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쓰기 날짜 없는 일기 1
이수명 지음 / 난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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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쓰기

2025. 8. 2()

5시경 눈이 떠지니 몸에 밴 습관의 힘 덕분이다. 30여 분을 누운 채로 두 다리를 올려 자전거 페달을 밟는 동작과 상체와 하체를 반대 방향으로 비트는 동작을 반복하고 손을 비벼 눈두덩이에 온기를 전해 몸과 정신을 깨운다. 어젯밤, 지난주에 서양 경험 철학을 공부했으니, 머리를 식힐 겸 눈을 뜨면 산문 읽기를 시작하자 했다. 시인 이수명이 지은 내가 없는 쓰기를 펴두고 커피를 끓여 책상 위에 놓는다.

 

작가는 문학 일기라고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남의, 더구나 시인의 일기를 읽어야 할 당위는 없다. 일기를 출판해 판매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걸 읽어야 하나!”라는 선입견은 나름은 잘못이 아니다.

 

작가가 쓴 책머리에를 읽는다.

1년을 지내며 자연과 자신의 변화를 느껴보는 경험은 의미 있겠다고 판단한다. 읽어보니 작은 것에 눈길을 주어 쓴 글이지 거대 담론은 다루지 않는다. 비문학에 주된 관심을 두는 내게 이런 글도 한 번은 시도해 보면 좋겠다. 감성을 살리고 주변을 다시 바라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테다. 그 일이 쉽지 않겠지만, 이런 글을 쓰면서 관련된 문장과 책이 떠오르는 습성을 깨는 시도가 될 거다.

 

눈을 떠 살다가 눈을 감고 잠자기를 시도하는 시간까지를 적었으니 일기다. 반복되는 일상, 루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하루살이에서 눈에 띄는 대부분이 일기의 소재이자 화두다.

 

햇살, 바람, 소리, , 촉감 등은 당연히 일기를 구성한다.

층간소음, 책상 닦기, 새소리, 동네 산책, 두통, 루틴이 된 지나가는 날들, 불안과 불확실성, 밤 산책, 연둣빛 산색, 연필, 골목 쓰레기, 창문 열기, 전화 오는 소리, 거울과 얼굴, 비의 기척, 방의 구석,

 

(137쪽을 읽다가 시인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궁금해 검색한다)

 

잠과 단절, 손걸레와 물티슈, 토막 꿈, 날씨, 모든 날이 고유하다, 더운 날들, 24시간 무인카페, 무작정 걷기, 방과 벽지, 청계천 따라 걷기, 냄새도 소리도 없는 어둠, 저물녘, 매미 소리와 여름의 절정, 예전에 쓴 글, 폭우, 붙들려 있으나 나와 무관한 세계, 더위가 꺾인다는 말은 슬픈 말이라지만, 내겐 기대라는 말이라서 언제든 내뱉을 수 있다. 청소와 치우기, 창밖의 아이들 소리, 실패에 대한 해석(p.201), 자신은 집안의 가구, 아침마다 날씨 확인, 잠 못 이루는 밤, 가을 낙엽, 폐기물, 바퀴 달린 책상용 의자, 아파트 내부의 공사, 안 입는 옷, 코트 꺼내 입기, 앞 동 이사, 겨울 햇살, 겨울에 끓이는 생강과 대추차, 겨울 오후 4, 노인의 길에 들어서는 날, 책상 달력, 태만을 향유하는 겨울, 한 해의 마지막 날 등

 

손으로 받아 보지 못한 머리카락이란 문장에서 나는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내 손으로 받아 보려 하지 않았음을 생각한다. “완독의 불가능이라는 글은 내 읽기와 너무 다르다. 완독하고 독서 노트를 써 두어야만, 책 한 권을 읽었다는 기준을 가졌음으로. “기다림의 목적은 어리석음으로 확증된 현기증을 통해 자신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란 문장을 여러 번 읽는다. 공감해 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언어는 인력이기보다는 척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문장은 언어란 구분하기의 시작이란 점에서 공감한다. “문학이 아포리즘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문장이 낯선 까닭은 비문학에 관심을 주기 때문이리라. “어떤 작가가 좋은 작가인가라는 기준에서 이수명 작가의 기준을 본다.

