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내성적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평점 :
<지극히 내성적인>은 내가 추천한 책은 아니었지만 신작들을 훑어볼때 한 번 보기는 했었다. (다만 내가 추천하지는 않았을 뿐.) 그러니 내게는 낯설 이유까지는 없었지만 또 그렇게 친근할 이유도 없는 책이었다. 그런데 <지극히 내성적인>이라는 이 책 제목이 묘하게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지? 어디서 들었지?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기억을 더듬어가다가 생각났다. 아, '빨간 책방'. 코너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김중혁 소설가가 진행하던 그 코너에서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 코너는 아무래도 내가 빨간책방을 듣지 않은 이후 새로 생긴 코너 같은데, (간단하게 코너 소개를 하자면) 책을 쓴 작가가 직접 자신의 글을 육성으로 읽어주는 코너다. 늘 빨간책방은 라디오처럼 흘려들어버릇 해서 질문이 어떤 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거 하나는 기억난다. 제목이 <지극히 내성적인>인 이유는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라는 단편소설의 제목에서 가져온 것인데, '살인의 경우'라는 단어가 소설집의 성격을 부여해버리는 것 같아 뺐다는 이야기. 제대로 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이야기했던,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소설 제목의 이유는 그랬다.
이 책 <지극히 내성적인>은 최정화 소설가의 단편 모음집이다. 호흡이 짧지만 그 속에서 하고픈 이야기를 묘하게 쏟아내는 재주가 있는 최정화 작가의 글들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소설집. 창비의 신인소설상으로 데뷔해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는 내게 낯선 작가임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의 글들은 섬세했고, 일상 생활과 밀접해 있는 글들을 썼다. 누군가는 쉽게 지나쳤을, 일상적이지만 그 속에 있는 규칙적인 것들에서 벗어난 것들. 이를테면 닳은 구두라든지, 틀니를 빼놓은 남편의 보기 흉한 얼굴이라든지, 소설가가 두고 간 종이칼이라든지. 각각의 이야기에는 그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물건(혹은 상황)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긴밀하게 상상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책의 첫인상을 판단하는, <지극히 내성적인>의 첫 번째 단편 '구두'는 읽고 나서 소름이 끼쳤다. 모든 것은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고 그저 주인공이 상상으로 그려낸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상상을 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상상이 돼서였다. 그저 도우미를 구했을 뿐이고, 구두를 잘못 신고 간 간단한 줄거리였음에도 그 이야기 속에서 시종일관 흐르는 불안한 상상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야기했다. 더군다나 마지막 문단, 그 여자가 내 구두를 탐낸 거라면, 그래서 바꿔 신고 간 것 뿐이라면 그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중략) 하지만 전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 여자가, 자기가 나인 줄로 착각하고 내 구두를 신고 갔다고 말이에요. (26쪽) 부분을 읽다보면,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음장으로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예민도 이만하면 병이고, 망상도 이런 망상이 없겠지만, 덩그러니 현관에 남은 그 여자의 신발을 보면서 했던 불안한 상상은 읽는 이에게 소름을 돋게 하기 충분했으니까. 이런 불안하고 묘하게 어긋난 이야기들이 계속 등장한다. '홍로'라는 소설은 책 속에서 유일하게 귀여운 듯한 느낌의 소설이었고, '오가닉 코튼 베이브'는 세상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안쓰럽게 보이면서도 위태로워 보였다.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는 '구두'와는 또 다른 망상으로 인해 일어날 일에 관한 결말로 이 또한 묘하게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예민하고 망상적인 태도들이 10가지의 이야기들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읽는 내내 소름끼쳤던. 작가는 이 <지극히 내성적인>을 읽고 일상생활 속 작은 것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달라지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기왕이면 작은 것들 하나에도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 예민함을 가질 수 있기를 말이다. 나같은 경우는 귀찮아서라도 세세한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인데, 왜인지 이런 세세함들에서도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신 그것이 불안한 상상이 아닌 즐거운 상상 쪽으로 말이다. 일상이 불안한 울림이 가득한 상상이라면 힘들 것 같으니까.
사람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울림을 가져다주는 불안을 이렇게나 섬세하게 이야기로 엮어낸 작가의 다음 글이 기대가 되는 바이다. 적어도 이런 불안들을 잘 엮어 내는 작가라면 다른 느낌의 글들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