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팡세 포이에시스 2
전종호 지음 / 중앙&미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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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팡세

2024.9.18.() 10:00

산을 좋아해 집 근처에 있는 산에서 시작해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해내며 열흘 간의 오르내린 이야기를 시, 사진과 함께 엮었다. 걷는다는 것은 인생과 같다.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라고 곧기도 하고 구불거리기도 하고, 계곡과 삭도를 걷기도 한다. 특히 히말라야는 고도가 높아 고산병과 눈사태라는 복병이 있고, 무엇보다 기상 상태의 변화가 중요하다. 온갖 히말라야 트레킹의 어려움은 셀파, , 롯지의 주인들이 건네는 따뜻한 안내, 눈부신 풍광과 신비로운 절경, 범접할 수 없는 설산을 보는 기쁨으로 상쇄한다.

히말라야 팡세는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구별해 보는 데, 저자는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빚을 져 절망적인 상황을 잊으려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이 보이니 걷는 것, 산에 오르고 내리는 것이 행복이라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이다. 행복은 고통을 이겨냈을 때 참 행복이다.

히말라야에 가보지 못한 처지에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코스와 트레킹과 등반을 기록한 책을 메모로 남긴다. 안나푸르나(ABC), 랑탕, 쿰부 히말라야(EBC)3대 트레킹 코스다. 저자는 안나푸르나와 랑탕 코스를 다녀왔다. 거칠부의 <나는 계속 걷기로 했다>, 신한범 <일생에 한 번은 히말라야를 걸어라>, 임현담 <히말라야 있거나 없거나>

 

시 산문집이기에 본문에 소개한 시를 한 편 일부 옮긴다

 

눈길

-툴레샤브르

 

걷는 길은 보이는 길과 같지 않다

보기에 마을은 지척인데

계곡을 끼고돌고 돌아

산을 오르락내리락

걸어가는 길은 몇 시간이다.

 

사는 일 또한 이와 같아

삶의 길은 항상 단순하고 명쾌하나

살아가는 일은 쉬이 길에서 비끼고

걸음은 자꾸 한 자리에서 맴돌 뿐

뻔한 목표에도 닿기가 쉽지 않다

 

눈 덮인 먼 산은 높아도 부드럽고

소란한 세상도 눈 내리는 날은

한없이 평화로운데

홀로 고개 넘어가는 눈길

마음은 바쁘고 자꾸 발은 빠진다

 

우리네 지난 날 같이

빠지고 넘어지고 잘못 드는 길에

오늘도 귀를 때리는 눈이 내린다

(마지막은 구름을 밀어낸 바람이 해를 데려온다고 쓰고 싶다)

 

P.S. 속표지에 202310. 31일 친구이자 미래드림진로센터 대표(CEO)가 선물한 책이다. 너무 늦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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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료전쟁 가일스 밀턴 시리즈 1
가일스 밀턴 지음, 손원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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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료 전쟁(NATHANIEL’S NUTMEG)

2025. 9. 16() 22:00

NUTMEG는 육두구라는 향신료다. 17세기에 동남아시아 몰루카 제도의 여러 섬에서만 생산했다. 고기를 주로 먹는 유럽인에게 향신료는 중요했고, 흑사병 증세를 완화할 수 있다는 의사들의 말에 수요가 늘어났다. 중세 시대에 아라비안 상인과 콘스탄티노플 상인을 거쳐 베니스 상인의 손아귀에 들어온 향신료(육두구, 정향, 후추, 계피)는 유럽에서 고가에 팔렸다. 가일스 밀턴의 NATHANIEL’S NUTMEG는 향료 전쟁으로 번역한다. 향료 전쟁은 향신료를 구하는 루트를 개척하는 과정에 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각축을 벌이는 과정을 다룬다. 각 나라들은 자국 항구를 떠나 2~3년씩 걸리는 향신료를 구하는 항해에 도전한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자본이 투자됐다. 그럼에도 계속된 몰루카 제도로 향하는 상선들은 막대한 이익을 얻으려는 투자가와 상인들의 욕심을 반영한 것이다.

