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왜 사라졌는가 - 도시 멸망 탐사 르포르타주
애널리 뉴위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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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으로 서구식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사는 현재.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 조직 및 운영 방식, 경제 체제 등을 (그것이 효율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구체적으로 사유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편 호기심을 자아내 수수께끼같이 ‘사라진 문명’은 현재의 문명이 걸어오지 않은 오솔길들, 즉 다른 식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에 대한 그림을 어렴풋이 그려주기도 한다. 그 예가 바로 ‘차탈회윅’이다.

 

기원전 8천년~6천년 경,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번영했던 차탈회윅 문명은 통로나 길이 없고 지붕에 뚫은 구멍을 통해 사다리를 타고 집을 드나들었다. 또한 부자가 살았을 큰 건물이나 지배자의 궁전이나 화려한 장식의 건물이 전혀 없는 사회적 위계 질서가 없는 사회였으니, 인류 초기의 새로운 방식의 문명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대안적 모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언뜻 그다지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 제목의 이 책에 매력을 느낀 우선적인 이유는 바로 1장에서 ‘차탈회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도시가 왜 사라졌는가에 대한 고고학적, 역사적 설명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면, 사라진 도시의 붕괴에 대한 개략적 설명을 담은 그저 그런 책이 아니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사라진 도시에 대한 연구와 고민, 상상력 덕분에 사라진 도시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차탈회윅의 빽빽하게 들어찬 지붕으로만 다닐 수 있는 집에서, 신들이 눈을 부릎뜨고 지켜보는 앙코르 사원 근처에서, 축제와 모임으로 떠들썩했던 카호키아의 대광장에서, 죽은 문명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각종 가게들(타베르나)로 떠들썩했던 폼페이의 번화가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다음의 묘사는 사라진 도시에서 인간의 삶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나는 생기가 가득한 우리 주위의 가게들을 상상했다대장장이의 불로 인한 연기로 흐릿해지고쿠민과 고수가 생선과 함께 올리브기름 속에서 지글거리며 내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보도를 말이다(127p).”

 

자는 고고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사라진 네 도시를 여러 번 찾아가 상당 기간 머물려 발굴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체험하고, 현지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고고학자 및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고민한 흔적은 사라진 도시에 대한 상을 풍성하게 해준다. 새로운 고고학 연구 방법과 연구 기기 또한 사람들의 일상생활 모습과 그들이 만든(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도시의 흔적을 되살리는 데 일조한다.

 

폼페이의 교차로 갓돌 파편 자료를 활용하여 당시 사람들이 우측통행을 했음을 밝혀내는 ‘데이터 고고학’의 방법은 대중의 사회생활과 심리를 재구성하는 훌륭한 방법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라이다(광파 탐지 및 거리 측정) 영상 기술’은 레이저광을 쏘아 광자를 포착하여 땅의 높낮이를 재현해주어 과거의 도시 구조를 드러내주는 획기적인 기술이다(정말 신기하다). 라이다 지도는 앙코르 안과 주변의 모습을 보여주어 어떻게 백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이곳에 살았는가라는 의문을 해결해주었다.

 

어쨌든 도시는 사라졌다. 네 도시는 저마다의 마지막을 맞이했지만, 이들의 실패 요인에는 ‘오랜 정치적 불안정과 기후위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원전 8200년 전 로렌시아 빙상이 녹아 평균 기온이 4도 떨어지고 강우량이 줄어들어 엄격한 평등성에 입각하여 건설된 차탈회윅에 위기가 찾아왔다. 사회 계층이 형성되는 사회적 갈등 상황과 맞물려 결국 도시는 완전히 비게 된다. 앙코르 또한 마찬가지이다. 몇 년 주기로 반복되는 건기와 우기는 수로 체계 건설과 관리에 과도한 부담이었다. 크눔이라 불리는 광범위한 계급과 게층 노동자들의 채무 노동에 기반한 앙코르는 기후 변화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이들 노동력의 체계적 조직과 사용이 힘들어졌고, 외부 세력의 침입은 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우리가 흔히 주목하는 도시와 문명이 사라지는 극적인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의 종말은 기나긴 도시의 변화 패턴의 한 부분을 장식할 뿐이다. 차탈회윅에서 사람 흔적이 사라지기 까지는 몇 백 년이 걸렸으며, 앙코르는 15세기 중반 버려진 이후 16세기 다시 수도의 기능을 하기도 했다. 또한 도시의 종말은 이들이 향유한 문화의 붕괴를 동반하지 않는다. 베수비오산 분출로 종말을 맞은 폼페이의 사람들은 인근 나폴리 등지에서 그들의 문화를 이어가며 새롭게 출발하였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미시시피 문화의 중심지였던 ‘카호키아’ 주민들은 도시를 떠난 후 각지로 흩어져 미시시피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도시의 시대에 이들 문명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저자는 오늘날의 도시가 정치 불안정과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기후 변화와 전염병이라는 큰 어려움과 씨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 네 도시의 역사는 도시의 활력을 유지하는 물리적, 사회적, 인적 요인들을 제시해준다.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교훈은 ‘도시’의 변화를 긴 호흡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이 과정의 일부인 ‘도시 버리기’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다른 형태와 방식의 도시 문명은 생겨나리란 것도 사실이다. 저자 말마따나 네 도시는 인간 공동체의 탄력성, 쉽게 말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개인적, 집단적 의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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