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방어 - 우리 몸을 지키는 면역의 놀라운 비밀
맷 릭텔 지음, 홍경탁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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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음식(제품)은 면역력을 높여줍니다!’ 티비든 인터넷이든 전단지든 어디서나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광고 문구다. 맷 릭텔의 <<우아한 방어>>를 읽고 나면 이런 식의 광고에 대한 신뢰성이 뚝 떨어질 것이다. 왜냐고? ‘면역력 강화는 무조건 좋다는 이런 통념은 면역에 대해 반만 얘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며(어쩌면 반도 안 될 수도 있다), 또한 저자가 타파하고자 하는 면역에 대한 아주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면역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T세포, B세포, 호중구, 호염기구, 수지상세포, HLA, MHC 등 생소한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면역의 세계지만, 용어의 생경함을 조금만 극복하면 면역의 흥미로운 작동 방식, 저자의 표현대로 면역의 우아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다. 면역학의 역사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다. 메치니코프, 파스퇴르 같은 잘 알려진 인물들은 물론이거니와 잘 알려지지 않은 면역학자들이 면역계의 작동 방식을 밝혀내는 과정과 극적인 발견,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뿐만 아니라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지금까지 읽어 본 면역 관련 (전문서적이 아닌) ‘교양서들 가운데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 캐서린 카버의 <<오늘도 우리 몸은 싸우고 있다>>도 재미있고 유익했으나, 이야기의 치밀한 짜임새 속에서 유익한 지식을 흥미있게 전달하는 대니얼 데이비스의 <<나만의 유전자>> <<뷰티풀 큐어>>를 최고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다. 바로 이 책 <<우아한 방어>>이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이자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이야기의 중심이 인물이라는 데 있다. 면역에 관한 책이니 면역의 비밀을 밝히는 면역학자와 그 비밀과 관련된 환자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다른 책들도 그렇고. 보통은 그렇다. 그리고 여기서 비중 있는 인물은 면역에 관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게 될 면역학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중심은 환자이다. AIDS(밥호프), 자가면역질환(린다와 매러디스), 호지킨병(제이슨)이라는 면역 관련 질환()에 걸린 인물 네 명의 발병 및 치료 과정을 중심으로 그 과정에서의 그들의 변화된 삶의 모습, 관련된 면역학 지식, 생각할 거리들을 제시한다.

 

  맷 릭텔은 균형 잡기 선수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하되, 단순한 투병과 극복이라는 상투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도록 면역학에 대한 논의를 빠뜨리지 않는다. 2부 전체를 할애해서 면역계 전반, 기초지식인 T세포와 B세포부터 근래의 발견인 단일클론항체 및 톨유사수용체들도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위생가설, 마이크로바이옴, 최신 발견인 면역항암치료 등에 대한 논의도 잊지 않는다. 면역의 관점에서 네 인물의 삶을 살펴보지만, 무미건조하지 않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며, 애정이 드러난다. AIDS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나 면역계 덕분에 증상이 없어, 관련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 동성애자인 밥호프의 삶을 응원하고 다양성을 옹호한다. 면역계의 유전적 도구의 다양성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가 다르다고 해서 징벌을 받아서는 안 되며 유전적, 문화적으로 같은 사람인 형제로서 포용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공존의 본질적인 부분이다(478p).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스성 관절염에 시달리는 린다, 루푸스와 류마티스 관절염을 포함하여 세 가지 이상의 자가면역 질환이 있는 메러디스, 이 두 명의 사례는 앞서 말한 강력한 면역계의 신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강력한 면역계는 이들 자신의 몸을 마치 외부의 항원인 것처럼 마구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런 강력한 면역계 때문에 미국 인구의 무려 20퍼센트인 5000만 명이 자가면역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날뛰는 면역계를 더 강력하게 만들라니, 왜 이런 광고 문구가 절로 수긍이 된다. 더군다나 면역계 자체에서도 지나친 면역을 억제하는 신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이토카인 폭풍, 쉽게 말해 면역계에 활동을 시작하라는 지나친 신호 때문에 죽는 사람이 있다는 기사도 자주 접했음을 떠올려보자. 중요한 것은 균형과 조화이다.

