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vs. 서울보통시 - 서울은 왜 서울인가 서울 택리지 2
노주석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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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년 전만 해도, 대학 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던 그 때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간다고 하면 동네사람들이 '출세했다'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니 서울이라는 지명을 갖기 전인 '한양'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6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서울은 사람들의 워너비 수도였다. (그리고 책 속에서 알게 된)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따져보자면, 백제가 한성을 도읍지로 갖고 있던 시절부터 약 2000년간 유용하게 쓰였던 지역이기도 하고 말이다. 2016년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여느 나라의 수도 못지 않게 발달되었고, 편리하고, 거대한 몸집을 자랑한다. 많은 것이 한데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한데 모여있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터전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한양이 조선의 유일무이한 도시였다면 뒤이은 서울 또한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도시이다. 미국의 경제수도 뉴욕과 행정수도 워싱턴을 합쳐놓은 그런 위상을 갖고 있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일본 도쿄와 오사카,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를 버무려 놓은 듯한 일극 집중의 도시이다. 서울이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이 곧 서울이다. 서울을 떠나 대한민국을 논할 수 없다. (6쪽)

 

대한민국을 논할 때 서울을 빼놓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서울도 서울만의 역사를 가진 하나의 도시일 뿐이다. 그 도시에 너무나 큰 무게의 짐을 씌워 지금까지 온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었다.

서울의 역사는 자신의 이름을 잃고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는 여자처럼 수도라는 권력에 함몰된 역사였다. 수도 행세에 이골이 났다. 그래서인지 서울 사람 대부분이 서울을 내 것도, 네 것도 아니라고 여긴다. 수도라는, 중앙이라는, 특별시라는 헛것에 현혹돼 있다. 서울 본연의 것, 서울 고유의 것을 찾아야 한다. (8쪽)

​그래서인지 책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보여주면서 그곳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다각적으로 풀어낸다. 작게는 지리적으로 시작해 크게는 인문학적이고 문화적인 이야기로 끝을 맺는, 저널리스트 특유의 필력으로 지금까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서울'을 보게 된다. 저자의 <서울 택리지>의 후속편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서울특별시 vs 서울보통시>는 전편에는 담지 못했던 정치적인 부분들을 함께 담았고, 그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공존하고 있고, 민낯에 버금가는 부분들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강남과 강북의 2개로 나뉘어진 서울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 올라가 조선시대때의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예나 지금이나 불균형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렸고, 엄연히 땅의 기원이 있고 불리던 이름이 존재했는데도 불구 엉뚱한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는 지명과 일제강점기 시절의 얼토당토 않았던 지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사람에게는 성명이 역사이듯 땅에게는 지명이 역사다'(96쪽)라는 것을 피력하기도 했다. 서울성곽이라고 불리는 '한양도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는 이를 훼철한 일제의 만행에 목소리를 높여 분개했고, 복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는 '서울이라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작업'(132쪽) 이라고 강조했다.

역사문화 도시 서울의 정체성은 내사산(백악-낙산-남산-인왕산)에서 흘러내려 사대문을 울타리처럼 감싼 한양도성 성곽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가파른 고갯길과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한옥 처마와 담장 너머로 펼쳐지는 내사산과 그에 겹쳐진 고색창연한 성곽이 곧 서울이다. (132쪽)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5장인 '정체성을 찾아서'라는 부분이다. 서울이라는 지명이 생긴 이유부터 서울이 왜 서울(수도)일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서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만들어진 '서울학'에 대한 이야기까지. 서울이라는 이름 자체는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라는 것도 신선한 내용이었는데, 서울이라는 글자 자체가 순 한글인지라 한자 표기가 없어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점도 그렇고, 현재의 '서울'이 광복 이후 "'한성시'라고 쓰고 '서울시'라 읽는다"라는 어정쩡한 경성부 고문회의의 절충안을 엎은 미 군정이 확정한 이름이라는 것 또한.

 

서울이라는 명칭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 군정청 관리들에 의해 '선물'처럼 주어진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중략) 그러나 이후 서울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등으로 서울이라는 수도명은 '코리아'라는 국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빅 브랜드가 됐다. 고유명사를 보통명사화한 선례이자 돌이킬 수 없는 압도적인 우리의 수도명이자 지명이 됐다. (182쪽)

 

 

조선시대판 서울시장 한성판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시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열될 때 또한 신선했다. 민선 서울시장이 이제 고작 6번밖에 선출되지 않았다는 점, 그 전에는 모두 관선이었다는 점, 그리고 관선 시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란 이야기를 했을 때 등등. 정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꽤나 담백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 보기 편했다. 마지막 이야기는 서울에 차고 넘치는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다. 이 또한 어디서 본 적 없는 이야기여서 좋았다. 아파트라는 거주형태가 땅이 좁은데 비해 인구밀도가 높아서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로, '압축된 현대성'의 반영이라는 점이 특히 새로웠다. 아파트가 '돈이나 주식과 비슷한 환금성을 가진 재화인 동시에 현대화의 매개체 또는 수단'(250쪽)이었다는 줄레조의 연구결과는 아파트와 아파트 문화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책 속에는 신선하고 낯선것들 투성이다. 알고봐도 재미있고, 모르고 봐도 재미있다. 서울에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거리가 숨어 있다는 것 또한 놀라웠다. 태어난 곳이 서울이라 너무도 당연하게 서울사람이지만, '향토회'가 있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처럼의 '서울사람들끼리의 끈끈함'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정도로 서울사람에게조차 서울은 그저 '서울'일 뿐이다. '고향'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수도'의 개념이 강하다는 말은 이런 걸 뜻한다. 하지만 내가 살아왔고 나의 온 터전을 함께 한 서울이야말로 진장한 고향이 아닐는지. 서울을 좀 더 알면 서울이 더 재미있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서울은 수도라는 무게에 함몰되어 있다'던 저자의 말에 동감하게 되기도 했다. 저자의 이전작인 <서울 택리지>에는 어떤 새로운 내용들이 들어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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