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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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루스로마를 구원한 독재관

 

  - 승리와 망명

토스카나의 베이이족과의 10년 동안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카밀루스그러나 그는 정복한 도시로의 로마 시민 이주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아 반대파의 불만을 산다그는 결국 토스카나 전투에서의 전리품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게 되고결국 아르데아로 망명한다.

 

로마의 구원자

카밀루스 망명 후 로마는 갈리아족의 침입을 받고 약탈당한다로마의 불행으로 전쟁에 나서기로 결심한 카밀루스는 갈리아족에 의한 7개월 동안 점령되어 있던 로마를 탈환한다이후에도 이민족들의 침입할 때면 로마 민중들은 카밀루스에게 의지했고그는 결국 다섯 차례나 독재관으로 선출되어 로마를 승리로 이끈다.

 

테미스토클레스와 카밀루스의 비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원본에는 이 비교 부분이 없다이 부분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프랑스어 판본을 완성한 뒤 아이양이 작성하였다.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테미스토클레스의 업적은 길이 빛난다하지만 페르시아로의 망명은 그의 정치적 위신을 위태롭게 만든다반면 카밀루스는 조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화합의 통치를 실현했다뒤 아이양은 그를 가장 뛰어난 본보기로 평가한다.

 

그는 절제함으로써 남들의 질투로부터 자기의 권력을 지킬 수 있었고그러면서도 뛰어난 능력 덕분에 논란의 여지 없이 가장 높은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4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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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왜 사라졌는가 - 도시 멸망 탐사 르포르타주
애널리 뉴위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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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으로 서구식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사는 현재.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 조직 및 운영 방식, 경제 체제 등을 (그것이 효율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구체적으로 사유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편 호기심을 자아내 수수께끼같이 ‘사라진 문명’은 현재의 문명이 걸어오지 않은 오솔길들, 즉 다른 식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에 대한 그림을 어렴풋이 그려주기도 한다. 그 예가 바로 ‘차탈회윅’이다.

 

기원전 8천년~6천년 경,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번영했던 차탈회윅 문명은 통로나 길이 없고 지붕에 뚫은 구멍을 통해 사다리를 타고 집을 드나들었다. 또한 부자가 살았을 큰 건물이나 지배자의 궁전이나 화려한 장식의 건물이 전혀 없는 사회적 위계 질서가 없는 사회였으니, 인류 초기의 새로운 방식의 문명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대안적 모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언뜻 그다지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 제목의 이 책에 매력을 느낀 우선적인 이유는 바로 1장에서 ‘차탈회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도시가 왜 사라졌는가에 대한 고고학적, 역사적 설명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면, 사라진 도시의 붕괴에 대한 개략적 설명을 담은 그저 그런 책이 아니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사라진 도시에 대한 연구와 고민, 상상력 덕분에 사라진 도시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차탈회윅의 빽빽하게 들어찬 지붕으로만 다닐 수 있는 집에서, 신들이 눈을 부릎뜨고 지켜보는 앙코르 사원 근처에서, 축제와 모임으로 떠들썩했던 카호키아의 대광장에서, 죽은 문명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각종 가게들(타베르나)로 떠들썩했던 폼페이의 번화가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다음의 묘사는 사라진 도시에서 인간의 삶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나는 생기가 가득한 우리 주위의 가게들을 상상했다대장장이의 불로 인한 연기로 흐릿해지고쿠민과 고수가 생선과 함께 올리브기름 속에서 지글거리며 내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보도를 말이다(127p).”

 

자는 고고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사라진 네 도시를 여러 번 찾아가 상당 기간 머물려 발굴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체험하고, 현지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고고학자 및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고민한 흔적은 사라진 도시에 대한 상을 풍성하게 해준다. 새로운 고고학 연구 방법과 연구 기기 또한 사람들의 일상생활 모습과 그들이 만든(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도시의 흔적을 되살리는 데 일조한다.