 

면역계, 우리의 우아한 방어는 건강과 삶의 질의 모든 측면을 흐르는 강이다. 우리 생명의 축제를 돌본다. 그리고 그것은 균형과 조화에 의해 이루어진다(477p).

 

  호지킨병을 앓고 있는 어렸을 때부터 저자의 절친한 친구인 제이슨에 대한 연민과 애정은 매우 감동적이다. 바로 옆에서 지켜본 암을 극복하려는 제이슨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화학요법, 면역항암치료 등의 각종 치료로 인한 기적 같은 회복과 암의 재발, 그리고 결국은 몸의 기능이 다 소진되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제이슨이 준 의미이다. 면역계는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해치기도 한다. 암 자체가 우리 면역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면역계의 작동방식, 예컨대 면역계의 상처 치료 과정에서의 새로운 세포의 성장은 악성 세포가 성장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면역계의 작동 방식은 진화적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 이유는 면역계가 우리를 개별적으로 방어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역계는 우리의 유전형질과 종을 전반적으로 방어하도록 진화했다. 면역계는 우리가 재생산을 하여 자손을 돌볼 때까지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특별한 일을 한다. 그리고는 우리를 치워 버리는 더 좋은 일을 한다(489p).

 

  결국 죽음은 인간 종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는 면역계에 의해 촉진된다. 이는 가혹한 진실이다. 그러나 삶이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인 것만은 아니다. 면역계에 균형과 조화가 중요하듯, 적절한 수면, 스트레스, 식습관 등의 건강하고 조화롭고 균형잡힌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제이슨이 준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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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홍희범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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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칠의 전쟁 회고록[<<2차 세계대전>>(,), 까치] 1943~1945년을 다루고 있는 마지막 4부의 제목은 승리와 비극이다. 처칠은 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냉전이라는 또 다른 비극을 낳았음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이클 돕스의 냉전 삼부작(<<1945>> <<1962>> <<1991>>) 중 가장 최근에 집필된 이 책 <<1945>>는 그 제목이 승리의 해를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냉전이 시작된 근원(가까운 원인,近原)과 과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 책에 부제를 붙인다면, 처칠의 4부 제목에 몇 글자 추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듯싶다. ‘승리와 비극의 서막

      

   이 책의 원제는 ‘six months in 1945’19452월부터 8월까지 약 6개월 동안 2차 세계대전의 주 전장이었던 유럽을 중심으로 종전 직후 세계의 큰 그림을 그리게 될 주요국인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들, 외교관, 군 장성들의 각종 회담과 정치적 거래, 비공식적 만남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구성은 총 3부로 서술되어 있으며, 1부는 전승국의 지도자(미국은 예외로 루즈벨트가 아닌 트루먼)가 될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 3거두의 역사적 회담인 얄타회담을 다루고 있으며, 2부는 얄타회담 이후 폴란드를 중심으로 동유럽을 자신의 진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소련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외교적 협상, 소련에 의한 베를린 함락 이후 독일 땅에서의 미/영과 소련의 기싸움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3부는 성과없는 회담일 뿐만 아니라 미소 냉전 시대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7월 포츠담 회담 및 원자폭탄 투하, 그에 따른 소련의 기습적 만주 점령과 일본의 항복으로 마무리 된다.

        

얄타회담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까지의 6개월은 전혀 다른 두 전쟁과 전혀 다른 두 세계 사이의 결정적 시기였다(서문).

