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 - 엎드려 울고 싶을 때마다 내가 파고드는 것들
한수희 지음 / 웅진서가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부터 쭉 말해왔던 건데, 나는 꽤 '편협'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즐기는 경향이 있다. 넓고 얕은 지식을 가질 주제는 되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얇고 깊은 지식을 갖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은 한 가지에 꽤 쉽게 빠지고 그만큼 열정을 가지지만 또 쉽게 질려버리기도 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나는 꽤 얇고 얕은 지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남들에게 추천받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리스트예요'라면서 공개한 것들도 즐겨 찾아보는 편이다.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대로, 비슷하다면 비슷한 대로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가지를 알 수 있어서-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기에 말이다. (굳이 시간을 들여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 누군가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는 그런 내게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2가지 책과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리스트는 언제고 내가 찾아봐도 좋을만한 것들이라서 더더욱 눈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힘이 들 때의 나는 일부러 밝은 노래를 찾고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을 찾으면서 갖고 있던 생각들을 애써 떨쳐내는 형이다. 비슷한 기분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를 저 바닥 끝까지 끌어내려 울어버리거나 내려놓지 않는다. 그게 괜한 자존심이라 생각하면서도 아무리 집에 나 혼자 있더라도 그런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감정을 풀어내는 데 서툴다. 그런데 부제가 '엎드려 울고 싶을 때마다 내가 파고든 것들'이라고 하니 또 한 번 눈이 갔다. 저자는 어떤 식으로 감정을 풀어내나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 책은 총 4개의 chapter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 현재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 직장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 크게 말해 이런 내용들이지만 들여다보면 소소하게 영화와 책과 저자의 이야기가 함께 뒤섞여 있다. 사랑파트를 예로 들어보자면- 나와 헤어진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봤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고, 누군가와 헤어진 후 심리학 책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나의 잘못된 점을 생각해보는 이야기이며, 그로 인해 사랑이 무엇이었을까 그때의 사랑은 왜 그렇게 뜨겁기만 했었나 고민까지 해 보는 이야기. 이야기가 두서없이 꽤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감정적으로 쓰는 것 같이 느껴지면서도, 구절구절 따져보면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들이 퍽 많아서 슬쩍 스쳐 읽었다가 페이지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그러다 저자가 추천한 책들과 영화들의 리스트보다 오히려 그녀가 쓴 글들에 더 마음을 빼앗겨 버린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말았다는 건 안 비밀. (하지만 즐거운 아이러니다)


저자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던 사람이고, 또한 사랑에 아파하는 여자였으며, 누군가의 선배였으니- 저자와 독자 사이에는 '사람'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하게 된다.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룬 책이어서 더 많이 공감하게 됐었는지도 모르겠다. 관계에 대해 생각했었고 여전히 고민 중이며, 사랑에 앞뒤 없이 달려들던 시절들을 떠올리며 '내가 왜 그랬지'란 객관적 시선을 들이대기도 하지만 또 그때만큼 순수했던 시절은 없었노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들. 그 글들은 묘하게 위로를 받는다. 사실 위로란 게 별것인가. 내 마음에 와 닿는 글귀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 글귀 안에서 위안을 찾는 것이지-



그러니 20대가 바랄 수 있는 행복이란 결국 '확실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였기 때문에 계시와도 같은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나서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확실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중략) 이제 30대가 된 나는 20대의 불안한 프란시스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그 나이에는 원래 그런거라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맘껏 부딪치라고. (91쪽)


내 마음에 와 닿던 이 글귀는 작년에 꽤 호평을 받았던 영화 <프란시스 하>와 관련된 이야기다. 저자는 영화 속에서 되는 일 하나 없던 20대 프란시스의 모습에서 무모하기 짝이 없던 2달간의 인도여행 시절의 본인을 발견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무모했고 무서움도 많았으며 남자를 만났으면 하고 떠났던 여행에서 별 헤프닝 없이 다시 돌아왔던 그때를 떠올리며 20대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저자. "머리를 대고 침대에 누워 봐. 그리고 한쪽 발은 바닥에 놓고. 그럼 기분이 나아져."라는 위로밖에 서로에게 할 수 없는 영화 속 20대들에게 이제는 나이가 훌쩍 든 현실의 저자가 건네는 말은 비단 '말'로써만 들리는 것이 아닌 이유는 글쎄, 내가 지금 그 방황하는 20대여서일까.


나는 여전히 사랑에 아파해야 할 나이지만 사랑에 관한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보다는, 팍팍한 현실과 불안정안 미래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들이 더 좋았다. 특히 여자로서 생각해야 하는 고민들 역시 저자도 했던 것들이라서 그런지 여자 관련 이야기들이 더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유머 감각이라는 건 자신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다. 내 가장 못난 면까지도 받아들이고 내보일 수 있는 용기와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지혜가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비웃을 수 있는 힘과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안타까운 여자, 박복한 여자,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웃긴 여자'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 (111, 112쪽)


한 가지 아는 것이 있다면 정말 보기 좋은 여나들은 날씬하든 뚱뚱하든 상관없이 생기가 넘치는 여자들이란 사실이다. 자신을 긍정하고 인생을 긍정하는 여자들, 카티 같은 여자 말이다. 힘든 일이긴 하지만 내 몸무게를 인정하는 건 곧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조금 더 뚱뚱하더라도 그냥 받아들이고,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날씬해지는 건 그 다음 문제다. (135쪽)


강한 여자들은 상처받지 않는 여자들이 아니다. 정말로 강한 여자들은 그레타나 영남처럼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자들이다. (227쪽)




그리고 가끔씩 이렇게나 와닿는 이야기를 할 때는 책을 읽고 또 읽게 됐다.

자신의 감정을 잘 나타내면서도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은 문장들을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부엌에 있지만, 요리라는 행위와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172쪽)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고통과 상처란 가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강도의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머뭇거리다 뒤돌아서거나 숨지 않고, 전력 질주하여 삶의 품으로 뛰어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다 끝내 패배하더라도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널 사랑했어, 어쨌든. (227쪽)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받은 위로는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라는 거다. 나 혼자만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안도감. 생각해 봤다. 나를 위로하는 좋은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사람마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다들 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와 네가 다르듯이, 내 방법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고 너에게 위로가 될 거라 강요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너도 나도 갖고 있는 그 여러 가지 방법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것은? 아마도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줄 작은 온기란 결론이다. 슬플 때, 위로가 필요할 때 엄마에게 안겨있듯 누군가에게 안겨 있으면 위로가 되는데 그건 서로 감싸안은 체온에서 느껴지는 온기 때문이다. 혼자 있지 않다는 확신-


<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가 저자에게 그 온기를 선사했듯이,

나도 좋아하는 영화와 책들을 리스트업 해서 온기를 가지고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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