 

내가 없는 쓰기와 같은 유의 글을 쓴다면, 숙면과 안대,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 나오는 배, 이형기의 낙화, 황현산의 트윗 글 모음 등을 소재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간다. 내가 없는 쓰기감정이나 지적인 자극이 없는 글이다. ‘한 번은 시도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토요일 오후다. 34~35도를 이어가는 여름 낮 기온 탓에 밖으로 나가기보다 아파트 브릿지에 있는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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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반드시 낫는다 - 수많은 암 환자를 진료한 양한방 협진 안내서
조기용 지음 / 모아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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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낫는다

2025.7.19.() 09:00

90년대만 하더라도 암에 걸리면 곧 죽는 줄로 알았다. 암 수술을 했다면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지레 겁을 먹고,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2025, 암으로 사망한 부고를 받기도 했지만, 주변에 수술 후 비교적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부모님이 자연사에 가깝게 하늘나라로 가셨기에 내게도 암은 유전적 요인이 적을 거라 믿고 산다. 끊지 않은 담배 탓에 가끔 폐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지만 생활하며 곧 잊는다.

, 반드시 낫는다를 선물로 받아 읽는다. 의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 독서가로 읽다 보니 비판적으로 읽기는 어렵다.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뿐이다. 다만, 저자가 운영하는 한방병원에서 치료 비용으로 얼마를 요구할지는 의문이 남는다.

 

INTRO에서 암 판정을 받고 선택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갑자기 찾아온 암 앞에서 절망하지 말자, 제대로 알아야 암을 이길 수 있다며 치료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 한다. 더불어 치유의 여정에서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며 저자가 운영하는 한방병원의 협진 프로그램과 진료 개요를 밝히고, 진료 전 내 몸에 독소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체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암이 발견되면 수술해야 한다는 상식에 가까운 일은 추후의 일이다. 27개 독소 점검표에서 10~15개 항목 이상이라면 독소를 해독하는 것이 좋다는 데 다행히 2개만 해당한다.

 

한의학에서는 병을 없앤다거나 고친다고 하지 않고 다스린다라고 표현합니다”(p.27)라는 문장으로 암을 대하는 저자의 관점을 본다. 암 환자의 대부분은 몸의 구조가 틀어져 있다고 보고 머리뼈와 턱관절을 이해하기, 척추와 면역계는 긴밀하게 관련되니 바른 자세를 생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암 치료는 인체 구조를 이해하고 몸 전체를 교정하여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된다”(p. 44)라고 말한다. 암 치유의 목적은 몸의 재건에 있다는 선언에서 한의학의 입장을 본다. 암 치료의 첫 단계는 틀어진 몸을 바로잡는 것이다.

 

암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과로와 스트레스, 약물남용(우리는 건강보조식품을 포함해 약을 많이도 먹는다)에 비중을 두고 논리를 풀어간다. 저자는 병원의 암 치료가 오히려 치유를 저해한다고 말한다. 암 치료를 진행할수록 신체 면역력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항암제의 사용으로 정상적으로 생성되어야 할 백혈구와 혈소판이 감소한다. 암 치료는 건강한 세포 생성도 방해하니 완전한 치료는 결과 제거가 아닌 원인 제거에 있단다.

 

해독을 통해 혈액을 정화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간을 통한 해독 방법, 신장을 통한 해독 방법, 대장을 통한 해독 방법, 피부를 통한 해독 방법을 소개한다.

치료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치유를 방해한다며, 암진단은 사망선고가 아니고 암 치료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일 수 있다고 위안한다.

 

책의 중반부에 여러 나라에서 의학이 통합적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소개한다. 서양의학이 외과 수술 기술, 병리학, 공중보건, 예방의학, 약물치료 등으로 눈부신 성과를 이루었음을 소개하며, 인간의 건강과 질병의 개념을 하나의 전체로 보지 못하고 부분으로 보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 의료계에서 명상, 해독, 자연치유가 인기를 얻고 인체는 부분이 아닌 전체로 보려는 경향성을 가진다. 인도 고전 의학 아유르베다도 전체성, 인간과 자연의 조화, 개인과 집단의 조화를 강조하기 때문에, 건강이라는 것도 결국은 생명의 근원과 조화를 이루는 상태여야 한다고 하였다. 만성질환 개선으로 삶의 질을 향상하려 한다. 일본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생태주의 의학에 관심을 두고 증상이란 정상적인 과정이며 약물치료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해독과 면역에 관한 관심이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후반부에 소개하는 암을 낫게 하는 핵심 요법의 실체에는 양생법(골격, 피의 상태를 살펴 맞춤식 식사와 처방을 내리는 생활 습관 교정), 턱관절 교정(이 부분은 생소하다), 추나요법(어긋나 있거나 뒤틀린 뼈와 관절, 근육을 밀거나 당겨 바른 자리로 돌려놓는 치료법), 청혈요법(간 해독 요법)과 청장 요법(항문으로 약물을 투여하는 방법), 온열요법(암과 각종 질병은 체온이 낮아진 냉증에도 그 원인이 있다 p.117), 두시요법(두시는 검은콩을 삶아 발효시킨 한약재의 일종이다), 풍욕(속옷까지 모두 벗고 전신을 공기에 노출하기 등), 도포요법(한약을 미세분말과 발효 처리로 배합하여 넓은 피부 표면에 바르는 방법) 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 반드시 낫는다는 치료 체험인의 사례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도 함께 구성하고 있다.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없다. 모든 질병을 낫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확한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아주는 의사를 만난다면 질병은 적극 치료된다는 희망을 품는다. 따라오는 비용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책이 소개하는 방법과 한방병원을 찾아보는 일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가족,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암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인류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질 만큼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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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이 밝힌 정신개벽의 길 - 일상에서 찾은 원불교의 영성 종교문해력 총서 5
장진영 지음 / 불광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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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찾은 원불교의 영성

