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방어 - 우리 몸을 지키는 면역의 놀라운 비밀
맷 릭텔 지음, 홍경탁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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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음식(제품)은 면역력을 높여줍니다!’ 티비든 인터넷이든 전단지든 어디서나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광고 문구다. 맷 릭텔의 <<우아한 방어>>를 읽고 나면 이런 식의 광고에 대한 신뢰성이 뚝 떨어질 것이다. 왜냐고? ‘면역력 강화는 무조건 좋다는 이런 통념은 면역에 대해 반만 얘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며(어쩌면 반도 안 될 수도 있다), 또한 저자가 타파하고자 하는 면역에 대한 아주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면역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T세포, B세포, 호중구, 호염기구, 수지상세포, HLA, MHC 등 생소한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면역의 세계지만, 용어의 생경함을 조금만 극복하면 면역의 흥미로운 작동 방식, 저자의 표현대로 면역의 우아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다. 면역학의 역사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다. 메치니코프, 파스퇴르 같은 잘 알려진 인물들은 물론이거니와 잘 알려지지 않은 면역학자들이 면역계의 작동 방식을 밝혀내는 과정과 극적인 발견,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뿐만 아니라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지금까지 읽어 본 면역 관련 (전문서적이 아닌) ‘교양서들 가운데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 캐서린 카버의 <<오늘도 우리 몸은 싸우고 있다>>도 재미있고 유익했으나, 이야기의 치밀한 짜임새 속에서 유익한 지식을 흥미있게 전달하는 대니얼 데이비스의 <<나만의 유전자>> <<뷰티풀 큐어>>를 최고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다. 바로 이 책 <<우아한 방어>>이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이자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이야기의 중심이 인물이라는 데 있다. 면역에 관한 책이니 면역의 비밀을 밝히는 면역학자와 그 비밀과 관련된 환자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다른 책들도 그렇고. 보통은 그렇다. 그리고 여기서 비중 있는 인물은 면역에 관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게 될 면역학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중심은 환자이다. AIDS(밥호프), 자가면역질환(린다와 매러디스), 호지킨병(제이슨)이라는 면역 관련 질환()에 걸린 인물 네 명의 발병 및 치료 과정을 중심으로 그 과정에서의 그들의 변화된 삶의 모습, 관련된 면역학 지식, 생각할 거리들을 제시한다.

 

  맷 릭텔은 균형 잡기 선수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하되, 단순한 투병과 극복이라는 상투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도록 면역학에 대한 논의를 빠뜨리지 않는다. 2부 전체를 할애해서 면역계 전반, 기초지식인 T세포와 B세포부터 근래의 발견인 단일클론항체 및 톨유사수용체들도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위생가설, 마이크로바이옴, 최신 발견인 면역항암치료 등에 대한 논의도 잊지 않는다. 면역의 관점에서 네 인물의 삶을 살펴보지만, 무미건조하지 않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며, 애정이 드러난다. AIDS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나 면역계 덕분에 증상이 없어, 관련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 동성애자인 밥호프의 삶을 응원하고 다양성을 옹호한다. 면역계의 유전적 도구의 다양성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가 다르다고 해서 징벌을 받아서는 안 되며 유전적, 문화적으로 같은 사람인 형제로서 포용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공존의 본질적인 부분이다(478p).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스성 관절염에 시달리는 린다, 루푸스와 류마티스 관절염을 포함하여 세 가지 이상의 자가면역 질환이 있는 메러디스, 이 두 명의 사례는 앞서 말한 강력한 면역계의 신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강력한 면역계는 이들 자신의 몸을 마치 외부의 항원인 것처럼 마구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런 강력한 면역계 때문에 미국 인구의 무려 20퍼센트인 5000만 명이 자가면역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날뛰는 면역계를 더 강력하게 만들라니, 왜 이런 광고 문구가 절로 수긍이 된다. 더군다나 면역계 자체에서도 지나친 면역을 억제하는 신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이토카인 폭풍, 쉽게 말해 면역계에 활동을 시작하라는 지나친 신호 때문에 죽는 사람이 있다는 기사도 자주 접했음을 떠올려보자. 중요한 것은 균형과 조화이다.

 

면역계, 우리의 우아한 방어는 건강과 삶의 질의 모든 측면을 흐르는 강이다. 우리 생명의 축제를 돌본다. 그리고 그것은 균형과 조화에 의해 이루어진다(477p).

 

  호지킨병을 앓고 있는 어렸을 때부터 저자의 절친한 친구인 제이슨에 대한 연민과 애정은 매우 감동적이다. 바로 옆에서 지켜본 암을 극복하려는 제이슨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화학요법, 면역항암치료 등의 각종 치료로 인한 기적 같은 회복과 암의 재발, 그리고 결국은 몸의 기능이 다 소진되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제이슨이 준 의미이다. 면역계는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해치기도 한다. 암 자체가 우리 면역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면역계의 작동방식, 예컨대 면역계의 상처 치료 과정에서의 새로운 세포의 성장은 악성 세포가 성장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면역계의 작동 방식은 진화적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 이유는 면역계가 우리를 개별적으로 방어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역계는 우리의 유전형질과 종을 전반적으로 방어하도록 진화했다. 면역계는 우리가 재생산을 하여 자손을 돌볼 때까지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특별한 일을 한다. 그리고는 우리를 치워 버리는 더 좋은 일을 한다(489p).

 

  결국 죽음은 인간 종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는 면역계에 의해 촉진된다. 이는 가혹한 진실이다. 그러나 삶이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인 것만은 아니다. 면역계에 균형과 조화가 중요하듯, 적절한 수면, 스트레스, 식습관 등의 건강하고 조화롭고 균형잡힌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제이슨이 준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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