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조각 - 불완전해서 소중한 것들을 위한 기록
하현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늘상 말해왔던 나의 책 고르는 기준은 1번이 제목, 2번이 책 디자인, 3번이 책의 카피(작가가 혹은 출판사가 선정한 부제목 혹은 띠지, 책 뒷표지의 문장)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달의 조각>은 언급된 모든 것에 해당하니, 읽기도 전부터 딱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취향이라는 것은 글을 읽은 후에 충분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 

먼저 책을 좀 살펴보자면. <달의 조각>이라는 책 제목, 깔끔하고 단순하면서도 예쁜 글씨체와 디자인, '불완전해서 소중한 것들을 위한 기록'이라는 부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달'과 관련된 책의 면면, 작가의 이름이 '하현'인 것 까지. 거기다 애초에 <달의 조각>은 독립출판물로, 반응이 좋아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나왔다는 설명까지 들으면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지 않은가. 

<달의 조각>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누군가의 일상이 담겨 있다. 그것이 작가 하현의 일상일 수도 있겠고,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일상일 수도 있을 테다. 되게 보편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되게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묘한 지점이다. 특히나 '적당히 차가운 무관심'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첫번째 주제는, 요즘 들어 더욱 힘들어진 청춘들의 머릿속 어딘가를 작가가 거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공감대가 높다. 대체로 불완전한 청춘의 시간 속 작가가 겪은 흔들림에 대해, 그리고 현재도 가끔씩 찾아오는 마음의 시끄러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지금 막 힘든 사람들이 읽는다면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몇 문장 옮겨 본다.

나는 오늘도 경계를 걷는다.  무엇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모습으로.  15쪽
나는 일상의 바다를 둥둥 떠다니고, 사람들은 모두 새가 되어 날아가. 저기 멀리, 나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17쪽 
가끔 나도 나를 감당하기 힘든 밤이 있다. 지금 내가 왜 슬픈지, 왜 이런 거지 같은 기분이 드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날이 있다. (중략) 그 안에서 누군지도 모를 얼굴을 하염없이 원망한다.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냐고. 왜 나조차 나를 보듬을 수 없는 거냐고. 34쪽

요즘 살짝 힘들다보니 이야기들이 아주 콕콕 마음 속에 박혀오더라. 그런데 사실 이야기들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구성이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첫 번째 주제부터 먼저 이야기하게 됐지만, 원래 하려던 대로 돌아가서) 달은 태양처럼 늘 한결같이 완전한 모습이 아니다. 초승달-상현달-보름달-하현달-그믐달의 순서로 모양이 주기적으로 변한다. 작가는 이 모양이 변하는 달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주제는 총 5가지지만 범위를 넓혀 크게 보면, 초승달과 그믐달을 같은 맥락으로 상현달과 하현달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보름달까지 총 3가지의 주제가 있다고 보면 된다. 

작가는 보름달을 가장 완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름달 주제는 '동행'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당시, 가족과의 이야기 속에서 따스함을 발견한 순간, 나에게 스스로 칭찬해주던 어떤 순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달의 조각>에서 가장 행복한 이야기들이다.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우연히 흘려보낸 누군가의 시간에서 따뜻함을 보는 것은 어쩌면 에세이만의 특권 같은 것. 혹시 우울한건 싫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세 번째 주제부터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가장 완벽한 보름달을 가운데에 놓으면 앞뒤로 모양이 변해가는 달들이 자리잡게 된다. 반달들과 손톱달들. 이 달들은 완벽한 원에서 모양이 변하면서 빈틈이 차오르기도 드러나기도 한다. 빈틈이 있다는 것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그것을 굉장히 싫어하기도 할텐데, 작가는 그 불완전성 또한 '불완전해서 소중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보름달보다 밝은 빛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작가의 말이 뜻하는 것은, 완벽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완벽하지 않은 이들끼리 서로 보듬어줬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듬뿍 담고 있다. 

이렇게 점차 모양이 변하는 달처럼, <달의 조각> 속 이야기들의 시간도 달처럼 변해간다. 외롭고 힘들고 세상에 혼자 떨어져 있던 것 같던 초승달의 시간에서, 한 발짝 내딛어 관계를 맺어보려 하는 상현달의 시간으로. 누군가를 만나 완벽했던 보름달의 시간을 지나, 이별이라는 외로움으로 다시 회귀하는 하현달의 시간으로, 다시 온전히 혼자 남아 조금은 달라진 시야를 가진 나에 대해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끊임없이 변해간다. 굳이 사랑 하나로 묶지 않아도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들이 모여 있으니 이런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며 글을 읽는다면 조금 더 재미있을지도.

두 번째 주제인 '낮잠'은 단어가 주는 어감과 마찬가지로 '무관심'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소화하기 쉬운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세 번째 주제인 '동행'은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랑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를, 네 번째 주제인 '미지근한 온기'는 추억과 사랑의 어느 지점의 이야기가 담겼다. 마지막 주제인 '숨바꼭질'에는 완전함과 이별한 불완전성이 다시 드러났다. 또 마음에 들었던 구절들을 몇 개만 옮겨 보자면.

가장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가장 소홀하기 쉬운 나에게, 너무도 가까워 가끔 잊고 살았던 나에게 한 번쯤 물어봤으면 좋겠다. 너는 오늘 잘 지내고 있냐고, 정말 잘 지내고 있냐고. 71쪽
잊지마. 네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너의 작은 세상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을 때였다는 걸. 117쪽
누구도 사랑하지 않지만, 누구라도 사랑하고 싶은 날이 있다. 199쪽
너 역시 아주 사소한 순간에 문득 나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227쪽

추천사 중에 '안녕하신가영'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글이 있었다. 그녀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들은 알텐데, <달의 조각>은 그녀의 음악과 닮았다. 내지르는 음보다는 조용히 귓가에 자리잡는. <달의 조각> 또한 읽는 이들에게 그렇게 다가갈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읽고 나면 '참 따뜻한 에세이 한 권 읽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만큼, 내 마음이 담겨 있는 이 책을 곁에 두고 읽고 싶어질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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