 

베니스 상인의 수익에 탐이 난 유럽 여러 나라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건너는 항로를 이용했고, 항로에 관한 지식이 부족했던 시기라 북극해를 통해 동양으로 가려는 시도도 반복했으나 많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실패한다. 북동항로를 찾으려는 노력은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흥미를 갖고 투자한다. 네덜란드는 상인들을 주축으로 3회에 걸쳐 항해에 나서 바렌츠해까지 도달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네덜란드 지도 제작자 메르카토르가 제작한 최신지도가 있었다. 영국은 카라해까지 가봤지만 실패했고, 일부는 얼음에 갖힌 배에서 탈출하여 모스크바를 거쳐 돌아오기도 했다. 당시에 시베리아의 오브강까지만 가면 오브강을 따라 바다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고 믿었다. 이를 거쳐 남을 인도까지 갈 수 있다고 여겼다.

 

몰루카 제도로 가는 일반적인 방법은 유럽 항구를 떠나 카나리아 제도, 시에라리온, 세인트헬레나섬, 희망봉, 마다가스카르 혹은 모리시어스, 소카트라(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오늘날 소말리아), 니코바르 군도, 수마트라의 아친, 자바의 반탐, 런섬에 이르는 항로를 이용했다. 가장 큰 문제는 대서양에서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적도를 지날 때 무풍지대가 있어 괴혈병과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신선한 과일을 섭취해야 괴혈병을 극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자카르타를 바타비아로 이름 지은 까닭은 네덜란드에 처음 정착한 부족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와 영국은 방위조약(Treaty of Defence)을 맺고 네덜란드가 먼저 진출한 몰루카에서 영국이 3분의 1의 권한을 갖되 스페인과 포르투갈로부터 이 지역을 방어하는 데 적극 협조하기로 약조하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일본인 용병을 데리고 동남아시아 제해권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었고, 실제 전투에서 일본인 용병이 활약하였다.

 

몰루카 제도 중에서 런섬만 영국이 장악해 원주민과 협력하여 육두구를 유럽으로 실어 날랐다. 여라 정황 속에서 네덜란드는 영국 무역상과 기지를 몰아내는 전쟁을 벌였다. 런섬에서 본국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여건 속에서 영국 무역상 대표였던 나다니엘 코트호프는 인간성과 용기, 담대함과 충성심으로 3년을 버텼으나 1656년 겨울 영국 동인도회사는 몰루카 제도에서 손을 들고 말았다. 대신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 대륙에서 화약의 원료가 되는 초석과 실크 수입에 중점을 두며 현대적인 회사로 거듭난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런섬을 둘러싼 전쟁에 대한 배상 문제로 밀고 당기는 협상을 했지만, 결말을 보지 못했다. 이후 영국 선단은 대서양 건너 맨해튼을 공격하고 네덜란드에 항복을 제의했고, 결국 1667년 영국은 몰루카 제도의 런섬을 되찾는 대신 맨해튼을 취했고, 네덜란드는 맨해튼을 내주고 런섬을 계속 지배한다. 나다네일 코트호프의 런섬에서 치렀던 외로운 전투와 저항은 영국의 역사에서 잊혔다.

 

<()생각의 나무>에서 본문 560쪽 분량으로 2002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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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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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2024.9.15.() 15:00

에피쿠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쾌락주의 철학자다. 쾌락으로 번역된 단어가 불편한 점이 있다. 역자는 쾌락을 즐거움으로 번역해도 된다고 밝힌다. ‘쾌락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괴로움이 없는 것이다.

 

그의 철학을 따르는 자가 많았듯이 비난하는 자도 많았다. 부모에 대한 감사, 형제에 대한 친절, 지반 노예와 함께 철학하는 태도와 유언에서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파악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학교 안에 있던 정원은 토론의 장이자 숙소였다. 이곳에서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가르쳤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규범론, 자연학, 윤리학으로 구성한다. 규범론은 진리의 기준, 1원리, 철학 체계의 기본 요소를 다룬다. 진리의 기준은 감각’, ‘선개념’, ‘느낌인데 느낌은 본성에 따른 것으로 쾌락과 고통으로 나눈다. 자연학은 생성과 소멸, 자연을 다룬다. 윤리학은 선택과 회피, 인생의 목적을 다룬다.

