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물아홉 이야기
aaaba 지음 / 연지출판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한 손에 다 잡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반 책보다는 훨씬 작은 크기의, 가볍고 조그마한 책이었다. 책 제목은 <내 스물아홉 이야기>. 책을 펼쳐보기 전이니 어떤 이야기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표지에 여자가 있으니 아마도 여자 화자가 아닐까라는 생각 잠깐. 작가의 성별을 알았다 해도 무언가 유추는 어려웠을 테지만 aaaba라는 작가 이름은 무언가 되게 감추어진 느낌을 주는 듯 했다. 게다가 겉표지에 적힌 글만으로는 책의 그 어떤 내용도 유추하기 힘들었기도 하고. 책의 첫인상 임팩트는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게 맞을 것이다. 표지에 좌지우지 되는 내가 조금은 의외의 선택을 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목이 가지고 있는 뜻이 궁금했다. <내 스물아홉 이야기>, 그 스물아홉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사랑에 관한 내용일 것 같은데 어떤 사랑을 했기에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 뭐, 책을 펼치지도 않고 이런 생각을 해 봤자 죄다 틀릴 뿐이라는 건 나중 일이고.

 

 

 

다소 투박한 글이다. 뭔가 정제된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느낌. 원래 나는 잘 정제되어 있는 글들을 좋아하는데 그렇지 않은 글들에도 매력은 존재한다는 걸 새삼스레 느낀 책이기도 하다. (내취향은 아니다만..이란 전제를 붙여놓는다)


'하나'부터 '마지막'까지 총 22개의 이야기 속에는 어디선가 봤을 법한 연인이 있었다. 그리고 널뛰듯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끌려다니는 스물아홉 남자와 그를 여기저기 기분 내키는대로 끌고다니는 스물 한 살 여자의 모습이 꽤 날것 그대로 등장한다. 고급지지 않으면서도 익숙한,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어떤 연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작은 꽤 불편했지만 점점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며 그렇게 자연스러웠던 시작과 시간이 흘러감에 있어 자연스럽게 멀어질 때까지의 이야기가 말이다.

예의를 중시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이렇게나 치대는(?) 스타일의 여자는 별로라 (내가 여자라 그런가?) 그렇게 좋은 눈으로 여자를 바라볼 수 없었던 것만 빼면 꽤 평범했다. 작가의 말에 적힌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해서 특별한 이야기'라는 셀프 책소개처럼,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어떤 동질감 같은 것이 조금 있었다. 하지만 내 연애가 아니므로 그렇게나 특별하게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은 장점이 아닌 단점.


_ 사랑했던 추억은 장미꽃 같았다. 아름다웠지만 가시가 돋아 있었다. 다가가려고 하면 마음 속에 생채기만 하나 둘 늘어갈 뿐이었다. (7쪽)


_ 사람들은 아플 줄 알면서도 사랑을 한다. 그 긴 터널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게 끝없는 어둠뿐일지라도 기꺼이 그 터널로 몸을 움직인다. (중략) 어떤 사랑이던 간에 공통점은 있다. 심장이 뛰는 걸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리는 거였다. (28쪽)


_누군가를 가슴에 담는다는 건 종이접기와 비슷했다. 아무 형태도 없는 네모난 종이가 어떻게 만지느냐에 따라서 꽃이 되기도 했고 별이 되기도 했다. 다만 문제는 그 후였다. 이미 접어버린 종이는 아무리 조심스럽게 펼쳐도 주름이 남는다. 접어버린 마음 역시 다시 핀다고 해도 주름이 남았다. 그 주름은 추억이라는 이름이었고 그 주름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접힌 자국 그대로 다시 접는 방법 뿐이었다. (46쪽)


_ 지금 이 행복한 순간들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꽃은 지기 전에 가장 아름답게 만개하고 타는 불꽃은 사그라지기 직전에 가장 환하고 밝게 빛난다는 걸 그때의 난 미처 알지 못했다. (176쪽)


_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수학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 무조건 더한다고 해서 더해지는 건 아니었다. 어쩔 땐 절반이 되기도 하고 또 어쩔 땐 곱절이 되기도 한다. (190쪽)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 '인간의 보편적 사랑 감성을 건드리는' 이런 글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결론이라는 것은, 어쩌면 사랑했던 누군가들은 어떻게 됐든 공감할 만한 글이라는 이야기. 다른 이의 사랑에서 내 사랑을 찾을 수 있는 묘한 공감과 나만 이랬던 것이 아니구나에 대한 안도감까지 받는 위로의 글이기도 하다. 가끔씩 위로의 순간을 톡톡히 맛보게 한 글들이 있었기에, 이 책은 순간순간 독자에게 특별해 질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나 이별한 사람들에게 가 닿을만한 글들이 곳곳에 많이 존재한다.)


결국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사랑을 함으로써 더 단단해 지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어쩌면 필연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아파 죽을 것만 같던 사랑도 어찌됐든 지나간다. 어떡하든 지나가는 그 사랑과 시간 속에서, 작가의 스물 아홉도 미래의 내 스물 아홉도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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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2016-01-02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즐겁게 읽은 책이에요. 한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끌었고 책으로 나와서 기쁘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글에서 마음을 종이접기에 비유한 문장은 모두에게 인상깊은가봐요. 이별을 겪은지 한참이나 되었음에도 가슴을 톡톡 건드리는 글이었답니다. 잘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