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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가위바위보처럼 우리 생활에
가까운 것이 또 있을까. 무언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사람을 고를 때도, 더 좋은 일을 맡을 사람을 고를 때도 가위바위보가 쓰인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심지어 TV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대다수의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에서 공수를 정하거나 순서를 정할 때면
늘상 자연스럽게 가위바위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단판에 승부가 나기 때문에 미리 '단판 승부다'라고 정하지 않는 이상 '삼세판'이 기본이라 우길
수 있는 승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욕을 먹을지언정.) 길고 장황한 설명도 필요없다. 그저 주먹을 앞에 쥔 채 기다리고 있으면 '아,
가위바위보를 원하는구나' 대번에 알아차릴만큼 가위바위보는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의 삶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어령 선생은 이 가위바위보에
'문명'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싶었고, 고개도 갸웃거렸다. 가위바위보가 문명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간되는 것이 아니라 이어령 선생이 일본에서 일본어로 책을 내 꽤 인기가 있었던 책이었고,
10년만에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어 나온 책이란다. 그러니 또 궁금해진다. 그러니까 일본과 우리나라와 가위바위보가 도대체 무슨 상관인건데?
무조건적인 승과 패가 나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내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게임. 선제공격이라는 전술이 먹히지 않는 유일한 게임, 아니 오히려 먼저 내는
쪽이 지는 게임. 오로지 손으로만 할 수 있어 어떤 기구나 물체가 필요없지만 상대가 없으면 성사되지 않는 게임, 그게 바로 가위바위보다. 이런
간단한 룰을 가진 가위바위보에서 이어령 선생은 하나의 문명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위바위보에 대한 여러 의미들을 찾는 과정을 가졌고,
하나의 의미에 다다르기 위해 여러 의미들을 잘게 나누어 깊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 책은 조금은 어렵게도 다가오지만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닌
묘한 느낌의 글이란 생각이 든다.
1장은 '왜 지금 가위바위보인가'라는 큰 주제 아래 서구의 '일방통행적'
단어들 (엘리베이터 elevator, 사람 man)에 반해 포괄적인 동양의 단어들 (승강기, 출입구)의 비교를 통해 동전던지기보다 '상대적'인
가위바위보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 2장은 손으로 하는 게임인 가위바위보의 탄생을 이야기하기 위해
'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가위바위보를 논하는 것은 손을 논하는 것이며, 손을 논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해
논하는 것이 된다.'(64쪽) 의 문장처럼 여러가지 '손'의 의미를 살펴보고 (일하는 손, 노니는 손 등) 손으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3장은 가위바위보의 구조에 대해 알아보는 장이다. 결론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이 조금 어렵기는 한 게 단점이다만- '권'이라는 술자리에서 술을 권하는 방법으로 쓰인 가위바위보에 대해 알아보기도 하고, 엉터리에 대한
이야기와 '배'와 '우' 그러니까 희극과 비극에 대한 이야기도 하며 일본을 평가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일본에서 출간되었으므로 일본을
기준으로 놓고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다)
4장은 서양의 동전 던지기 문명과 동양의 가위바위보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자기가 바위를 이기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 둘이 대립하는 가운데 가위가 중재를 하는 것은 양극화가 아닌 원형적인 순환성을 갖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서양에서 흑과 백에서 벗어나 제 3의 길을 찾는 정황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균형과 조화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양극화된
현대 문명에 대한 대안 문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197쪽) 라는 문장으로 대변되는 가위바위보 문명론이 가야할 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마지막 5장은 동아시아 3국 한국-일본-중국의 관계에 대한
재고를 주장한다. 세 나라가 공유해 온 문화는 서양에서는 논란이 되는 지점(단수와 복수의 개념)이 단숨에 설명되는 한자 문화권이면서도 문화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중국은 포용을 의미하는 '보'로, 일본은 무사가 지배하는 나라였던 힘의 '바위'로, 한국은 반도로써의 밸런스를 갖추는
'가위'로 지칭, '바위와 보 사이에 가위가 있다는 것은 경쟁과 협력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새로운 동아시아 네트워크 국가가 만들어질 것이다'(235쪽)의 문장으로 보건대 삼국의 밸런스가 잘 맞게 되는 날 동아시아는
새롭게 세계속에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내비춘다.
어쩌면 단순한 놀이에 불과한
'가위바위보'를 가지고 그 이론들을 고대부터 훑어내려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그 자체가 대단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아이들이 하는
놀이일 뿐인데, 그것을 가지고 동아시아의 정세부터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짚어내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자료들이 이용됐고 학자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무엇이 맞고 틀리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만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그 이야기들을 통해 이뤄낸 가위바위보 문명론은 과연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까란 생각까지 이르렀다. 삼국은 상생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힘과 힘의 서양식 대립을 하고 있으니 나아지고 있는 것이
없는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방통행은
허락하지 않는다. 동전에 모든 것을 맡기는 상황과 달리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고 한다. 자르는 것, 치는 것, 그리고
감싸는 것의 차이가 전부 손 하나의 변화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그 변화를 읽고 대응하지 않으면 지게 된다. 그리고 가위, 바위, 보는 모두
주조된 단단한 금속 동전처럼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즉, 주먹과 손바닥의 차이는 각각의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손이 연속체로서 변화한 것에 불과하다. 결국 존재 being 가 아니라 생성 becoming 하는 것이다. (149쪽)
여전히 동아시아의 관계는 긴장의
연속이지만, 선제 공격을 통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만이 남북 나아가 한국-일본-중국의 관계를 푸는 데에 있어 능사는 아니란 점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가위바위보는 상대와 얼굴을 맞대고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려 노력하는 게임이 아니던가. 원래 있던 것에서 승패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들어가는,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가위바위보의 '삼자견제'는 누구도 정점에 오르지 못하는 동시에 누구도 맨 밑에
깔리지 않는' (265쪽) 경쟁은 있으나 절대 승자도 절대 패자도 없는 게임을 통해 서로 앞으로 같이 나아가는 것만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뿐이다. 누구 하나라도 뒤쳐진다면 아마 많은 발전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지금 문명은 '동전
던지기형'에서 '가위바위보형'으로 이동하고 있다.
상호의존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취해야 할 행동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