 

   위의 인용문에서 냉전의 분수령이라고 할 결정적 6개월의 시작인 얄타회담에 저자는 책의 3분의 1을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8일 동안 진행된 회담의 내용을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매일매일의 회담 현장과 회담 내용, 참석자들의 발언과 심리묘사, 각 나라의 정치적/외교적 전략뿐만 아니라 각 정상들이 머문 숙소에 대한 얘기부터, 매일 벌어졌던 연회의 분위기와 차려진 음식에 이르기까지 아주 자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지루하지 않고 매우 흥미진진하며 (과장이 아니라) 마치 얄타회담을 지켜보고 있는듯한 생생함마저 느껴진다. 이 덕분에 미..3거두와 고위급 외교관 및 군장성들 사이에서의 전후 세계의 구상을 둘러싼 치밀한 계획과 주고 받는 한 마디 한 마디의 치밀한 외교적 수싸움들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날마다 벌어진 만찬에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회담에 윤활유 역할을 하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3거두의 의미 있는 만남과 이들의 전후 구상의 기대로 각국의 언론과 국민들이 환호하고 열광한 얄타 회담의 성과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애나 루스벨트가 빛나는 일반론으로 가득 찼다고 한 얄타회담 발표문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서로의 불신은 갈수록 커지고 종류도 늘어났으며, 서로가 상대방이 신뢰를 어기고 신성한 합의를 깼다고 손가락질했다. 2치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을 잠시나마 봉합시켰던 말은 곧 이들을 갈라놓게 된다(131p).

 

    얄타회담 내내 루스벨트 옆을 지켰던 그의 딸 애나 루스벨트의 말마따나 얄타회담은 겉만 번지르 르한 알맹이 없는 회담이었다. 미국의 UN 구상이나 나치의 패전 뒤 대일전 참전에 대한 소련의 동의는 그 당시 결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폴란드 문제였다. 독일을 서쪽으로 격퇴시키며 폴란드를 점령한 스탈린은 폴란드에 우호적인 정권을 세우려는 계획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폴란드 임시 정부 수립에 대해 두루 뭉술한 표현인 확장된루블린 정권(당시 폴란드에 있던 친소 성향의 임시정부)이 민주적 선거를 치른다고 합의했을 뿐이다. 불 보듯 뻔하듯, 이후 확장된이라는 단어는 친미 성향의 고위 인사 1명만 친소 성향의 임시 정부 수립에 허수아비식으로 참여시킴을 의미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얄타회담에서 보였던 미소간의 균열은 베를린 분할 점령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나치의 소련 침략으로 인한 피해의 보상 심리로 소련과 소련 병사들에 의한 베를린의 인적, 물적 약탈은 미국에게는 향후 전쟁 배상금 마련을 위한 독일의 경제 재건뿐만 아니라 당장의 베를린 시민들의 생사 문제를 도외시한 행태로 보였고, 결국 실질적인 경계 없이 경계를 나누어 점령하고 서로 뒤섞여 있는 미소 군인들 사이에서의 충돌로 이어지게 된다.

      

   미소간의 균열과 냉전의 서막은 7월 베를린 인근 포츠담에서 이루어진 포츠담 회담에서 더욱 분명해지고 미국의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과 일본에의 원폭 투하로 그 균열은 더욱 크게 벌어지게 된다(소련은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토 확장과 입지 확보를 위한 군사행동을 일본 항복 직전에 실시하고자 계획보다 훨씬 일찍 급하게 만주로 진격한다). 전쟁의 종결과 더불어 냉전이 도래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은 마침내 끝났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한 세대 전체가 수많은 인명과 에너지, 그리고 이념적 정열을 소모할 새로운 형태의 국제분쟁으로 대체된다. 2차 세계대전의 동맹이 냉전의 라이벌로 바뀌는 과정은 단 6개월 만에 이루어졌다(531p).     

