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역사는 ‘사람‘이 끊임없이 재/발명된 역사다. 누구나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인 인권은 천부인권설이 주장하는 것처럼 태어남과 동시에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계속 발명함으로써 주어진다. 출생지와 성별과 피부색과 종교, 또는 성정체성이나 계급을 두고 그래왔듯이, 아프고 늙고 의존하는 몸을 두고도 우리는 인권 차원에서 ‘사람‘을 고민하고 발명해야 하는 건 아닐까. - P22

환자나 보호자, 노인이나 장애인이 ‘시민‘이기 어려운 사회는 무언가 잘못된 사회다.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가 ‘시민적 관계‘에서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질병, 돌봄, 늙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돌봄을 누락한 채 이루어지는 어떤 시민권/시민성citizenship 논의도, 나아가 시민을 전제로 하는 정치체제와 법제도도, 결국 거대한 부정의를 재생산하게 된다. 이 글에서 나는 "늙고 아프면 누가 나를 돌봐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똑바로 마주하고, 윤리로서의 시민성, 권리로서의 시민권, 문화적 가치로서의 시민다움을 재정의해나가기 위한 시론적 논의를 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시민‘과 ‘가족‘ 사이, ‘시민‘과 ‘돌봄‘ 사이에 놓은 간극과 공백을 더듬어보아야 한다. - P32

한국 정부는 1960년대 이후 추진된 근대화 프로젝트 속에서 노동시장의 정년제와 ‘경로효친‘의 문화적 규범을 제도화했다. 이 ‘국가주도 경제발전‘의 패러다임 속에서, 인간은 ‘국민‘이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할 ‘산업역군‘이며, 이를 위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고, 정년이 지나고 나면 ‘경로효친‘의 대상이 되어 노동시장의 바깥에 모셔졌다. 여성의 위치는 모순적이었는데, 그는 ‘국민‘이라기보다는 ‘국민의 아내/어머니‘여야 했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되 결혼 후에는 ‘부녀자‘로서 남성 가장을 매개로 국가와 관계 맺었으며, 노년에도 ‘경로효친‘의 대상이기보다는 어머니 노릇이 무한히 연장되는 삶이 기대되었다. 늙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이들의 절대 다수가 여성인 지금의 현실은, 이처럼 반세기 이상 누적된 젠더 부정의injustice의 결과다. - P36

많은 관계들이 ‘가족 같은‘ 관계로 불리는 사회는 정이 넘치는 사회가 아니라 상상력이 빈곤한 사회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우리가 취약할 때 바라는 모든 것을 욱여넣기 보다, 가족 바깥에서도 그럭저럭 시름시름 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타인을 든든해하고 필요할 때 기댈 곳이 있으리라 믿으며 늙어갈 수 있는 사회를 구상하고 현실로 만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 P43

그런데 정말 ‘의존적‘이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는가?
사실은 의존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인 것이 아닐까? 왜 특정 의존은 ‘정상‘(심지어 ‘성취‘)으로 여겨지고 다른 의존은 모욕당하는가? 생계부양자인 남편은 아내의 돌봄노동에 ‘의존‘하지만, 통계상으로는 아내가 일방적으로 ‘의존‘한다고 여겨진다.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하지만 한국에서는 ‘기업이 노동자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한다. 전 지구적 노동 분업에 인류 전체가 의존하고 있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옷을 만들어 입지 않는다고 해서 ‘의존적‘이라고 비난받는 사람은 없다. 지배집단의 의존은 ‘의존‘으로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의존의 구조 속에 연결되어 있지만 ‘의존적‘이라는 낙인은 그 구조의 하층부를 떠받치고 있는 이들에게만 전가된다. 간단히 말해서, 독립과 의존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배체제를 지속시키는 허구적 프레임인 것이다.

- P57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돌봄을 받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리고 권리는 의무와 ‘무관하다‘. 즉, 권리는 ‘쓸모‘를 입증하고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 아니고, 각자가 기여한 만큼 돌려받는 등가교환도 아니다. 권리는 인권과 존엄성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하고, 의무는 어떻게 공유되고 분배될 때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방식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 P63

