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들을래
민지형 지음, 조예강 그림 / 이답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같이 들을래>라는 감상적인 제목을 갖고 있는 이 책은, 책의 서두에서 책의 성격을 일러두고 시작한다. "이 책은 한 곡의 노래를 들으며 떠오르는 감상을 글과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노래와 글이 같은 느낌일 수도, 다른 느낌일 수도 있지요. 각각의 매력을 음미해보시길 바랄게요." 라고 말이다.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생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서울에 1천 만명의 사람이 있다면 1천 만개의 생각이 존재한다는 뜻이니까, 같은 노래를 듣는다고 해도 같은 생각을 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래서 같은 노래를 듣고 작업을 했음에도 노래를 글로 풀어내는 이와 노래를 일러스트로 풀어내는 이와의 의견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이 책은 2명의 작가가 노래를 주제로 엮어냈던 '네이버 포스트' 연재를 묶어서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무슨 이유로 어떻게 포스트를 시작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들리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이미지를 전환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데 있다. 물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본래 가사가 갖고 있는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 한다면 할 말은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생각에서만 그치지 않고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책에는 총 15개의 음악이 실려 있다. 내가 아는 노래가 몇 개, 좋아하는 노래가 3개 정도, 가수는 알지만 노래는 모르는 게 대다수였다. 아주 메이저의 음악들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케이티 페리나 2NE1이 있으므로 그리 인디음악들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플레이 리스트다. 사실,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내가 맨 처음 한 일은 플레이 리스트를 직접 만드는 것이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다면 느낌이 더 살 것 같아서 말이다. 애초에 CD는 동봉되지 않았단 걸 알았기에 책이 도착하기도 전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리라!! 다짐했건만 책이 온 다음에 플레이 리스트 만들기에 착수. (게으름의 승리!)

 

 

 

그래서 만들어 본 플레이 리스트- 내가 갖고 있는 노래가 반 정도, 없는 노래가 반 정도. 없는 노래들은 새로 다운로드 받아서 플레이 리스트를 완성 시켰다. 사실, 이 플레이 리스트는 어떤 주제를 설정하고 만든 리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일관성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플레이 리스트라 하면 주제에 맞게 분위기에 맞게 관련된 곡으로 선곡하는 것이 진리이긴 하지만, 각각의 노래가 가진 이미지들이나 가사의 의미들이 좋은 곡들이 많아서 이 플레이 리스트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기의 곡들은 사람들이 한 번씩은 들어봤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곡들. (모두 숨겨진 좋은 곡들 이니까)



책 속의 15개의 모든 이야기는 내 예상을 빗겨 나가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1번 트랙 '리코다 치즈 샐러드'는 노래가 가진 통통 튀는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랑스러운 이야기였고, 7번 트랙인 바우터 하멜의 귀에 익은 곡 'live little'은 곡의 분위기 만큼이나 두근거리는 런던의 이야기로 재탄생됐다. 8번 트랙 '체리 블라썸'은 제목이 가진 그대로 벚꽃이 피는 것을 예측하는 사람이 예측이 빗나감에 대한 이야기를 인생과 사랑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랑이야기들이자, 노래 가사들과 잘 어울리는 노래들이다. 반대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된 이야기들은 예를 들면 이런 종류다. 투애니원의 컴백홈은 이별이야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이야기가 우주로 뻗어나갔다. 음악에서 느껴지는 신디음이 우주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만, 얼마 전 읽은 어린왕자가 생각 나기도 하고 신기루와 실제 사이의 혼돈을 가늠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가사와 무슨 상관일까 싶었던 이야기였다. 마지막 트랙 '팔베개'는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던 노래였는데, 노래의 소프트함과 무심함은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왜인지 작가의 코멘트가 보고 싶었던 노래. 이야기 자체는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노래와는 조금 언발란스 하다는 느낌 약간-


이렇게 멜로디와 함께 가수가 부른 노래를 들을 때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이야기들이 있어, 그래서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도 있었다. 너무 뻔한 이야기도 있었으며, 오글거리도록 달달한 이야기와 쓸쓸한 이야기들이 공존했고,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이 눈에 밟히기도 했다. 그림이야 내가 아는 게 없으므로 왈가왈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적어도 두 작가가 한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 정도만 귀띔 하는 걸로.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서, 명백한 시작도 끝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순간은 결국 과정일 뿐이다. 그러니 어떤 끝에도 시작은 있다. (p 336)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눈에 와 닿았던 글귀- 이 문장만 놓고 본다면 뜨거운 감자의 '팔배게'와 잘 어울리는 느낌을 받는다.


기다리던 선물 상자를 드디어 손에 넣은 소년의 마음이 이것과 비슷할지도 몰라.

그리고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든지,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게 분명하다.

그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 다만 지금을 믿을 뿐이다. (p 148)

마지막 문장인 '그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 다만 지금을 믿을 뿐이다'가 마음에 들어서 체크해 뒀던 페이지. 다만 지금을 믿을 뿐이다. 이 문장이 나는 왜 이렇게 좋은거니-


한때는 겹쳐져 있던 우리의 길은 그날을 기점으로 갈라졌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길이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우리가 다시 오래전 그날 꿈꿨던 크고 근사한, 쭉 뻗은 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방향의 길을 그려왔던 우리가 만나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교차로에 불과했다. (p 95)

사랑이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는 가정, 그리고 헤어진다면 갈림길에서 서로 헤어지는 것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 하나로 합쳐진 길이 될지 교차로가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이 갔던 부분들이다. '교차로'의 뜻이 안타깝기도 하고 공감도 가서 체크해 뒀었던 부분이다.



조금은 쑥스러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도 많은 <같이 들을래>. 음악을 같이 듣는 것이 책 읽는 것과 도움이 된다!라고 이야기 하기는 힘들지만, 음악으로써의 이미지와 글로써의 매력과 일러스트로써의 느낌들이 모두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조금 새로운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책 읽는 팁을 좀 알려주자면- 먼저 ① 이야기의 맨 끝에 적힌 가사를 먼저 읽어본다. ② 가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고, ③ 트랙 소개 때 보이는 일러스트를 자세히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④ 음악을 들어본다. (음악은 맨 처음이라도 괜찮고 맨 마지막이어도 괜찮다. 음악에서 느껴지는 것과 텍스트가 다른 느낌을 갖는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기엔 마지막이 나을 것 같아 이렇게 적은 것 뿐.)


음악을 즐기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왜인지 나도 오늘부터 음악을 들을 때,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발견하게 됐을 때, 이렇게 약간이나마 글을 끄적이게 된다면 좋겠다. 음악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으로 말이다. 음악과 이야기와 일러스트의 재미있고 묘한 컬래버레이션- 어찌 만족스럽지 아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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