        

   전쟁의 종결 시점인 마지막 6개월이라는 시간을 냉전의 계기라는 관점에서 아주 세밀하게 살핀 돕스의 서술 능력에 여러 번 감탄하며 읽었다. 특히 관련 책들에서 길면 한 두 페이지 정도만 할애하는 얄타회담과 포츠담 회담(특히 얄타회담)에 대한 현장감 있는 서술과 적절한 논평, 인물 묘사는 정말 일품이었다(최근 출간된 세르히 플로히의 <<얄타>>를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또한 남북 분단 과정에서 미소의 분할 점령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인지 미국과 소련의 베를린 분할 점령 또한 매우 흥미있었는데, 책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미소 분할 점령이 미친 동서독 분할 과정을 더욱 알아보고 싶게 만들었다. 다행히 소장중인 <<얄타에서 베를린까지>>를 바로 꺼내들었다. 돕스의 냉전 삼부작에는 이렇게 하나같이 다루고 있는 시기와 주제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 싶게 만드는 서술의 힘이 있다. <<1945>>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를 훌륭한 번역과 만듦새(편집뿐만 아니라 사진도 일품이다)로 완성시킨 출판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188904) 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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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사냥꾼 - 집착과 욕망 그리고 지구 최고의 전리품을 얻기 위한 모험
페이지 윌리엄스 지음, 전행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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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르보사우르스. 티라노사우르스와 닮은, ‘한반도의 공룡 점박이라는 3D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그 공룡? 페이지 윌리엄스의 책이 이 공룡의 뼈(화석)를 포함한 (공룡)화석의 도굴과 판매, 과거 자연 유산의 소유권 문제, 이와 관련된 국제 분쟁 등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타르보사우르스로 검색을 해보니 이 책의 내용과 관련 있어 보이는 한국과 관련된 의외의 기사가 나왔다. 바로 몽골에서 도굴되어 한국에 들여온 타르보사우르스 바타르의 두개골, 갈비뼈 등 화석 11점을 약 3년 전인 20174월 몽골로 반환하기로 했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는 내게 생각할 거리 두 가지를 던져 주었다. 하나는 자연 유산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 나라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수 억 년 전 자연물의 소유권이 그 나라에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두 번째, 한국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인한 불법적인 화석 사냥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화석사냥꾼들은 화석을 통해 이익을 보긴 하지만 그들 덕분에 그냥 땅에 묻혀 있을 화석이 발견되고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공룡 사냥꾼>>은 내가 제기한 두 물음을 중요한 대립점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화석을 수집하고 판매해온 화석사냥꾼 에릭 프로코피는 몽골에서 타르보사우르스 바타르화석을 중개상을 통해 미국으로 들여와 복원 작업을 거친 뒤 2012년 뉴욕 경매장에서 비싼 가격에 팔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국에 체류 중이었던 몽골 국적의 (고생물학에 관심이 많은) 지질학자의 문제제기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몽골 고위 정치인 및 미국의 조력자들 덕분에 이 공룡 화석은 몽골로 반환되고 2014년 에릭은 징역형을 판결받는다.

 

  저자는 미국, 유럽, 몽골을 넘나드는 수년 10여년 간의 취재, 수많은 등장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을 기승전결이 뚜렷한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등장인물의 구체적인 묘사와 직접 인용된 그들의 말은 이야기에 생생함을 더한다. 앞에서 얘기했듯 저자는 흥미로운 사건 전개와 서술 과정에서 화석의 가치, 화석의 소유권, 화석의 암거래, 화석 사냥꾼과 고생물학자의 대립, 정치적 목적이 내포된 화석을 둘러싼 국제분쟁등의 쟁점을 자신의 입이 아닌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이 흥미 있고 읽기 쉬우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쟁점 중 이 책을 통하여 꼭 생각해봐야 할 핵심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한국의 몽골 화석 반환 기사와 관련하여 내가 제기한 두 물음과 관련된다. 자연 유산의 소유권은 발굴자에게 있는가? 아니면 땅 주인이나 국가에게 있는가? 미국은 그 유명한 티라노사우르스 렉스 (일명 : Sue) 발견과 관련된 일련의 소유권 분쟁 끝에 자연 유산의 소유권을 그 유산이 발견된 땅 주인에게 있다고 결론지었다.

