과 콜럼버스적 전환이 가져온 생태적, 전지구적 변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인류의 변화된 모습을 짧지만 압축적으로 설명한다.(개인적으로 익숙한 내용들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정리해주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7장까지는 큰 이견이 없는 부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8~11장까지는 꽤나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7장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저자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도 이 뒷부분에 있다. 뒷부분을 읽으면 책 뒷면에 나오는 인류세 논쟁에 불을 붙인 책이라는 홍보문구가 왜 붙었는지 금방 이해가 간다. 이 책의 핵심은 다음의 두 가지 질문 또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첫째, ‘인류세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인류세의 시점 또는 그 정의가 중요한 이유는 그 시기가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치적 대응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인류세의 시작 논의에서의 기존 견해들인 농경의 시작이나 종전 직후 1945년이라는 견해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인류세의 시작은 1610년이라고 주장한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으로 전환되는 시기이자, 인간이 생태계에 직접적이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둘째 질문은 인류세에서의 인간의 삶(생활양식)은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현재의 소비 자본주의 생활양식은 점점 늘어가는 에너지의 가용성, 정보의 흐름, 인적 집단과 단체의 빠른 증가로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물론 현 생활방식의 붕괴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탄소 배출에 대한 전 지구적 행동뿐만 아니라, 과잉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기본 소득 제공’, 생물종을 보호하기 위하여 (에드워드 윌슨이 주장한) ‘지구의 절반을 다른 종을 위해 양보하기 등의 급진적이면서도 논쟁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장기적인 사회의 정책과 관련된 부분이라 이러저러한 생각을 많이 하고 읽었으며, 논쟁이 많이 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한편으론 매우 다행스럽다. 저자의 말대로 인류세에서 현재의 인류는 언제까지나 지금의 소비자본주의 생활양식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이후의 삶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때가 아닐까,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

 

  21세기 초 인류의 주요 임무는 이 엄청나고 벅찬 힘을 활용해 생명을 떠받드는 지구의 기반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급속한 기후 변화 속에서 다가오는 혼란을 제한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인류의 고통과 생물종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일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과제는 인간의 행동이 가져올 수 있는 파괴력을 먼저 인지하고 그에 따른 손실을 줄이고자 에너지와 경제 시스템을 보다 신속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4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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