소태산이 밝힌 정신개벽의 길

2025. 7. 16()

유년에 교회에 몇 번 나가고 소풍으로 절에 다녀 본 경험 외에 특별히 종교, 특히 유일신에 대한 믿음은 없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종교에 관해 알아보고 싶을 때 종교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는 기획 의도로 출판된 [종교 문해력 총서] 다섯 권을 읽는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라는 세계 종교와 민족 종교인 원불교를 다룬다. 원불교는 불교의 한 분파이겠거니 생각하고 관심 두지 않았다. 원불교 대종법사 박중빈, 소태산이 밝힌 정신개벽의 길은 종교 문해력 총서 중 다섯 번째다. 소태산은 정신개벽을 제시하며 한국의 민족종교에서 세계 보편종교를 지향했다.

 

첫째, 불교와 원불교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읽는다. 둘째, 원불교가 추구하는 교리와 핵심은 무엇인가? 셋째, 소태산이 살았던 시대상과 소태산은 어떤 인물인가?

소태산은 물질이 개벽된 시대에 인류는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고 있고 세상은 병들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 해법으로 정신개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소태산의 영적 여정은 이 뭐꼬를 통한 이치적 해법만이 아니라 이 일을 어찌할꼬하는 실천적 해법까지 포함된 것이다. 나아가 불교혁신을 실천하였다. 소태산은 스스로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일렀다. 소태산의 처방은 일원상(一圓相) ‘으로 제시된다. 이 자리는 우주의 근원이자, 우리의 본성이자, 성자들의 깨친 진리이다.

 

첫 번째 문제의식, 불교와 원불교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붓다는 모든 것이 고통(괴로움)이라고 선언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해탈이라 하고 길을 찾는다. 소태산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은혜 아님이 없다고 선언한다. 붓다는 우리가 접하는 현상세계는 모두 변하는 것(無常)이며, 무상하기에 불만족스러운 것()이며, 실체라 할 만한 것이 없음(無我)을 밝혔다. 사성제에서 모든 것이 괴로움()임을 선언했다. 소태산이 바라보는 현상세계는 그냥 낱낱의 현상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연기된 하나의 법계이다. 생멸 변화하는 현실 세계의 모든 존재가 근본적으로 큰 은혜, 즉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은혜가 베풀어지는 모습을 잘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하자는 지은보은(知恩報恩)의 관점에서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사례로 제시한 부안 변산 실상사에 불공하러 가던 노인 부부의 일화(정성)를 전한다. ‘산 부처에게 공양하라는 실지불공(實地佛供)의 사례다.

 

두 번째 문제의식으로 원불교가 추구하는 교리와 핵심은 공동체를 중시하여 남녀를 동등하게 보고 단이라는 조직으로 교단을 운영하였고, 출가와 재가를 구분하나 차별을 두지 않았다.

 

원불교 교리의 핵심을 담은 교리도를 제시한다(p. 243).

원불교는 공동체를 삶의 터전이자 영적 기반으로 중시한다.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네 가지 요건을 사요로 밝힌다. 자력양성(自力養成)은 정신의 자주력, 육신의 자활력, 경제의 자립력을 포괄한다. 지자본위(智者本位)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잘 배우자는 의미이고, 타자녀교육(他子女敎育)은 내 자녀와 남의 자녀를 구분하지 말고 누구든지 배울 수 있도록 평등한 교육여건을 만들어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공도자숭배(公道者崇拜)란 공동체마다 그 공동체에 헌신하는 이들을 잘 받들어 모시자는 것이다. 사요는 21세기에도 유의미한 실천윤리라고 할 수 있다.