 

  몽골의 경우 소련에서 독립한 후의 헌법 수립 이전 시기에는 외국의 화석 사냥꾼들에 의해 고비사막에 있는 수없이 많은 화석이 도굴되었지만, 헌법 수립 후 몽골에서 발견된 자연 유산은 국가의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그러나 위 기사처럼 도굴은 여전히 성행한다). 화석 사냥꾼 에릭은 미국의 법 때문에 미국에서 상태가 좋은 거대한 화석을 발견하고 이를 판매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고, 몽골의 중개상을 통해서 타르보사우르스 화석을 들여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그의 아킬레스 건으로 몽골인(정확히는 국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몽골 고위 정치인과 과학자)들은 이를 문제삼았고, 그 화석은 몽골로 반환되었다. 그러면 화석발굴자의 권리는 어느 정도까지 인정을 받아야 할까? 불법적인 화석 발굴도 그 권리를 인정받아야 할까?

 

  고생물학자와 화석 사냥꾼은 화석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하여 수세대 동안 다투어왔다. ‘화석 사냥꾼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그들은 과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람일까 아닐까? 화석사냥꾼들은 이 활동이 즐거움과 생계를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에릭처럼 전통을 지키고 과학 유산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선사시대를 보존하는 오랜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도 보았다. 다른 모든 화석사냥꾼처럼, 그도 일단 공기에 닿기만 하면 바로 풍화되어버린, 귀한 유물을 자신이 찾아내 지키고 있다고 느꼈다. 그가 생각하기에 진짜 범죄는 화석이 버려지도록 손을 놓고 있는 것이었다(31).

 

  그러나 고생학물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과학의 상업화와 비과학적인 조건에서 수집된 표본은 연구 가치를 떨어뜨릴 뿐이며, 화석에 대한 대중의 잘못된 인식을 부추길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어떤 입장일까?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각자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 외에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지구에 생명이 살았다는 유일한 기록이자 증거가 되어 주는 화석의 가치를 서문에서 언급할 뿐이다.

 

  이 이야기는 짧게 징역형을 살고 나온 후의 에릭의 삶을 너무 구체적이다 싶을 정도로 담담히 서술하면서 끝이 난다. 화석 사냥꾼으로서의 그의 삶에 대해 옹호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대해 과감한 추측을 해볼 수는 있으나 엄밀히 따진다면 저자는 독자 스스로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는 듯하다. 이 책의 제목인 공룡 사냥꾼은 자연 유산의 보존과 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책을 한 번 읽어본다면 나름의 답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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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들 -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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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왕립학회(Royal society)는 매년 그 해에 대중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과학책들 중 가장 뛰어난 책들을 후보작(6)으로 선정하여 상금(5천 파운드)을 수여하고, 그 중 한 권을 뽑아 그 해의 과학상(Royal society prize)25천 파운드의 상금과 함께 수여한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상이지만, 지금껏 수상한 작가들-빌 브라이슨, 제레드 다이아몬드, 스티븐 호킹, 스티븐 제이 굴드 등-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상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전문성과 흥미, 둘 모두 충족시키는 뛰어난 과학저술에 수여하는 상이니 만큼, 후보에 든 책들은 보통 한국에서 번역 출판된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이 책 <<완벽주의자들>>20186권의 후보작 중 한권에 선정된 책으로 - 다른 후보작 5권 중 4권은 이미 번역 출판됨(<<오해의 동물원>> <<뷰티풀 큐어>> <<안녕, 인간>> <<흐르는 것들의 과학>>) - 언제 번역되나 기다렸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가치를 설명하려다 보니,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에 대한 얘기가 주저리주저리 길었는데, 교양 과학책에 관심이 있다면 이 상의 후보작들은 하나 같이 믿고 읽어도 된다. 후회하지 않는다. 사실 윈체스터야 <<교수와 광인>> 같은 저술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작기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란 대작을 쓴 조지프 니덤의 평전 <<중국을 사랑한 남자>>로 그의 저술을 처음 접하고, 매력을 느꼈다. <<태평양 이야기>> <<크라카토아>> 등 한국에는 그의 저술들 중 역사 관련 저술이 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번 책은 과학책이다. 물론 과학 이론을 다루진 않고, ‘정밀성이란 주제로 과학기술과 기술의 발명, 발견의 역사를 잘 버무려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과학기술이라는 별개의 두 단어를 하나의 단어인 양 과학기술로 붙여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그 단어는 과학, 국가, 경제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과학을 자연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의 체계로, ‘기술(공학)’을 과학을 통해 발견된 원리를 기술적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응용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윈체스터의 이 책은 등장하는 인물이나 소재로 미루어 볼 때-제임스 와트, 증기기관, 자동차 기술, 제트 엔진, 렌즈와 망원경, GPS, 반도체- ‘기술사저술에 가까워 보인다.

