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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수취인 불명
새벽 세시 지음 / 경향BP / 2018년 2월
평점 :
수취인 불명.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바로바로 서로의 상황을 톡으로 확인하는 시대에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단어다. 예전에는 이런 제목을 가진 노래도 종종 나오곤 했는데, 요즘에는 편지를 보내지 않으니 현실에서는 사용할 일이 없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마도 이 단어의 뜻을 모르는 어린 학생들도 있을텐데, 수취인 불명은 '편지를 보냈는데 받는 이가 그곳에 살지 않아 반송됨'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 <새벽 세시 수취인 불명>은 새벽 세시쯤 적어두었던, 이제는 어디에 사는지 몰라 (혹은 모르고 싶은) 그에게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다. 받는 사람이 분명하니 수취인 불명일리 없건만, 결국 상대방에게 닿지 않을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니 수취인 분명이 아닐리 없다. 이 책은 누군가의 가슴 아픈 사랑 고백이다.
사실 누구나 알고 있다. 언제고 사랑은 끝이 있다. 사랑이 영원하다고 순진하게 믿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새벽 세시 수취인 불명>은 버티고 버티다 결국 손을 놓아버린 이후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의로 놓았던 타의로 놓았던, 사랑이라는 그 손을 놓은 후 자꾸 떠오르는 생각에 힘들어하는 모습들이 등장한다. 상대에 대한 원망을 하기도 하고, 돌아오면 안 될까 애원을 해보기도 한다. "너 때문에 나는 이렇게 힘이 들어. 왜 내게 그렇게밖에 못했어, 왜?" "계속 아프더라도 네 곁에 있고 싶어."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아팠던 그 사랑을 잊기 위해, 잊고 싶어서 적은 글. 어쩌면 상대방에게 보내기 위한 편지라기보단 나 자신을 다잡기 위해 쓴 글인 듯도 한 느낌도 들었다.
잃다, 낭만. (52쪽)
살면서 딱 한 번 맛본 낭만을 위해서 얼마나 무수한 다른 날들을 죽여왔던가. 그건 애초에 내가 가질 수없던 것인지도 모르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홀연히 떠나버린 네 뒷모습에도 여전히 사랑 고백을 하고 싶은 나는 대체 뭐고.
네가 불행했으면 좋겠다. (124쪽)
네 뒤엉킨 옷가지들 사이에 내 머리카락 한 올 떨어져 있다면 참 좋겠다. 정신없이 나갈 채비를 하던 네가 그 별것도 아닌 것 하나에 울컥해서는 하루를 망쳐버렸으면.
대체로는 너를 잊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기도, 나를 이렇게 만든 너를 원망하기도, 완전히 잊혀지지 않는 지난 사랑에 대한 아픔을 이야기하기도, 더이상 너를 볼 수 없는 슬픔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가 닿지 못한 마음의 부스러기들이 잔뜩 모여 있다. 조각 난 마음이라도, 그 작은 조각에 기대서라도 어떻게 해보고 싶은 글쓴이의 마음 같은 것- 읽다보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아마 이별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위로와 공감을 줄 책일 것 같다. 이별한 뒤 수취인 불명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 부스러기들이 누구나 하나쯤은 존재하니까 말이다.
다행히 책 속에는 갈 곳을 잃은 마음 부스러기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가끔,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글들도 발견할 수 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현재 나는 이별한 상태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 부분들에 더 많은 공감을 했다. 그 중에서 '그뿐'이라는 제목을 가진 글이 책의 모든 내용 중에 가장 좋았는데, 내가 갖고 싶은 사랑관과 무척 비슷해서 마음이 갔던 것 같다.
마음을 담아두는 곳. (112쪽)
시도 때도 없는 애정 표현에도 부디 마음이 닳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번 말해도 가슴 벅차는 말이 있다면 그건 내가 너를 이 마음 온전히 다 바쳐 사랑한다는 말일 테니까. 너는 이 진심을 담아둘 뿐 절대 쏟아지지 마.
사랑의 정의. (142쪽)
세상에 틀린 사랑이 어디 있는가. 정말 틀렸다고 말할 것이라면 그건 애초에 사랑이 아니었겠지.
그뿐. (159쪽)
사랑의 조건이란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자고 말하면 흔쾌히 고개 끄덕여줄 수 있는 여유로움과 폭우 속을 휘청일 때 나를 뿌리처럼 꽉 붙잡아줄 수 있는 단단함이면 그뿐.
새벽 세시라는 작가의 이름처럼 감성적인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이번에도 많은 이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책을 썼다. 이전에 읽었던 <새벽 세시>라는 책은 사랑의 여러 감정에 대해 짧게 적었던 책이었는데, 이번 <새벽 세시 수취인 불명>은 마음을 조금 더 길게 늘어뜨려 편지형식으로 이야기하듯 풀어낸 책이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랑에 관한 감성적인 책이니,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은 천차만별일 테니까. 다만, 이번 책은 마음 부스러기들을 모은 책이라, 현재 마음이 바스라져버려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하고 싶지만 차마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속으로 계속해서 곱씹으면서, 언젠가는 진심이 통하기만을 기도했던 지난 밤들의 기록을 이곳에 담습니다. (중략) 이건 거짓 하나 없는 진심이자, 매일 읊조리던 쓸쓸한 혼잣말이에요.
- 새벽 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