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들 -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영국왕립학회(Royal society)는 매년 그 해에 대중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과학책들 중 가장 뛰어난 책들을 후보작(6)으로 선정하여 상금(5천 파운드)을 수여하고, 그 중 한 권을 뽑아 그 해의 과학상(Royal society prize)25천 파운드의 상금과 함께 수여한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상이지만, 지금껏 수상한 작가들-빌 브라이슨, 제레드 다이아몬드, 스티븐 호킹, 스티븐 제이 굴드 등-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상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전문성과 흥미, 둘 모두 충족시키는 뛰어난 과학저술에 수여하는 상이니 만큼, 후보에 든 책들은 보통 한국에서 번역 출판된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이 책 <<완벽주의자들>>20186권의 후보작 중 한권에 선정된 책으로 - 다른 후보작 5권 중 4권은 이미 번역 출판됨(<<오해의 동물원>> <<뷰티풀 큐어>> <<안녕, 인간>> <<흐르는 것들의 과학>>) - 언제 번역되나 기다렸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가치를 설명하려다 보니,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에 대한 얘기가 주저리주저리 길었는데, 교양 과학책에 관심이 있다면 이 상의 후보작들은 하나 같이 믿고 읽어도 된다. 후회하지 않는다. 사실 윈체스터야 <<교수와 광인>> 같은 저술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작기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란 대작을 쓴 조지프 니덤의 평전 <<중국을 사랑한 남자>>로 그의 저술을 처음 접하고, 매력을 느꼈다. <<태평양 이야기>> <<크라카토아>> 등 한국에는 그의 저술들 중 역사 관련 저술이 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번 책은 과학책이다. 물론 과학 이론을 다루진 않고, ‘정밀성이란 주제로 과학기술과 기술의 발명, 발견의 역사를 잘 버무려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과학기술이라는 별개의 두 단어를 하나의 단어인 양 과학기술로 붙여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그 단어는 과학, 국가, 경제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과학을 자연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의 체계로, ‘기술(공학)’을 과학을 통해 발견된 원리를 기술적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응용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윈체스터의 이 책은 등장하는 인물이나 소재로 미루어 볼 때-제임스 와트, 증기기관, 자동차 기술, 제트 엔진, 렌즈와 망원경, GPS, 반도체- ‘기술사저술에 가까워 보인다.

 

   먼 과거, 아니 멀리갈 것도 없이 한국을 예로 들자면 기계 문명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인 구한말까지만 하더라도 정밀함은 당시의 삶과는 동떨어진 개념이었음이 분명하며 서양 기술이 들어오고 각종 기계와 기구들이 삶 속으로 들어오면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정밀성이란 단어는 저자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를 가능하게 하는 현대성의 필수 요소이다. 정밀한 기계, 정밀한 조작 등 정밀성(precision)’이란 단어는 기계(machine)와 기술(공학, engineering) 등 현대의 첨단 기계 문명을 가능케 한 핵심 단어를 연상시키기 마련이다. 정밀성은 역사적인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발명된 개념인 것이다.

 

   윈체스터는 정밀성이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그 개념이 생겨난 서양의 기술 발전의 역사를 다룬다. 18세기 항해술의 발전을 추동한 정밀한 시계의 발명에서부터, 정밀성을 측정하는 마이크로미터의 발명, 정밀성과 대량 생산에 성공한 총기 제작 기술의 개발, 로이스와 포드의 대비되는 자동차 제작 기술, 제트 엔진의 발명 그리고 현대의 반도체, 천체 망원경이라는 초정밀 기계 산업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서술과 묘사로 시간이 지나며 정밀성은 더해가고 허용 오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작아진 과정을 재미있게 설명한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기술 발전의 역사를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비결은 기술 발전과 발명 이야기의 중심이 인물이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을 이끌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실행하여 성공(또는 실패)하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정밀성을 이끄는 것이 결국 인간의 아이디어임을 잘 보여준다.

 

   ‘정밀성이 현대성의 필수 요소임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반도체. 윈체스터는 9장에서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작은 반도체는 일상 깊이 파고들어 있다.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작디 작은 부품 덕분에 인류는 스마트한 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9장의 중심 인물이기도 한 인텔의 공동설립자 고든 무어의 유명한, ‘2년마다 집적 회로의 트랜지스터 숫자가 두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은 정확했음이 드러났고, 그 법칙은 아직도 유효하며, 웨이퍼(집적 회로는 만들 때 쓰는 10cm 미만의 얇은 판) 하나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숫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나노미터는 크기가 1000배 작은, 10억 분의 1미터 크기다. 2016년 브로드웰 칩 제품군이 개발되었을 때, 노트 크기는 과거에 상상도 못 할 만큼 작은 140억분의 1미터(가장 작은 바이러스 크기)였고 각 웨이퍼에는 무려 70억 개 이상이 트랜지스터가 들어 있었다... 인텔이 만든 스카이 레이크 칩에는 사람의 눈이 사용하는 빛의 파장보다 60배 작아서 문자 그대로 보이지 않는 트랜지스터가 담겨 있다(365p).

 

   인류는 정밀성을 어느 정도까지 달성할 수 있을까? 정밀성의 한계는 과연 어디일까? 윈체스터는 6장에서 정밀성의 위험성에 대해 다루며, 2010년에 일어났던 제트 여객기 엔진 폭발 사건을 자세히 다룬다. 정밀 공학의 산물이자 성과인 제트 엔진이 폭발한 원인은 바로 날개 엔진 터빈에 들어가는 작은 파이프에 있었다. 작업 드릴의 날이 잘못 조정되어 튜브가 원주를 따라 0.5밀리미터 얇아진 것이 문제였다(266p). 정말 사소한 오차가 연결된 부품에 영향을 미치고 문제가 누적되어 엔진 폭발까지 이른 것이다. 기술 공정에 투입된 인간의 실수 탓인가? 그렇다면 모든 공정을 초정밀 기계가 담당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 실수가 전혀 발생하지 않을까? 만약 그러하다면 정밀성은 그 한계의 끝이 없지 않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윈체스터의 말대로 기술이 더 작은 부분을 향해가면 사물의 본성이 흐릿해진다는 양자 영역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9장까지 주로 정밀 공학의 눈부신 발전에 잎이 딱 벌어졌다면 마지막 10장에서는 정밀성을 다시 반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윈체스터는 일본의 시계 제조사 세이코견학 경험을 바탕으로 정밀성을 제고하고 있다. 그가 세이코에서 주목한 것은 기계에 의한 자동 공정 시스템에 의해 하루에 25천 개의 쿼츠 시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닌, 스물너댓 명의 숙련공들이 수공으로 만들어내는 하루에 120개 정도만 만들어내는 수제 시계 제작 과정이다. 일본에서는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수공예품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일본에서 또 하나 주목한 것은 자연의 힘이다. 쓰나미에 의해 피해입은 일본 어느 지방의 정밀 기술과 기계는 자연의 정밀하지 하지 않은 힘 앞에서 어떤 정밀성도 보여주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윈체스터는 인간이 정성스레 만든 정밀한 물건에 대한 인정(더 멀리 나아가면 숭배)’정밀하지 않은 자연에서 기계에 의한 현대의 초정밀성의 한계를 느낀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이 매우 설득력 있지는 않았다. 초정밀 공학은 이미 인간의 힘을 넘어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싶다. 현대를 가능하게 한 정밀성의 탄생과 진보, ‘정밀성의 현주소와 한계가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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