소태산은 일상생활에서 함께 공부하고 사업하는 최소 단위로 단()을 운영하였는바 단원이 직접 참여하는 통치의 공간이었다. 1931<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에 따라 단을 구성하였다. 붓다가 승가를 통해 법륜을 굴렸듯이, 소태산은 이 단을 통해 그 뜻을 펼치고자 했다. 단은 출가만의 조직도 재가만의 조직도 아니었다. 누구든 앞으로 공부와 사업을 위해 참여해야 할 최소의 조직이었다, 단을 통해 공부와 사업, 수도와 생활을 매개했으므로 단은 회상(會上, 대중이 모인 법회) 운영의 구심체이자 실행체였다.

소태산은 일찍부터 남녀권리동일을 주장했다. 타원이라 이름지어 9명의 여성 지도자를 인정하고 양성한 일은 근대라는 시대적 요청과 개벽 시대의 주체로서 여성의 역할에 주목하고 이를 제도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구현하려 하였다.

소태산은 세간(재가)과 출세간(출가)의 구분은 하지만, 차별을 두지 않았다. 특히 공부와 사업, 법계(法系) 등에 주객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공부(수도)의 처소도 신자가 많이 있는 곳에 두도록 했다. 직업을 통해 각자의 의식을 해결하도록 했으며, 결혼은 자의에 맡겼다. 출가와 재가에 상관없이 공부 정도에 따라 법위를 얻었고,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게 했다.

1943년 소태산의 제자들이 중진 간부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정산을 후임 종법사로 추대하였고, 정산은 일제 말기와 해방 전후의 혼란기를 이겨내고 원불교의 교명을 대외적으로 선포하였다. 불법연구회는 선포 이전에 쓰던 이름이다. 정산 송규(원불교 2대 종법사, 재임 1943~1962)는 해방 이후에 어떤 정치가 보다 빨리 <건국론>을 지어 정치요인들에게 전했고, 해방 이후 귀국한 동포들을 위한 구호 사업인 전재동포구호사업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세 번째, 소태산이 살았던 시대상과 소태산은 어떤 인물인가?

소태산은 무엇을 모르는가?’ 대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고민을 하였다. (P.44) 11세부터 만 4년을, 햇수로는 5년을 기도했다. 10대 소년이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오랜 기간을 한결같은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시기에 일심 정력을 얻게 되었고 이후 큰 깨달음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 11세 연산인 유성국과 이인명은 훗날 소태산의 아홉 제자 중 한 사람이 된다. (P. 53) 소태산의 대각일성으로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응보 되는 이치가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P. 73) 소태산이 맨 먼저 했던 일은 조합을 결성하고 첫 사업으로 법성포로 향하는 와탄천의 조그만 강줄기(보은강) 주변으로 갯벌에 언을 막아 논을 만드는 간석지 개간 사업이었다. 소태산은 3.1 만세운동의 외침을 묵은 세상을 떠나보내고 새 세상을 열어가는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소리라 했다. (P.97) 소태산의 깨달음과 영적 지향은 개벽과 불법의 만남, 즉 개벽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불법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어우러진 것이다. (P. 117)

 

덧붙이는 잡다

수운 포덕 이후 동학 세력이 급속히 확산하자, 이에 놀란 영남 유림이 크게 반발했다( P. 38)

원불교에서는 법신불 일원상을 모신 곳을 대각전이라 한다(P.124)

원불교 신자라면 누구나 암송하고 있는 원불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은 <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이다 (P. 129)

실지불공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 어떤 일을 당하든 그 대상과 상황에 맞게 정성을 다하는 모든 행위 그 자체이다(P. 158)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모두 (ego)’자신의 욕심 때문이다. 를 벗어나 일원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p. 159)

불법연구회 공동체는 수도아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로서 면모를 갖추고자 백방으로 노력했다(p. 187)

1930년대 중반 불법연구회는 조선총독부 촉탁 일본인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조선의 풍수를 지었다.)의 관점에 따라 유사종교라는 명분 아래 불법연구회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본격화했다(p.225)