 

   먼 과거, 아니 멀리갈 것도 없이 한국을 예로 들자면 기계 문명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인 구한말까지만 하더라도 정밀함은 당시의 삶과는 동떨어진 개념이었음이 분명하며 서양 기술이 들어오고 각종 기계와 기구들이 삶 속으로 들어오면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정밀성이란 단어는 저자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를 가능하게 하는 현대성의 필수 요소이다. 정밀한 기계, 정밀한 조작 등 정밀성(precision)’이란 단어는 기계(machine)와 기술(공학, engineering) 등 현대의 첨단 기계 문명을 가능케 한 핵심 단어를 연상시키기 마련이다. 정밀성은 역사적인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발명된 개념인 것이다.

 

   윈체스터는 정밀성이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그 개념이 생겨난 서양의 기술 발전의 역사를 다룬다. 18세기 항해술의 발전을 추동한 정밀한 시계의 발명에서부터, 정밀성을 측정하는 마이크로미터의 발명, 정밀성과 대량 생산에 성공한 총기 제작 기술의 개발, 로이스와 포드의 대비되는 자동차 제작 기술, 제트 엔진의 발명 그리고 현대의 반도체, 천체 망원경이라는 초정밀 기계 산업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서술과 묘사로 시간이 지나며 정밀성은 더해가고 허용 오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작아진 과정을 재미있게 설명한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기술 발전의 역사를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비결은 기술 발전과 발명 이야기의 중심이 인물이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을 이끌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실행하여 성공(또는 실패)하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정밀성을 이끄는 것이 결국 인간의 아이디어임을 잘 보여준다.

 

   ‘정밀성이 현대성의 필수 요소임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반도체. 윈체스터는 9장에서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작은 반도체는 일상 깊이 파고들어 있다.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작디 작은 부품 덕분에 인류는 스마트한 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9장의 중심 인물이기도 한 인텔의 공동설립자 고든 무어의 유명한, ‘2년마다 집적 회로의 트랜지스터 숫자가 두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은 정확했음이 드러났고, 그 법칙은 아직도 유효하며, 웨이퍼(집적 회로는 만들 때 쓰는 10cm 미만의 얇은 판) 하나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숫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나노미터는 크기가 1000배 작은, 10억 분의 1미터 크기다. 2016년 브로드웰 칩 제품군이 개발되었을 때, 노트 크기는 과거에 상상도 못 할 만큼 작은 140억분의 1미터(가장 작은 바이러스 크기)였고 각 웨이퍼에는 무려 70억 개 이상이 트랜지스터가 들어 있었다... 인텔이 만든 스카이 레이크 칩에는 사람의 눈이 사용하는 빛의 파장보다 60배 작아서 문자 그대로 보이지 않는 트랜지스터가 담겨 있다(365p).