 

책은 서신을 누구에게 보냈는가에 따라 구분하는 데,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서신은 자연철학에 관하여 쓰고 있다. 우주는 물체와 허공이다. 우주는 물체들의 수와 크기에서 무한하다 등을 서술하고 원자를 말하는 유물론이다. 피토클레스에게 보낸 서신은 천체 현상에 대하여 논한다. 천체 현상을 다루는 목적은 오직 평정심과 확고한 신념에 있다고 말한다. 자연학을 탐구할 때는 현상들이 소리치는 것을 따라야 한다. 비이성적인 것과 근거 없는 생각을 비워야 신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각주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지구는 구형이 아니라 육면체라고 생각했다(p.81) 공전, 자전과 같은 회전 운동, , 일식과 월식, , 천둥, 벼락, 번개, 태풍, 지진, 우박, , 이슬, 서리, 얼음, 무지개, 달무리, 혜성, 별의 움직임, 유성이 왜 생기는지 여러 가지를 나열한다. 알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현자론은 인간의 삶에 대하여 말한다. 스토아학파는 세계를 이루는 물질과 이성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정념과 감정에서 해방되어 신적 이성인 로고스를 따르는 삶인 아파테이아를 행복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금욕적이고 이성적인 삶을 추구했다면, 쾌락주의에서는 자연학의 결과조차도 마음의 소란에서 벗어나 평정심에 도달하는 아타락시아를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결과적으론 상반된 현자론을 제시 한다.(p. 99)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서신에서 철학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해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라 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 주금은 우리에게 오지 않고, 죽음이 우리에게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며. 행복한 삶이란 몸과 마음의 평정심이고(p.111) 쾌락은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 쾌락은 몸의 고통이 없고 마음에 괴로움이 없는 것이다. 필연에 의해 일어나는 일은 우리에게 아무 책임이 없고, 우연에 의해 일어나는 일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며,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은 비난과 칭찬이 k라 붙는 것은 당연하다(p.115).

 

주요 가르침은 쾌락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에피쿠로스 어록 메서 몇 가지를 옮긴다.

젊은이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았던 노인을 행복하다고 해야 한다. 욕망에 직면할 때마다 이렇게 질문하라. “이 욕망이 이루어진다면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평정심을 지난 사람은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해제에 고대 그리스 철학을 시기별로 구분해 설명한다. B.C 585 밀레투스의 탈레스가 활동하던 시기부터 A.D 529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아카데미아를 폐쇄할 때까지를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 본다. 1기는 이오니아 지방을 중심으로, 2기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3기는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으로 시기를 구분하고 있다. 기원후 1~2세기에는 로마의 전통적 가치에 더 부합했던 스토아학파 철학에 밀려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3세기에는 기독교가 로마 전역에 확산하면서 급속히 쇠락했다가 5세기에는 거의 소멸되었다.

평정심을 스토아학파에서는 아파테이아’, 에피쿠로스학파에서는 아타락시아란 용어를 구분해서 쓰나 현재는 평정심을 학파별로 구분하기보다는 아타락시아를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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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 - 당신이 몰랐던 반쪽짜리 한국사
최중경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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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

2024.9.14.() 22:17

책은 전략적으로 사고하지 못해 한국 역사에 헛발질을 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때로는 전술에서 승리가 전략적 승리로 연결되지 못했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삼국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15개 사례에 문제를 제기하고 아쉬운 점을 드러내며 전략적 사고를 통한 발전을 기대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교실에서 역사 수업을 사실 암기보다 문제 의식을 가질 소재를 찾아 토론하자고 한다. 특히 역사 속에서 실패한 사례를 분석하고 토론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15가지 사례를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협공을 받을 때 고구려는 백제를 돕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신라의 배반을 눈치채지 못했다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일어서는 중국 대륙혼란기에 요동지역을 정복할 수 없었는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를 벗겨버린다.

명나라가 청나라로 교체될 때 조선의 외교력은 왜 정세 판단에 미숙했는가?

인조의 무책임함이 병자호란을 만들었고, 정예를 남한산성에 가둔 것은 실수였다.

4. 조선은 왜 해금정책을 실시해 해외 정세에 눈을 감았는가?

그정 명나라를 따라한 것이다. 후과가 크다

5. 성리학적 질서가 고려와 조선 초기 과학기술을 어떻게 말아 먹었는가?

농자천하지대본은 한나라 때의 케케묵은 사상이다.

6. 재조지은의 망령이 현대에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재조지은은 근대화까지 막았다.

7.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친 것은 틀렸다고 하지 마라

8. 이순신은 과연 민족 성웅인가? 저자는 이순신 살아서 한양을 뒤집었다는 가정에서 논한다.

9. 계백 장군 이야기는 진실인가?

10. 명은 조선에 왜군을 막아준 것에 고마워 야 하지 않는가?

11. 19세기 조선이 미국, 영국과 우호적 관계를 설정할 수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12. 군주의 배신으로 방관자에서 조선은 희생양이 되었지 않은가?

13. 일본이 조선을 넘어섰음을 알고 있는가?

14. 상해 임시 정부는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15. 식민지 근대화론은 왜 틀렸는가?