1937810일자 신문에 불교혁신 실천자 불법연구회 박중빈씨라는 제목의 기사는 박중빈을 조선불교사상에 루터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했다(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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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를 위한 변명 - 무함마드에 대한 우리의 오만과 편견에 관하여 종교문해력 총서 4
박현도 지음 / 불광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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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에 대한 우리의 오만과 편견에 대하여

이슬람교를 위한 변명

2025.7.5.()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세상사, 역사, 문화를 서구의 관점이 아니라 나만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마음에 이슬람교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나아가 인도 철학자 호미 바바를 만나 탈식민주의 문화이론을 접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과 새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놈 촘스키의 생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눈을 뜨게 되었다. 특히 이슬람교도의 관점에서 내놓은 타임 안샤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졸저 별일 없어도 읽습니다의 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지식을 얻었다. 종교 문해력 총서 4 이슬람교를 위한 변명은 서강대 유로메나 연구소 박현도 교수가 애정을 갖고 쓴 이슬람교 안내서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고 메모한다.

 

무함마드의 삶

전승에 따르면, 할아버지와 숙부의 품에서 자란 고아였던 무함마드는 25세에 40세의 부유한 과부 상인 카디자의 청혼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슬람에서 40성숙’ ‘완성이란 의미를 지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닐 것이라 한다. 둘 사이에 딸 넷과 아들 줄을 두었다. 예언자의 소명을 받기 전에 다신교 신앙 관습을 따랐을 것이나 40세 되던 해에 메카 근교 히라산 동굴에 가서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유일 신앙을 지닌 이슬람교의 최후의 심판 사상은 사람들에게 현세를 올바르게 살고 경건하게 살 것을 요구하고, 이러한 삶은 결국 사회정의 의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약자와 어울려 살며 내세를 준비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믿는 자에게 요구한다. 무함마드의 이슬람 신앙 운동이 아라비아를 통일하면서 다신교의 순례가 유일신교의 순례로 바뀌었다. 헤지라 이후 메카를 평정한 무함마드는 다시 메디나로 돌아왔고, 632년 세상을 떠났다. 무함마드는 혈연 중심 부족 사회를 신앙 중심 사회로 바꾸었다.

 

무함마드를 이어서

무함마드 사후 예언자를 대신하는 정통 칼리파 4인에 관한 자세한 서술(p.84~93)은 신앙으로 묶인 사람들이 선출된 것이다. 아부 바르크는 무함마드의 동료이자 장인(어린 아내 아이샤의 부친)이었고, 우마르도 동료이자 장인이었다. 우스만은 무함마드의 겹사위였고, 알리는 사촌 동생이자 사위였다. 4대 칼리파인 알리가 살해된 이후 세습으로 승계한다. 순니 무슬림은 정통 칼리파 4명을 모두 존경하나 시아파는 알리만 인정하고 따른다. 시아에게 알리는 단순한 정치적 수장이 아니라 영적인 영역까지 포괄하는 지도자로, 이맘이다. 시아의 이맘은 카톨릭의 교황과 유사하게 절대적 무오류성을 가진다. 시아의 이맘이 교황과 다른 점은 선출이 아니 혈통으로 계승된다는 점이다. 순니와 시아는 카르빌라의 비극이라는 구체적 역사적 사건으로 갈라졌다.(타임 안샤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 상술) 이맘, 카르빌라와 함께 순니와 시아를 가르는 핵심 단어는 마흐디사상이다. 마흐디는 하나님이 이끄는 자다. 마흐디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는 순니와는 달리 시아는 12번째 이만이 마흐디라고 믿는다. 순니 신앙을 대변하는 5가지 기둥은 신앙 증언, 예배, 희사, 단신, 순례다.

순니도 시아도 아닌 이바디는 오만에서 국민의 60%가 믿는다. 전 세계 무슬림의 1% 에 못 미치나 탄자니아, 잔지바르, 튀니지, 알제리, 아랍에미리트 등지에 흩어져 소수로 살고 있다. 이바디는 관용 정신이 뛰어난 종파다. 오만에선 순니, 시아와 아무런 문제 없이 어울려 잘 산다. 비무슬림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기반은 전 국민의 약 11%에 달하는 200여 만 명의 알라위파(알리를 따르는 사람들)’ 사람들이다. 시리아 서쪽 지중해 연안에 집중하여 거주한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산악 주민으로 천대받았으나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던 시기에 소수 종파를 보호하면서 나누어 다스려라라는 고전적 통치 방법에 따라 군인으로 활약하다가 시리아를 장악했다.

