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번쯤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다 - 설렘보다 두려움을 용서보다 분노를 사랑보다 상실을 먼저 배운 당신을 위한 자기치유의 심리학
김현정 지음 / 센추리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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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길가던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본다 가정해 보자. '정신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사람들은 과연 뭐라 대답할까. 아마 다들 "정신과요?"하고 한 번은 되물을 것 같다. 본인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해서. '정신과'에 대해 '무지'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정신과는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니까. 사실 대한민국 사람 열의 아홉은 정신과를 생각하면 정신병원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발작하는 환자, 그런 발작하는 환자에게 구속복을 입히는 남자 간호사, 새하얀 병동, 그리고 비명소리. 내가 어렸을 적 미디어에서 나왔던 정신병원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그냥 폐병원일 뿐인 건물을 정신병원이라고 해서 귀신체험을 하게 하기도 했었다. 사람들에게 낯설면서 가장 자극적으로 화면을 꾸미기 좋은 소스였으니 작가들은 그를 놓치지 싫었을테고, 그렇게 정신 병원은 '무조건 안 좋은 곳'이라는 인식이 머리 깊숙하게 박힌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조차도 정신과=정신병원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정신과는 낯선 진료과다. <괜찮아 사랑이야> <킬미 힐미> <하이드, 지킬 나> 등의 드라마를 통해 정신과 의사들의 모습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정신과를 대하는 미디어의 인식이 달라졌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고백하는 연예인들이 늘었으며, 그들을 상담하거나 치료해주고 있는 정신과 의사들의 얼굴들도 종종 미디어에서 만나 볼 수 있다. 그만큼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반증이기도 하면서 이제 정신과가 더이상 '무섭기만' 한 진료가 아니라는 인식도 어느정도는 자리 잡은 것 같다.

 

이 책 <나도 한번쯤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다>는 그동안 정신과에 대한 이런 저런 편견들을 먼저 깨부수고자 여러 이야기들에 대한 해명을 내놓는다. 정신과 전문의로 10년을 지내온 저자가 앞쪽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기록이 남나요?'라든지 '정신과 약은 끊지 못한다?' 라든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 대체로의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들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되묻는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정신과 기록에만 민감한 것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신과를 다녀왔다는 이유 하나로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일까? (p 23) 라고 말이다. 나도 묻고 싶다. 아직도 아직까지도 정신과에 대한 인식은 병적일만큼 이해하지 않는다. 정신과에 다닌다고 소위 미친년놈인 게 아닌데-

 

성형시술처럼 정신도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p 33)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는 저자는 정신과 마음의 상처는 불현듯, 갑자기, 예고 없이 다친 교통사고가 아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빈 집에 켜켜이 묵은 먼지가 쌓이듯, 오랜 시간 당신이 돌보지 못한 마음이라는 공간에서 외면당한 상처들이 쌓이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단언컨대 궤도를 벗어난 마음이 단번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우는 없다. (p 33) 고 이야기한다. 정신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된다. 사람들은 종이를 넘기다 살짝 벤 상처에도 아파한다. 물론 그정도는 별거 아니라며 넘기는 사람들도 많을테지만 일단은 '아프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마음과 정신의 경우는 다르다. 약간의 상처를 받더라도 넘어간다. 눈앞에 펼쳐지는 데미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데미지가 없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하나 둘 씩 상처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오래된 상처들은 곪는다. 곪아서 차라리 터지면 좋으련만 곪은 상처 위로 다시 상처가 쌓이고, 더이상 쌓일 곳이 없고 도려내지 않는 이상은 상처를 더 키울 수가 없을 때가 오고야 만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때서야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신과를 찾는다.

 

정신과엔 여러 증상이 있다. 사실 정신과가 여러 개로 나뉘어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고, 대중적인 우울증과 공황장애 이외의 트라우마, 무기력증, 분노조절장애, 불면증, 강박성 성격장애, 회피성 성격장애, 연극성 성격장애, 알코올 중독, 자살까지- 이 중, 자살은 어떤 증상이라기 보다는 저자가 자살인구가 너무도 많아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심리학적 의견을 바탕으로 쓴 것 같았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 곁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죠 (p 169) 자살한 사람들의 가족은 주변 사람들을 의식해 고인의 사인을 솔직히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드라마 <연애의 발견> 속 여주인공 한여름의 아버지도 자살이었으나 자신의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교통사고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자살을 하려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꼭 입밖으로 한 번 이상은 꺼낸다고 하니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땐 꼭 이야기를 들어주라는 당부로 마무리 되는 자살 카테고리는 조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자살을 포함한 여러가지 증상을 소개한 2장은 증상의 여러 모습을 소개함과 더불어 체크리스트를 수록해 놓았다. 그러니 자신에게 어떤 증상이 있는지 체크리스트를 풀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듯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관심깊게 열어보았던 '여자는 사랑보다 살이 더 아프다'라는 4장의 이야기. 여자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여자는 분명 사랑보다 살이 더 아프다. 하지만 살을 뺀다고 해서 갑자기 취직되거나, 연인이 생기거나, 모든 사람에게 이정받는 공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에 집착하는 이유가 단순히 몸무게 때문인지 현실 도피를 위한 하나의 방편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p 268)


 

더이상 마음에 병이 있는 것이 쉬쉬해야 할 것이 아니다. 감기에 걸린 것처럼 마음에 병이 있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정신과에 다닌다고 정상, 안 다닌다고 비정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정상의 범주에 있는 사람' 일 뿐이다. 평소 정상의 범주안에 있다가 극한상황에 몰리면 잠시 그 범주를 벗어나고, 진정이 되면 다시 정상의 범주 안으로 돌아오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다. (p 66)

아프지 않은 게 이상한 미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정신과에 대해 조금은 유연함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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