 

폼페이의 교차로 갓돌 파편 자료를 활용하여 당시 사람들이 우측통행을 했음을 밝혀내는 ‘데이터 고고학’의 방법은 대중의 사회생활과 심리를 재구성하는 훌륭한 방법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라이다(광파 탐지 및 거리 측정) 영상 기술’은 레이저광을 쏘아 광자를 포착하여 땅의 높낮이를 재현해주어 과거의 도시 구조를 드러내주는 획기적인 기술이다(정말 신기하다). 라이다 지도는 앙코르 안과 주변의 모습을 보여주어 어떻게 백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이곳에 살았는가라는 의문을 해결해주었다.

 

어쨌든 도시는 사라졌다. 네 도시는 저마다의 마지막을 맞이했지만, 이들의 실패 요인에는 ‘오랜 정치적 불안정과 기후위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원전 8200년 전 로렌시아 빙상이 녹아 평균 기온이 4도 떨어지고 강우량이 줄어들어 엄격한 평등성에 입각하여 건설된 차탈회윅에 위기가 찾아왔다. 사회 계층이 형성되는 사회적 갈등 상황과 맞물려 결국 도시는 완전히 비게 된다. 앙코르 또한 마찬가지이다. 몇 년 주기로 반복되는 건기와 우기는 수로 체계 건설과 관리에 과도한 부담이었다. 크눔이라 불리는 광범위한 계급과 게층 노동자들의 채무 노동에 기반한 앙코르는 기후 변화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이들 노동력의 체계적 조직과 사용이 힘들어졌고, 외부 세력의 침입은 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우리가 흔히 주목하는 도시와 문명이 사라지는 극적인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의 종말은 기나긴 도시의 변화 패턴의 한 부분을 장식할 뿐이다. 차탈회윅에서 사람 흔적이 사라지기 까지는 몇 백 년이 걸렸으며, 앙코르는 15세기 중반 버려진 이후 16세기 다시 수도의 기능을 하기도 했다. 또한 도시의 종말은 이들이 향유한 문화의 붕괴를 동반하지 않는다. 베수비오산 분출로 종말을 맞은 폼페이의 사람들은 인근 나폴리 등지에서 그들의 문화를 이어가며 새롭게 출발하였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미시시피 문화의 중심지였던 ‘카호키아’ 주민들은 도시를 떠난 후 각지로 흩어져 미시시피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도시의 시대에 이들 문명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저자는 오늘날의 도시가 정치 불안정과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기후 변화와 전염병이라는 큰 어려움과 씨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 네 도시의 역사는 도시의 활력을 유지하는 물리적, 사회적, 인적 요인들을 제시해준다.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교훈은 ‘도시’의 변화를 긴 호흡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이 과정의 일부인 ‘도시 버리기’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다른 형태와 방식의 도시 문명은 생겨나리란 것도 사실이다. 저자 말마따나 네 도시는 인간 공동체의 탄력성, 쉽게 말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개인적, 집단적 의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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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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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각 추방법은 민중의 질투를 달래는 방법이었다. 민중은 위대한 인물에게 흠집을 내고 그의 공민권을 박탁함으로써 그를 향한 적개심을 분출했다(407p).

 

# 테미스토클레스, 비운의 정치가

 

-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보잘것없는 출신이지만, 공직에 대한 열망과 명성을 얻고자 하는 충동이 누구보다 강했던 아테네인 테미스토클레스. 당시 육군이 주력이었던 아테네에서 해군력 증강을 시도한 무모함에 가까운 선경지명을 지닌 테미스토클레스의 명성은 크세르크세스의 페르시아에 맞서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세계사에 길이 남을 승리로 절정에 달한다. 이는 또한 해양 제국 아테네의 시작이었다.

 

- 정치적 추방과 그 이후의 삶

 

그의 업적을 시기하는 무리로 인해 기원전 472년 테미스토클레스는 패각추방법에 따라 축출되고 공민권을 박탈당한다. 이후 그는 페르시아왕 크세르크세스에게 일신을 의탁하고 지방 총독을 역임함으로써 스스로 불멸의 명성에 흠집을 낸다. 크세르크세스는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이집트인들의 반란에 도움을 준 아테네에 대한 공격을 명령하고, 이에 테미스토클레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신의 남은 명성을 보전하는 선택을 내린다.