 

무함마드를 따라서

수피(신비주의 영성가)는 무함마드를 최초의 수피로 받들며 빈곤은 나의 자랑이다눈은 감겨 있지만, 가슴은 깨어있다라는 무함마드의 말을 따라 영적인 가난함을 추구하고 영성을 깊게 하려고 했다.

무슬림 세계에서 흥미로는 점은 모두가 동경하던 법관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정작 이슬람 법학자가 꺼렸다는 사실이다. “이슬람 법학자는 인간 품성을 신뢰했다. 이슬람법에서는 문서 증거보다 구두 증언이 효력을 가진다. 문서는 위조할 수 있지만 흠 없는 성품을 지닌 증인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무리 사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거짓 증언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순수한 마음에서나 볼 수 있는 믿음을 지녔다.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믿음이다. 이슬람법은 이러한 인간 신뢰의 기초에서 시작한다.”(p. 130) 정치지도자는 법학자와 달리 실질적이었다. 이렇게 차이가 분명한데 법학자가 양심적으로 재판을 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법관으로 임명되는 것을 그리도 꺼렸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 불신자와 하는 전쟁보다 더 힘들고 고귀한 내적 싸움. 이를 이슬람에서 지하드라고 부른고 보통 성전으로 번역하는데, 사실 투쟁이 더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신앙심을 내사 함부로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신앙을 기준으로 자주 재판관이 되어 다른 사람을 심판한다. 자신에게 그러한 자격이 없다는 것도 모른 채.

12세기 바그다드 니잠 대학 교수였던 가잘리는 소위 머리가 좋다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짓는 죄로 질투, 위선, 자부심(자만) 새 가지를 꼽았다. “혀야말로 이승과 저승에서 나를 파멸시키는 근본 원인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가질리는 인간이 혀로 짓는 죄를 8가지로 정리하여 조심하라 한다. 첫째, 거짓말 둘째, 약속을 어기는 것 셋째, 뒤에서 험담하는 것 넷째, 신학적, 형이상학적 문제로 남과 논쟁하는 것 다섯째,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 여섯째,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먹는 것이든 간에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 만물 중 어느 하나라도 욕하는 것 일곱째,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를 사람일지라도 욕하고 저주하는 것 여덟째, 다른 사람을 조롱하는 것이다. 혀로 죄를 짓지 않으려면 함부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상책이라고 가르친다.

 

무함마드와 이슬람 이해하기

무함마드가 문맹이라고 무슬림이 믿는 까닭은 어떠한 인간적 의도나 흠 없이 말씀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무함마드는 문맹이다라고 믿는다. 그리스도교가 신조 중심의 유일신교인 것과 달리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행위 중심의 유일신교라고 한다. 무슬림은 하나님 신앙을 구체적 행위로 표현한다. 신앙 행위를 할 때 반드시 먼저 지켜야 할 일은 바로 몸과 마음가짐을 깨끗이 하는 정결례이다. 무슬림 신앙생활에서 깨끗함이 신앙의 반이라는 가르침이 있을 정도로 정결은 아주 중요하다.

이슬람에서 세속과 성이 분리되기는 힘들다. 삶이 종교요, 종교가 삶이다. 따라서 성속 분리를 기본으로 삼는 유럽인의 현대적 삶의 방식과 이슬람적 삶은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슬람 신앙 전통은 자살을 중범죄로 엄격히 금지한다.

무슬림들은 자신이 1년 동안 번 돈 중에서 여러 경비를 제외하고 순수입의 2.5%를 구빈세로 낸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돈이다. 이를 자카드라고 한다.

여러 페이지에 걸쳐 이슬람 사회 여성 지도자를 소개한다. 역사 속에서 여성 지도자를 찾아보고, 두 번의 총리를 역임한 파키스탄의 부토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1명의 여성 지도자를 배출했다. 튀르키예 여성 총리, 방글라데시 여성 총리, 세네갈 여성 총리,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대통령 키르키스탄 대통령, 말리 공화국의 여성 총리, 북키프러스 총리, 모시셔스 대통령 등 여럿이 있다. 이처럼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에서 많은 여성이 지도자로 국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그동안 이슬람을 단순히 여성 차별의 종교로만 보았던 기존 시각을 교정해야만 한다.