 

   인류는 정밀성을 어느 정도까지 달성할 수 있을까? 정밀성의 한계는 과연 어디일까? 윈체스터는 6장에서 정밀성의 위험성에 대해 다루며, 2010년에 일어났던 제트 여객기 엔진 폭발 사건을 자세히 다룬다. 정밀 공학의 산물이자 성과인 제트 엔진이 폭발한 원인은 바로 날개 엔진 터빈에 들어가는 작은 파이프에 있었다. 작업 드릴의 날이 잘못 조정되어 튜브가 원주를 따라 0.5밀리미터 얇아진 것이 문제였다(266p). 정말 사소한 오차가 연결된 부품에 영향을 미치고 문제가 누적되어 엔진 폭발까지 이른 것이다. 기술 공정에 투입된 인간의 실수 탓인가? 그렇다면 모든 공정을 초정밀 기계가 담당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 실수가 전혀 발생하지 않을까? 만약 그러하다면 정밀성은 그 한계의 끝이 없지 않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윈체스터의 말대로 기술이 더 작은 부분을 향해가면 사물의 본성이 흐릿해진다는 양자 영역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9장까지 주로 정밀 공학의 눈부신 발전에 잎이 딱 벌어졌다면 마지막 10장에서는 정밀성을 다시 반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윈체스터는 일본의 시계 제조사 세이코견학 경험을 바탕으로 정밀성을 제고하고 있다. 그가 세이코에서 주목한 것은 기계에 의한 자동 공정 시스템에 의해 하루에 25천 개의 쿼츠 시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닌, 스물너댓 명의 숙련공들이 수공으로 만들어내는 하루에 120개 정도만 만들어내는 수제 시계 제작 과정이다. 일본에서는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수공예품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일본에서 또 하나 주목한 것은 자연의 힘이다. 쓰나미에 의해 피해입은 일본 어느 지방의 정밀 기술과 기계는 자연의 정밀하지 하지 않은 힘 앞에서 어떤 정밀성도 보여주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윈체스터는 인간이 정성스레 만든 정밀한 물건에 대한 인정(더 멀리 나아가면 숭배)’정밀하지 않은 자연에서 기계에 의한 현대의 초정밀성의 한계를 느낀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이 매우 설득력 있지는 않았다. 초정밀 공학은 이미 인간의 힘을 넘어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싶다. 현대를 가능하게 한 정밀성의 탄생과 진보, ‘정밀성의 현주소와 한계가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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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 -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
찰스 만 지음, 최희숙 옮김 / 황소자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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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1492-1493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1492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 그러면 1491,1493은 각각 콜럼버스 이전과 이후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터, 찰스 만은 이 두 해를 책 제목으로 삼아 <<1491>>, <<1493>>이라는 책을 써냈다. <<1491>>(한국어판 <<인디언>>, 오래된미래, 2005)은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했던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언 문명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조명하고 있으며, 이 책 <<1493>>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새롭게 탄생한 전 세계적 생태 시스템이 호모제노센(균질화,동질화를 의미)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 발견이라는 용어와 같이 기억된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사건이 미친 보다 광범위한 역사적생태적 영향을 잘 보여주지 못한다. 콜럼버스 항해로 인한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보다 적당한 용어는 바로 ‘Columbian Exchange’이다. 역사학자 앨프리드 W. 크로스비는 유럽 패권 형성 과정에 콜럼버스의 발견이 미친 생태적 영향을 주목하여 (자신의 책 제목이기도 한) ‘콜럼버스적 대전환 Columbian Exchange’이라는 용어를 창안해냈다. 찰스 만이 주목한 것이 바로 이것(용어)으로, 이 대전환이 미친 영향을 여러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선, <<1493>>는 그 구조에 있어 상당히 안정적이다. 책은 총 10장으로 도입부(1), 1~4(2~9), 종장(10)으로 구성된다. 1~4부 모두 두 개의 장으로 서술되어 있고, 각 부는 그 분량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1~4부의 서술 대상과 주제는 지리적으로 구분된다. 1부는 대서양, 2부는 태평양, 3부는 유럽, 4부는 아메리카 대륙(주로 중남미) 위주로 서술되어 있는데, 글의 분량에 있어 지리적 편차를 주지 않기 위해 신경 쓴 것으로 보이며, 덕분에 각 대륙이 1492년 전과는 다른 호모제노센 세상으로 변해가는 모습울 균형잡힌 분량으로 접할 수 있다.