 

13장 내용에 논리적 모순이 보인다. “세종대왕 때 있었던 3차 정벌에서 조선 조정에 항복한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가 대마도를 조선 땅에 편입시켜주길 요청한 사실은”(p.250)과 각주 조선 조정은 원래 대마도가 경상도 땅이었으니 경상도에 편입시키겠다라고 했고 대마도주 사다모리는 경상도에 편입되어 있었던 적은 없다라는 입장을 취했다.”가 배치되는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편입된 적은 없다는 사실과 편입시켜달라는 요청이 편입된 적이 없으나 편입시켜달라는 요청으로 볼 수도 있다.

 

15장에 식민지근대화론을 잠재우는 종결자로 민족 분단과 몇 가지 논리적 근거와 사실을 열거하고 있지만, 책을 읽어가며 행간에는 저자가 친일학자의 논리, 뉴라이트 계열의 논리와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조금 찜찜한 구석이 있다.

첫째, “정한론은 학습의 대상이다”(p.225) “삼국간섭은 일본이 조선을 취하는 데 있어서 아직 갈 길이 멀다”(p.233)는 기술, 빈번하게 등장하는 식민지였다는 서술, 일본이 천황제를 토대로 막부와 다이묘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할 수 있었다는 일본의 봉건제도가 근대화의 기초였다는 일본 학자의 주장과 같다.

 

내용이 앞뒤 혹은 중간에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이미 발표한 별도의 글을 엮다 보니 그러리라 여긴다. 일부 불편한 점도 보인다. 상해 임시정부가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거나 이순산 장군이 살아서 한양으로 가 혁명을 했다면 어떨까라고 가정하며 내용을 전개하는 부분은 편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역사에서 문제 의식을 갖고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학교에서 토론을 통해 문제의식을 인식해 보자는 제안은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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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국지 -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일본 인문지리학 규장각 대우 새로 읽는 우리 고전 14
이덕무 지음, 박상휘.박희수 옮김 / 아카넷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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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국지(蜻蛉國志)

2024.9.8.()

부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일본 인문지리학은 당시에 일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느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지금이야 서민도 책은 물론 인터넷과 일본 방문이란 직간접 방법으로 일본을 이해하지만, 조선 지식인은 서적에 의존해 일본을 이해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일본 관련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본다.

 

청령국지의 저본은 청정관 전서이며 흥미로운 곳을 뽑아 번역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덕무는 일본 의사(데라지마 료안)가 쓴 화한삼재도회와 조선 문인이자 이덕무의 친구인 원중거가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 쓴 화국지를 토대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 강항의 간양록, 에도 학자 가이바라 에키켄이 쓴 화한명수를 참고하고 내용을 취사선택하였다. 여기에 자신의 의견인 안설을 붙이는 방식으로 청령국지를 지었다.

 

새로운 것은 책 제목인 청령국지다. 나라의 지형이 잠자리를 닮아 잠자리국이라 칭한다. 이는 일본인의 시각이다. 욕실 문화와 용변 본 후 반드시 손을 씻는 일상 습관을 높게 사는데 덥고 습한 기후 조건이 만든 습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조선 사절에게 일본 요리는 너무 달고 싱거웠고, 일본인에게 조선 요리는 너무 짜고 매웠다.

 

원중거는 임진왜란 당시 명군이 조선을 도운 것은 조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명나라의 안전을 고해해서였다는 시각을 보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관한 인물평은 승자를 과도하게 미화한 것일지 모른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정복한 지역의 성과 재물을 수하에게 나누어 주었음을 소개한다.

 

육식을 제한하는 구체적인 묘사가 보인다.

집짐승(, , 돼지, , , )을 먹지 않으니, 풍속에서 도살을 꺼려서 개와 말이 죽으면 모두 매장하고 혹 병자를 위해 약으로 쓰려하면 소를 절벽에 세워두고 밧줄로 끌어내려 떨어뜨려 죽인 뒤 고기만 가져다 쓰고서 나머지 부분을 묻어준다. 그러므로 육축을 기르는 경우가 적다.”(p.143)

 

청령국지를 읽으며 이덕무가 이서구와 유득공에게 서문을 부탁했다는 점이다. 친구에게 서문을 부탁하는 당시 관례와 서문을 쓸 만한 능력을 지닌 친구가 주변에 있음이 부럽다. 요즘은 분야의 권위자나 교수 등 유명 인사에게 서문을 의탁한다. 두 가지 조건이 안 되는 사람에겐 더욱 부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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