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담 서포터즈를 하면서 2번째로 맞이하는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이자, 내게는 익숙한 듯 낯설기만 한 내용인 <메리 포핀스>. 어렴풋하게 읽은 기억은 나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상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 책이었다. 굉장히 익숙한 제목이고 유모가 주인공이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다음이 영..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익숙한데
왜이렇게 낯설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메리 포핀스>를 읽기 전까지는 내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메리
포핀스의 이미지를 <내니 맥피>라는 영화와 비슷하겠거니- 상상했었다. 책의 첫 부분만 읽어봐도 유모가 주인공이고, 마법을 쓰고,
아이가 많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메리 포핀스>와 <내니
맥피>는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많이 달랐다. 그러기에 유모가 집을 떠나는 것은 비슷했지만 결론은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한 손에는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꺼낼 수 있는 커다란
카펫으로 만들어진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앵무새 손잡이가 달린 검은 우산을 들고 다니면서 모자까지 갖춰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동풍을 타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그녀는 제인과 마이클, 쌍둥이인 존과 바버라까지 4남매가 살고 있는 '벚나무길 17번지'에서 유모생활을 시작한다. 아이들에게는
꽤 엄한 듯 새침하고 떽떽거리지만, 알고보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못이기는 척 들어주는 기질을 지니고 있다. 겉으로는 거리를 두는 것 같으면서도
뒤에서 챙기는 것이 요즘 '츤데레'라 일컬어 지는 순정만화 속 남자 주인공 이미지와 많이 닮았다. 어떤 성격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이 장면이
아닐까 한다.
"조용히 좀 해."
메리 포핀스는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제인을 나무랐다.
그리고 새로 산 장갑을 벗어서 마이아의 손에 한 짝씩 끼워 주었다.
"이제 됐어! 오늘 날이 추워. 장갑이 잘
어울리네."
메리 포핀스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292쪽)
막 부산스런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 후, 아이들이 해주고
싶었던 것을 대신 해 주는 모습. 자신의 것을 내어주면서도 아이들을 혼낼 때와 마찬가지로 무덤덤하다. 이런 소소한 것들에서 드러나는 메리
포핀스의 성격은 말 그대로 츤데레- 처음엔 '이 유모는 뭔데 애들한테 이렇게 차가워?'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벚나무길 17번지로
왔을 때부터,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냉담했던 그녀다. 아이들이 시끄러운 것을 싫어했고, 자신의 일을 다 하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것도 싫어했다. 일은 끝내주게 잘 한다고 묘사되어 있었으나, 유모가 아이들에게 냉담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하지만 처음의 의문점들은 그 이후
아이들을 대하는 한결같은 그녀의 행동들과 다른 일련의 행동들로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그녀는 '원래 그런 성격'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아닌 척 마법을 통해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영화 <내니 맥피> 속
유모는 악동같은 아이들의 장난과 폭력적 행동 등을 자신이 가진 마법의 힘으로 '찍어 누른다'. 너희들이 힘으로 대든다면 나도 힘으로 내리
찍어주지- 같은 느낌이 물씬 든다고나 할까. 질서와 룰을 만들고 그것을 체득시키게 하기 위해 마법을 쓰는 모습은 마치 사랑의 매를 드는 여느
집과 진배없었다. 물론 그 과정들이 무섭게 그려지기는 커녕 꽤 즐겁게 그려졌고, 나중에 아이들은 내니의 그런 점을 사랑이라 여기고 따르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내니 맥피> 속 유모는 아이들과의 대립을 자신의 힘으로 눌렀다.
그 반면, <메리 포핀스>의 유모 메리는
아이들에게 차가울지언정 아이들에게 어떤 힘을 가하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진 마법의 힘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뿐이다. 하지만 그냥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곳들이 사실은 '그냥' 데려간 곳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야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메리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자신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직접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되고, 그렇게 하나씩을 더
배워가는 것이었다.
"세상에, 붉은 소야!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마. 하늘에서는 매일 밤 수억 만 개의 별이 떨어진단다. 하지만 매번 별이 떨어지는 장소는 매번 달라지거든. 평생 같은 장소에
별이 두 번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럼, 다른 곳에 가면 그 별을 만날 수
있을까요?"
"나 같으면,
별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돌아다녀 볼 거야." (125쪽)
메리 포핀스의 엄마가 붉은 소를 만났던 이야기를 해
주면서 아이들에게 '별을 찾으라'는 그러니까 꿈을 찾으라는 이야기를 에둘러서 해 주기도 하고,
"잡아먹든 잡아먹히든 결국에는 똑같은 거란다. 나이를
먹고 지혜가 쌓이고 나서야 깨닫게 되더구나. 우리는 같은 뿌리를 타고 났다는 걸 말야. 동물은 정글이라는 뿌리를, 너희는 도시라는 뿌리를
타고났다고만 여기겠지만 모든 생명체의 근원은 똑같단다. 머리 위로 자란 나무, 발 밑에 있는 돌멩이, 새, 짐승, 별... 모두 똑같은 곳으로
가고 있어. 만약 나를 잊게 되더라도 이 사실만은 기억해 두렴." (269쪽)
아이들에게 자연과 인간들 모두 같은 생명체로 같이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도 에둘러 알려준다.
메리 포핀스는 아이들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여 그 아이들이 자신들이 직접 보고 느끼면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차갑게
구는 것은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거나 부산하게 굴거나 귀찮게 굴 때 뿐이다. 언제나 '귀찮다'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면서 챙기는 것 또한
메리가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한 뼘 자라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 장을 닫을 때쯤 아이들은 한 뼘
자라 있었다.
<메리 포핀스> 속 엄마, 아빠의 역할은
미미하다. 늘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아빠와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며 보여지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에게서 아이들은 모정, 부정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자고로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이 필요한데 말이다. 그런 그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비워진 곳, 채워져야 하는 곳들을 충실히
채워준 채 메리 포핀스는 떠났다. 오 르부아르,라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말이다. 책 속에 정확한 시간적 흐름이 나오지는 않는다. 네 명의
아이들, 특히 제인과 마이클 남매와 유모 메리가 같이 지낸 시간은 독자로서는 가늠할 수 없다. 다만 동풍이 불어 벚나무길 17번지에 도착한
메리는 서풍으로 바람이 바뀌자마자 떠났다는 것만이 시간의 흐름의 전부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가 얼만큼의 시간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아이들이 '메리는 자신이 약속한 것은 꼭 지키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을 줄 만큼의 시간은 같이 있었던 게 아닐까 추측할 뿐. 프랑스어로 된
작별인사가 '또 만나자'라는 것을 알고 안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이들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메리 포핀스라는 유모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의 그 어느 날 만나게 된다면 아주 반갑게 인사할지도
모르겠다.
서풍을 타고 날아간 그녀는 또 어느 집에서 유모를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새와 바람과 강아지와 대화하고, 그림에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으며, 마음대로 공중에 뜰 수 있는 그녀가 있는 그
집의 아이들은, 적어도 꿈을 꾸는 법을 알게 되고 살아감에 있어 좋은 이야기들을 듣는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겠다. 아이들에게 메리 포핀스는
좋은 유모이며, 좋은 친구이고, 좋은 스승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츤데레 유모가 세상 천지 또 어디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