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시크'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들의 스타일이 멋스럽다, 그들을 배우고 싶다, 그들의 모습을 따라하고 싶다 등등. 뭔가 되게 선구적이고 외국스러운(?)
단어로 인식 됐던 시기에는 '프렌치 시크'라는 단어가 붐처럼 일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시중엔 '프렌치 시크'와 관련된 책도 많이 나와 있고,
그들의 스타일에 대한 연구도 많이 된 상태다. (나도 프렌치 시크에 대한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부스스한 머릿결, 신경 써서 입은 듯 그렇지
않은 듯한 스타일, 막 걸친 가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있는 애티튜드- 프렌치 시크를 떠올리면 으레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것들만이 프렌치 시크일까. 프렌치 시크란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히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일까. 프렌치 시크로 가는
길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책이 바로 <You're so French!>이다.
책은 서장에서 프렌치 스타일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 '주 느 세 쿠아(Je ne sais quoi)'라고. 이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좋은 것'인데, 확실히 프렌치 스타일엔 뭐라고 콕 찝어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닮고 싶은
자연스러운 맵시가 있다. '프랑스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과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8쪽)'는 저자의 말은 그녀들에 대한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앞으로 책이 가는 길도 일러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옷
스타일은 그 옷을 입는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옷은 하나의 매개일 뿐 중심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그 지점에 집중한다. 사실 이 책도
기존의 다른 패션책들과 다른 점이 없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프렌치 스타일인지 알려주고 노하우를 전해주는 것에 있어서는 다를 것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강점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파리의 패션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패션 인사이더'들의 인터뷰가 그것이다.
。중요한 건 남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의 태도다. 옷이란 자기 정체성을 창조하는 수단이다.
。모든 여성들은 자신만 아는 콤플렉스가 있고, 자신만의 개성이 있으며,
자기만의 욕구도 있다. 나는 의사표현의 자유에 언제나 대찬성이고, 그것은 곧 본인이 입고 싶은 옷을 고르는 자유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자기 표현이 사라지고 남의 시선만 남을때다. 그때부터는 촌스럽거나 천박해질 뿐이다. (쿠튀르 디자이너 '막심 시모엥'.
11쪽)
책에는 패션계의 여러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패션 인사이더'들의 인터뷰들이 실려 있다. 그들이 프렌치 시크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절대로 옷입는 방법이나 노하우들이 아니다.
옷을 입으면서 전체적으로 가져야 할 스타일,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가장 먼저,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중략) 먼저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강조해야 할 면들을 찾아내고, 피부 톤과
머리색깔과 무엇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 찾아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의 어떤 면을 표현하고 싶은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유일무이한 법칙은 없다. 모두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려 있다. 먼저 나만의 특별하고 '사적인' 유니폼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사적인'이라는 단어가 열쇠다. 당신만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 (에르메스 여성복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르메르',
35쪽)
프랑스 사람들이 프렌치 시크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모든 인터뷰이들은 프렌치 시크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또한 유행을 좇기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이야기 한다.
。마케팅으로 인한
낭비와 탐욕의 시대인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 '뜨고', 무엇이 '지는지'의 기준을 정하고 우리가 그들을 따르길 바라고 있다. 뒤를 졸졸 따라가는
것은 당신이 취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연약함과 획을성을 보여줄 뿐이다. (가수 겸 작곡가 '베르트랑 뷔르갈라',
93쪽)
。혼자서도 충분한
사람. 그녀는 자신의 개성을 앞으로 끌어낼 수 있다. (중략) 프랑스만의 강점은 외모를 의식하지 않는 매우 자연스럽고 캐주얼한 매력인 것 같다.
프랑스 여성들은 자기만의 캐릭터를 갖고, 자신의 매력을 인식하고 있으며, 정치, 요리, 육아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패션과
아름다운 옷을 좋아한다 해도 허세 부리고 사치가 심한 여성이 되진 않는다. (헤어 스타일리스트 '오딜 길베르',
117쪽)
이 책은 프렌치 시크에 대한
완벽 가이드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실상은 프렌치 시크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 과하지 않게 꾸미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1번 챕터가 '옷정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버려야 할 옷과 남겨두어야 할 옷, 정리해야할 옷을
나누면서 직접 입어보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들을 골라내는 것이 프렌치 시크 스타일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스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겁먹지
않고 '스타일을 주장하는' 것이 그 다음 스텝이다. 첫 번째 챕터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앞으로 등장하는 13개의 챕터에서 다룰
이야기들 또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팁들이기 때문이다.
패션계의 클리셰들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하이힐은 섹시하다, 레오파드 무늬는 천박하다, 발레 플랫은 언제나 시크하다 등) 여러가지와 믹스 매치가 가능한 클래식한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트렌치 코드, 부츠, V넥 캐시미어 스웨터 등) 악세서리의 사용법이라든가 (스타킹, 스카프, 벨트, 모자) 가방, 데님,
블랙 미니 드레스같은 클래식 아이템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든가 빈티지 옷들을 제대로 매치하는 방법이라든가.
우리는 패션에
대해 각자 접근 방식이 있고, H&M이나 자라 같은 대중 브랜드는 각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어떤
옷이 우리 몸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유행이라도 따라선 안 된다. 결국 패션이란 우리에게 어울리는가 아닌가에 달린 문제다. 그 이상은
아니다. (아틀리에 메르카달빈티지의 아트 디렉터 '이네스 올랭프 메르카달', 184쪽)
걸어다니면서 사람들을
살펴보면 모두 같은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한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것을 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게 모두 다 '잇
스타일', '트렌드'라는 단어에 너도 나도 빠져 있기 때문이다. 워낙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한민국답게 '어떤 것이 트렌드다'라고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 우르르 그 비슷한 것들을 재생산하게 되고 그것들이 널리 퍼져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트렌드가 나타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전의 트렌드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새로운 트렌드로 미련없이 옮겨가 버린다. <You're so French!> 속
프렌치 시크에는 "남들과 같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것도 다르게 입고 싶어하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형태의 옷을 찾아다닌다.
누구보다 자신의 몸을 잘 이해하고 고를 수 있으며, 유행이란 것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프렌치 시크는 결코
먼 곳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유행보다는 자신을 잘 알고, 이런 옷은 그만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리고, 옷 입기를 단순하고 순수한
즐거움으로 생각하면서, 클래식한 아이템과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아이템들과 빈티지 중고 아이템들을 섞어 입을 줄 아는 대담함이 필요할 뿐이다.
'프렌치 스타일이란 무엇보다 개성'이라면서 '프랑스적인 멋을 추구하기 위해 꼭 프랑스 여인이 될
필요는 없다'는 패션 인사이더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과연 프렌치 시크가 저 멀리 프랑스에만 있는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