 

- 민주주의의 약점

 

살라미스 해전 이후 테미스토클레스의 명성과 업적을 시기, 질투한 정적들이 늘어가는 상황.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의 선과 악은 말에 달려있다. 그들의 현란한 말솜씨는 민중들로 하여금 테미스토클레스에게 등을 돌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치적 기피 인물을 추방하기 위한 패각 추방법, 이 법을 이용하여 정적 아리스티데스를 권좌에서 몰아낸 테미스토클레스는 그 법으로 말미암아 본인 또한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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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정치가는 문제가 일어나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적합한 방법으로 처리하며, 부분을 포기함으로써 전체룰 구축하고, 작은 이익을 버림으로써 더 큰 것을 얻어 낸다(369p).

* 정치가의 모범

-푸블리콜라는 민중들이 높은 언덕에 위치한 자신의 호화로운 집을 보며 참주를 꿈꾸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혹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에 그는 자신의 집을 당장 허물어버리고 그곳을 평지로 만들어 버린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사례를 아첨이 아닌 정직한 진실에 귀 기울이는 정치가의 훌륭한 본보기로 들며 그를 칭찬한다. 그의 지혜롭고, 영리한 정치적 행동 덕분에 민중은 그에게 스스로 복종하게 되고, 민중은 그에게 ‘민중을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푸블리콜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 완벽한 일생을 산 집정관

-네 번째 집정관 임기 중 사비니족의 침략을 받는 푸블리콜라. 그는 적군 탈주병으로부터 그들의 계획을 알게 되고, 사비니족을 대파한다. 이로 인해 개선식을 진행하지만, 그 후 바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플루타르코스는 푸블리콜라를 위대한 인물이 이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룸으로써 가장 완벽한 일생을 살았다고 높이 평가한다.

*솔론과 푸블리콜라의 비교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원제인 ‘비교열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두 인물에 대한 비교 평가다. 플루타르코스는 솔론과 푸블리콜라 모두 뛰어난 정치가이자 입법가이지만 정치 제도를 정착시켰다는 측면에서 푸블리콜라를 더 높이 평가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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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의를 지키는 쪽이 법을 어기는 쪽보다 유리하다는 것을

모든 시민에게 분명히 해두는 방식으로 법을 만들고 있습니다(282p).

 

# 솔론, 아테네의 전설적 입법가

 

- 중용의 정치가 솔론

부자들과 민중으로 나누어진 두 파벌의 대결. 솔론은 하층민들을 위해 빚을 탕감해주는 법을 제정하지만, 현실적인 적용에 있어 부자와 빈자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부자들은 채권을 빼앗아 간 것에 분노했고, 빈자들은 기대와 달리 토지가 다시 분배되지 않은 것에 분노했다. 부자들의 탐욕과 민중의 오만. 이 사례는 예나 지금이나 양쪽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법을 제정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을 익히 보여준다.

 

- 입법가

솔론은 최고 재판소인 아레이오스 파고스를 설치하고, 민회격인 에페타이라는 부족 회의체도 만든다. 그리고 정치적 의견이 둘로나뉘었을 때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사람은 공민권을 박탁하는 정쟁법을 통해 공공의 일에 무관심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 그리스 일곱 현인 중 한 명으로서의 솔론

부유한 도시 사르디스의 크로이소스 왕과의 만남에서 부자인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고자 한다. 이에 솔론은 그에게 하늘이 그 사람에게 마지막에 풍요로움을 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행복하다고 여긴다고 말하며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크로이소스 왕은 차후 페르시아의 키로스2세 의해 도시를 잃고 죽음을 앞두었을 때 솔론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한다.

 

지금에 와서 보니 행복을 잃은 데서 오는 고통은 행복을 누릴 때의 기쁨보다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행복이 내 것일 때는 누릴 수 있는 이익이라고 해 봤자 명성과 남의 의견뿐이었지만, 막상 행복을 잃었을 때의 고통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으로 눈앞에 다가오기 때문입니다(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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