‘환자와 보호자 둘만 아는‘ 세계에 고립되어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많다. 사회적 안전망, 의료접근권, 간병 휴직 등의 제도 확대, 그리고 무엇보다 젠더 정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가 느리게 변할 동안에도 누군가는 심하게 아프고, 누군가는 전적으로 환자를 돌봐야 한다. 하나리 사치코의 대화가 보여주듯,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 있는 위험과 긴장은 때로 ‘죽고 싶은/죽이고 싶은‘ 정도의 문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들은 모르는 둘만의 밀실에서 미칠 것 같은 상황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 밀실에 비상구를 만들어야 하고, 그 비상구 밖에 누군가 서 있어야 한다. 치열하고 힘겨울수록 더 고립되기 쉬운 돌봄의 국면을 견딜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우리 둘만이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는 사실, 누군가 가까이 있다는 실감이다. - P124

그러다 너 나중에 후회한다"라는 협박은 내 마음속에서도 자주 메아리치던 말이었다. 그 ‘나중‘의 후회를 겁내느라 ‘지금‘을 돌보지 못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환자와 보호자의 "생과 사의 조건은 동일하다." - P127

좋은 관계의 기본이 상호성이라면, 비대칭 관계에서의 상호성은 절충과 타협, 끊임없는 조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분별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그 불가능한 지점에서 ‘어떻게든‘, 혹은 ‘그럭저럭‘ 해나가는 것이다. 완결은 없다. 후회도 피할 수 없다. 완벽한 돌봄이 아니어도 돌봄은 귀한 것이다. 완결이 없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인간 삶의 속성이고,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깨어 있게 만들어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 힘껏 임하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존재로서, 서로 힘껏 겪고 힘껏 마주할 뿐이다. - P128

우리는 우선 아픈 사람도 돌보는 사람도 ‘몸인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언제나 위험과 긴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환자와 보호자가 ‘둘만 아는‘ 현실에 고립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 모두의 유한성과 온갖 ‘어쩔 수 없음‘으로 둘러싸인 사회적 상황을 매개하는 ‘적당함‘의 감각,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 사이의 갱신되는 상호적 관계성이 없다면,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완전히 지칠 때까지, 한계에 몰리게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 P130

소위 ‘생애주기‘라는 개념은 "20~30대 젊은 남성들을 최고의 생산노동자로 동원하기 위한 장치"이자 "이 시기의 젊은 남성과 그 외의 인간에 대한 위계를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 개념이지만, 사실 바로 그 인위적 개념이야말로 우리를 사회의 일부이게 하는 요소다. 인생의 시간표, 미래의 전망으로 연결되는 현재라는 시간관념은 질서의 핵심이자 ‘어엿한 사회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질서는 사회적인 것이다. 질병은 바로 그 질서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병 그 자체라기보다, 질병이 무자비하게 삶에 끌어들이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몸의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계획‘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해진다.

- P180

경험을 해석하는 것, 그 해석을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 이야기 안에 통합시키는 것, 나아가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바꿔내는 것은 단지 병에 걸린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질병이라는 모먼트에서 어떤 경험을 어떤 질문으로 변환시키는지가 모두 같은 것도 결코 아니다. 잘 아프자? 그러나 무엇이 ‘잘 아픈‘ 것인지는 ‘잘well‘의 정의에 달려 있으며, 당연히 가치관에 의존한다. 그리고 개인의 가치관은 사회구조와 문화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 P203

국가적 차원에서 치매를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정책보고서의 첫 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이 영상에서 치매에 걸린 사람의 삶은 ‘삶‘이 아닌 ‘비용‘이 된다. 그리고 그 생명이 유지되는 한 지속적으로 돌봄의 비용을 발생시킬 몸들이하고 규정하며, 그런 몸이 되지 않기 위해 준비하라고 경고한다. 그것이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가족에 대해, 혹은 국가에 대해 ‘책임‘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 모든 준비와 관리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치매에 걸린다면? - P217

치매 ‘이전‘의 관리와 치매 ‘이후‘의 책임, 완전한 독립(정상)과 완전한 의존(중증치매)이 대립하는 가운데, 그 사이에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은 기이하게 사라진다. 완전한 독립과 완전한 의존 사이에도 지속되고 있을 사회적 관계들과 삶의 모습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멍하니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의 이미지일지도 모르겠다. 치매에 걸리게 된 당신의 미래는 주어가 될 수 없는 삶이다. 삶은 죽음이 오기 전에 치매와 함께 사라진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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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David did some drawings in the lounge backhome and he called us and said "These are going to be the outfits."
"It was totally unreal. Mick was supposed to wear gold and meand Trevor were going ‘Who is going to be pink?‘ Well Trevor haddark hair and looked good in blue. Then Angela looked at me and said: ‘You have to be a real man to be in pink.‘ - P50

