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온도 - 나를 품어주는 일상의 사소한 곳들
박정은 지음 / 다온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작가님과 어떤 연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트위터라는 SNS를 매개로 작가님의 평상시 이야기를 쏠쏠히 훔쳐보고 있기는 하다. 처음에 팔로우하게 된 계기는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어느샌가 작가님을 팔로우하고 있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작가님의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 <공간의 온도>가 사실 낯설지는 않다. 트위터에 가끔씩 올라온 '책 만드는 이야기'들을 봐와서, 외려 친숙하기까지 하다. 책의 표지를 결정할 때, 책의 제목과 부제를 결정할 때 모두 의견 한 표를 행사하기도 했고 말이다.





"당신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 당신에겐 있나요?"

부제로 적힌 이 문장을 봤을 때 '아, 좋다..'라는 느낌과 함께 이런 생각을 했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기억이라는 공간이 있고 그곳엔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가 존재하는데, 소소하든 심오하든 그 중량에 상관없이 기억 속 한 켠에 두는 이야기들을 찾아가보는 내용이 담긴 책이라니.. 책 되게 좋겠다. 뭐 그런 생각. 하지만 실제로 출판되어 뚜껑을 열어본 책은 기억 속의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작가 주변의 여러 공간들과 그 공간 속에 담긴 기억 속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선후가 좀 바뀌었는데, 바뀐들 어떠하랴. 내 손 위에 있는 책을 펼쳐봐도 여전히 느낌이 좋은 걸.


<공간의 온도>는 걷기를 좋아하는 작가가 직접 이곳 저곳을 걸어다니면서 보았던, 그리고 겪었던 공간들을 그려냈던 네이버 그라폴리오의 작품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평소 그라폴리오에서 작가를 눈여겨 봤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반가울 수도 있겠다. (그라폴리오는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인데, 전문 작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 재치있고 따뜻하고 감성적인 이미지들이 잔뜩 있어 나는 가끔씩 들러서 둘러보곤 한다. 요즘 그라폴리오 작가들의 책들이 출간되고 있는데, 작가가 되는 또 다른 길이 되는 것 같아 신기하고 즐겁다.) 근데 그라폴리오가 뭔지 몰랐다 해도 책을 감상하는 데 크게 상관이 없다. 오히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책을 마주했을 때 표지에서부터 묻어나는 따스함이 좀 더 극적일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공간은 집, 그 중에서도 내 방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의 공간에서부터 시작한다. 책상 앞, 책상 밑, 옷장 속, 침대 밑, 침실, 책장, 창가 등과 연관된 작가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그림과 함께 펼쳐진다. 그리고 방에서 살짝 벗어나면 '우리집'의 공간으로 공간이 확장된다. 거실의 소파, 목욕탕, 창고, 부엌, 베란다, 마당까지. 방금 언급한 모든 곳들은 너무도 익숙한 곳들이다. 평소에 그다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공간들. 하지만 작가가 생각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멀리 나가거나 움직일 필요 없이 내 주변 1m 안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손이 잠깐 닿았던 물건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나 오래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얼마나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사를 많이 다녔다면 이사를 많이 다녀서, 한 집에서 계속 살고 있다면 계속 살고 있으니까 이야기가 늘어나는 것이다. 작가는 책을 시작하면서 '새롭지만 익숙하고, 일상에서 늘 마주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직 책의 채 1/3도 읽지 않았는데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듯 했다. 





집에서 벗어난 작가는 동네골목에 숨어 있던 공간들, 오래된 가게들을 지나다니며 그 속에 자리잡은 자신의 이야기들을 꺼낸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오래된 이용원, 시계밥을 줄 때마다 들렀던 시계방, 늘 뽀송한 옷을 만들어주는 세탁소,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꽃집 등등. 동네의 이곳 저곳을 지나 작가 자신이 쉼터처럼 이용했던 공간들(대체로 책방이나 카페)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궁궐이나 공원, 성당이나 교회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의외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또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다른 도시 여행 중에 만난 공간들까지, 책 속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굉장히 다양하다. 그리고 그 공간들 속에 서 있었던 작가와 글을 쓰는 현재의 작가의 생각들을 고스란히 글로써 마주하게 되어서, 글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내 방을 너무 익숙하게만 보지 않았나. 내가 자주 가던 단골집 혹은 우리 동네의 골목길 속에서 꺼내볼 추억은 없나.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였더라. 뭐 그런 생각들.




따뜻한 그림체만큼이나 따뜻한 공간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작가처럼 예전의 기억들을 주섬주섬 풀어놓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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