이슬람력으로 12달 중 9번째 달의 이름은 라마단이다. 윰달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이슬람 순태음력에서 9월 라마단은 해마다 10일씩 당겨진다. 순태음력의 특성상 한여름에 라마단이 올 수 있고 한겨울에 올 수도 있다. 1,400여 년 동안 이슬람 문화권에서 라마단 단식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 온 것은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내적인 힘을 키워 올바른 삶으로 이끄는 힘이 단식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루살렘은 이슬람 신앙 전통에서 카으바 성원이 있는 메카, 무함마드의 묘가 있는 메디나에 이어 3번째로 중요한 성소다. 알아끄사 모스크와 황금 돔 바위 성원이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이 하루에 5번 예배 의무가 무함마드의 천상 여행에서 결정됐다. 모세의 진심어린 충고가 아니었다면 50번이 될 수도 있었다.

 

현대 무슬림 이해하기 : 이슬람 근본주의와 탈레반

이슬람 근대주의의 효시인 이란 출신 자말룻딘 알아프가니는 19세기에 종교와 일상을 분리하는 서구와 달리 총체적 삶의 양식으로 서구가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성과 속을 포괄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초 자룰라 비기는 교회의 권위로부터 이성을 지키면서 발전한 서구와 달리 무슬림 세계는 창의적이지 못한 법학자와 철학자의 손에 사로잡혀 생명력을 잃고 동력을 상실하여 쇠락했다고 반성했다.

폭력적 근본주의의 효시는 이집트에서 탄생한 무슬림 형제단이다. 알카에다, IS, 탈레반은 모두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으로 이슬람 세상을 꿈꾼다. 알카에다와 IS는 초국가적인 이슬람 세계 건설을 지향하나, 탈레반은 일단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이슬람법이 지배하는 이슬람 국가 건설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슬람법이 구체적이지 않고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제대로 된 전통적인 이슬람법 교육을받은 적이 없다. 오직 이란은 전통적인 이슬람법 교육 기관에서 전문가를 양성허는 전통을 1,00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근본주의자들은 비무스림과 여성,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저자의 바람처럼 비이슬람 독자들이 이슬람 문맹 탈출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슬람 세계 입문서로 타임 안샤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로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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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 길 위의 그리스도 종교문해력 총서 3
정경일 지음 / 불광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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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그리스도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2025. 6. 29()

어릴 때 교회에 몇 번인가 다녔던 경험만이 신앙의 전부인 무신론자가 [종교 문해력 총서 3 기독교] 를 읽는다. 성경을 정독하거나 배워 익히지 못했기에 기독교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학교에서 세계사 시간에 배운 종교적 사건들과 신·구교의 분리, 수많은 종파에 관한 조각난 지식뿐이다. 종교를 믿음의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이해의 문제로 인식하자는 총서의 집필 기획 의도를 따른다.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를 읽어도 기독교를 모두 이해할 수 없다. 읽어가며 밑줄 친 내용들을 정리하며 저자의 문제의식과 저술 의도를 알고 단편적인 지식을 얻는다.

 

프롤로그에서 예수의 전기, 예수 이야기가 시대마다 문화마다 계속 나오는 이유를 예수를 재현하는 해석이기 때문이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패러다임으로 풀고 있다. 예수가 탄생하던 시기를 서구 역사의 어느 시점에 두어야 하는지 헷갈리지 않으려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에 따라 호적 등록을 요구하던 사실을 기억하면 좋다. 예수의 길과 관련지어 자기가 길을 식별하고 선택해야 한다. 선택의 기준은 얼마나 빠른가, 얼마나 쉬운가가 아니라 얼마나 바른가?”(p.19)이다. 우리의 삶의 길도 마찬가지다.

 

우리말 성서에 개역, 공동 번역, 새번역 성서가 있다. 아람어나 그리스어에는 반말과 존댓말의 구분이 없는데, 번역 성서에서 예수의 말을 모두 상대를 하대하는 반말체라고 지적한다.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 복음서를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라 부른다. 경전 중심의 종교성은 세계 종교로 결정짓는 조건이다.