"And so we became Spiders From Mars and learned how to make it believable. Our attitude to audiences was You will like it‘. We didn‘t need a licence to be a musician. We KNEW it was good."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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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 논리로 대표되는 ‘팍팍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신을 ‘정상‘ 혹은 ‘강자‘로 간주할 수 있었던 시절의 정서가 ‘인간적인 것‘, ‘순수한 것‘ 등으로 간주되며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흔하다. IMF 이후 대중영화의 서사적 경향을 분석한 손희정에 따르면, 한국 대중서사가 과대재현한 ‘위기의 남성(성)‘은 곧 지난 시대의 (사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희구를 정당화 하기 위해 동원된 사회적 담론의 산물이었다. 이 서사들에서 목가적인 방식으로 상상되는 ‘원시적 이야기공동체‘의 ‘평화‘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시민권을 삭제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었다. - P31

여성에 대한 물리적ㆍ상징적 폭력 및 도식적 재현을 필수적으로 경유하는 한국문학 전반의 여성혐오, 외국인 이주 노동자 및 결혼이주여성, 장애인, 노동자, 성소수자 등에 대한 재현의 윤리를 고려하지 않는 약자혐오 및 소수자혐오, 장르문학에 대한 철저한 위계화를 통해 관철되는 순문학주의, 자체 동력을 상실한 채 환금화 가능성에만 매달리는 기생적 존재방식, 세계시장 진출 및 세계문학상에 집착하는 제국주의적 욕망 및 후진국 콤플렉스, 가족ㆍ모성애와 같은 전통적 질서 수호에만 골몰하는 폐쇄적 보수성, ‘국뽕‘ 기획과 결합한 무차별적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교조주의적 "꼰대질", 오락성의 현저한 결여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류 한국문학의 부후한 특성으로서 새 세대 문학주체들로부터 자주 지적돼온 내용이다. 그리고 ‘K문학‘은 이 같은 한국문학의 부정적 성격 전반에 대한 종족화를 경유함으로써 ‘한국문학‘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조롱의 기표로 활용되고 있다. 바로 이것이 21세기의 독자들이 ‘개저씨‘들의 ‘K문학/비평‘ 복권에 냉담한 이유다. - P94

‘헬조선‘이 정말 ‘헬hell‘인 이유는 ‘지옥‘을 ‘지옥‘이라고 묘사할 언어조차 박탈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000년대 이후 강력범죄 피해자의 10명 중 9명이 여성인데도 ‘여성혐오 범죄는 없다‘는 단언, 부국강병의 논리로 정당화되는 인종혐오와 소수자혐오의 사례들을 떠올려보자. 소수자의 인권보다 ‘혐오할 자유‘가 우선시되고, 가시화된 차별과 극단적인 폭력만이 혐오의 유일한 내용으로 규정될 때 우리의 사유는 앙상해지고 삶은 피폐해진다. 그리고 이것이 유도하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의 시선을 폭력의 스펙터클에만 잡아둠으로써 그것을 방관할 수 있는 안전한 자리에 ‘나‘를 분리해놓으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다 일상적으로 광점위하게 존재하는 혐오의 구조와 정치적 무의식의 문제는 희석된다. 이제 남겨지는 것은 ‘죽이지 마‘, ‘때리지 마‘와 같은 단말마적인 생존과 치안의 언어뿐이다. - P119

물론, 중견 남성지식인/비평가들의 연이은 ‘페미니스트 선언‘은 페미니즘/퀴어 정치학에 대한 특별한 공부 없이 ‘상식‘과 ‘합리‘, ‘진보‘와 ‘윤리‘ 같은 가치에 대한 느슨한 믿음만으로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인식하고, 그 선언이 즉각 정치값을 가지기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남성권력의 실천이겠다. 그러나 선언의 자격과 진정성authenticity 탐문에만 골몰하는 것은 페미니즘 운동사와 지성사를 갱신하는 데 그리 생산적인 작업은 아니므로 이 현상을 좀 더 확장적으로 의미화할 필요가 있다. 즉 586세대 남성비평가들의 페미니스트 선언이 비록 면피용이나 체면치레, 혹은 구별 짓기의 제스처에 불과하더라도, 그 선언의 수행성performativity을 신뢰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선언‘은 수행됨으로써 선언하는 주체의 의도나 진정성과는 무관하게 그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정치적 급진화의 가능성을 내포한 전략이다. 다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특전사‘이자 여성을 존중하는 ‘페미니스트‘라는 형용모순의 명제를 자기정체성으로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의 전략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상기하는 일은 필요하겠다. - P185