 

  대서양, 태평양, 유럽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을 넘나드는 이야기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 핵심은 바로 신대륙 발견 이후 대륙 간 이동이 가져온 생태적 전환으로 변화된 세계의 모습이다. 이 거대한 이야기는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의 시작점인 제임스 타운(지금의 버지니아주에 위치)에서 시작한다. 그 땅을 차지하러 온 영국인들과 그 땅에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며 살았던 인디언들의 기나긴 분쟁의 역사를 다루면서, 찰스 만은 두 집단 사이의 분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생태학적 변화에 주목한다. 영국인들이 남아메리카산 식물인 니코티아나 타바쿰(담배)을 들여와 광범위하게 재배함으로써 손실된 지력으로 인디언들은 점점 더 내륙 안으로 쫓겨가게 되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여온 말리리아와 다른 질병으로 인디언들은 거의 전멸하게 된다. 뿐만 아니다, 말라리아와 황열병은 플랜테이션에 아메리카 노예를 광범위하게 들여오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된다.

 

  2부는 태평양으로 시선을 돌린다. 마닐라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차, 도자기, 실크와 스페인의 은을 교환하는 갤리온 무역 과정에서 고구마, 메이즈(옥수수), 땅콩, 담배, 고추, 파인애플 등의 온갖 아메리카 대륙의 작물들이 중국에 대거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작물들 특히, 옥수수, 감자, 고구마는 중국(당시 청나라)의 질병과 굶주린 타파 정책들과 맞물려 청 인구 증가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3부의 주인공은 감자와 고무이다. 안데스 지역에서 유래한 감자는 18세기 유럽의 농업혁명에, 브라질 아마존 강 유역의 고무나무는 19세기 산업혁명에 핵심 역할을 수행하여, 유럽은 세계의 패권을 잡게 되고, 유럽의 생활양식과 문화가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된다.

 

  4부는 콜럼버스적 전환이 인간에게 미친 역동적 모습을 중남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다룬다. 콜럼버스 이후 유럽국가들의 식민지 형성붐으로 인해 이주해온 유럽인들과 노예 무역의 전성기인 1500~1840년 사이 플랜테이션에서 일하게 될 대서양을 건너온 1170만명이 넘는 아프리카 노예들, 그리고 당시 아메리카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원주민(인디언)들의 상호작용과 혼합으로 차원이 다른 인종의 뒤섞임이 일어났다. 노예로 인하던 일하던 아프리카인들과 인디언들은 인적이 드문 지역으로 숨어들어 수많은 지역공동체를 만들게 되는데, 브라질 지역에는 아직도 이런 공동체들이 존재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다.

 

  1492년 이후 일어난 전 지구적 생태적 변화, 콜럼버스적 대전환으로 나타난 호모제노센 세상은 감자, 옥수수, 고구마, 토마토, 고추라는 아메리카에서 유래한 종자들이 우리 식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식재료가 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콜럼버스적 대전환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기도 하다. 중국 서쪽 지역과 라오스 북부지역에서는 이전에는 브라질 아마존에서 재배되었던 고무나무를 지금 이 시대에 광범위하게 재배하고 있으며 그 면적을 더 늘리고 있다. 지금 전 세계를 서구 스타일의 건물과 생활패턴과 문화를 균질화된, 동질화된 모습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글로벌라이제이션(지구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양 중심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에 핵심 역할을 한 것은 또한 콜럼버스적 대전환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책으로 두 번 놀랐다. 처음에는 참고문헌을 제외하고 내용만 70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 그 다음으로는 저자의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고 매력적인 문장과 재미. 한 번 읽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이다.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이야기는 세계 곳곳을 누빈 본인의 경험과 수많은 참고 문헌에 기반하고 있다. 믿고 읽어도 된다는 얘기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세계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찰스 만의 다른 저서도 분명 읽고 싶을 것이다.(하지만 <<1491>>(한국어판 <<인디언>>)은 절판상태임). 일독을 강력히 권한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191471)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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