예수를 묘사한 그림은 대략 여섯 가지 종류가 있다. 가장 익숙한 예수의 얼굴은 미국 화가 워너 셀만의 1940년 작품 <그리스도의 머리>로 부드러운 곱슬머리에 잘생긴 백인 예수가 지긋이 위를 올려다보는 모습이다. 김선지 작가의 뜻밖의 미술관에서(p.26) 풀어준 것이다. 디지털 기술과 포렌식 기법으로 팔레스타인 만자의 얼굴 특징을 반영해 형상화한 예수, 1999년 자넷 맥킨지가 그린 <민중의 예수>는 예수를 흑인으로 상상하고 표현했다. 인도인 화가 솔로몬 라지가 그린 <스승 예수>, 1974년 에디위나 샌더스가 그린 <크리스타>여성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프리츠 아이헨베르크의 1951년 작 <빵 배급 줄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 노숙자였다. 스리랑카에서 그린 <야곱의 우물가의 예수와 사마리아 여자>에서는 예수를 불교적으로 해석한다. 각각을 검색해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패러다임을 볼 수 있다. ‘예수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그리자라는 부분에서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윤리는 보는 것이다를 소개하며 고통을 당하는 타자의 얼굴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경계하고 두려워한 것은 유대교 신앙과 삶의 길을 새롭게 해석하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유대인 예수를 이해하려면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던 유대인의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갈릴래아는 유대 세계의 변방으로, 가난하고 작은 자들이 고통당하며 살고 있던 땅이었다. 문형배 전헌법재판관이 말한 창조는 변방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떠올린다. 그리스도는 메시아다. 예수가 탄생한 지 30년 뒤 예수를 따르던 제자 베드로는 스승 예수를 그리스도, 즉 메시아로 고백한다. 성경에 유소년, 청소년기 이야기가 없는 것은 그때까지는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었다는 것을 뜻한다. 로마 제국과 헤로데 왕국과 성전(로마의 다문화 통치 정책에 따라 자유와 특권을 누리던 성전 세력은 성전세를 위한 환전과 제물 매매 독점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의 삼각 지배 동맹이 통치하고 있던 예루살렘에서 하느님 나라 운동을 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위험한 길이었다.(p.225)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돌아온 대승적 신비가들의 자비와 사랑에서 시작했다. 복음서 기록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과 예수는 이종 사촌 간이었다. “우리도 예수처럼 실수하고 실패하면서 자기 소명을 찾아 살고 죽었다는 사실은 우리도 예수의 길을 따라 마음과 용기를 내게 해준다.”(p.89)

 

종교는 역사 속에서 교리, 의례, 조직 등이 제도화되면서 관습적 지혜로 변질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종교 운동은 전복적 지혜로 출발한다. 카렌 암스트롱에 따르면, 종교사적으로 인간의 신 관념은 애니미즘, 토테미즘, 다신론, 단일신론, 유일신론으로 발전했다. 현대에는 이신론, 범신론, 범재신론도 나타났다.

의 행복은 의 행복과 연결되어있다는 상호연결성을 깨닫는 것이다. 공동체성의 각성과 공동체의 구성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p.119)

2022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사회 인식 비교 조사를 통해 개신교 교회가 사회의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개신교인의 62.2%가 인식하고 있다. 개신교인 중에서도 개신교가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응답한 자가 30.5%가 된다.

물질주의는 인류의 아주 오랜 질병이다. 버트런트 러셀의 말처럼 자유롭고 고귀하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소유에 대한 집착이다.”(p.127) 우리의 소유가 우리의 자유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 그리고 물질주의에 갇힌 사회의 우리가 맘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예수를 본받는 것이다. 안식일은 종교적 율법이 아니라 가난한 자, 약자를 위한 사회적 율법이었으나 유대 종교 엘리트들은 안식일 준수를 종교적으로 제도화했다. 예수는 무조건적 환대를 강조했는데, 경계 없는 접촉, 공동식사, 소수자, 약자와의 존재론적 동일시라는 행위를 요구한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원리는 각자도생인바, 돌봄을 인간성과 인간됨의 기본으로 제시한다. 상호의존적 존재라는 것이 돌봄 민주주의의 인간론이다. “우리는 길을 만들고, 길은 우리를 만든다.”(p.195) 고독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중보기도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기도다. 개인주의와 경쟁주의에 찌들어 외로움과 불안한 삶을 질병처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중보기도의 의미를 되뇌자 한다. 유월절은 히브리 조상들이 파라오의 압제와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절기다.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된 것은 로마의 박해가 끝난 4세기 이후의 일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십자가 문양을 병사들의 방패에 새기고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승리하나 후에야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에서 승리와 영광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무신론자인 독자가 읽은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는 그리스도교 입문서는 아니다. 개신교를 믿으라는 요구도 없다. 종교를 이해하려는 시도에 맞춘 내용이다. 2000년 전의 예수를 현재의 관점에서 이해하자는 것이다. ‘갈릴래아의 예수에서 중심부와 변방이란 구조로, ‘전복적 지혜에서는 새로운 관점으로 예수와 기독교를 본다는 이야기이며, 다른 장에서는 무조건적 환대와 공동체의 삶 등을 번 아웃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안으로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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