페미니즘 비평이 하는 일은 한국문학사의 미학과 문학적 상상력이 구성돼 온 역사적 방식을 검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앞으로 한국문학이 여성혐오적 상상력을 경유하지 않고도 새로운 미학과 쾌락원칙을 제시할 수 있는지 타진해보는 것이다.
그러니 페미니즘 비평에 대한 한심한 걱정은 접어두시고, 여성혐오 없이 작동하지 않는 당신의 낡고 무딘 미적 감수성부터 걱정하시라. 그럼에도 여전히 페미니즘 비평의 ‘본질적 한계‘를 논하고 싶은 분께는 리타 펠스키의 다음과 같은 당부를 전해드린다. "특정 사상을 주장하는 학파와 설득력 있는 논쟁을 하려면, 그 분야에서 최하가 아니라 최고의 저술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 P217

결국 ‘퀴어‘란, 맥락적ㆍ잠정적ㆍ구성적인 분류로서 이성애적 지배규범과 불화하는 것일 뿐, 결코 특정 정체성의 물리적 총합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체적 또한 타고나거나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인식하고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허구necessary fictions일 뿐이며, 정체성 범주가 곧 정체성정치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숙고돼야 한다. - P394

최근 한국문학장에서 성소수자는 여전히 정체성정치에 기투하면서도 여느 N포세대처럼 가난하고 고립된 ‘보통 청년‘이라는 알리바이와 함께 등장한다. 사회경제적 불안정이 비규범적 성정체성이 초래하는 삶의 무게를 압도하는 것으로 재현될 때에만 비로소 ‘보통 사람‘으로서 대사회적 발언권을 부여받는 것이다. 허나 그렇다면 이건 성소수자의 시민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경제활동의 형상을 경유하지 않고는 ‘보통 사람‘을 상상하지 못하게 된 사태, ‘보통 사람‘의 기준이 너무 낮아진 우리 모두의 불행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 P432

세월호참사를 설명하는 유력한 프레임으로 자주 운위되는 ‘파국론‘에 대해서는 이미 ‘자기 시대를 특권화한다‘(사사키 아타루)거나 "우리 시대의 윤리적 데카당스를 보는 듯"(서동진)하다는 지적이 제출된 바 있다. 이 지적이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파국론에 깃든 사변성과 비운동성의 뉘앙스는 종종 시험에 든다. 그런가 하면, "‘잊지 않겠습니다‘도 행동을 낳는 다짐이었던 것이 이제 그 자체로 행동의 최대치가 되었다."라는 인문학자 윤여일의 진단이 암시하는 것처럼, ‘기억‘이라는 (비)행위의 정치성 또한 무조건 자명한 것은 아니다. - P520

애도하되 그 대상을 ‘순결한 희생자‘나 ‘피붙이‘로 제한하지 말기를, 허무와 체념을 말하되 그것의 정치적 가능성을 봉쇄하지는 말기를, ‘아이히만‘을 말하된 무책임의 체계를 승인하는 방식은 아니기를, 동정과 연민의 기만성을 경계하되 그것이 연대와 실천의 불가능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기를. - P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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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en : Covenant - The Official Movie Novelization (Paperback)
앨런 딘 포스터 / Titan Books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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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커버를 어찌 지나칠 수 있을까! 너무 작은 판형이 아쉽다. 내용은 영알못도 의외로 잘 읽을 수 있어서 영어를 잘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영화를 봤기 때문이지 영어실력과는 별개, 착각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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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싫엌 2024-05-10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혀 예상치도 못한곳에서 뼈맞고 가네요ㅜㅠㅋㅋ

dollC 2024-05-10 21:13   좋아요 0 | URL
어엌ㅋㅋ 제 뼈를 때리다가 출근하기싫엌님의 뼈까지 치고 말았네요ㅜ
 
가지 않은 길 - 미국 대표시선 창비세계문학 32
로버트 프로스트 외 지음, 손혜숙 .엮고옮김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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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다는 행위는 눈으로 시작해 입으로 읽고 마음 속에서 갈무리 되는 것 같다. 익숙함과 낯설음이 뒤섞인 이 미국 대표시선집은 머리에, 가슴에, 입에 남는 시가 다 달랐다. 안타깝게도 눈에만 머무르다 사라진 작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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